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공지영은 단편보다 장편이 더 좋은 것 같다. 예전에 무슨 문학상 최종 후보로 올랐던 공지영의 단편을 읽다가 도무지 지루해서(길어봐야 고작 열 몇 장에 불과할 단편이 지루하면 얼마나 지루하다고) 끝까지 읽지 못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직전에 공지영의 장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었기에 그 단편에 대한 지루함의 강도는 더욱 크고 당혹스러웠었다. 이 후 또 어느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그녀의 단편을 읽게 되었는데 역시 지루했다. 도대체 뭔 얘기를 하려고 이리도 지루하게 끄는가, 속으로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사이에 소설은 끝이 나 있었다. 이 후로도 문예지에 실린 소설들을 읽다가 공지영의 단편들을 가끔씩(결코 자주는 아니었다) 접하게 되었지만 모두 그냥 넘기고 말았다. 지난 해 가을 공지영의 새로운 단편집 ‘별들의 들판’이 출간되었을 때 살까말까를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녀의 단편에는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장편은 달랐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해 주듯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근래에 읽은 한국 소설 가운데서 보기 드물게 쉽고 재미있게 읽힌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쉬운 소설이다. 그것이 소설의 최대 매력이자 장점이다.

제목부터가 쉽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란다.

책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그녀와 그가, 혹은 그와 우리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쉽게 읽히는 가운데 보편적인 감동을 느끼게 한다. 보편적인 감동이지만 카타르시스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가치 있는 감동이다.

사형을 언도받은 자와 자살을 시도하는 자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듯 하면서도 서로 닮아있는 이들의 ‘진짜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되짚어 보자는 것이다.

인생이란 결국 긴장을 풀고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어둠 속에서 입체적으로 떠오르는 아름다운 구름과 무지개와, 귀여운 동물들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는 매직아이와도 같은 것이다. 아주 작은 각도의 차이지만 그 차이로 인한 결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칼의 날을 쥐면 그 자체가 나를 공격하는 대상이 되어 버리지만 손잡이를 쥐면 나에게 도움을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작은 차이를 깨달아 가는 과정인 것이다. 바로 인생이란, 삶이란 것이...

자살을 시도하는 자에게는 삶 그 자체가 절망이 되지만 사형을 언도 받은 자에게는 삶 그 자체가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은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친 문유정이라는 여자와 세 명의 여자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사형을 언도 받은 정윤수라는 남자가 운명처럼 만나 상처로 얼룩졌던 과거를 이야기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치유와 구원의 길을 함께 걸어간다는 아주 교훈적인 이야기다.

섣불리 쓰면 유치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공지영은 유치함이 아닌 순수한 감동의 수위를 꾸준히 유지하며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힘 있게 끌어간다. 물론 도를 벗어나는 듯한 신파도 보이긴 했다. 유정이 윤수에게 마침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의 죽음에 정말로 사랑하는 연인을 잃는 것 마냥 그토록 애달파 한다는 설정은 읽기에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감정의 과잉은 어쩌면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그러니까 네 인생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겠는가, 라는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조금만 다른 각도로 인생을 돌아보면 행복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 것인지, 얼마나 쉽게 행복을 잡을 수 있는지를 새삼 일깨워 주고 싶었을 것이다.

 

떡 한 조각을 씹고, 차 한 잔을 마시며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털어 놓을 수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어주는 대상을 만날 수 있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아니 그 짧은 순간들이 인생의 모든 행복이 되어 버렸던, 정윤수라는 남자의 인생을 통해 유정이, 그리고 우리들이 자각하고 반성해야 할 바는 과연 무엇일까. 그 답을 찾는 일이란 그야말로 찻잔 속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그 안에 차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쉽고 간단한 것이다.

인생은, 삶은,

살아갈 수만 있어도 행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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