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이혜경 지음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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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란 이야기를 잘 만들어 내는 사람인가, 문장을 잘 쓰는 사람인가... 눈 앞에 없었던 새로운 풍경과 인물과 이야기들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사람이 훌륭한 소설가인가, 아니면 눈 앞에 있는 낯익은 풍경과 인물과 이야기들을 낯선 묘사와 비유로 새롭게 포장해 내는 사람이 훌륭한 소설가인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의 소설이 더 훌륭한가,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의 소설이 더 훌륭한가...

 어느 것이 더 우위에 있는지 쉽게 말 할 수는 없지만,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갖추지 못 한다면 좋은 소설가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소설가라면 적어도 상상력이든 관찰력이든 둘 중 하나는 확실히 뛰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설가들, 특히 단편을 주로 쓰는 여류 소설가들의 경우는 대부분 상상력보다 관찰력이 더 좋은 것 같다. 소설집 '틈새'로 2006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이혜경의 경우도 그러하다.

이혜경의 소설 속에서 이야기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하나로 묶인다. 자의에 의해, 혹은 타의에 의해 타자와 쉽게 섞이지 못 하는 인간들의 한숨어린 일상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자 해도 온전한 식구로 받아들여지지 못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고, 긴밀하게 다가오려는 타인들로부터 자기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선을 긋거나, 관심과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집단의 위선과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꼭꼭 문을 걸어잠그는 현대인들이 있고, 핏줄로 인정받기 위해, 혹은 핏줄임을 부정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족속들이 있다.

이런 식의 이야기나 인물들은 지금껏 수많은 한국 단편 소설들에서 수없이 보아왔다. 그러나 이혜경의 소설이 갖는 새로움은 이야기나 인물들에 있지 않다. 일상의 소묘를 자신만의 색깔로 그려낼 줄 아는, '이혜경만의 문장'들이 진부할 것 같은 소설들을 진부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소설집에 실린 아홉 편의 소설들에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묘사와 비유, 새로운 관찰과 주제들이 담겨 있다. 나와 타인을 구분짓는 삶의 경계선들, 혹은 그 경계선들에서 조금씩 균열이 발생하며 생기는 작은 틈새들... 이혜경의 세심하고 애정어린 시선은 그 틈새에서 벌어지는 작은 현상들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 작은 틈새 속에서 뿜어져나오는 광활한 진리와 가치를 소설 속에 담아낼 줄 안다. 씨앗처럼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상에서 아름드리의 고목 같은 거대한 삶의 진리를 발견하는 기쁨. 그것이 '틈새'를 읽는 재미다.

아홉 편의 단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든 소설은 맨 마지막에 실린 '늑대가 나타났다'이다. 선 밖으로 나가면 늑대들에게 잡아 먹힌다. 선 밖으로 나가지 마라. 어른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선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아이는 문득 늑대들은 선 안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선 밖으로 나가지 못 하게 아이들을 잡아두고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이들은 늑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어둠속에서 연약하고 순수한 것들을 상처입히고 파괴시킬 기회를 엿보고 있는 늑대들은 진정 선 밖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이 소설은 분량상으로 가장 짧은 소설인데 가장 재미있게 읽혔으며, 어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함께 삶에 대한 섬뜩하고 묵직한 감동을 일깨워주는 수작이다.

그 밖에 표제작 '틈새'와 '문 밖에서', '망태할아버지 저기 오시네' 등이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새로운 비유와 멋진 묘사, 가슴을 찌르듯 명확하게 와닿는 예리한 주제들에 감탄을 했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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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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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은 우스꽝스런 유머끝에서 쓸쓸한 연민과 공포가 캐비닛 속의 오래된 먼지처럼 풀풀 날리는 소설이다. '프라이데이와 결별하다'에서 보여준 작가 특유의 페이소스섞인 유머와 예리한 은유가 이번 장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소설을 읽는 순간 종종 '참, 인생이란~' 혹은 '참, 세상 산다는 게~'같은 푸념과 한숨이 나왔다. 웃겼지만 유쾌한 웃음은 아니었다. 그냥 우스꽝스러웠다. 인간이란 게, 세상이란 게... 그래 알고보면 참, 우스꽝스러운 것이지...

심토머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심토머란 변화된 종의 징후를 보이는 사람들을 일컫는 (물론 작가가 지어낸)용어다. 심토머들에 대한 갖가지 사연들이 문서화되어 13호 캐비닛 속에 보관되어 있다. 작가는 그 캐비닛을 열어 그 속에 담긴 풍경들을 보여준다.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 혀가 도마뱀으로 바뀌는 사람, 이쑤시개를 닮아 가는 사람, 종종 길고 긴 잠에 빠지는 사람, 시간을 수시로 잃어버리는 사람, 끊임없이 자신의 분신을 태우는 사람, 고양이가 되고싶어 하는 사람, 태백산 아래에 살고 있는 마법사, 외계인에게 무선 통신을 보내는 사람(외계인)들... 이런 기구한 운명과 사연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13호 캐비닛 속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기발한 상상력에 애처로운 유머와 페이소스가 적절히 녹아 있다. 또 소재를 잘만한 소설 쓰기의 편안함 같은 게 느껴진다는 심사평처럼 기발한 소재와 상상력의 조화가 강렬한 흡인력으로도 이어져 책장이 빠르게 넘어간다. 역시 김언수라는 작가의 역량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한마디로 소설을 재미있게 쓸 줄 아는 작가인 것이다. 국내 작가중에서 이러한 재능을 지닌 작가는 귀할 정도로 드물다. 그런 면에서 이 작가의 대중적인 부상이 반갑다.

아쉬웠던 점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다소 동어 반복적인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역시 은희경이 지적한 대로 너무 길게 늘인 소설이 아닌가 싶다. 이 소설은 작년에 세계문학상 최종 후보로도 올라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와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었다. 작가 인터뷰를 보니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세계문학상 응모를 목적으로 쓴 소설이 '캐비닛'이었다고 했다. 때문에 분량을 세계문학상 공모규정에 맞추기 위해 소설이 불가피하게 늘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소설이 분량에 구애받지 않고 씌어졌다면, 원고지 800~1000매 이하로 탈고가 되었을 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었다면 더 꽉 짜여진 탄탄한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도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다. 처음부터 작가가 이 정도로 길게 쓸 것이라고 작정을 하고 쓴 소설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소설이 다소 동어 반복적이고, 늘어진 것 같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무리 봐도 에피소드들을 몇 개 더 우겨 넣은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작가가 애써 상상해 낸 이야기들이 아까워서 모두 다 넣고 싶은 욕심이 발동했을 수도 있다. 사실 이 소설은 그런 식으로 에피소드들을 얼마든지 더 집어넣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으니까) 또 하나 아쉬운 점은 결말이다. 스파이 첩보물 같은 방식으로 긴박하게 라스트를 이끈 것은 환영할만한 했으나 결말을 매끈하게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앞부분에서 다소 동어반복적이었던 에피소드들을 몇 개 빼내는 한이 있더라도 라스트에 지면을 더 할애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소설이다. 이만큼 재미있는 한국 장편소설을 읽은 것은... 작년 여름 '뿌리 깊은 나무' 이후 처음인 것 같다.(그 사이에 읽은 달콤한 나의 도시, 핑퐁 등은 모두 캐비닛만 못 하다) 이 정도 소설이라면 짜장면 세 그릇 값을 아껴서라도 책값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국내 작가들의 소설이 캐비닛만큼만 재밌다면 글쎄... 문학의 위기 운운할 필요도 없을 거라고 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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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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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손님에 대한 공포를 그리고 있다. 손님, 즉 낯섬, 새로움이 주는 공포에 대한 저항, 혹은 통과의례에 대한 이야기다.
그 학교에서는 3년마다 '사요코'라는 행사가 이루어진다. 그것은 간단하지만 긴 시간을 요구하는 행사다. 3학년이 되는 모든 학생들 가운데 한 사람이 '사요코'가 된다. 그럼 사요코가 된 그 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자신이 사요코임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 중도에서 자신이 사요코임을 들키게 되면 게임은 그것으로 끝이다. 그 해의 사요코 행사는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요코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내느냐 마느냐에 따라 그 해의 대학 진학률이 달라진다는 소문도 있다. 대학 진학을 앞둔 수험생들이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소문인 것이다.

그 해, 여섯 번째 사요코 행사가 시작되는 그 해 봄,
뜻밖에 두 명의 사요코가 나타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한 명은 전년도 졸업생 중 한명에게 그 전설의 '사요코 열쇠'와 '사요코 메뉴얼'을 건네받은 진짜 사요코, 또 한 명은 이름이 사요코인 새학기에 전학을 온 미모의 여학생. 사요코 역을 맡은 학생은 혼란에 빠진다. 자신이 분명 진짜 사요코인데, 저 전학을 온 사요코는 또 뭐란 말인가? 저것은 올해의 사요코 행사를 무사히 끝내지 못하도록 투입된 사악한 제삼자의 방해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계획된 행사의 일부인가? 그리고 이따른 의문의 사고와, 머리칼이 쭈뼛 서는 공포가 이어진다.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수험생이 된 3학년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스산한 불안감과 두터운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혹은 견뎌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래서 그들은 친구를 사귀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축제를 준비하며, 전설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이 어정쩡한 시기를 무사히 보내기 위해.
그래서 그들에게 사요코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전학을 온 아름다운 외모의 사요코든, 올 한해를 아무 탈 없이 보내기 위해 행사를 무사히 마쳐야 하는 임무를 띤 전설의 사요코든 말이다.
학생들에게는 새로움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대안, 혹은 제물이 필요하다. 앞서 손님이라는 얘기를 했는데, 손님이란 낯선 사람이다. 학생들에게 낯섬, 새로움은 설렘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전학생에 대한 공포, 졸업에 대한 공포, 입학에 대한 공포, 불확실한 미래로 나가는 것에 대한 공포, 불확실한 미래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공포, 그 새로움이 주는 공포,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손님을 맞이해야만 하는 암담한 공포... 그 공포가 학생들을 두렵게 하고, 때론 학교를 두렵게 만드는 것이다.
모든 것을 부모나 교사가 챙겨주던 학창 시절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미래를 이끌어가야할 때가 머지 않았다.

새로운 시작, 그 관문을 넘어서는 일이 학생들을 설레게 하고, 또 두렵게 하고, 지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요코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고,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동아리 활동이 필요하고, 함께 웃고 떠들수 있는 축제가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미지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내성을 키워가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크게 보면 학교 전체에 해당되는 통과의례인 것이다.
과연 여섯 번째 사요코는 누구이며, 여섯 번째 사요코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아이들은 무사히 졸업을 하고, 무사히 학교를 나갈 수 있을까? 학창 시절의 마지막 일년을 아이들은, 그리고 학교는, 과연 무사히 극복할 수 있을까?

온다 리쿠는 이 전율적인 데뷔작을 통해 학교라는 의미와 그 속에서 생활할 수 밖에 없는 학생들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 그리고 그 극복의 과정을 섬뜩하면서도 향수 어린 문장으로 아름답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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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선 모중석 스릴러 클럽 1
제임스 시겔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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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회사에 다니는 40대의 직장인 찰스는 어느날 아침 출근길에 자신이 타야할 기차를 놓치고 다음 기차를 타게 된다. 그 안에서 그는 숨막히게 아름다운 여인 루신다를 만난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급격히 가까워진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모두 가정이 있는 몸이다. 하지만 강렬한 욕망은 현실의 벽을 순식간에 넘어서 버린다.

한 순간의 탈선, 어긋난 애정행각...
불륜은 제법 얌전한 모습으로 조용히, 만족스럽게 끝날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 괴한이 이들 사이에 끼어 들면서 찰스의 삶은 선로를 벗어난 열차처럼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폭주하기 시작한다. 괴한은 찰스에게 돈을 요구함과 동시에 무시 무시한 협박을 가한다. 찰스는 두가지 무거운 책임에 짓눌려 허덕인다. 저 더럽고 무서운 괴한으로부터 가정을 지키는 것과, 아름다운 루신다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 그러나 찰스 혼자서 그 책임들을 모두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 나름대로 궁리를 하고 발버둥도 쳐보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주위의 모든 것들이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찰스의 목을 조여온다.

이 소설의 최대 장점은 책 표지에도 씌어 있듯 오싹하고, 섬뜩하고, 강렬한 위기와 반전이 촘촘하게 엮인 철로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작가는 다소 진부한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대신 주인공을 끊임없이 궁지로 몰아 넣는 지혜를 발휘한다. 아름다운 여인 루신다에게 한순간 눈이 먼 찰스는 그로 인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그 대가는 눈덩이처럼 점점 커지고, 절망은 바닥을 보이지 않는다. 찰스는 직장에서, 가정에서, 거리에서 끝없은 고통과 위협을 받으며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그러나 이 스릴러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나는 순간은 소설이 중반부를 넘어서는 시점부터다. 바닥까지 떨어진 찰스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의 이면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을 알아 차리는 순간부터 이 소설은 전혀 새로운 양상을 띠며, 새로운 반전의 칼날을 드러낸다. 바야흐로 소설은 스릴러라는 껍질을 뚫고 누아르로 탈바꿈 되는 것이다.

제임스 시겔의 두번째 장편 소설인 <탈선>은 출간되자 마자 헐리웃 제작사에게 판권이 팔리며, 뉴욕 베스트셀러 순위에 6주간 머무는 대히트를 기록한다. 진부한 설정으로 시작하는 듯 하지만 몇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소설은 예상치 못한 기운을 띠며 고공 비행했다가, 어느 순간 수백미터 낭떠러지 아래로 끝없이 낙하한다. 독자는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완전 몰입되어 숨막히는 스릴과 암담한 공포를 함께 느끼게 된다. 그리고 라스트의 대반전에서는 카타르시스의 진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제임스 시겔은 정말로 영리하고 날렵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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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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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대한 느낌은

대단했다.

엄청 재미있었다.

라는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해설을 쓴 소설가 시게마쓰 기요시도 그런 말을 했었다.

단순하고 싱겁지만 이런 표현이 최고의 감상이 아닌가 싶다. 좀 구체적으로 감상을 쓴다고 해도 결국 저 단순한 느낌으로 귀결이 될 것 같으니. 


폭우가 몰아치던 어느날 밤 아라카와 구 사카에쵸의 '반다루 센주기타 뉴시티' 웨스트타워 2025호에서 '일가족 4인 살해 사건'이 발생한다. 문제는 죽은 네 명의 사람들이 웨스트타워 2025호의 입주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2025호의 입주자는 전혀 다른 사람들로 바뀌어 있었고, 바뀐 그들이 어느날 의문의 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소설은 르포형식을 취한다. 살인 사건을 둘러싼 용의자와 경찰, 그리고 수많은 주변인물들과 인터뷰를 취하는 방식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그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사건은 재구성되고, 조금씩 가려졌던 진실이 드러난다. 자석이 철가루를 모으듯, 사건과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인물들이 조금씩 사건의 중심부로 이끌려 오며, 전혀 다른 가족의 전혀 다른 사연과 이야기들이 결국에는 사건의 중심부에 걸쳐진다. 


그러나 어디서나 진실을 밝히는 일이란 쉽지가 않다. 소설은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즉, 하나의 사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되어 있으며, 그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사건의 기억들은 얼마나 주관적이며, 사람들의 이기심과 욕망에 따라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어긋나고 일그러질 수 있는지, 때문에 사건에 관여된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진실을 밝히기가 얼마나 더 복잡하고 어려워지는지, 때론 엉뚱한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진실이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작가를 그 많은 사람들의 입을 빌려서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또 하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사회의 고도성장에 따라 함몰되어가는 인간성에 대해서다. 인간은 자신과 가족의 안락을 위해 바깥에서 일하고 노력한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 사회 속에서 부대끼며 갖은 고생을 한다. 내면의 충만을 위해 외면에서 그 답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바깥에서 고생을 하고 튼실한 발전을 이룩하는 사이에 내면이 황폐지고 있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면의 발전이 내면의 안락과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 하거나, 이어지기도 전에 내면이 붕괴되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물질의 고도 발전이 결국 인간성 상실과 가족의 파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 상징적인 예로 '반다루 센주기타 뉴시티'라는 고급 고층 아파트에서 살해당한 일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이 사건은 현대 사회가 겉모습은 화려하고 위풍당당하기 이를 데 없으나 속은 얼마나 곪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되는 것이다.

사건의 모든 진상이 밝혀지고, 진범이 드러나는 마지막 순간에 독자는 경악과 함께 무언가 가슴에서 치고올라와 숨구멍을 막아버리는 답답한 심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여느 추리소설처럼 범인이 밝혀지고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도 통쾌하거나 감동적이지 않다. 그저 깊은 한숨이 나올 뿐이다. 그리고 어쩌다가 세상이 이렇게 되었나 하는 한탄과 고민에 빠지지 않을까...


감탄을 한다면 660페이지에 달하는 이 거대한 장편소설을 날렵하고 안정적인 필체로 무리없이 이끌어간 미야베 미유키의 필력에 감탄을 하고, 그 긴 이야기를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간 흡인력과 절묘한 구성에 감탄할 것이다.

왜 이 소설이 역대 나오키 상 수상작 중 독자들이 선정한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 되었는지 읽어보면 과연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고층빌딩에 화려한 불빛들이 많다.

도심의 야경을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아마도 그런 모습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높이 솟아오른 빌딩과, 아파트, 그리고 화려한 네온사인들, 헤드라이트를 길게 그리며 쭉 뻗은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요란한 빛깔들... 도시의 겉모습이란 그렇다.

그러나 과연 그 안은 어떨까. 겉모습만큼 화려한 행복과 웃음이 곳곳에서 넘쳐나고 있을까?

찬란하게 빛나는 수은등 전구 속에 얼마나 많은 나방과 벌레들이 죽어있는지 보게 된다면 그 빛을 결코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화려하고 위풍당당한 고급 고층 빌딩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 상사에게 갖은 모욕을 당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료들을 배신하고, 살벌한 경쟁에 시달리고, 담배 연기 속에서 눈물을 삼키고, 원한을 삼키고, 죽음을 도모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면 그 고급 고층 빌딩을 멋있다고 할 수 있을까. 단지 빌딩을 짓는 재료와 기술들만 멋있을 뿐이다. 그것은 한낱 그릇에 불과하다. 정녕 아름다운지, 멋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그 외형이 되는 그릇이 아니라 그릇 속에 담겨진 내용물들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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