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1
로렌 와이스버거 지음, 서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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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갓 대학을 졸업한 23살의 앤드리아 삭스는 패션 전문지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스틀리의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된다. 패션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런웨이 세계를 군림하는 이 여왕 같은 존재는 그러나 사실 변덕이 죽끓듯 하고,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대부분의)사람들에게 무시와 경멸을 보내는 악마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앤드리아는 일 년간 미란다 밑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기로 계약을 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해온 성공을 위해서. 그리고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괴로워한다. 일 년간,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몇 십 년에 걸쳐 당할 수모와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앤드리아는 버티고 또 버틴다. 그녀는 오직,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렇게 11개월을 보낸다. 그 사이에 절친했던 친구가 알콜 중독이 되어가고, 4년 가까이 사귀어 온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흔들리고, 가족들과 소원해지고 있다는 것을 앤드리아는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아는 척 할 수 있는 시간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고대했던 성공이 눈앞에 보이지만, 앤드리아가 진실로 사랑했던 사람들은, 떠나온 섬처럼 까마득히 멀어져 있다. 하나의 성공을 손에 쥐는 대가로 그녀는 너무도 가혹한 희생을 치러야만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 자신이 붙잡아야 할, 두 발을 딛고 일어서야 할 진정한 현실인지... 성공과 사랑 사이에서 엄청난 딜레마를 겪는다. 그리고 그 잔혹하리만큼 눈물겨운 기로에서 앤드리아는 마침내 선택한다.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를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러나 소설 속 주인공 은수의 삶과 사고에는 크게 공감 할 수가 없었다. 나름 고민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은데도 먼 나라 이야기처럼, 혹은 드라마 속 이야기처럼 부푼 환상과 피상적인 재미만 느껴질 뿐 가슴 깊은 공감이나 울림은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연하남과의 동거를 비롯한 은수의 각종 연애담들이... 그런데 정작, 거의 지구 반대편에 사는 이 젊은(차라리 어리다고도 할 수 있는) 금발의 백인 여성이 쓴, 이 소설은, 왜 그리도 구구절절 공감이 가든지... 왜 이 미국인 작가가 쓴 소설이 우리나라 작가가 쓴 소설보다 더 공감이 가는 건지...
그래, 인생이란 이런 것이지... 현대사회에서 직장을 구하고, 일을 한다는 것은, 성공을 꿈꾼다는 것은... 이렇게 비정하고, 고통스럽고, 잔혹한 것이지...
가련하게 울부짖는 저 어린 사회 초년생이여... 저 살벌한 세상의 중심으로 뛰어 든다는 게, 그 정글 같은 세계를 헤치고 나간다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란다... 그렇고 말고... 낭만? 달콤함? 화려함? 아니면 낯선이와의 황홀한 원 나잇 스탠드? 그런 것들은 기대하지 말아라. 그야말로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 혹은 돈 많은 백수들의 세계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란다. 우리네 현실은, 사회는, 삶은 만만치가 않단 말이다. 앤-드리-아, 우리 아이들이 해리포터 신작을 남들보다 하루 빨리 읽고 싶어해. 앤-드리-아, 저번에 내가 빈티지 서랍장을 본 그 골동품 점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필요해. 앤-드리-아, 45분 안에 내가 읽을 연설문을 써 가지고 와! 네가 사회에서 해야 할 일들이란 바로 이런 것들이란 말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체계적인 그런 일이 아닌, 맨 땅에, 맨 손으로, 하루만에 베르사유 같은 궁전을 지어야만 하는, 그런 뜨악하고 무지막지한 일들이란 말이다. 물론 그런 일들 속에서도 이성과 논리와 체계가 존재한다. 하다보면 느껴진다. 그러니 일단 해야한다. 뭐? 어떻게 출간되지도 않은 해리포터 신작을 미리 구할 수 있냐고? 그 골동품 점의 상호가 뭐냐고? 어느 지역에 있는지 모른다고? 45분 안에 연설문을 쓸 수 없다고? 앤-드리-아, 그런 일을 하기 위해 네가 여기에 있는 거라고!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당장 이 사회에서 떠나라고! 지금껏 올라왔던 저 보잘것없는 몇 계단을 도로 굴러서 맨 밑바닥으로, 네 응석과 넘치는 감정을 황홀히 받아줄 가족의 품안으로 돌아가 방문을 걸고 잠그고 갓난아기처럼 나태하게 살란 말이다.


앤드리아는 무조건 해야만 했다. 미란다가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출간되지도 않은 해리포터를 하루 전에 구해야만 했으며, 미국 땅덩어리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모르는 그 골동품 점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내야만 했으며, 45분만에 짧고 간결한 연설문을 써내야만 했다. 그녀는 그 모든 일들을 기적처럼 해낸다. 미란다를 위해서. 아니, 스스로의 성공을 위해서! 친구와 가족과 사생활을 팽개치고...! 수프와 스타벅스 커피로 끼니를 때우며 그렇게 열심히, 열심히 계단을 올라간 것이다.  

갓 대학을 졸업한 꿈 많은 젊은이가 현실의 세계로 진입해 성공의 궤도에까지 오르기란, 하나의 세계가 멸망하고, 또 다른 세계가 탄생되어지는 일 만큼이나 험난하고 엄청난 것이다. 현실의 세상이란 교과서에 배운 것처럼, 텔레비전 속에서 분칠을 한 배우들이 조잘대는 낯간지러운 세상처럼, 동화처럼, 환상처럼, 아름답고 선한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악마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와 같은 곳이다. 온통 화려하게만 보이는 패션계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애처로울 만큼의 땀방울과 살을 벨 듯한 냉기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굽이 10센티미터나 되는 멋들어진 스켈레토 구두를 신고 폼을 내기 위해서는 뒤꿈치가 타는 듯한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고, 4만 달러짜리 샤넬 드레스를 입기 위해서는 살인적인 체중감량을 감수해야만 하듯, 거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듯한 고생을 겪어야만 겨우 골프공 만한 작은 성공하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이 세상의 법칙이며, 성공의 법칙인 것이다.  

앤드리아는 미란다라는 악마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배워간다. 세상을 보는 시각과 현명히 대처하는 사고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악마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분야의 성공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무수한 악마들로 북적인다. 그 중에서 앤드리아는 고작 프라다를 입는 악마 하나만을 상대했을 뿐이다. 그녀는 아직 젊었고, 성공을 위해서는 더 많은 계단을 올라야만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악마를 만날 것이다. 하지만 계단을 하나씩 오르고, 악마를 하나씩 상대할수록 그녀는 더 성숙해지고, 현명해질 것이다. 아름답고 성공적인 삶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녀 자신도 하나의 악마가 되어갈 쯤에 그런 것들을 완전하게 터득할런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 어떻게 살든... 성공을 꿈꾼다면 반드시 고통을 감수하고 악마와 어울리든, 스스로 악마가 되어야만 하니... 세상이란, 참, 정말로, 과연, 만만찮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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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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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물 사용법>은 천운영의 세번째 소설집이자, 네번째 책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서 나는 천운영의 전작을 읽게 되었다.
등단 8년만에 네 권의 책이라... 다소 과작을 하는 듯 싶지만, 천운영은 부지런한 작가다. 첫 장편 <잘 가라, 서커스> 이후 약 일년간 소설을 쓰지 못했다고는 했지만, 그녀는 비교적 꾸준히 단편을 발표해왔다. 지난 한 해동안만 네 편의 단편을 각 문예지에 발표했다. 각종 문학상 후보에도 자주 올랐다. 특히 작년과 올해에 연달아 이상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었다. 그녀는 늘 자신의 자리에서 꾸준히 글을 쓰고, 평론가와 독자로부터 쉼 없이사랑을 받아왔다.  
천운영의 소설이 평단과 독자에게 골고루 사랑 받는 이유는 색깔 때문이다. 그녀만의 색깔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 너무 강렬해서, 너무 자주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녀만의 강렬한 색깔. 천운영의 소설집을 단 한권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그 색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뾰족한 바늘로 살갗을 파고들어 한땀 한땀 화려한 얼룩을 내는 문신처럼 강렬하고 소름 돋는 색채. 혹은 이미지. 
 
첫 소설집 <바늘>부터 천운영은 늘 인간의 몸, 혹은 여자의 몸을 서슴없이 주무르고, 파헤치고, 열어 보이는 작업을 해왔다. 그것은 두번째 소설집 <명랑>에서도 이어졌고, 세번째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 이르러서도 작업은 쉼없이 진행되고 있다. 몸의 탐구. 그것은 곧 감정의 탐구이며, 삶의 탐구에 다름없다. 감정을 담고 있는 몸, 감정을 담고 삶을 살아가는 몸. 인간의 몸을 들여다보면 그 인간의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인생, 그리고 그 인생의 골짜기마다 서려있는 감정과 눈물과 욕망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세번째 소설집에 와서는 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더 깊이 있게 담아내려고 한다. 천운영의 강한 특징 중에 하나인 철저한 취재에 입각한 사실적 묘사에 소설적 상상력과 환상성이 넘치지 않을 정도로 가미된다. 그래서 어떤 작품은 필시 처참하고 눈물겨운 인생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풀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화나 판타지, 혹은 꿈결 같은 아련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환상인듯, 현실인듯 모호한 경계 속에서 인간의 몸 속에 내재된 욕망의 덩어리들을 가차없이 터트리고, 주무르고, 독자로 하여금 그 진실의 실체를 느끼게 한다.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와 '내가 쓴 것', 그리고 '백조의 호수'가 특히 좋았다.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는 <바늘>, <명랑>에서 보여진 천운영만의 특색과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었고, '내가 쓴 것'은 내용만 따지고 본다면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형식의 소설가 소설을 썼다는 실험성과 대중적인 흡인력은 훌륭했다. '백조의 호수'는 욕망의 허위와 파국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화장실에서의 어이없는 싸움부터 라스트의 반전에 이르기까지 그 기막히게 매끄러운 연결과 시선을 잡아끄는 서사의 힘이 가히 압권이었다. 

나머지 다섯 편의 작품도 대체로 나쁘지 않았다. 이번 소설집만의 특색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표제작 '그녀의 눈물 사용법'도 충분히 천운영스러워서 좋았으며, 이미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통해 읽었던 '내가 데려다 줄게'의 몽환적인 이미지와, 혼혈 2세 소년의 성장 삽화를 보는 듯한 '알리의 줄넘기', 시종 유머러스하면서도 섬뜩한 분위기로 이어진 '후에'도 막힘없이 잘 읽혔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천운영 자신이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라고 했던 '노래하는 꽃마차'가 개인적으로 가장 지루하게 읽혔다는 것이다. 뭐 개인차가 있을 테니, 이 단편이 가장 좋게 읽힌 독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천운영의 작품은 두번째 소설집 <명랑>에 실린 단편 '명랑'이다.  

여하튼 천운영은 여전히 나에게 소중한 작가다. 최근 한국 작가들에게 워낙 실망을 많이 한 터라, 천운영이 고맙게까지 느껴진다. (윤성희, 천운영, 김애란... 내가 좋아하는 한국 여류소설가 삼인방이다) 천운영의 다음 작품집이 벌써부터 기다려지지만, 그녀는 때가 되어야 다음 작품을 낼 것이고, 나는 그 '때'를, 기꺼이 기다려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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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면 힐러리처럼 - 꿈을 품은 모든 여자가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서는 법
이지성 지음 / 다산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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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쉽게, 금방 읽히는 책이다. 책 날개에 씌인 저자 소개에는 베스트셀러 작가 운운하는 얘기들이 있는데, 솔직히 이지성이라는 작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고, 그가 이미 십여 권의 책을 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다만, 그 만큼 책을 많이 썼다면 그 만큼 안정된 필력을 지니게 될 터이고, 그래서 작가는 적어도 독자들에게 잘 읽히려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비교적 명확했고, 그 서술 방식도 일목요연했다. 한 편의 깔끔한 자기계발서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 대한 새로운 답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다. 즉, 기존의 자기계발서들에 비해 이 책만의 차별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힐러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만으로 차별성을 확보하기에는 이 책에 인용된 힐러리의 삶이 너무나 피상적이거나 너무나 보편적인 부분들 뿐이다. 힐러리라는 이름이, 또 그녀의 성공한 삶이 이 책을 위해 상업적으로는 이용될 수 있으나, 독자들을 위해서는 큰 의미로 작용하고 못한다는 얘기다. 인생의 선로 위에서 비틀거리는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모르고 있었던 진리를 깨우쳐 주거나, 새롭고 신선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결론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보편적인 진리로 귀결된다.
여자들이여 힐러리처럼 살아라.
라는 말은 언뜻 대단히 신선하면서도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 핵심은 결국

열심히 꿈을 꾸고, 꿈을 향해 열심히 몰입하고 노력해라.

라는 평범한, 교과서적인 가르침에 불과하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봐도 기실 뻔한 소리들 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읽혔다. 새로운 감동을 느낀 부분은 거의 없다.
열심히 공부를 해라. 공부를 하되 효과적(이를테면 더 상위 지식인 그룹에 끼어서 더 고급 학문을 습득해라라고 나온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니, 여간한 노력으로 될 일인가)으로, 또 집중적으로 해라. 공부만 해서 될 일이 아니고, 돈도 많이 벌어라. 역시 열심히, 똑똑하게(이를테면 투자를 하더라도 절대로 전재산을 다 투자하지 말고 여윳돈을 잘 굴려서 좋은 펀드 매니저의 도움을 받아서 하라는 지극히 모범답안적인 방법으로). 또 조용한 듯 하면서도 남들을 압도하는 매력을 발산하고, 어려운 일이 닥칠수록 더 많은 일들에 열중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텔레비전과 인터넷 대신에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해야하고, 등등... 누구나 다 알법 하지만 보통의 의지로는 결코 해 낼수 없는, 고도의 노력과 정신력을 요하는, 그런 일들을 죽죽, 늘어 놓는다. 그 모든 것들을 힐러리는 다 해냈으니까, 당신도 할 수 있다! 이런 얘기다.  

이런 식의 자기계발서에 담긴 이야기는 대게 두 가지로 나뉜다. 너무 쉬워서 해 봐야 실생활의 발전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들과 너무 어려워서 할 엄두가 안 나는 이야기들. 긍정적으로 사고해라라는 주제로 귀결되는 이야기와 죽을동 살동 열심히 공부(노력)해라라는 주제로 귀결되는 이야기들... 공통점은 그 책을 읽든 안 읽든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홍정욱의 '7막7장'이 백만이 넘는 독자들에게 읽히며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그 백만 중에서 홍정욱처럼 하버드를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은 거의(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유인 즉, 그렇게 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부해라, 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그렇게 실천하기는 여간한 의지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든 안 되든 독자들로부터 큰 공감을 받기는 어려운 법이다.
'여자라면 힐러리처럼'도 '7막7장'과 비슷하다. 즉 앞서 말한 분류 가운데 후자에 가까운 책이다.

힐러리처럼 살아라!

힐러리처럼 살면 당연히 힐러리처럼 될 수 있지. 이건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힐러리가 한 노력의 70%만 따라가도, 힐러리가 이룬 성공의 70%는 이룰 수 있다. 이 또한 당연한 소리다. 하지만,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냐고... 또, 너무나 뻔한 얘기가 아니냐고...

작가는 성공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힐러리처럼 사는 삶'을 제시했지만, 문제는 '힐러리처럼 사는 삶'을 어떻게 일반인이 따라갈 수 있느냐에 대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저 힐러리처럼 사는 수 밖에(노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작가는 성공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힐러리의 삶을 요약해서 보여주며 '이렇게 살아라', 라는 말은 홍정욱이나 빌게이츠의 삶을 요약해서 보여주며 '그들처럼 살아라'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해 주지도 않고서 그저 힐러리가 했기 때문에, 홍정욱이 했기 때문에, 빌게이츠가 했기 때문에, 너도 할 수 있다, 똑같이 해라, 라고 말하는 것은 다분히 무책임한 소리며, 결국 하나마나 한 뻔한 소리다. 

제목이 무색할 만큼 이 책은 힐러리만의 특색이나, 힐러리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가 거의 없다. 저자가 힐러리에게서 발견한 삶의 자세, 혹은 진리들은 '힐러리만의 것'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이미 보편적으로 알려진 진리다. 특히 최근 국내에서 80만부를 돌파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시크릿'을 읽은 독자라면 더더욱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 말하는 최고의 진리, 삶의 자세는 '열심히 꿈을 꾸면, 이루어 진다'라는 것인데, 이것은 이미 '시크릿'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주제다. 힐러리가 오늘날처럼 성공한 걸 보면 '시크릿'에서 말한 성공의 비밀을 힐러리도 이미 알고 있었을 테다. 그러니까, '간절히 바라면 그것은 우주가 반드시 이루어 준다'라는 비밀 말이다. 이 비밀에 대한 이야기가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의 핵심 주제로 정리되고 있다. 그리고 기실 이 주제는 '시크릿' 이전에도 이미 많은 책들에서 다루었던 것이다. 그 대단한 '연금술사'의 주제가 무엇인가... 바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너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것 아닌가... 

이 책에서 새로이 발견한 것이라곤 '존 스튜어트 밀'식 독서법에 대한 얘기 뿐이다. 내가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하게 된다면 그건 아마 이 존 스튜어트 밀식 독서법에 대한 소개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별점을 두 개라도 준 것은 '존 스튜어트 밀'식 독서법에 대한 소개가 신선했고, 또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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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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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은 이것이 소설이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서 자전적인 이야기로 읽혀지기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공지영의 속마음을 도통 알 수 없다. 정말로 자전적인 이야기로 읽혀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의도로 쓴 것 치고 이 소설은 너무나도 자전적이며, 심지어는 나르시즘까지 엿보인다. 자전적으로 읽혀지지 않기를 바랐다면, 다시 말해 보다 소설적으로 읽히기를 바랐다면 왜 작중 인물들과 자신과의 거리를 보다 객관적으로 유지하지 못 했을까. 또 하나, 이 소설에는 소설 다운 서사성이 결여되어 있다. 한 마디로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이야기는 시종 엄마와 딸이 번갈아가며 눈물을 짜다가 목청을 높이다가 웃으면서 씩씩한 척 하는 모습들을 반복해서 보여줄 뿐이다.

시종 발생하는 에피소드는 재미없거나 밋밋한 것들이며, 갈등의 원인들도 모두 진부하다. 한 마디로 예측 가능한 자잘한 이야기들이 다소 과장된 눈물과 웃음으로 범벅이 되어 넋두리처럼 청승맞게 흘러가는 것이다.
소설적으로 읽히길 바랐다면 보다 소설다운 이야기가 펼쳐졌어야만 했다. 세번 이혼한 유명 여류 작가에게 인신 공격적인 험담을 퍼붓는 여자가 등장하는 식의 에피소드는 넣지 말았어야 한다. 그 험담에 작가는 당당한 척 응수하지만 속으로는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딸도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다가 결국에는 그런 엄마를 자랑스럽고 멋있게 여기고... 매사가 이런 식이다. 뻔한 설정과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결말과 감정들... 모든 에피소드의 기승전결이 이렇다. 이 모든 이야기와 장치들은 소설적이라는 느낌보다 자전적이면서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느낌으로밖에 이어지지 않는다. 소설적인 부분을 굳이 찾자면 그 작위성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위녕이라는 주인공의 모습도 어쩐지 캐릭터 구축에 실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겉 모습은 열여덟 소녀인지 모르겠으나 속에는 세번 이혼한 마흔다섯 살 중년 여인이 들어 앉아 있는 듯 했다. 작가는 이 아이가 톡톡 튀는 감각이 살아있는 팔팔한 십대 소녀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중간 중간 많은 노력을 기울인 듯 했다. 절대로 작가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테다. 그러나 그 노력들이 성공적이지 못했다. 위녕에게서는 젊은 애 특유의 파릇파릇한 감정과 감각이 살아나지 않았다. 순간순간 중년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으며 어른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친구 이름을 쪼유라는 이상한 이름(이든 별명이든)으로 설정하고, 문자 메시지를 수시로 이용하게 하는 등, 억지로 어린 척을 했으나 위녕은 어린 십대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애초에 작가가 의도한 모습이었다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평범하지 않은 애늙은이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그럴 거면 굳이 주인공을 십대 소녀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또 그렇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위녕이라는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면 말과 행동, 생각하는 바가 모두 아이 같아야만 하지 않을까. 가령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에서도 아버지는 같으나 엄마가 다른, 서로 타인처럼 성장한 두 남매가 등장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두 주인공 소년, 소녀의 감정에 충분히 몰입될 수 있었다. 나름의 상처와 문제와 고민을 가슴에 안고 있었지만 그들은 충분히 소년 소녀 다웠다. 과연 소년 소녀 다운 생각들로 어른들의 세계에 접근하고, 소년 소녀 다운 방식으로 그들의 문제를 풀어나갔다. 하지만 위녕은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다분히 그런 입장에 처한 중년 여인 다운 생각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며 문제를 풀어나갔던 것이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결국 공지영과 온다 리쿠라는 작가의 입장 차이가 아닐까 싶다. 공지영은 실제 그런 삶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온다 리쿠처럼 자신이 내세운 주인공에게 객관성을 부여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세번 이혼하고 성이 각기 다른 세명의 자식들을 키우고 사는 중년의 여작가가, 세번 이혼하고 성이 각기 다른 세명의 자식들을 키우고 사는 중년의 여작가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고 했을 때, 독자들은 이미 그 이야기를 어느 정도 예측하게 된다. 이 소설은 그 일반적인 예측에서 거의 벗어남이 없는 소설이다. 내 예상을 벗어난 것이라면 내 예상보다 더 신파적이고 예측가능한 이야기였다는 것 뿐이다. 인물들의 행동과 작가의 목소리까지 모두. 그래서 소설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작
가는 자신의 특별한 삶을 대중에게 이해받기 위한 목적으로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닐테다. 자신의 입으로 소설로 읽혀지기를 바란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더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보다 신선하고 재미 있는 상상력을 왜 더 발휘하지 못 했을까 싶다. 자신의 감정은 최대한 배재하고 보다 '소설적'인 객관성을 확보하고 더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했어만 했다.

이 소설은 대체적으로 칭찬일색이다. 대단히 재미있고, 감동적이라고 하는 평들이 참 많다. 유난히 공지영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평을 쓰기가 심히 유감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도 공지영의 팬이라면 팬이다. 지금껏 그녀의 많은 작품들을 읽어왔고,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을 내렸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의 첫소설집인 '인간에 대한 예의'와 장편 '고등어'는 정말 좋았다. 그랬기에 더욱 이번 작품에 유감과 실망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건 아주 '개인적인' 실망이고, 감상일 뿐이다. 다수의 독자가 재밌다고 하니 일단 한번 읽어보고 평가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끝으로 공지영이 앞으로 조금은(아니, 좀 많이) 신파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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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주다
와타야 리사 지음, 양윤옥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부터 연예인이 되어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너무 일찍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고 속으로 상처받고, 방황하는 어린 스타의 이야기. 대중의 시선(혹은 꿈)과 개인의 욕망(혹은 꿈) 사이에서 갈등하고, 좌절하는 화려하고 잔혹한 청춘의 성장기다. 마치 와타야 리사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같아 일면 진정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실망스러웠다. 일본 문단이나 독자는 물론이고, 국내 독자들 중에서도 와타야 리사에게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녀의 전작 두 편을 읽은 독자라면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런 독자들의 3년간의 기다림과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와타야 리사의 이번 신작은 다소 진부하고 그래서 실망스런 면이 없지 않다. 우선 전작들에 비해 확연히 다른 색깔과 분위기에 놀랄 수밖에 없다. 와타야 리사도 나이를 먹은 것인가. 그래서 이런 변화가 자연스런 현상인가. 하지만 그래봐야 아직 20대 초반. 너무 깊은 좌절과 어둠으로 자신을 채색하기에는 아직 너무 젊지 않은가.  

진부함. 이 장편을 읽는 내내 머리속을 따라다닌 느낌이다. 와타야 리사에게서 진부함이라니, 놀라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전작들을 읽은 독자라면 과연, 그런 느낌은 전혀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재기발랄, 톡톡 튀는 예측불허의 상상력들이 터질 듯 넘쳐났던 전작들에서는 진부함 따위는 단 한 페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3년만에 돌아온 와타야 리사의 신작은 어딘지 많이 듣고, 보고, 접한 이야기 같다. 많은 이들이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수없이 많이 되풀이되고 기사화된 사건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다시 한 번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주인공 유코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빤하게 보였다. 대략 어떤 식으로 상처받고, 어떻게 갈등하고, 좌절할 지... 제발 구태의연한 상황들에서 조금이라도 비껴갈 수 있길 바랐지만, 작가는 내 기대를 저버리고 구태의연한 길을 선택했다. 유코는 여느 어린 스타들이 그러하듯, 그런 그런 고민을 하고, 그런 그런 갈등에 빠져, 그런 그런 좌절을 경험하고, 그런 그런 인생을 살아간다.
연예계의 실상에 대해서는 굳이 이런 소설을 읽지 않아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도 많다. 인터넷만 열면 그런 소식들은 줄줄이 엮여 나온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은 웬만큼 자극적이지 않으면 진부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유코가 당한 사건과 거의 흡사한 사건을 당한 연예인들이 많고, 여러번 기사화가 된 적 있다. 그래서 연예계가 어떤 곳이라는 걸, 그 실상이 얼마나 힘들고, 비참하고, 때론 추악하고, 한심스런 곳인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래서 나는 와타야 리사의 신작이 진부했던 것이다. 

또하나 실망스런 것은 주인공에게서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코라는 주인공 캐릭터가 나는 참, 마음에 안 들었다. 특히 사랑 운운하면서 상처받고, 좌절하는 모습은 짜증도 났고,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안타깝거나 애처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연예인으로서의 생명이 끝장나든 말든 끝까지 해바라기 사랑을 고수하려는 모습이 보기 거북할 뿐이었다. 동정이 가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녀의 행동이 쿨하다는 생각는 더더욱 들지 않았다. 헤어지지 않을 거야. 마사아키를 만나지 못 하면 차라리 죽어버릴 거야. 하는 따위의 대사들은 오히려 촌스럽고 진부했다.
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응당 소설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연예계의 실상을 고발하듯 생생히 묘사하는 부분들도 별로 흥미롭지 않았고, 감동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어쩌면 유코와 비슷한 삶을 살고, 그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비슷한 갈등과 좌절을 경험했을 와타야 리사 자신이 가장 공감하고, 감동했을 글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런 소설을 꼭 한번 쓰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서두에도 말했듯 어느 정도의 진정성은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들에게서 얼마만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대중의 공감이나 판매 부수 따위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면 작가 개인적으로 만족스런 작업이었고, 결과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기장에 써서 혼자 간직하지 않고 이렇게 책으로 펴 낸 것에는 여하튼 대중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글쎄... 전작들에 환호하고, 공감하고, 감동했던 독자들이, 이번 소설에서도 그런 반응을 보일 지...
물론 이 이야기를 꼭 연예계라는 무대로 한정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얼마든지 확장 해석은 가능하니까. 그렇게 폭넓게 해석해서 인생의 더 많은 부분들에 적용 시킨다면 더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하고 감동을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역시, 공감도 감동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전작 두 편의 힘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래서 나는 와타야 리사의 다음 작품을 여전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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