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의 추억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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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길 떠난 나그네처럼 늘 낯선 곳을 걷거나 정신없이 뛰거나 가끔은 지친 삶을

잠시 내려놓고 쉬는 고된 여정과도 같다.

그러다 어느 날은 걷기 좋은 탄탄대로를 만나기도 하고 숨이 턱에 차오르게 걸어야 하는

높은 산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좁디 좁은 어느 막다른 골목을 마주치기도 한다.

다시 돌아나가야 하나 담을 넘어 계속가야하나..잠시 망설이거나 절망하는 순간을

만나면 고단한 삶을 내려놓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하는 그런 시간!

이 세상 누구라도 계속 평탄하고 뻥뚫린 길만을 갈 수는 없다.

예기치 않은 아픔과 절망을 만나는 순간은 누구에게라도 예고없이 오기 마련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순간, 막다른 골목을 만나 머뭇거리는 그 순간의 이야기들이다.

일본의 유명 작가인 요시모토 바나나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라고 하는 이 소설속에는

작가 자신의 아픈 기억들, 아니 어느 누구라도 겪었을법한 막막한 시간들에 대한

고백서이기도 하다.

 

 

생전 처음 사랑을 느끼고 오로지 그 한 사람만을 바라보던 어느 날,

사랑했던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여 떠나버렸다면 그 막막함을 어찌할까.

조금 맹하게 보일만큼 지고지순한 미미는 약혼자의 변심을 확인하고

절망에 빠진다. 극단적인 선택을 우려한 가족들의 배려로 '막다른 골목'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 2층에 새로운 터전을 잡은 미미는 점장인 니시야마에게서 위로를 얻는다.

 

어린시절, 가정에 무심한 아버지로부터 학대받고 어머니마저 떠나버린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니시야마는 상처받은 미미의 마음을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어루만져준다. 달콤한 공기처럼.

평탄하고 아픔없이 살아온 사람이었다면 그녀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배신한 남자에게 빌려준 돈조차 받을 용기가 없는 미미를 대신해 니시야마는

그 남자를 찾아가 내가 이제 미미의 남자이므로 빚을 갚아달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미미는 자신의 아픔이 치유되는 것을 느낀다.

나를 대신하여 내 속에 고인 말을 대신 해주는 사람.

우리는 스스로 치유하는 법을 잘 모른다.

누군가 매를 들고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이나 운명에게 대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질 때가 있다.

막다른 골목에다다렀을 때,

멈칫거리는 내 손을 잡고 담을 뛰어 넘어주거나 툭 트인 세상으로 나를 이끌어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그런 순간들.

 

 

나 하나쯤 세상에 있던 없던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가벼운 존재감이

어느 날 소중해지기도 하는 그런 날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 다섯 편이 실려있다.

우리는 행복한 순간보다 죽음에 이르는 절망의 순간이나 아픔이 극심한 순간에

삶을 돌아다 보게 된다.

아무도 모르게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아픔과 마주서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트라우마와 마주서서 자신을 껴안지 않으면 결코 치유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일본의 유명 작가인 요시모토 바나나는 자신의 아픈 기억들,

아니 어느 누구라도 겪었을법한 막막한 시간들에 대한

추억을 떠 올리면서

누군가 이 책으로 힐링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쏟아 부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라고 자신있게 말했을 것이고.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면 아니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는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오려면 잠시 이 책을 펼쳐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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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5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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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길기도 하며 가장 짧기도 하고

누구에겐가 귀한 보물처럼 쓰이기도 하고 누구에겐가는 한 푼짜리도 안되게

쓰이기도 한다는 그 것은 바로 시간이다.

얼핏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늘려서도 쓰고 줄여서도 쓰게되는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니...정말 이런 상점이 있다는 것일까.

시간을 훔치는 도둑이 있다는 소설도 있고 타임머신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그린 작품들도

많은 걸 보면 우리 인간에게 시간은 무상으로 주어졌지만 누리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변화무쌍한 존재임에 틀림없겠다.

참으로 맹랑하지 않은가. 이제 겨우 열여덟의 소녀가 그것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시간을

파는 상점을 열다니.

하긴 우리는 때때로 지나간 시간들의 어느 순간을 붙들어 두고 싶고 되돌리고 싶기도 한

순간들이 있다.

그 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삶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아쉬움이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이 과거의 시간이 되기전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는 모양이다.

암튼 소방사였던 아버지를 중학교 입학무렵 잃게 된 온조는 매사 긍정적이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이다. 가끔 울컥하는 다혈질의 성깔이 나오기도 하지만 요즘 보기드문 오지랖을 가진

아이이기도 하다.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엄마와는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내지만 얄팍한 수입때문에 온조는 알바를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못된 사장을 만나거나 체력이 딸리다 보니 알바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개점한 것이 '시간을 파는 상점'!

쉽게 말하자면 누군가의 일을 대행해 주는 상점이다. 기발하다. 의뢰인의 모든 것은 비밀로 보장되니

특히 은밀한 사건을 맡기기에는 제격이겠다. 하지만 열 여덟의 소녀가 과연 이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없어진 PMP를 되돌려 놓거나 한 주에 한통씩 편지를 배달해 달라거나 손주를 만나고 싶어하는

할아버지와 맛있는 식사를 한다거나 하는 아주 의외의 일들을 맡은 온조는 제법 잘 해내는 듯 싶다.

그러나 PMP를 훔쳤던 아이는 다시 전자수첩을 훔쳐 사라지고 만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친구를 위해 사건을 의뢰했던 아이의 정체가 밝혀지고

'시간을 파는 상점'은 위기를 맞게 된다.

예기치 못한 이별을 겪은 온조는 자신의 아픔을 승화시켜 상처깊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상점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엄마의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딸아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하는 아이들의 아픔과 소통하지 못하고 외로움에 빠진

아이들의 현실을 잘 살려낸 작품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않고 세상에 맞서는 캔디같은 아이 온조의 씩씩한 기운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어차피 울퉁불퉁한 삶, 이렇게 유쾌하게 맞서도 좋지 않겠는가.

서로가 서로를 기대 아픔을 극복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못난 어른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전형화된 삶에 물들지 않고 외롭고 아픈 친구의 손을 잡아 주는 아이들이 기특하기만 하다.

소외된 아이들이 옥상에서 뛰어내릴 때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이 내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음을 부끄러워

해야한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더 살고 싶다 뭐 그렇게 들리더라. 그 아이도 분명 살고 싶다고 말한 걸 거야.

바닥을 친 거지. 참는데까지 숨을 참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물 위로 올라와 살고 싶다고

말한 걸 거야.' -197p

여리고 아픈 꽃잎이 지기 전에 우리는 그 아이들의 손을 잡아 주어야만 했었다.

문득 어른임이 부끄러워지는 시간들...온조야  그 시간들을 어쩌니. 미안하구나.

자기 몸에 꼭 맞는 청소년 소설을 쓰는 일이 행복했다는 작가에게 감사의 말이라도 전해야 할 것 같다.

외로운 아이들의 시간들을 들여다 봐줘서 고맙다고. 못난 어른들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세워져서 고마웠노라고.

작가님 다음 작품에는 또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지 두렵지만 기다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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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나면 화내고 힘들 땐 쉬어 신부님의 속풀이 처방전 2
홍성남 지음 / 아니무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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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글을 쓴 작가가 신부님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카톨릭교의 신부라면 근엄하고 점잖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신부님의 글들이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읽는 내내 더위를 잊을 수 있는데다 실실 웃느라 곁사람 눈치를 보고야 말았다.

혹시 미친사람 취급을 받으면 어쩌나 하면서도 나오는 웃음이야 방귀만큼이나 참기 힘들걸.

'신부님의 속풀이 처방전 2'라는 부제답게 시원한 속풀이가 한 여름 얼음동동 냉면맛이다.

가족걱정에 근심이 떠날 날 없는 자매에게 '쓸데없는 걱정말고 너나 잘하세요'라든가,

불안으로 득보는 사람은 점쟁이와 보험회사라며 걱정과 불안에 시름이 가실 날 없는 사람들에게

유쾌한 처방을 내린다.

천당에도 불황이 닥쳐 생계형 범죄가 늘어나는 바람에 할 수없이 교도소를 짓게 되고

빚보증을 잘 못 서서 수감생활을 한다는 천주교인에게 하느님이 일갈하신다.

"애들아 다 미친 것 같으니 정신병원에 입원시켜라. 그리고 남의 청을 거절하는 것은 신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강론했던 본당신부 놈을 여기 가두도록 하여라."

하하 정말 멋진 하느님이 아니신가.

착하게 살아라,죄짓지 말아라, 고리타분한 강론으로 신자들을 졸게 만든 신부들은 못마땅하시고

고스톱으로 재미있게 해주는 신부는 곁에 놓고 즐거워하신다는 하느님이 어찌 귀엽지 아니한가.

심지어 불황에 시달리는 천당경제를 살리기 위해 고도리 삼인방을 불러 자문하시고 가끔

어울려 고스톱도 치신다니 나도 슬쩍 끼어 광이나 팔아볼까 싶어진다.

'무조건 참다보면 화병에, 골병이 들어 죽습니다. 화나면 화내고, 싸울 일이 있으면 싸워야 합니다.'

아, 이 얼마나 명쾌한 해답이란 말인가.

'참으세요.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같은 고리타분한 명언에만 익숙했던 우리 쬐그마한 인간들에게

팔 걷어부치고 싸울일이 있으면 싸우라고 거들어주시는 신부님이 계시니 막상 싸우려고 들었던

팔을 슬며시 내려놓게 된다.

'삶은 원래 울퉁불퉁해, 힘들 땐 쉬어.'

정말 여기 저기 둘러보아도 모두 힘들다는 얘기 뿐이다.

돈도 없고 빚은 늘어만 가고 아직 키워야 할 아이들은 빠끔한데 언제 교회에 가서 기도할 시간이 있겠나.

교회에 나가 기도하는 신자보다 오지 못하는 신자들중에 참 신자가 더 많다는 말씀에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경건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말짱 도루묵 신자들에게는 가슴

뜨끔할 일이겠지만.

늘 느끼는 일이지만 카톨릭은 모든 종교에 문을 열어 소통하고 있는 것 같다.

천당에 온 개신교 사람들에게 '아줌마 여기 밥좀 더 주세요'했다고 슬쩍 삐쳐서 배식도 조금만 해주셨다는

성모님의 모습도 따사롭게 다가오지 않는가.

갑자기 마음 보따리를 열고 퍼질러 앉아 신부님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신부님, 세상이 자꾸 나를 때리는데 맴매 좀 해주세요."하면,

"누가 때립니까 앞장서 보세요. 제가 혼좀 내주겠습니다."

하면서 내 손을 끌고 앞장 서 주실 것만 같아 든든해 진다.

"신부님 http://cafe.daum.net/withcoban으로 들어가면 만나뵐 수 있는거죠?

잘 못 살았다고 야단치시면 안됩니다. 기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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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의 월요일 -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기적의 날
로라 슈로프.알렉스 트레스니오프스키 지음, 허형은 옮김 / 샘터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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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뒷골목의 부랑자로 살아가게 될 소년의 운명을 뒤바꾼 첫 만남은 뉴욕의 거리에서였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날이었고 예감도 없는 그저 그런 어느 날, 열 한살의 소년 모리스에게는

특별한 날이 되었던 그 날 성공한 커리어우먼 로라는 산책을 나온 길이었다.

"아주머니, 혹시 잔돈 있으세요?"

그렇게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대였다.

그런 부탁을 하는 사람들을 마주친 적이 처음도 아니었다.

그러나 무심코 지나치려던 로라는 중국속담에 나오는 서로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의 이끌림처럼

뒤로 돌아가 배가고픈 소년에게 맥도날드의 햄버거를 사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날 이후로 자그만치 150번의 월요일을 함께했고 소년의 운명은 달라졌다.

아니 로라의 운명도 달라진 셈이다.

롱아일랜드의 평범해 보이는 가정에서 자란 로라는 술만 먹으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에게

깊은 상처를 받고 지긋지긋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도시로 취직해 나오게 된다.

고집세고 친화력 좋은 성격은 그녀가 싫어하는 아버지에게서 온 유전인자 때문이었다.

대학도 가지 못하고 경력도 없던 그녀는 순전히 자신의 미래와 가능성을 부각시켜 불가능해 보이는

일자리를 얻게 되고 그런 그녀의 자신감은 미국 유수의 언론매체에 광고 판매업자로 성공하게 된다.

많은 연봉과 호화스런 아파트를 지니게 된 그녀가 빈민가의 소년 모리스를 만나게 된건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가 없다.

마약소굴에서 자라고 있는 더러운 소년에게 눈길을 주고 선뜻 먹을 것을 나누어진 그녀의 선의는

결국 자신의 부모와 비슷한 불행을 겪으며 살아가게 될 소년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었다.

스테이크를 써는 법도 모르고 제대로 된 선물조차 받아본 적이 없는 소년에게 로라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제대로 된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게 된다.

어린 시절 술 주정뱅이 아버지의 폭력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알고 있다.

로라의 아버지처럼 나역시 같은 상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들어오는 시간이 되면 온 가족은 서서히 몰려오는 두려움에 떨곤했었다.

좋은 가장이 되지 못한 로라의 아버지나 모리스의 아버지처럼 우리 아버지도 그랬었을까.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을 알지 못했었다...'

다행스럽게 로라와 그녀의 형제들은 불행한 시절을 딛고 성공스런 삶을 살게 되지만 그녀의 동생

프랭크는 결국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다가 죽고 만다.

한 남자의 폭력으로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는지..그리고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지

알게된다. 그 불행함에서 탈출했기때문에 로라는 모리스에게 보내는 사랑이 그 소년의 운명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이 아닌 이 실화를 보면서 한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인간을 얼마큼 변화시킬 수 있는지

알게된다.

쓰레기더미같은 삶에서 벗어난 모리스에게 로라는 천사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3년간의 공백이 자칫 다시 어둠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었지만 모리스는 현명하게 그 어려움을 헤치고

멋진 가장으로 거듭나게 된다.

얼마나 아름다운 동행이었나. 절망이 기적으로 바뀌는 기적의 그 월요일에 하나님도 함께 하셨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싶었던 간절한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현재는 한 성격하는 푸들 코코와 살고 있다는 로라는

이미 사랑하는 아들을 얻은 셈이다. 가슴으로 낳고 사랑으로 키운 모리스가 바로 로라의 아들이니까.

과연 나는 어둠속에 있는 인간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낸적이 있는가 몹시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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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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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평화롭고 포근한 어느 날 저녁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친 아름다운 여인

알렉스는 한 남자에 의해 납치를 당한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더러운 창고에 갇힌 채

무자비한 폭력을 당한 후 허공에 떠있는 자그마한 새장속에 갇힌 그녀는 옴싹할수도 없는

공간에 갇혀 입맛을 다시는 쥐에게 뜯겨먹을 처지에서도 기지를 발휘하여 탈출을 감행한다.

도대체 자신을 납치하고 감금한 남자는 누구인가.

처음부터 무자비하게 몰아부치는 사건의 소용돌이속에서 나는 잠시 혼란에 빠진다.

 

 

간호사출신의 이 여인이 당한 불행에 분노할 겨를도 없이 연이어 벌어지는 참혹한 살인들.

더구나 황산을 목구멍에 들이부어 녹아내린 시신의 모습을 차마 떠올리기조차 힘들다.

때로는 나탈리로 때로는 로라라는 이름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이 여인에게 무슨 과거가 있었던 걸까.

사랑하는 여인 역시 납치되어 살해당한 상처를 지닌 140cm의 단신 형사 반장 카미유는 예전의 기억을

떠올릴 이 사건을 맡지 않기 노력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몰입하게 된다.

연쇄살인속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칠수록 자신의 트라우마와 마주하게 되고 유명한 화가였지만

자신의 삶에만 열중하다가 가버린 어머니와의 애증문제와도 마주하게 된다.

행방불명된 아들의 행방을 쫓던 아버지의 엇나간 부성애로 비롯된 납치사건은 연쇄살인사건의

정체를 밝히는 기폭제가 되고 단신의 형사반장팀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알렉스는 사라지고 만다.

작가는 깊은 상처를 지닌 반장을 통해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어린시절의 아픈 기억을 지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만이 감지할 수 있는 진실의 냄새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족간에 사랑이란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무자비한 폭력과 그로 인해 운명이 바뀐 슬픈 소녀의 이야기.

침을 뱉어주고 싶을만큼 비열한 범인과의 고도의 심리수사장면이 압권이다.

능글거리면서 단신의 수사반장을 비웃는 그를 향해 그는 마지막에 일격을 날린다. 통쾌하게.

 

 

'그런데 지금 우리한테 가장 절실한 미덕은 진실이 아니라 바로 정의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지 않은가요?' -528p

 

수사하는 내내 으르렁 거리던 예심판사의 마지막 대사는 바로 작가의 말이 아닐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판단을 맡김으로써 조바심치는 독자를 깊이 끌어들이는

작가의 수법이 멋지다.

우리는 진실을 알지만 진실보다는 정의를 택하면서 내심 작가와 공범이 된듯한

기분이 나쁘지 않다. 하늘나라에 간 알렉스에게 이 마지막 장면은 크게 위로가

될 수 있을테니까. 알렉스도 카미유도 깊은 상처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만큼

멋진 반전의 결말이 작가가 상처투성이의 그들에게 보낸 위안의 처방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살인적인 더위를 잊을만큼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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