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살인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0
최제훈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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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 속에 숨어든 모방 살인, 살의의 전이 그리고 악의의 진실!

차례차례 잘려나가는 손가락, 피의 퍼포먼스 속에 숨어든 비틀린 윤리!

 

 

  사람이 둘 이상만 모이면 어김없이 손가락, 연쇄살인, 사이코패스 같은 단어가 흘러나온다. ‘단지 살인마’는 연일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한다. 언론은 ‘단독’ ‘속보’를 앞세워 단지 살인마에 의해 벌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네 건의 살인사건을 시시콜콜 파헤치고, 경찰은 전방위적인 수사를 펼치지만 쓸 만한 단서를 포착하지 못한다. 범행 장소는 목포-대구-서울-원주, 범행 대상은 청년-여고생-노파-중년 남성. 그야말로 동서남북,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이 비정형적인 범행 행각에 대중은 서슬한 공포를 느낀다. 누구든 표적이 될 수 있으므로. 흉기-무차별 폭행-둔기-익사, 별개의 사건으로 보아도 무방한 네 건의 살인을 하나로 꿰는 표식은 차례차례 잘려나가는 손가락뿐이다.

 

 

 

살의로 일그러진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그린 블랙 코미디

 

 

 

   시작은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단서 하나 남기지 않고 네 건의 살인을 저지르는 주도면밀한 악마에게도 어떤 패턴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숫자와 차트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자기 절제와 매매 타이밍, 숨겨진 패턴을 투시하는 혜안을 지녔다고 자부하던 전업 투자자 장영민은 프라모델 대신 탐정놀이로 가볍게 시간을 때우는 것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사건에 접근하기 시작했다가 마침내 특별한 패턴 한 가지를 포착해내고야 만다.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린 열 가지 계율, 그는 희생자들이 정확히 십계명의 순서에 따라 살해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또 다시 다섯 번째 희생자가 나온다. 사인은 질식사, 영어 학원 강사로 일하는 30대 남자 황성찬은 천안으로 들어가는 국도변 풀숲에 쓰러져 있었고 다섯 손가락이 모두 잘린 모습이었다고 한다. 조사 결과 황성찬은 어릴 적부터 소문난 사고뭉치에 빠듯한 형편에도 미국 유학을 가겠노라 떼를 썼다가 이내 마약 사건에 연루돼 부모를 곤경에 빠뜨린 일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율 역시 ‘부모를 공경하라’였다.

 

 

 

약간의 현대적 변용을 허용한다면, 희생자들은 정확히 십계명의 순서에 따라 살해되고 있었다.

1. 나 이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보스를 바꾼 조직원

2. 우상을 만들지 말라-아이돌 그룹의 사생팬

3.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친 노파

4.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주말로 없이 일을 시킨 공장 사장 / 28p

 

 

 

 

 

 

   장영민의 추측대로라면 이제 여섯 번째 계명 ‘살인을 하지 말라’에 따른 희생자가 나타날 차례다. 문득 고교 시절, 자신을 찹쌀모찌라고 불렀던 양승범을 떠올린다.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 모두가 외면하고 있는 가운데 버젓이 자행되었던 성폭력까지. 덕분에 사회불안장애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비참한 현실 앞에서 그는 거듭 되뇐다. ‘살인을 하지 말라, 살인을 하지 말라, 살인을…… 꼭 심장을 멈추게 해야만 살인은 아니다. 열일곱 살 소년의 인격을 무참히 짓밟는 것도 살인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 박힌 생각이 그 증거’라고 말이다. 장영민은 사이버 흥신소에 의뢰해 양승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운명의 날, 여섯 번째 계명은 마침내 실행된다. 스스로 단지 살인마를 가장한 장영민에 의해 양승민의 손가락이 잘려나간다.

 

 

 

“사람 기억 중에서 말이야, 제일 질긴 게 쪽팔린 기억이더라.”

“응?”

“이건 시간이 흘러도 당최 사라지거나 희미해지지가 않아. 다른 기억들은 적당히 퇴색되고 나한테 유리하게 왜곡되기도 하던데, 얘는 안 그래. 오히려 갈수록 과장되고 비비 꼬이면서 어떻게든 나를 괴롭히려고 안달이지.” / 64p

 

 

사후 세계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누전차단기 떨어지듯 암흑 속에 묻히고 끝나는 거라고. 하지만 갓 생겨난 주검을 마주하고 있자니 뭐라도 있기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저게 내가 아등바등 살아온 세상이구나, 하고 돌아볼 수 있는 초월적인 무언가가. / 71p

 

 

 

 

  소설을 읽고 있으면 불현듯 이런 의심이 든다. 단지 살인마를 가장했던 장영민처럼, 어쩌면 수많은 모방범들이 악명 높은 연쇄살인사건의 이름을 빌려 버젓이 살인을 하고 우리 주변에 숨어들어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때문에 단지 살인마가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는 행위를 ‘현대문명에 대한 완강한 거부를 상징’하는 동시에 ‘인간성 상실에 대한 경고를 점층법적 절단 의식에 담은 것’이라고 분석하는 저 의미심장하고 진지한 해석 따위는 이내 우스워지고 만다. 그렇게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는 행위가 한낱 퍼포먼스로 전락하는 사이, 독자들은 ‘살인자’는 누구도 아닌, 나를 비롯해 어느 누구도 될 수 있다는 평범성에 전율하게 된다. 다시 말해, 살의와 악의는 어느 소수의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 장애자에게서만 보이는 특이 행동이 아니라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품고 있는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섬뜩해지고 마는 것이다.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번 사건 역시 모방 범죄일지 모른다는. 이전 다섯 건의 사건들 또한 단독범의 소행이 아닐지 모른다는. 이 만만찮은 가능성을 애써 무시한 이유는, 만일 범인이 서로 알지 못하는 다수라면 십계명에 따른 전개가 신비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리기 때문이었다. 그쪽까지 헤아릴 여력은 없었다. 일곱 번째 계명이 어사무사했지만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 난 그만 손 털었으니 알아서들 하라지. / 87p

 

 

“우린 선택을 한 거예요. 평생을 괴로움 속에서 사느니 목숨 걸고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기로. 그렇죠?”

손동식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한 짓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잖아요. 우리야말로 피해자고, 궁지에 몰린 생쥐처럼, 그러니까 말하자면…… 전쟁. 그래요, 작은 전쟁을 치른 거죠.” / 138p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지난 해 세상에 드러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진범 이춘재는 이미 자신의 처제를 성폭행 및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그런데 이춘재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 이미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범인은 다른 사건으로 오래 전부터 수감돼 있거나 죽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살인행각을 멈추지 못할 것”이라 주장한 바가 있다. 경찰이 이춘재의 심리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성범죄와 살인을 계속하면서도 죄책감 등의 감정 변화를 느끼지 못하게 되자 감정 상태에 따라 살해하면서 연쇄살인으로 이어지고, 수법도 점차 가학적인 형태로 진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소설 속 장영민에게서도 유사한 형태로 드러난다.

 

 

 

   단지 살인마에 의한 희생자인지 모를, 일곱 번째 희생자가 또 다시 나타나고 그러는 동안에 장영민은 ‘잠시 성찰할 틈도 없이 계속되는 자기복제’ 속에서 점점 범죄에 무감각해지고 스스로도 ‘한없이 가벼워져 휘발되는’ 듯한 ‘윤리적인 소멸’을 느낀다. 잠시 무감각해져 있었던 투자 타이밍에 대한 감각도 돌아오고, 여행지에서 버킷리스트를 즐길 계획까지 세우는 등 점차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분리되는 과정으로 이행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우편함에 꽂힌 편지에서 ‘단지 살인마, 전화 요망. 010-XXXX-XXXX’이란 메시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이제 장영민은 자의에 의해 선택한 살인을 타의에 의해 멈출 수 없는 복잡한 시험대에 오른다. 그는 살인을 멈출 수 있을까. 이미 가속도가 붙어버린 그의 범죄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을까.

 

 

 

 

 

 

   소설 『단지 살인마』는 차례차례 잘려나가는 손가락, 피의 퍼포먼스 속에 숨어든 개인과 사회 전체의 비틀린 윤리를 냉정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한 평범한 소시민이 연쇄살인의 형식을 빌려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과정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범죄가 작동하는 방식과 모든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살인과 관련되어 있는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손가락을 자르는 연쇄살인범의 살인 패턴, 완전범죄를 꿈꾸는 모방 살인, 또 다른 살인자와의 공모에 이르기까지, 추리소설의 특성과 철저히 살인자의 시선에서 그의 심리를 따라가는 전개 방식은 마지막까지 몰입도를 높인다.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예비 독자분들이라면 망설임 없이 질주하는 작가의 역량을 유감없이 즐기면서 그 속에 들어있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함께 숙고해보시기를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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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브레인 - 인생을 바꾸는 최강의 두뇌 디톡스
데이비드 펄머터.오스틴 펄머터.크리스틴 로버그 지음, 김성훈 옮김 / 지식너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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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뇌가 나의 삶을 반영한다면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더 나은 선택,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신개념 두뇌 디톡스!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부터 확인을 하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몇 시인지, 밤사이 메시지가 몇 개 들어와 있는지, SNS에 새로운 게시물이 얼마나 업데이트 되어 있는지 일단 확인한다. 아이의 등원 준비를 서두르면서 동시에 뉴스 어플로 그 날의 새로운 뉴스를 체크하고, 쇼핑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물건들을 재차 살펴본 후 구매 결제를 한다. 이 후에는 운동 어플이나 유튜브 동영상으로 홈트를 시작하고, 라디오나 음악 어플을 틀어놓은 채 집안일을 한다. 밥을 먹는 동안에는 보고 싶었던 영상을 보거나, SNS에 게시물을 등록하기도 한다. 이렇게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직전까지 내가 하는 행동 중에 가장 반복적이고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이 스마트폰과 관련된 행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수치화해서 따져보지 않아도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있어 스마트폰이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다. 이른바 ‘포노 사피엔스’라 불리는 지금의 우리는, 이전 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첨단 기술의 무한한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기술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때때로 두려워지기도 한다. 목적 없이 인터넷을 서핑하고 온라인 스토어와 SNS를 훑어보다 보면 갑자기 훌쩍 지나버린 시간에 허무해질 때가 있다.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주느냐 마느냐로 씨름해야 하는 것도 육아에 있어 큰 걱정거리 중 하나다. 나도 모르게 노출된 광고에 현혹되어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조차 당장에 사야할 것 같은 충동을 느끼고, SNS 게시물의 ‘좋아요’가 내 삶의 척도가 되어가는 듯한 착각마저 들 때가 있다. 이렇듯 스마트폰을 대표로 하는 현대 기술의 편리함과 즉각적 만족이 주는 행복함에 삶의 통제권을 잃어버린 지 오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어찌할 방법을 모른다. 이에 대해 『클린 브레인』은 다행히도 문제가 무엇이든 우리에게는 그 문제를 해결할 강력한 도구가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건강과 행복을 위해 더 나은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이 책의 제안에 반드시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명료한 사고, 깊은 관계, 지속적 행복을 위한 10일간의 두뇌 해독

 

 

 

   『클린 브레인』은 ‘브레인 워시’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 뇌의 건강과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위협들을 제거하여 더 나은 뇌를 구축하고 더 나은 판단 능력을 키워 결국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하는 책이다. 다시 말해 나쁜 식습관, 부족한 수면, 과도한 디지털 기기의 사용, 만성 스트레스 등이 우리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식생활, 수면 위생, 자연과의 만남, 운동 습관, 의식적 소비, 마음 챙김 수련, 대인 관계 개선 등으로 대표되는 브레인 워시를 통한 진정한 웰빙을 목적으로 한다.

 

 

 

 

 

 

   1부 ‘현대사회가 뇌에 미치는 영향’에서는 즉각적 만족을 원하는 뇌의 원시적인 욕망을 사로잡으려는 현대 기술과, 거의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의 중독을 이끌어내는 상업적 이해관계 때문에 우리의 뇌가 점점 더 타인에 의해 통제되는 현실을 지적한다. 책에서는 이러한 상태, 즉 지속 가능한 행복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를 ‘단절 증후군’이라 부른다. 단절 증후군은 생각 없이 하는 행동, 외로움, 만성 염증, 즉각적 만족, 자기애, 빈약한 인간관계, 만성 스트레스, 충동성이라는 여덟 가지의 큰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뇌의 회로 수준에서 보여주고 그 통제력을 되찾아 더 충만하고, 행복하고,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보려 한다.

 

 

 

자기애는 단절 증후군의 한 증상이다. 3장에서 우리는 만성 스트레스와 코르티솔이 앞이마겉질과 편도체의 분리에 미치는 영향과 그것이 우리를 더욱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자기애가 있는 사람의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은 부정적인 감정에 특히나 민감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 연구에서는 자기애 척도에서 높은 점수를 시록한 사람이 점수가 낮은 사람에 비해 부정적 감정에 반응해서 나오는 코르티솔 수치가 유의미하게 높았다. / 111p

 

 

“우리의 인간관계, 그리고 그 인간관계 속에서 얼마나 행복한지가 우리의 건강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의 연구는 사람을 평생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돈이나 명성이 아니라 친밀한 인간관계임을 보여 준다. 이런 유대는 행복과 장수에 있어서 사회계층, 아이큐, 심지어는 물려받은 유전적 영향력보다도 뛰어난 예측 변수다. 이런 유대는 우리를 인생의 불만으로부터 지켜주고, 정신적·육체적 쇠퇴를 늦출 수 있게 도와준다. / 114p

 

 

 

 

 

  2부 ‘오염에서 벗어나기’에서는 자연에서 느끼는 경외감과 치유력, 정제 탄수화물을 줄이고 좋은 지방을 섭취하는 식습관, 질 좋은 수면, 항우울제 역할을 하는 운동, 명상으로 대표되는 마음 챙김 수련법 등과 같이 두뇌 디톡스에 필요한 도구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그 중에서도 음식의 선택이 사고 능력까지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은 퍽 놀라운 일이다. 허리둘레가 늘어날수록 뇌의 중독 회로도 더 강하게 활성화되는데, 이는 우리 몸의 지방세포들이 함께 공모하여 우리를 중독 상태에 붙잡아 두기 때문에 우리의 뇌 역시 식생활과 관련해서 이로운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먹을 것이 그 어느 때보다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정작 영양가는 없는 칼로리만 높은 음식들에 우리 아이들까지 너무 많이 노출된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게 된다.

 

 

 

자연은 여러 가지 혜택을 주지만 그중에서도 스트레스를 낮추고, 염증을 가라앉히고, 공감 행동을 늘린다. 본질적으로 더 건강하고, 집중력도 향상되고, 장기적 만족도 높아지도록 뇌의 회로를 다시 짜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은 정신없이 바쁘고 스트레스 가득한 현대 생활에 근본적 해독 기능을 제공해서 우리를 스크린 너머에 실재하는 경이로운 세상과 다시 이어 준다. 이것이 자연이 단절 증후군을 물리치는 방식이다. / 125p

 

 

한 연구에 따르면 수면이 부족한 사람은 “수면 손실 이후에 신경의 변화가 일어나 체중 증가를 촉진하는 고칼로리 음식에 대한 식욕이 증가했고, 그 정도는 실험 참가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수면 손실의 수준과 비례했다.” 사람이 느끼는 수면 부족의 양과 정비례해서 체중 증가를 촉진하는 식품의 섭취량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2011년에 《미국 임상 영양학 저널》은 수면 부족의 결과로 하루에 300칼로리의 과잉 섭취가 일어났다고 밝혔다. 이 칼로리가 모두 살로 가는 것이다. / 183p

 

 

 

 

 

  우리의 뇌와 몸을 리셋하기 위한 짜임새 있는 실천을 위해 마지막 3부 ‘브레인 워시’에서는 앞서 설명한 전략들을 한데 모아 10일 프로그램과 요리 레시피를 소개한다. 먼저 뇌를 끝없이 산만하게 만드는 디지털 기술의 영향으로부터 차단하고 새로운 균형을 찾기 위해 T.I.M.E 테스트에 따른 디지털 디톡스를 실행할 것, 하루에 3분에서 5분 정도 공감을 실천하며, 일주일에 30분 정도 시간을 내어 자연과 만날 것을 추천한다. 또 브레인 워시에서 권하는 식생활을 따르고 성공적인 수면을 위해 잠들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방법을 제시한다. 끝으로 하루에 30분 운동하기, 하루에 12분 명상하기, 하루에 10분 정도 다른 사람과 만나기 등 가능한 실천하기 쉬운 방법들로 매일 이 프로그램의 핵심 요소들을 습관화해 볼 것을 독려한다.

 

 

생물학적으로는 운동이 앞이마겉질로 가는 혈류를 증가시켜 더 많은 영양을 보내고, 앞이마겉질이 더 강하게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앞이마겉질과의 연결도 더 왕성해진다. 이것은 가장 좋은 의미의 신경가소성이다. 메시지는 아주 명확하다. 뛰어난 인지능력을 원한다면 운동은 필수다! / 203p

 

당신이 가끔 시간 날 때가 아니라, 일부러 시간을 내어 고요한 시간을 만들기로 선택하는 순간 진정한 개인적 성장을 위한 공간이 열린다. 당신은 자신의 삶이 타인의 지배를 받게 할지, 자신의 통제 아래 둘지 결정해야 한다. 마음 챙김과 명상은 외부의 영향력을 거부하고 당신이 자신의 정신적 과정을 스스로 책임지게 한다. 수많은 사람이 이 수련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뇌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주기 때문이다. / 213p

 

 

 

 

 

 

   14대 달라이 라마는 “우리가 가꿔 온 뇌는 우리가 살아온 삶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말했다. 『클린 브레인』은 우리가 하고 있는 사소한 습관이나 행동들이 모두 우리 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이 나의 뇌 회로를 새로 짜서 나의 운명을 대신 결정하게 놓아둘 것인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신경 가소성의 힘으로 뇌를 새로 구축할 것인가, 책에서 던지는 질문들이 날카롭게 다가온다. 이 책으로 하여금 편리함에 타협하느라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뇌와 몸의 건강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기를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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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 수오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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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저마다의 ‘시’가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챙김이 필요한 지금, 당신에게로 향하는 앤솔러지! 

 

 

 

   『마음챙김의 시』의 마지막 장에서 류시화 시인은 ‘한 편의 시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건네지는 것은 인간 고유의 아름다운 행위’라고 말한다. 문학에 있어서, 그 중에서도 시는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함께 읽음으로써 더 아름다워지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때문에 나는 첫 장부터 시를 소리 내어 읊기 시작한다. 아이가 관심을 가지며 다가와 오늘은 무엇을 읽느냐고 묻기에 시, 라고 이야기해주고 그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대신 골웨이 키넬의 시 <기다려라>를 들려준다.

 

 

 

우리의 모든 사랑을 실처럼 다시 잇는 음악을

거기 있으면서 들어 보라.

지금이 무엇보다도 너의 온 존재에서 울려 나오는

피리 소리를 들을 유일한 순간이니.

슬픔으로 연습하고, 완전히 탈진할 때까지

자신을 연주하는 음악을.

골웨이 키넬의 시 <기다려라> 중에서 / 23p

 

 

 

   아이로서는 뚜렷한 맥락을 알 수 없는 글에 이내 모호한 표정을 지어보이지만, 나는 그저 시 한 편 읽고 나눌 수 있는 이 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햇살이 나른하게 거실 안으로 들어오는 주말 아침, 소란스러운 TV 소리를 잠재우고 목구멍 아래에서 밀려올라오는 소리와 호흡에 집중하며 우리가 잠시나마 시의 언어를 통해 친밀감을 나눌 수 있었던 것,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시인은 또 이렇게 말한다. ‘시를 읽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세상을 경이롭게 여기는 것이며, 여러 색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마음챙김의 소중한 도구’라고 말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하고, 많은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지금, 시가 걸어오는 말에 기대어보기 참 좋은 날이다.

 

 

 

 

 

 

시를 읽는 것은 현실 너머를 보는 것이다

 

 

   『마음챙김의 시』는 파블로 네루다, 레이먼드 카버, T.S. 엘리엇, 페르난도 페소아와 같은 유명 시인에서부터 터키의 종교 지도자, 멕시코의 복화술사,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주목 받는 차세대 시인 등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쓴 마음챙김의 시들을 엮은 시집이다. 이를 엮은 류시화 시인은 마음이 힘들고, 삶에 불안을 느끼거나 삶의 진실과 마주하고 싶을 때면 시를 읽었다고 한다. 때문에 당신이 누구이든 어디에 있든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속도에 대한 세상의 숭배에 저항하는 것’이며, 숱한 마음놓침의 시간들을 마음챙김의 삶으로 회복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저 유명한 파블로 네루다가 ‘봄이 벚나무에게 하는 것을 나는 너에게 하고 싶어,’라고 썼듯이, 여기 이 시들로 하여금 당신을 온전히 당신의 삶에 꽃피어나게 하고 싶다고 넌지시 건넨다.

 

 

 

 

 

 

 

나는 탑승구 주위에 앉아 있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

바로 이런 세상이라고. 함께하는 세상.

일단 혼란스러운 울음이 멎은 후에는

그 탑승구에 있는 사람들 중에

옆의 다른 사람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 모두 쿠키를 받아먹었다.

나는 다른 모든 여자들까지 안아 주고 싶었다.

 

이런 일은 아직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잃지는 않았다.

나오미 쉬하브 나이의 시 <탑승구 A4> 중에서 / 68p

 

 

 

지구가 한 가족이 아닌 척하지 말라.

우리가 같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적 없는 척하지 말라.

우리가 서로의 숨결에 의지해 익은 적 없는 척하지 말라.

우리가 서로 용서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닌 척하지 말라.

알프레드 K. 라모트의 시 <조상혈통 찾기 유전자 검사> 중에서 / 126p

 

 

 

  코로나19로 인해 무기력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반면, 오랫동안 스트레스가 쌓여 급기야 분노를 표출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를 테면 마스크 착용 요구에 화가 나서 지하철에서 승객들에게 폭행을 가한 50대 남자의 난투극은 어렵고 힘든 시기를 공동체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고자 하는 믿음에 위협을 가한 사건이어서 보다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우리’라는 선의를 믿는 나오미 쉬하브 나이의 시 <탑승구 A4>와 우리 모두는 같은 나뭇가지에서 매달려 서로의 숨결에 의해 익은 거시적인 존재들이라고 말하는 알프레드 K. 라모트의 <조상혈통 찾기 유전자 검사>와 같은 시들에 차오르던 불안을 가라앉혀본다. 나를 기꺼이 안아줄 이가 반드시 곁에 있을 거라고, 아직은 모든 것을 다 잃지 않았다고, 그렇게 ‘우리’라는 연결의 힘을 다시금 믿어본다.

 

 

 

아이에게 말한 적 있는가,

내일로 미루자고.

그토록 바쁜 움직임 속에

아이의 슬픈 얼굴은 보지 못했는가.

 

어딘가에 이르기 위해 그토록 서둘러 달려갈 때

그곳으로 가는 즐거움의 절반을 놓치는 것이다.

걱정과 조바심으로 보낸 하루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버려지는 선물과 같다.

데이비드 L. 웨더포드의 시 <더 느리게 춤추라> 중에서 / 113p

 

 

나는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넘어지거나 불에 델까

두려워하며 살지는 않으리라.

나는 나의 날들을 살기로 선택할 것이다.

내 삶이 나를 더 많이 열게 하고,

스스로 덜 두려워하고

더 다가가기 쉽게 할 것이다.

도나 마르코바의 시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중에서 / 79p

 

 

 

   몇 달 전부터 매일 한 시간에서 두 시간씩 오전에는 운동을 하고, 가능하면 일주일이나 이 주에 한 번씩은 산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실천하고 있다. 시작은 출산 후에 불어난 살을 빼는 게 목적이기는 했지만, 언제부턴가 성취감이 주는 희열과 어떤 목적의식이 있는 삶이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에게 찾아온 변화를 통해 실감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핑계로 나에게 소홀히 하지 말 것, 엄마이기 전에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잊지 말 것. 그렇게 다짐을 하다 보니 도나 마르코바의 시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의 구절들이 유독 마음에 와 닿는다. 아울러 로저 키이스의 시 <호쿠사이가 말하기를>에서 ‘삶이 너를 통해 살게 하라’라는 말도 새겨 읽게 된다.

 

 

 

 

 

 

 

   평소 시를 자주 읽는 편도 아니고 또 시에 대해서 아는 것 하나 없지만 『마음챙김의 시』는 한 편, 한 편을 곱씹어 읽게 될 만큼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시집을 읽다보면 저마다 다른 이유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시’가 꼭 있을 것이다. 그 시로 하여금 마음챙김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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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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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대물림되는 혐오와 배제의 경제학!

‘집’이 ‘개인’과 ‘가족’의 서사가 되고, 소속과 계급이 되는 모순을 냉담하게 포착해낸 소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경계 안에 뿌리를 내릴 수 있어 다행이라 믿었던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그 경계란 행정 구역상 이곳과 저곳을 나눈, 고작해야 도로 하나에 지나지 않는 얄팍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속이 되고 계급이 되며 개인과 가족은 물론 마을 전체의 서사가 되기도 하는 실로 강력한 것이었다. 저 동네는 좀 논다 싶은 언니나 오빠들이 많아서 위험해, 이 동네는 학군도 좋고 부모들도 대체로 다들 넉넉하게 사니까, 여긴 토박이들이 많아서 서로 얼굴 다 아니 안전하잖아. 이런 말들이 주는 안정감, 존재감 속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그것이 경계 너머의 사람들을 혐오하고 배제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때문에 그곳을 떠난다는 건 곧 실패와 좌절을 의미했다. 어디서 사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해. 넓은 2층 양옥집에서 오랜 세월 삶을 꾸려온 엄마는 누구 하나 아는 이 없는 동네의 어느 작은 빌라로 이사 오게 된 처지에 눈물을 터뜨리셨고, 위로를 한답시고 그렇게 말을 했지만 역시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빠진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러서도 다시 그곳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바람을 선뜻 지우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기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구, ○○동, ○○ 학교 출신… 내가 거기에 있었음을 단순히 증명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나와 남편 그리고 내 아이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자서전’과도 같은 것이라면 부단히 욕망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된다. 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이 좇는 ‘집’을 향한 집착, ‘경계 안’으로 들어서려는 필사적인 욕망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경계 밖에 있다는 이유로 내가 누군가에게 혐오와 배제, 소외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은 더더욱 절박한 문제가 된다.

 

 

 

 

 

 

집을 향한 집착, 경계 안으로 들어서려는 필사적인 욕망

 

  재개발 계획이 거듭 무산되며 버려진 동네가 되어버린 남일동. 그곳에서 나고 자란 ‘나’는 자신이 살던 곳이 부촌인 중앙동으로 행정 편입되면서 중앙동의 주민이 된다. 나의 부모는 마치 중앙동에서 원래 살기라도 했던 것처럼 남일동과 선을 긋는다. 등굣길에 친구들과 빵을 나눠 먹는 것조차 야단을 치고, 길에서 놀고 있으면 “홍아, 너는 이 동네 애들과 달라” 하며 작정한 듯 집으로 끌고 들어와 노골적으로 남일동 아이들을 배격한다. 그렇게 남일동으로부터 멀리, 더 멀리, 어떻게든 가능한 한 더 멀어지고자 하는 부모의 모습은 동네 친구들에 대한(혹은 그 부모들에 대한) 불만이나 동네 아이들과 비슷하게 자라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나에게 또렷이 투영된다. 하지만 친구들은 ‘3학년 8반 남토(남일동 토박이의 준말)’라 부르며 나를 소외시키고, 졸업 후 취직한 여행사에서도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동료를 챙겨주다 같은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경계 안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이물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린 듯한 나는 알레르기라는 병증에 시달린다.

 

 

 

왜인지 남일동을 생각하면 애잔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곳은 한 번도 제대로 빛난 적이 없다는 생각 탓입니다. 남일동은 생각하면 처음부터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곳에 처박히듯 방치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 51p

 

아이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게 남일동 토박이의 준말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하고,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따져 물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내가 남일동에서 중앙동으로 온 것이 아니고, 중앙동에서 남일동으로 온 경우였다고 해도 그 애들이 그럴 수 있었을까요. / 100p

 

 

도대체 내 부모는 왜 그토록 집을 가지고 지키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걸까요. 당신들의 기대와 바람을 보란 듯 배반하며 어김없이 실망과 좌절만을 되돌려주던 집에 대한 애착을 왜 놓지 못했던 걸까요. / 120p

 

 

 

 

  그나마 남일동 제일약국의 약사가 제조해주는 약이 꽤 효험이 있어 자주 찾아가곤 하는 나는 그곳에서 주해와 딸 수아를 만난다. 남편과 이혼을 하고 남일동의 달산 바로 아래 집으로 이사를 온 주해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선택에는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며, 그 결과에 책임을 다하는 것만이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 특유의 긍정성과 단순함,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추진력과 실행력’을 갖춘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그녀의 노력으로 도서관이 세워지고, 마을버스가 들어오고, 필요 없는 물건을 내놓아 파는 마녀시장이 열림으로써 외부인들의 발길이 늘어나는 등 쓰레기로 몸살을 앓던 골목과 더러운 담벼락으로 섬이나 다름없이 고립되어 있던 동네가 서서히 활기를 띄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동네를 위해 희생하는 주해를 도리어 불신하고 폄하하는 동네 사람들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다들 여유가 없어서 그래요. 여유가 없으면 뭐든 겁부터 나잖아요” 하고 오랫동안 배제되어 왔던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독려하려는 그녀를 지켜보면서 화자인 나는 어쩌면 남일동도 변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엿본다.

 

 

 

내 눈엔 모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친절이나 호의를 받을 줄 모르는 사람들. 선의나 진심에 찬물을 끼얹는 이들. 무례와 몰상식이 몸에 밴 인간들. 그러니까 외지 사람들이 남일도, 남일도 할 때 그 남일도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 기분이었습니다. / 56p

 

 

홍이 씨. 난 여기서 오래 살고 싶어요. 여기 아니면 갈 데도 없고요. 알잖아요. 내가 이러는 거 다른 사람들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필요해서 하는 일이에요.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요. 난 정말 잘하고 싶어요. / 95p

 

 

  그러나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편견과 배제의 경제학 앞에서 주해도 이내 허물어져버리고 만다. 남일동에 산다는 이유로 수아가 가까이 있는 학교가 아니라 버스를 타고 서너 정거장이나 가야할 만큼 먼 거리의 초등학교로 배정된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교무부장은 행정 절차를 핑계 삼아 주해의 분노를 만류해보지만 결국 동네 분위기를 운운하며 남일동을 따돌리는 게 분명한 그 이유는 주해를 비롯해 나에게도 큰 좌절감을 안긴다. 세월이 꽤나 흘렀음에도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분명한 진실, 주류에 편입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나의 부모가 나에게 그러했듯 결국 수아의 세상 역시 세대를 건너 대물림되고 또 대물림 될 거라는 사실. 더욱이 또 다시 들려오는 재개발 소식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주해의 모습은 이 분명한 진실 앞에서 절박해지는 한 개인의 연약함을 도드라져 보이게 할 뿐이다. 결국 주해는 경계 밖으로 밀려나고, 그토록 집에 대한 집착과 경계를 향한 욕망에 휘둘리며 자라온 나의 서사가 달산을 오르는 포크레인의 손길에 의해 금세 폐허가 되어버리는 광경은 텁텁한 쓴맛을 남긴다.

 

 

 

어쨌든 초등학교를 다니는 6년간 수아가 먼 거리를 오가야 할 테니까. 그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또 남일동 어딘가의 중학교로 진학할 테니까. 수아가 사는 동안엔 꼬리표처럼 졸업한 학교들이 따라다닐 테니까.

그러니까 수아가 남일동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학교에 진학했으면 하는 마음이 내 안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내 부모를 비롯한 중앙동 사람들이 비밀스럽게 공유하는 그런 마음이 내게도 분명 있었던 것입니다. / 111p

 

 

오래전 어머니로 하여금 집 앞에 서서 멍하니 집을 올려다보게 만들었던 그 조마조마한 마음이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다는 것을. 여기 사는 한 그런 마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것들은 저절로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끝없이 누군가에게 옮아가고 번지며, 마침내 세대를 건너 대물림되고 또 대물림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 125p

 

 

다만 주해네 집을 나서는 순간엔 새삼 여기가 남일동이구나,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내 부모가 벗어나기 위해 그토록 안간힘을 썼던 그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실감하게 된 것입니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는 남일동의 풍경은 오래전 내가 보았던 그것과 비슷했고 달라진 게 없는 듯했습니다. / 152p

 

 

 

 

 

 

   이렇듯 『불과 나의 자서전』은 재개발의 논리, 배제와 혐오의 경제학 속에 놓인 현대사회의 우울한 감정을 냉담하게 응시한 작품이다. 소설 속의 화자가, 소설 속의 공간이 결코 나와 분리될 수 없는 대상이어서 그런 것일까, 어쩐지 이 씁쓸한 여운이 꽤 오래갈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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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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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 상징되는 여성사의 계보,

어쩐지 우리의 미래는 썩 근사해질 것 같아 이미 행복해진다!

 

 

   모던 걸, 우리의 모던 걸…….

   한국전쟁이 끝나고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이 땅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었던 탓에 사진 신부가 되어 하와이로 이민을 간 여성, 심시선. 하지만 그녀가 도착하기도 전에 남편이 될 남자는 죽어버렸고, 사탕수수나 파인애플 농장에서 일하는 일꾼들 혹은 쇼필드 배럭스 군인들의 빨랫감을 세탁하며 낯선 땅에서 삶을 연명하던 그녀는 우연히 99번 국도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당시 미술계가 사랑하던 화가 마티아스 마우어로, 자신에게 도움을 베푸는 이 신비로운 동양 여성을, 게다가 그림까지 그릴 줄 아는 그녀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겠다는 빌미로 독일행을 제안했다. 20세기 여자들이 교육의 기회라는 말에 따라나섰던 수많은 길들은 정말 교육에 닿기도 했고, 위험한 나락에 닿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교육과 기회를 원했던 여성들은 벌어질 일들을 하나도 모른 채 자신을 내건 도박을 해야만 했다. 심시선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시선이 독일에서 지낸 기간은 칠 년 남짓이지만, 당시 유럽은 그녀를 재능 있는 화가를 파멸로 몰아넣은 아시아 마녀라 증오했다. 미디어는 지금보다 느렸지만 그때 사람들도 지금 사람들 못지않게 가십을 사랑했고, 조롱에서 폭력으로 넘어가는 시간은 훨씬 짧았다. 창문으로 날아드는 깨진 판석, 집 앞에 버려지는 오물, 길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위협들이 도를 넘어설 지경이었다. 정작 소품 취급을 당하며 가학에 가까운 폭력에 시달려야 했던 그녀의 삶은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음으로 향하는 자신의 나선 경사로를, 구부러진 스프링을 어떻게든 펴고 스스로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만이 살아 있는 예술가가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만 한다고 믿었다. 덕분에 그녀로부터 뻗어나온, 시선으로부터 뻗어나온 유산들은 지지 않고 꺾이지 않는 법을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갈 의지를 얻을 수 있었다. 모던 걸, 우리의 모던 걸……. 세상의 모던 걸들이 남긴 유산은 그렇게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그러니 여러분, 앞으로의 이십 년을 버텨내세요.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모퉁이가 찾아오면 과감히 회전하세요. 매일 그리되 관절을 아끼세요. 아, 지금 그 말에 웃는 사람이 있고 심각해지는 사람이 있군요. 벌써 관절이 시큰거리는 사람도 많지요? 관절은 타고나는 부분이 커서 막 써도 평생 쓰는 경우가 있고 아껴 써도 남아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불공평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모든 면에서 닳아 없어지지 마십시오. / 229p

 

 

아무것도 당연히 솟아나진 않는구나 싶고 나는 나대로 젊은이들에게 할 몫을 한 것이면 좋겠다. 낙과 같은 나의 실패와 방황을 양분 삼아 다음 세대가 덜 헤맨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 299p

 

 

 

 

 

 

 

 

말해지지 않는 것들로 우린 연결되어 있지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는 격동의 세기를 살다 간 한 여성 예술가로부터 3대에 걸쳐 이어지는 여성 중심의 서사를 다룬 소설이다.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고 밝힌 것처럼, 억압과 부조리 그리고 차별과 폭력의 시대를 견디고 극복해온 20세기 신여성의 삶이 이 땅에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또 어떻게 21세기 여성들에게 길을 열어주었는지 심시선이라는 한 여성의 목소리와 가정사를 통해 보여준다. 작가 정세랑은 명혜, 명은, 경아, 화수, 지수, 우윤, 해림으로 상징되는, 심시선으로부터 뻗어나온 ‘그녀들’을 통해 이 땅에서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 살아갈 여성들이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고 연대하며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이상적이나 과장되지 않게, 쿨한 듯 섬세하게 그려나간다.

 

 

 

“기일 저녁 여덟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 83p

 

 

 

   이야기는 작고한 심시선 여사의 십 주기를 맞이하여 딱 한 번만 하와이에서 제사를 치르겠다는 첫째 딸 명혜의 공식 선언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살아생전에 제사는 사라져야 할 관습이라고 강경 발언을 했던 심시선의 뜻을 생각하면 참으로 의아한 일이지만, 한때 심시선 여사가 살았던 하와이를 여행하며 각자에게 기뻤던 순간이나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제사상에 올리는 것으로 십 주기를 기리겠다는 명혜의 뜻에 모두들 기꺼이 수긍한다. 그렇게 소설 속의 인물들은 누군가는 하와이를 상징하는 물건을 찾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경험들을 공유하며 저마다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수집하는 미션에 몰두한다. 그러는 동안에 이들은 가깝지만 먼 듯했던 서로의 관계를 돌아보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서로가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으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각자의 언어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이렇듯 복잡하고 허례허식에 가까운 제식이 아니라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추억하고 나의 삶에 투영하고 있는지, 그 자체에 의미를 두려는 명혜의 참신한 발상은 그것이 ‘그녀들 혹은 그들이 시선으로부터 배운 삶의 방식’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이자 작가가 지향하는 여성사의 중요한 방향성을 상징한다.

 

 

 

“나 결심했어. 할머니 제사상에 완벽한 무지개 사진을 가져갈 거야.”

“뭐? 그렇게 단순하게 결정하는 거야?”

지수의 결정에 우윤은 깔깔 웃었지만, 속으로 자신도 결정했다. 완벽하게 파도를 탈 거야. 그 파도의 거품을 가져갈 거야. / 102p

 

 

경아는 오래전에 식어버린 커피와, 오래전에 끝난 대화를 하와이에서 곱씹었다. 만약에 경아가 완벽한 코나 원두를 사서 엄마가 좋아하던 묵직한 미국식 머그에 내려 제사상에 올리면 죽고 없는 사람이라도 웃을 것이다. 그것은 두 사람만의 유머였으니까. 엄마, 그때 말했던 그 코나 원두야, 하고 죽고 없는 사람을 웃게 하고 싶었다. / 123p

 

 

그렇게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한 행동은 그 이후 지수의 삶에서 찾아보기 힘들었으니 예외적인 노력이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야 태연히 즐거워 보이던 지수가 사실은 공들여 본인의 성격답지 않은 일을 해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린 우윤은 지수를 기다리며 고통을 잊었고, 둘이서 써나간 계획 노트는 지수가 없을 때도 우윤을 머물게 했다. 놓고 싶을 때도 놓지 않을 수 있게 해주었다. / 150p

 

 

 

 

 

 

 

   소설을 읽다보면 때로는 사람일 수도 있고, 때로는 작품이나 글일 수도 있고, 때로는 무심한 듯 강한 목소리일 수도 있는 심시선 여사의 유산들이 내내 가슴을 두드린다. 자신을 쓰고 써내느라 닳아 없어지게 하지 말라던 그녀의 메시지가, 눈치 보지 말고 배려해주지 말고 일을 키우라는 뻔뻔한 부추김이 마음을 울린다. 덕분에 소설 속의 ‘그녀들’처럼, 나 역시 시선으로 상징되는 수많은 여성들로부터 뻗어나온 존재들 중에 하나라는 사실에 안심이 되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의 시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몽글몽글 설레기도 한다. 이게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좋다고 평하던, 정세랑의 언어가 지닌 힘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나도 정세랑 월드에 빠져들게 되는 것인가, 참 오랜만에 긴 여운을 주는 작가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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