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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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권력의 이면을 사실적인 묘사와 놀라운 서스펜스로 그려낸 거장의 소설!

 

 

   "세데 바칸데(Sede Vacante). 이제 교황의 자리는 공석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 중에 한 명인 교황의 선종을 선언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로마 고대 시대를 다룬 대작 <폼페이>와 더불어 <임페리움>, <루스트룸>, <딕타토르>로 로마사 3부작을 통해 히스토리 팩션의 거장으로 불리는 로버트 해리스가 이번에는 콘클라베를 둘러싼 종교 스릴러로 돌아왔다. 콘클라베는 라틴어로 콘 클라비스(con clavis). '열쇠를 지니다'는 뜻으로 카톨릭 교회에서 교황을 선정하는 추기경단의 선거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로버트 해리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 중의 한 명을 선출하기 위한 이 콘클라베를 중심으로, 기막힌 서스펜스와 반전으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오가며 또 한 편의 놀라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차기 교황 선정을 둘러싼 이해와 갈등, 종교의 본질을 들여다보다

 

 

 

   전 세계 117명의 추기경들이 바티칸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교황의 선종으로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회의가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다음 교황 자리를 두고 치열한 심리전이 벌어질 것이며 본격적인 승계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추기경단의 단장인 75살의 로멜리는 갑작스레 선종한 교황으로 인해 정신이 황망한 가운데, 하나둘씩 모여드는 117명의 추기경단을 보며 자신이 콘클라베를 조직하고 이끌어가야 할 중대한 임무자임을 실감하게 된다.

 

 

 

   차기 교황으로 유력해 보이는 추기경은 네 명. 현 국무원장으로 늘 초연하고 냉정하며 지적인 이미지로 진보주의자들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는 벨리니, 나이지리아 출신의 추기경으로 최초의 흑인 교황이 될지도 모르기에 언론에서 특히 주목하고 있는 아데예미, 사도궁무처장으로 방송 매체를 잘 활용하는 활발한 정력가 유형의 트랑블레, 베네치아 총대주교로 극보수주의를 지향하며 생전에 교황과 벨리니를 상대로 비난을 서슴지 않았던 테데스코까지. 벨리니는 자신이 교황이 되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나머지 추기경들은 교황이 되기 위한 야욕을 심심치 않게 내비춘다. 로멜리는 이들을 보며 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죽은 교황도 누누이 허영과 호기심, 악의와 험담의 죄들, 사악한 방해꾼을 향한 경계를 강조하지 않았던가. 때문에 로멜리는 경쟁과 혼란으로 점철될 양상으로 보이는 콘클라베가 통합과 관용의 미덕을 지닌 훌륭한 교황의 선정을 이끌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곳이 방주로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혼란의 파도에 휩싸인 방주. / 53p

 

 

 

   그런데 모든 추기경들이 도착한 줄로만 알았던 로멜리 앞에 목록에도 올라와 있지 않은 뜻밖의 인물이 등장한다. 교황은 최측근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추기경을 선임할 수 있다 권한이 있는데, 살아생전 교황이 이 의중 결정 추기경에 임명한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바그다드 대주교, 빈센트 베니테스였다. 왜소하고 사회적, 사교적으로 어딘지 어색해 보이는 그이지만 무장한 이슬람교인들 사이에서 안전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보여준 만큼 콘클라베에서도 서서히 특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 이 선교사-사제가 왜 그렇게 교황 성하의 마음을 끌었는지 정확히 볼 수 있었다. 신을 만나고 싶으면, 안락한 제1 세계 교구가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가난하고 가장 절박한 곳으로 가야 한다. 그분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주님을 만나고자 한다면 용기가 필요하다. 누구든 나를 따르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을 포기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질지어다.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삶을 버리면 구할 것이니라. / 93p

 

 

 

 

 

 

   과연 이 118명의 추기경들 중 누가 차기 교황 즉, 신의 성배를 받을 것인가. 전 세계가 콘클라베를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삼엄한 경계 속에서 마침내 첫 번째 선거가 이뤄진다. 소설은 콘클라베가 이뤄지는 시스티나 대성당을 중심으로 로멜리의 시선을 통해 엄중한 투표 과정과 추기경들의 움직임 혹은 짐작 가능한 그들의 내밀한 속내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해나간다.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결국 두 번째, 세 번째, 계속해서 이어지는 투표 과정 동안 묻혀 있었던 후보자들의 비밀과 죄악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투표의 향방이 어디로 이어질지 예상할 수 없는 가운데,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반전으로 인해 소설은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모 교회에 봉사하는 동안,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종국에는 확신을 두려워하시지 않았던가요? '주여,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십자가에서 9시간을 매달리신 후 고통 속에서 그렇게 외쳤죠. 우리 신앙이 살아 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신앙도 필요가 없겠죠. / 120p

 

 

힘내게나, 레이. 이 엄청난 걸작을 봐. 기막히게 예언적이지 않은가? 그림 끝에 어둠의 장막 보이지? 예전엔 그저 구름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보니까 연기가 틀림없구먼. 어딘가에 불이 났어. 가시권 너머일 텐데 미켈란젤로가 감추려 한 걸 보니…… 폭력, 전쟁, 갈등의 상징일까? 그리고 베드로가 고개를 똑바로 들려고 애쓰는데…… 자네도 보이지? 지금 거꾸로 처박힐 지경인데 왜 저러고 있을까? 지금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 굴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안간힘을 써서 자신의 신앙과 존엄성을 보이려는 게지. 세상은 문자 그대로 뒤집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정을 유지하고 싶은 걸세. / 308p

 

 

 

 

 

 

   수차례의 투표를 통해 최종 합일점에 도달하기까지 소설은 우리가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를 치룰 때 의례 그러하듯 이 또한 정치색에서 벗어날 수 없는 종교의 불편한 이면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때문에 그들이 한계와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종교 그 자체가 지녀야 할 신념과 관용, 포용의 미덕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무신론자에 가까운 나조차도 종교가 인류에게 어떠한 믿음을 보여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종교적 색채가 강한 소설은 지양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지적 호기심과 더불어 흥미로운 전개로 마지막까지 스토리가 이끌어가는 힘이 탄탄해서 쉽고 재미있게 잘 읽혔다. 종교를 불문하고 많은 독자들이 이 지적이고 스릴 넘치는 소설을 즐기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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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홀했던 것들 - 완전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완전한 위로
흔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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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미완성의 청춘들을 위한 에세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놓치고 있던 것들을 향한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전하다!

 

 

 

   언제부턴가 사소한 것들에 마음이 이끌린다. 고단하고 팍팍한 삶의 무게를 버티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는 일이 녹록치 않은 탓일까. 사소한 일상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에서 복잡다단한 현실의 무게를 덜고, 자신의 진솔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청춘들이 많아졌음을 실감하곤 한다. 오늘도 나는 수많은 청춘들의 SNS를 통해 그와 같은 흔적을 발견한다.

 

 

 

   어느 날, 나는 평소처럼 오늘의 안녕과 당신의 안부를 묻는 수많은 글들을 무심코 지나치다가 거친 일상을 늘 한결 같이 다정다감하게 감싸 안으며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이가 있어 그의 글을 몇 번 찾아 읽어본 적이 있다. 부러 애쓰지 않아 담백해서 좋고, 자신의 이야기인 듯 사소하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공감을 얻는, 흔한 듯 흔하지 않은 듯한 글을 쓰는 작가. 바로 흔글이다. 필명이 참 인상적인 까닭에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그의 SNS 글들을 훔쳐보던 것이 결국 한 권의 책으로까지 만나게 될 줄이야. 괜히 반갑고 또 한편으론 종이로 인쇄된 글자의 감각들이 낯설기도 하다.

 

 

 

 

오늘은 조금 덜 소홀하기를

하루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를

누군가에게 감동이 되는 사람이기를

 

 

 

 

 

 

   <내가 소홀했던 것들>은 바쁘고 고단하다는 이유로 소홀했던 것들을 후회하면서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금 애정의 온기를 전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깊은 공감과 울림을 주는 감성에세이다. 사랑과 이별, 현실과 꿈, 관계로부터 오는 수많은 고민과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그 모든 것들에 안부를 전하고, 결국 한 발을 내딛고 또 뛰어넘어야만 하는 우리의 내일에 담담한 격려를 보낸다. 늘 진취적이고 당당하라고 외쳐대는 세상의 커다란 목소리에 묻혀 정작 사사롭지만 가장 진실한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인 적이 없는 우리들을 위로한다.

 

 

 

즐거운 사랑

 

 

(중략) 그러니 누군가가 당신에게 애정을 줄 때는

당연하다 생각하지 말고, 무심히 바라만 보지 말고

반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열차를 떠나보내는 미련한 승객이 되지 않고

스스로 정류장이 되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게. / 34p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

 

 

(중략) 상대의 마음을 알아가려는 노력이 사라지면 안 된다.

편안함에 가려지면 안 된다.

 

 

어리고 미숙했던, 서로를 잘 몰랐던 그때의 사랑보다

어쩌면 더 많이 알고 있고 친근하다 느끼는

지금의 사랑이 깊이는 더 낮을지도 모른다. / 44p

 

 

 

   돌이켜보면 나는 참 무심한 사람인 것 같다. 누군가는 나더러 한결 같이 그 자리에서 우직하게 서 있는 나무 같다고 하지만,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떼고 싶지 않았던 거다. 먼저 다가가거나 물러섬도 없이, 주고받는 민감한 감정으로 인해 서로가 어떤 식으로든 동요되는 것이 두려운 사람. 내 감정에 솔직해져본 적이 없어서 타인의 솔직한 감정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는 사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까 정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고, 반응이 없으니까 상대도 나에게 반응을 해주지 않는 것이란 걸 나는 왜 알면서도 잊고 있었던 걸까.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그간의 무심함을 일깨워본다.

 

 

 

 

 

 

방파제

 

 

(중략) 사람이 이렇게 고민투성이다.

항상 만약의 만약을 생각하고

당장 큰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마음속 방파제를 가득 끌어안고 산다.

 

 

대부분의 파도는 방파제를 넘지 못한다.

간혹 그 방파제를 넘는 큰 파도가 덮쳐온다 해도

그건 더 큰 방파제를 쌓지 않은 내 탓이 아니라

어떤 방파제라도 넘겼을 아주 큰 파도의 탓일 것이다.

 

 

내 탓이 아니라. / 118p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거나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을 때 우리는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저마다 방어기제를 작동한다. 어쩌면 마음에 방파제를 쌓는 일일 테다. 흔글은 간혹 방파제를 넘는 큰 파도가 덮쳐온다 해도 그건 더 큰 방파제를 쌓지 않은 내 자신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어떤 방파제라도 넘겼을 아주 큰 파도의 탓일 거라고 말한다. 뭐든 나 때문에,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일어난 실수나 사고에 대해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하기만 했다면 때로는 그만큼 나에게는 역부족인 일이었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위로해도 괜찮지 않을까.

 

 

 

미완성 인생

 

 

(중략) 기억하자.

우리의 미완성을.

 

 

만약 인생이 퍼즐이라면

지금은 퍼즐을 완벽히 맞출 때가 아니라

아직은 조각들을 모아야 할 때니까. / 295p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회가 요구하는 완벽함에 가까워지기 위해 우리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고 있는 것 같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완벽함을 자기 자신에게서만 찾으려고 하니 사는 게 힘들고 팍팍하기만 한 것이다. 자신을 너무 성급하게 몰아붙였다면 때로는 페이스를 늦추고 완급조절을 할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하다. 지금은 퍼즐을 완벽히 맞출 때가 아니라 조각을 모아야 할 때니까.

 

 

 

 

 

 

   <내가 소홀했던 것들>을 읽으면서 정작 가장 소홀했던 것은 내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자신에게조차 진실하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데, 하물며 타인의 감정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겠는가. 오늘 하루는 나에게 더 다정할 수 있기를, 그래서 내 사람들을 더욱 너른 마음으로 품을 수 있기를 이 책으로 하여금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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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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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의 지식인 이덕무의 삶과 철학으로부터 얻는 진정한 가치!

이덕무의 문장으로부터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온기를 얻다! 

 

 

   두 해 전 겨울,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18세기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연암 박지원, 담헌 홍대용, 초정 박제가와 더불어 당대를 빛낸 위대한 지식인이지만, 상대적으로 오늘날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덕무의 삶과 그가 담긴 기록들을 조명한 책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18세기 지식인의 기록들을 살펴보는 일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던 이 책은 전형적인 양반 사대부를 벗어나 개성 넘치는 그의 문장과 당대의 풍속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면밀히 살펴보는 재미는 물론, 오늘의 이치에도 닿는 훌륭한 철학을 엿볼 수 있어 유독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로부터 2년 뒤, 이덕무의 문장이 또 다른 한 권의 책으로 찾아왔다. 색감이 고운 복숭아를 담은 예쁜 표지와 함께. 따스한 온도를 품고서.

 

 

 

특별하지 않은 것에서 특별한 것을 아는 것

 

 

   '조선의 국풍', '조선의 시문', '간서치(책만 보는 바보)', '박물학자' 등 이덕무를 수식하는 말은 참으로 많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덕무를 아는 이가 많지 않은 점은 참으로 애석하다. 그는 성리학 담론 속에서만 글을 썼던 당대의 전형적인 양반 사대부 출신 지식인과는 다른 유형의 지식인이었으며 중국 시문을 모방하거나 답습하지 않고 조선의 산천과 풍속은 물론 조선 사람의 정서와 취향을 진실하게 드러낸 보기 드문 문장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생전 진정한 조선의 모습과 자신의 철학을 담기 위해 여러 저서를 남겼는데, <문장의 온도>에서는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라는 두 산문집을 중심으로 읽을수록 매료되고 곱씹게 되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인가? 이 물음에 대해 저자는 두 산문집으로 하여금 별반 가치나 의미가 없다고 무시하고 지나쳤던 우리 주변의 사소하고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함으로써 삶의 고단함을 달랠 수 있는 위로와 따스한 온기를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자연을 취해 글로 표현한 그의 아름다운 문장과 사실적인 묘사를 엿볼 수 있는 '진경 시문의 대가'로서의 면모와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의 아름다움 가운데 하나인 '우언소품의 미학'을 느낄 수 있으며 자연과 사물의 현상을 낱낱이 기록한 '박물학자'로서의 기록까지 살펴봄으로써 읽는 재미를 더한다. 또한 거리낌이 없고 자유로운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귀하게 여기고,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이를 통해 삶의 철학을 구하고자 한 그의 독서 정신을 배울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곳곳에서 그의 문장이 지닌 저마다의 다채로운 온도를 체감하다보면 어느새 내 삶에 온기를 채우는 법에 대해 저절로 깨닫게 된다.

 

 

 

말똥구리와 여의주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 굴리기를 좋아할 뿐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또한 여의주를 자랑하거나 뽐내면서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 「선귤당농소」

| 비록 상상의 존재지만 우주 만물 중 가장 귀한 동물로 여겨지는 용의 여의주와 가장 미천한 동물로 여겨지는 말똥구리의 말똥의 가치는 동등하다. 이제 우열과 존귀와 시비의 이분법은 전복되고 해체된다. 사람의 시각이 아닌 하늘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주 만물의 가치는 모두 균등하다. 단지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할 뿐이다. / 35p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에는 과거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던 동식물을 통해 천하 만물의 이치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과 세태까지 포착하는 소품문이 아주 많이 남아 있다. 여기에는 개미, 누에, 벌, 말똥구리, 뱀, 족제비, 쥐 등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수많은 동물이 등장하고, 오동나무, 소나무, 매화나무, 봉선화 등 식물에 대한 우화 역시 적지 않게 실려 있다. 그 중 말똥구리와 여의주라는 제목의 문장이 인상적이다. 말똥구리는 용이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고, 용 또한 자신이 지닌 여의주를 자랑하지 않고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이다. 이는 자연과 생명과 진화의 세계를 어떤 흑백 혹은 이분법의 논리로 보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아주 미미하고 꺼려하는 것들에서조차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그의 숭고한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인간이 자연에게 부리는 이기와 교만을 반성하게 한다.

 

 

 

매화와 유자

매화가 있는 감실 가운데 유자를 놓아두는 것은 매화를 모욕하는 짓이다. 예전부터 매화는 맑은 덕과 깨끗한 지조가 있다고 하는데, 어찌 다른 물건의 향기를 빌려 매화를 돕는단 말인가. - 「이목구심서 2」

| 다른 향기가 더 좋다고 나의 향기를 지우고, 다른 색깔이 더 빛난다고 나의 색깔을 없애려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다른 사람의 향기가 아무리 좋고 색깔이 아무리 빛난다고 해도 나만의 향기와 색깔을 지니는 것만 못하다. / 38p

 

 

 

   언제부턴가 '저 사람이 하니까 나도 해야지'라는 생각을 스스럼없이 하는 내 자신을 자주 발견하곤 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없으면 뒤쳐진 것 같고, 다른 집 아이들도 다 하니까 우리 아이도 이 정도는 해도 되겠지 하는 마음에 계획에도 없던 지출을 하게 된다. 다른 물건의 향기를 빌려 매화의 향기를 덮는 일을 경계하고자 한 이덕무의 뜻이 그 어느 문장보다 강하게 와 닿는 이유다. 마땅히 자신의 향기가 더욱 진하게 퍼져 나가는 곳, 자신의 색깔이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하는 곳에 자리해야 할 것이라는 저자의 글을 내 마음 속에 진하게 새겨둘 일이다.

 

 

 

이기는 것을 좋아하면 천적을 만난다

편의에 안주하는 사람은 큰 고비를 만나면 어찌할 줄 모른다. 자신이 해오던 대로만 하는 사람은 큰 기회가 와도 붙들지 못한다. 임시방편으로 그때그때를 넘기는 사람은 큰 근심거리를 만나게 마련이다. 남에게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큰 적수를 만나게 된다. 일의 형세가 그렇다. - 「이목구심서 2」

| 편한 것만 좇다 보면 안일함에 빠지기 쉽다.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변화에 둔감해 큰 기회가 찾아와도 잡지 못한다. 그때그때 임시방편으로 일을 처리하다 보면 환난이 쌓이고 쌓여 끝내 큰 위기에 봉착한다. 이기려고만 하다보면 종국에는 천적을 만나 낭패를 겪게 된다. 편안하면서도 안일하지 않고, 옛것에 머물면서도 혁신할 줄 알고, 임시방편에 능숙하면서도 일의 질서를 잃지 않고, 이기려고 하면서도 패배를 용납할 줄 안다면 그야말로 고상한 인덕의 소유자라 할 만하다. / 146p

 

 

 

   부쩍 나를 위한 핑계가 많아진 것 같다. 시간이 없으니까, 아이가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이런 말들로 일상에 안주하고, 변화에 덜컥 겁을 내기도 했다. 때문에 몇 번이고 나를 위한 좋은 기회가 찾아왔음에도 현재에 만족하고 오늘에 머무르고 말았다. 지금 이대로라면 결국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말 것이란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이라도 언젠가 찾아올 기회의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기 위해서 나를 단련시켜야만 한다. 핑계란 진정으로 나를 위한 것이 아님을 잊지 말자.

 

 

 

 

 

 

   문재인 대통령은 "내 청춘을 이끈 힘은 이덕무의 글이었다"고 밝힌 바가 있다. 세상의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삶을 변화를 독려하는 여러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나 역시 내 마음과 정신을 이끄는 것은 오히려 18세기를 빛낸 이 조선의 지식인이 쓴 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이덕무의 문장과 더불어 고전연구가 한정주의 번역과 해석이 빛난 <문장의 온도>는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답답한 현실을 위로하면서 성찰까지 가능하게 하는 가슴 따뜻한 책이었다. 혹여 거대한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그의 글이 고루하지는 않을까, 이 책 앞에서 주저하는 이들이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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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귀신들 - 대한민국 수재 2,000명이 말하는 절대 공부법
구맹회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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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부에 통하는 절대 원칙!

대한민국 공부 수재들의 비법을 모아 놓은 절대 공부법!

 

 

  최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방과 후 영어 수업을 금지시키겠다는 정부의 안이 나오면서 부모들의 거센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선행학습규제법에 따른 정책이긴 하나, 경쟁 위주의 현행 교육과 각자도생해야만 하는 입시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영어조기교육의 필요성과 또 다른 사교육을 불러올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반발심은 쉽게 잠재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입시제도 앞에서 늘 갈팡질팡해야만 하는 부모와 자녀들의 고충이 더 이상 남일 같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일찍부터 부모와 자녀 모두 흔들리지 않는 바른 교육관과 올바른 공부 습관을 들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공부 잘하는 방법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공부귀신들>의 저자 구맹회는 우리나라가 높은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정작 가장 중요한 공부법을 가르치지는 않는 것에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대한민국 대표 원조 공신으로 불리는 강성태 역시 마찬가지다. 공부법만 알면 더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썩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공부법을 익히고 기초 습관을 탄탄히 들이는 것만으로도 지나친 사교육비와 공부 스트레스를 확실하게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대한민국 수재 2,000명이 말하는 절대공부법을 다룬 <공부귀신들>은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불안한 교육정책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주도적으로 올바른 공부 습관을 들이는 데 도움을 주는 자녀교육서이자 자기계발서다. 30년 가까이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현재는 공부법 연구와 공부 컨설팅에 주력하고 있는 저자는 대한민국 공부 수재들의 공부법 가운데 객관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방법만을 골라, 어떤 시험 앞에서도 합격할 수 있는 절대적인 공부 비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누구나 공부귀신이 될 수 있는 노하우를 총망라한 이 책은 긍정적인 자기 암시와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기', 머릿속의 눈을 통해 장기 기억 저장법을 일러주는 '암기', 이론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명품 오답 노트를 만드는 방법을 수록한 '이해', 점수를 올리는 데 가장 중요한 반복의 힘과 요약 정리 노트 만드는 비법을 적은 '반복', 국어와 영어, 수학과 같은 핵심 과목 정복법을 소개하는 '핵심 과목', 수업 시간과 자투리, 수면 시간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다룬 '시간 관리',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주도 학습의 힘을 이끄는 '자기 주도',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고 시험에 임할 수 있는 비법을 수록한 '시험 공략',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 관리', 누구나 공부귀신이 될 수 있는 우리 안의 '의지'를 북돋아주는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구성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바로 '머릿속의 눈'이다. 저자는 머릿속의 눈으로 이미지를 보는 방법은 공부를 잘하는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비법이라고 설명한다. 머릿속의 눈이란 어떤 대상을 머릿속에 이미지로 떠올리고, 그 이미지를 바라보는 가상의 눈을 가리킨다. 머릿속의 눈으로 보면 그냥 보았을 때와 다르게 머릿속에 강한 전기 자극이 생겨서 장기 기억으로 저장된다는 것이다. 세계 기억력 대회에 참가해 우승한 조슈아 포어는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기억력이 뛰어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뛰어난 기억력은 배워야 한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주의를 기울이면 기억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즉, 뛰어난 기억력은 어떤 선천적인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학습한 것을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위해 책에는 머릿속의 눈을 뜨기 위한 트레이닝 방법과 머릿속의 눈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수록해놓았는데, 이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백지 공부법'과 '마인드맵 공부법'은 아주 유용한 공부법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책을 덮고 백지에 쓰다 보면 제가 공부한 것을 끊임없이 제 머리를 굴려서 생각해야 하잖아요. 기억력에 계속 자극을 주는 거예요. 머리에. 책을 펴고 제가 쓴 거랑 책의 내용이랑 비교하면 미처 기억하지 못한 부분이 눈에 보여요. 그 책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 부분을 제대로 외우는 거죠." / 84p

 

 

 

   이 책을 읽으면서 옛 기억을 떠올려보면 참으로 후회되는 것들이 많다. 오답노트를 정리한답시고 자르고 붙이는데 의미 없이 시간을 낭비하고는 다시 펼쳐보지 않거나 몇 번 하다 말기를 반복하고, 학교나 학원 숙제에 매달리느라 예습이나 복습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늘 첫 단원부터 공부하느라 중후반 단원은 시간이 촉박해 덜 공부한 채로 시험을 치르기 일쑤였으며, 시험을 친 뒤에 틀린 문제를 거듭 되짚어봐야 하는데 패배감으로 얼룩진 시험지를 흉물스럽게 여기며 서랍장에 쑤셔 넣어버렸으니 말이다. 이러니 틀린 문제는 또 틀리고, 성적이 향상 되지 않고 늘 제자리를 맴돌았던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공부법들은 뒤늦게나마 이번에는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자신감과 의지를 불러 넣음과 동시에 나와 같은 전처를 밟지 않고 아이에게 좋은 가이드가 되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분 복습은 본격적인 공부에 앞서 전에 공부했던 내용을 2분 정도 훑어보는 시간이다. 불과 2분이지만 공부한 내용이 머릿속에 남아 있을 때라서 복습 효과는 매우 크다. 다음 2분 예습은 지금부터 공부할 범위 전체를 2분간 훑어보는 것이다. 먼저 큰 숲을 보면 전체적인 흐름을 알고 공부할 수 있다. / 142p

 

틀린 이유를 간단히 적어두면 도움이 된다. 실수로 틀렸으며 '실수', 계산이 틀렸으면 '계산', 이론을 몰랐으면 '이론', 공식을 몰랐으면 '공식', 풀이를 보고 풀었으면 '풀이'라고 적는다. 풀이를 봐도 이해가 안 되는 문제는 '모름'이라고 적고, 연습장에 더 자세히 적는다. 처음에 틀린 문제는 시간이 지난 뒤에 풀어도 또 틀리기 때문이다. / 179p

 

 

 

 

 

 

   아이의 교육 문제 앞에서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사교육을 하느냐 마느냐인 것 같다. 부모로서 늘 중심을 잃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하니까 나도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아이에게 무분별한 사교육은 시키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내 아이만 뒤쳐질까 불안해지는 것이 결국 부모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사교육 자체가 나쁘다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기 주도 학습법을 아이가 익힐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적어도 이에 맹신하거나 끌려가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뚜렷한 목표 의식을 세웠을 때 공부가 즐겁고 의지가 생겨서 더욱 잘할 수 있다는 이 절대적인 진리를 무시하지 말아야겠다.

 

 

 

한국개발연구원의 김희상 연구원은 사교육을 받는 학생과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한 학생들의 성적을 조사했다. 그는 고3 수험생이 월 100만 원씩 사교육비를 썼을 때 수능 전국 등수가 4등 오른 반면, 하루에 2시간씩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했을 땐 7만 등이 상승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자기주도학습 습관의 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또 한국노동연구원의 최형재 연구위원은 사교육 열풍은 실제 효과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교육에 대한 환상, 사교육을 받지 않을 경우의 불안 심리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 223p

 

 

 

   <타이탄의 도구들>이란 책을 펴낸 팀 페리스는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전략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 역시 벽에 못 하나를 박는 단순한 일조차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모양이 다르듯, 공부도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에 따라 성적이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인 방법을 이용해 올바른 공부 습관을 실천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흔들리는 교육관으로 갈팡질팡하는 부모들과 성적 향상을 꿈꾸는 모든 학생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되길 바란다. 덕분에 나 역시 오랫동안 손 놓고 있었던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외국어 과외 선생님보다 외국어 잘 하는 부모가 되겠다는 목표가 생겼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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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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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삶을 찾아 스토니브리지를 떠났던 이들이 다시,

호텔 스톤하우스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다!

아름다운 스토니브리지에서 치유의 힘과 삶의 희망을 얻은 사람들의 이야기!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아름다운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을 그리며 한 편의 시를 쓴 적이 있다. 고달픈 현실을 뒤로 하고 고향 혹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어떤 이상향의 세계로 돌아가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싶게 만드는 이 시는 먼 이국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도 퍽 인상적인 시 중 하나였다. 아일랜드가 고난과 시련의 꽤 복잡한 역사를 지닌 섬이란 사실을 잊을 만큼. 어쩌면 이 땅의 자연이 간직한 평화와 낭만이 스스로를 정화하고 치유하는 넉넉한 힘을 지닌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가이자 극작가, 칼럼니스트로 알려진 메이브 빈치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 <그 겨울의 일주일>에서도 이러한 아일랜드 특유의 정서와 따뜻한 매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단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어쩐지 누구나 돌아가고픈 고향이 그곳에 있을 것만 같은 바로 그곳, 아일랜드.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주일을 선물합니다, 호텔 스톤하우스에서

 

 

   아일랜드 서부에 위치한 스토니브리지. 여름엔 아들에게 천국 같은 곳으로, 대서양 연안에 위치해 연중 대부분 비가 오고 바람이 거세고 쓸쓸한 편이지만 절벽 길을 따라 걸으며 모래밭이 펼쳐진 해안과 들쭉날쭉 솟은 검은 암벽면을 바라보면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절경을 품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 겨울의 일주일>은 이곳 스토니브리지를 떠났던 이들이 이별과 상처를 겪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마음을 치유하는 이야기가 담긴 따뜻한 소설이다. 성장을 하고 나면 누구나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을 꿈꾸듯, 편물공장에서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시골 농부와 결혼하는 삶을 선택하기보다 새롭고 자유로운 선택의 길이 펼쳐져있는 도시로 나아가고픈 열망을 품는다. 치키, 눌라, 올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치키는 자유분방한 미국인 청년 월터 스타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뉴욕을 떠났지만 현실은 고달프고 이내 이별을 맞는다. 눌라 역시 드루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미혼모의 처지가 되어 더블린으로 떠나 혼자 아이를 낳고 악착같이 벌어 키웠지만 아이는 자랄수록 사고뭉치에 그녀를 실망시키기만 한다. 울라는 똑똑하고 계산이 분명하여 더블린으로 가 학업을 마치고 직장을 구해 커리어를 쌓고 있었지만, 상사의 불순한 태도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월터 스타를 따라오는 기회는 안 잡는 게 더 좋았을 거예요." 치키가 후회하며 말했다.

"과연 그럴까? 너는 편물공장에서 승진을 했겠지. 미친 농부와 결혼해 자식 여섯을 낳았을 테고, 그애들 직장을 찾아주려고 애를 써야 했을 거야. 나는 네 결정이 훌륭했다고 생각해. 너는 결단을 내리고 일자리를 달라고 나를 찾아왔어. 이십 년 동안 우리는 잘 지냈고, 그렇지? 네가 여기 뉴욕으로 온 건 잘한 일이었어. 이제 고향에 돌아가면 그 근방에서 가장 큰 저택의 주인이 될 테고. 지금까지 네가 걸어온 길에서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구나." / 36p

 

"저는 제 인생이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거든요."

"나도 내 인생이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지. 하지만 살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도 정리할 건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 75p

 

 

   저마다 후회와 상처로 얼룩진 마음에 위로가 필요하던 때, 치키는 고향 스토니브리지의 미스 시디의 권유로 그녀의 스톤 하우스를 매입해 호텔로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듣는다.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일이지만 그녀는 정신없이 바쁘고 복작거리는 환상의 세계에 불과했던 뉴욕에서의 생활을 접고 스토니브리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한편 놀라는 사고만치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다 친구인 치키의 소식을 듣게 되고, 그녀에게 자신의 아들을 부탁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더블린을 떠나 치키가 있는 스톤 하우스에 가게 된 리거는 처음에는 낯설고 어리둥절할 뿐이었지만 그곳에서 치키의 일을 도우며 점차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치키의 조카인 올라 역시 상사에게 퇴사 의사를 밝히고 잠시 휴식도 취할 겸 스토니브리지로 돌아와 스톤 하우스를 그럴 듯한 호텔로 만드는 데 일조하며 점차 이곳 생활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달아났어." 치키가 말했다. "네 엄마도 달아났고, 나도 달아났지. 너도 달아났고. 언젠가는 멈춰야 해. 지금 멈추도록 하자." / 81p

 

"응, 여긴 생각하기에 좋은 장소야. 바닷가에 나가면 더 작아진 기분이 들거든. 내가 덜 중요해지는 것 같고. 그러면 모든 것이 알맞은 비율을 되찾게 되지." / 127p

 

 

 

   이렇듯 저마다 다른 이유로 고향인 스토니브리지를 떠났던 이들이 다시 돌아와 스톤 하우스를 호텔로 개조하는데 동참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며 평화로운 일상과 마음의 여유를 되찾게 된다. 그 사이 호텔 스톤하우스는 치키를 중심으로 드디어 첫손님들을 맞게 된다. 전혀 친해 보이지 않는 예비 고부관계의 위니와 릴리언, 존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유명 배우 코리 살리나스, 의사 부부인 헨리와 니콜라, 회계사인 아버지를 따라 가족 회사를 운영하는 젊은 청년 안데르스, 이벤트에 응모해 당첨되어 오게 되었지만 어딘지 못마땅해 보이는 월 부부, 은퇴한 교장으로 타인에게 친절과 관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넬 하우, 사랑의 상처를 떠안고 온 프리다까지. 저마다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던 이들이 스톤 하우스에 속속들이 모여든다.

 

 

 

 

 

 

   <그 겨울의 일주일>의 역자는 이 소설이 마치 '고즈넉한 합창곡' 같다고 말한다. 저마다 다른 음색, 다른 선율과 리듬이 합쳐져 불협화음마저 하나의 화음으로 융화해낸 합창곡처럼 소설은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달 수 없는 저마다의 사연을 듣게 하고, 집중하게 하고, 위로하고, 치유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아마도 메이브 빈치는 세상의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떤 거창한 계기보다 자연스럽게 타인과 관계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참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인 듯하다. 앞서 예이츠가 그러했듯, 메이브 빈치가 그러했듯 어쩌면 아일랜드라는 곳이 우리를 그렇게 이끄는지도 모르겠다.

 

 

 

"안데르스, 제발 그만. 생각해봐. 내가 싫어하는 건 네가 아버지의 사업에 뛰어든다는 그 자체가 아니야. 네가 그 일을 싫어하고 앞으로도 쭉 그럴 거라는 사실이야. 하지만 너는 다른 건 해볼 생각도 하지 않잖아. 네가 결정할 문제지 그 사람들이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야. 네 인생이지 그 사람들 인생이 아니야. 너는 네 인생에 대해 뭐든 할 수 있어." / 309p

 

 

 

 

 

  이 차가운 겨울, <그 겨울의 일주일>을 통해 복잡하고 아픈 상처들을 잠시 내려놓고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치키가 그러했듯 나 역시 누군가에게 한결같이 다정하고 넉넉한 자리를 내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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