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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종교와 권력의 이면을 사실적인 묘사와 놀라운
서스펜스로 그려낸 거장의 소설!
"세데 바칸데(Sede Vacante). 이제 교황의 자리는 공석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 중에 한 명인 교황의 선종을 선언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로마 고대
시대를 다룬 대작 <폼페이>와 더불어 <임페리움>, <루스트룸>, <딕타토르>로 로마사 3부작을 통해
히스토리 팩션의 거장으로 불리는 로버트 해리스가 이번에는 콘클라베를 둘러싼 종교 스릴러로 돌아왔다. 콘클라베는 라틴어로 콘 클라비스(con
clavis). '열쇠를 지니다'는 뜻으로 카톨릭 교회에서 교황을 선정하는 추기경단의 선거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로버트 해리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 중의 한 명을 선출하기 위한 이 콘클라베를 중심으로, 기막힌 서스펜스와 반전으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오가며 또 한
편의 놀라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차기 교황 선정을 둘러싼 이해와 갈등, 종교의 본질을
들여다보다
전 세계 117명의 추기경들이 바티칸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교황의 선종으로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회의가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다음 교황 자리를 두고 치열한 심리전이 벌어질 것이며 본격적인 승계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추기경단의 단장인 75살의 로멜리는 갑작스레 선종한 교황으로 인해 정신이 황망한 가운데, 하나둘씩 모여드는 117명의 추기경단을 보며
자신이 콘클라베를 조직하고 이끌어가야 할 중대한 임무자임을 실감하게 된다.
차기 교황으로 유력해 보이는 추기경은 네 명. 현 국무원장으로 늘 초연하고 냉정하며 지적인 이미지로 진보주의자들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는 벨리니, 나이지리아 출신의 추기경으로 최초의 흑인 교황이 될지도 모르기에 언론에서 특히 주목하고 있는 아데예미,
사도궁무처장으로 방송 매체를 잘 활용하는 활발한 정력가 유형의 트랑블레, 베네치아 총대주교로 극보수주의를 지향하며 생전에 교황과 벨리니를 상대로
비난을 서슴지 않았던 테데스코까지. 벨리니는 자신이 교황이 되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나머지 추기경들은 교황이 되기
위한 야욕을 심심치 않게 내비춘다. 로멜리는 이들을 보며 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죽은 교황도 누누이 허영과 호기심, 악의와 험담의 죄들, 사악한
방해꾼을 향한 경계를 강조하지 않았던가. 때문에 로멜리는 경쟁과 혼란으로 점철될 양상으로 보이는 콘클라베가 통합과 관용의 미덕을 지닌 훌륭한
교황의 선정을 이끌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곳이 방주로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혼란의 파도에 휩싸인 방주. /
53p
그런데 모든 추기경들이 도착한 줄로만 알았던 로멜리 앞에 목록에도 올라와 있지 않은 뜻밖의 인물이 등장한다. 교황은
최측근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추기경을 선임할 수 있다 권한이 있는데, 살아생전 교황이 이 의중 결정 추기경에 임명한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바그다드 대주교, 빈센트 베니테스였다. 왜소하고 사회적, 사교적으로 어딘지 어색해 보이는 그이지만 무장한 이슬람교인들
사이에서 안전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보여준 만큼 콘클라베에서도 서서히 특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 이 선교사-사제가 왜 그렇게 교황 성하의 마음을
끌었는지 정확히 볼 수 있었다. 신을 만나고 싶으면, 안락한 제1 세계 교구가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가난하고 가장 절박한 곳으로 가야 한다.
그분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주님을 만나고자 한다면 용기가 필요하다. 누구든 나를 따르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을 포기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질지어다.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삶을 버리면 구할 것이니라. / 93p
과연 이 118명의 추기경들 중 누가 차기 교황 즉, 신의 성배를 받을 것인가. 전 세계가 콘클라베를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삼엄한 경계 속에서 마침내 첫 번째 선거가 이뤄진다. 소설은 콘클라베가 이뤄지는 시스티나 대성당을 중심으로 로멜리의 시선을 통해 엄중한
투표 과정과 추기경들의 움직임 혹은 짐작 가능한 그들의 내밀한 속내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해나간다.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결국 두 번째,
세 번째, 계속해서 이어지는 투표 과정 동안 묻혀 있었던 후보자들의 비밀과 죄악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투표의 향방이 어디로 이어질지 예상할 수
없는 가운데,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반전으로 인해 소설은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모 교회에 봉사하는 동안,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종국에는 확신을 두려워하시지 않았던가요? '주여,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십자가에서 9시간을 매달리신 후 고통 속에서 그렇게 외쳤죠. 우리 신앙이 살아 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신앙도 필요가 없겠죠. / 120p
힘내게나, 레이. 이 엄청난 걸작을 봐. 기막히게 예언적이지 않은가? 그림 끝에
어둠의 장막 보이지? 예전엔 그저 구름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보니까 연기가 틀림없구먼. 어딘가에 불이 났어. 가시권 너머일 텐데 미켈란젤로가
감추려 한 걸 보니…… 폭력, 전쟁, 갈등의 상징일까? 그리고 베드로가 고개를 똑바로 들려고 애쓰는데…… 자네도 보이지? 지금 거꾸로 처박힐
지경인데 왜 저러고 있을까? 지금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 굴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안간힘을 써서 자신의 신앙과 존엄성을 보이려는 게지.
세상은 문자 그대로 뒤집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정을 유지하고 싶은 걸세. / 308p
수차례의 투표를 통해 최종 합일점에 도달하기까지 소설은 우리가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를 치룰 때 의례 그러하듯
이 또한 정치색에서 벗어날 수 없는 종교의 불편한 이면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때문에 그들이 한계와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종교 그 자체가 지녀야
할 신념과 관용, 포용의 미덕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무신론자에 가까운 나조차도 종교가
인류에게 어떠한 믿음을 보여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종교적 색채가 강한 소설은 지양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지적 호기심과 더불어 흥미로운 전개로
마지막까지 스토리가 이끌어가는 힘이 탄탄해서 쉽고 재미있게 잘 읽혔다. 종교를 불문하고 많은 독자들이 이 지적이고 스릴 넘치는 소설을 즐기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