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 - 모든 어른 아이에게 띄우는 노부부의 그림편지
안경자 지음, 이찬재 그림 / 수오서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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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랑하는 세 손자에게 전하는 마음이 담긴 편지!

불안하고 답답한 세상에 큰 어른이 전하는 다정하고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

 

 

 

   인스타그램에 @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이란 계정을 검색하면 한 노부부의 피드가 나온다. 77세의 나이로 할머니가 글을 쓰고 할아버지는 그림을 그리며 자신들의 세 손자들을 위해 일상의 단편과 지난 과거의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최근에 올라온 글 중에는 할아버지가 손자 아로에게 자신이 생애 가장 크게 화가 났던 일을 얘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로의 아빠가 두 살 정도가 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하나 둘 사서 모아두었던 레코드판을 아무렇게나 꺼내놓고 마구 장난을 치는 바람에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적이 있다며 웃지 못 할 지난날을 회상하는 내용이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일상의 정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림과 손자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다정하게 들려주는 글들은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나의 부모님이 손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미소가 슬쩍 번지다가도 이내 마음이 뭉클해져서 아련해진다.

 

 

 

땅을 내려다보지 말고 별을 올려다보렴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는 전 세계 35만 팔로워가 사랑하는 인스타그램의 주인공 이찬재, 안경자 부부의 글과 그림이 담긴 따뜻한 그림에세이다. 스물여섯의 나이로 결혼해 1남 1녀를 둔 그들은 1981년에 브라질로 이민을 간 뒤 함께 살던 손주들이 갑작스레 한국으로 돌아가자 허전함과 그리운 마음을 담아 그림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를 멀리 떨어져 있는 손주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생각나면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고, BBC, NBC, <가디언>과 같은 해외 유력 매체들이 극찬을 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몰론 컴퓨터와 휴대폰을 다루기가 쉽지 않은 나이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련의 과정들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손주들에게 세상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바람을 소박하지만 큰 마음으로 담아놓았다.

 

 

 

세상의 모든 엄마와 아이에게

 

아로가 엄마랑 놀이방에서 놀고 있다. 지금 아로는 참 행복할 거야. 함께 노는 걸 좋아하니까. 엄마랑 있으니 더욱 즐거워 보인다. 아니, 그림 속 아이가 아로가 아니어도 좋다. 어떤 아인들 엄마랑 놀 때 행복하지 않을까. 같이 있기만 해도 좋은데.

 

아! 이 그림을 세상의 모든 일하는 엄마에게 주고 싶다. 몇십 년 전 나도 일하는 엄마였지. 오랜 기간 동안 일하는 엄마였어. 그래. 아이가 늘 걱정되는 모든 일하는 엄마에게 바치련다. 그리고 엄마가 일하러 가서 조금은 쓸쓸한 모든 아이에게도. / 25p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이 사계절로 구성되어 있다. 각 계절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할아버지의 그림과 함께 할머니의 따듯하고 애틋한 시선이 담긴 이야기가 가만가만 실려 있다. 여기에는 그 어떤 거창한 이야기도 담겨 있지 않다. 손주와의 소중한 순간들, 가난과 고난의 시절을 겪었던 지날 날에 대한 회상,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예찬과 동시에 훼손되고 있는 환경에 대한 안타까움, 이민자로서의 삶과 시선으로 바라본 낯선 땅의 이미지 등 사계절이라는 계절을 수없이 겪었을 그들의 시선으로 기억하고 기록해놓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나의 할아버지처럼, 나의 할머니처럼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해서 그 어떤 감동적인 이야기보다 큰 울림을 전한다.

 

 

 

너의 세계

 

아로야,

네가 태어난 지 5개월이 되었을 때 넌 종일 옹알이를 했다.

버둥버둥, 손과 발도 허공에서 열심히 말했지.

먼 데 있는 할머니에게도 들리는 듯했어.

너만의 생각, 너만의 이야기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겠지?

보이지 않는 아로의 세계가. / 77p

 

 

코, 코, 코

 

할아버지에게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아로.

“코, 코, 코~ 입!”

“코, 코, 코~ 귀!”

“코, 코, 코~ 이마!”

집게손가락으로 코를 계속 두드리다가

갑자기 귀에다 갖다 대며 “입!” 한다.

이때 덩달아 귀를 잡으면 안 되는 거야.

얼른 입을 가리켜야지.

옛날부터 내라오는 말 배우기 놀이! / 251p 

 

 

  유독 세 손주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로서 그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글들이 가슴을 두드린다. 아로가 아플 때 “할아버지가 호오- 해주면 안 아파.” 하고 불어주는 따뜻한 입김과, 꺄르르 웃으며 그것도 맨발로 달리는 아로를 보고 조마조마해지는 마음 하며, ‘꼭꼭 숨어라’ 놀이를 하자고 해놓고서는 자기를 찾지 못할까 봐 조바심 내며 금세 얼굴을 내미는 아이의 모습들까지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데가 없다.

 

 

 

 

 

 

마지막 코뿔소

 

아프리카 대륙 한복판에서 살던 마지막 수컷 북부흰코뿔소 ‘수단’이 숨을 거두었다는 기사를 읽었어. 동물의 멸종 위기라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마지막 한 마리라니! 힘이 넘치는 얼굴로 묵직하게 버티고 서 있는 수간이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너희에게는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니?” / 71p

 

 

해바라기

 

(중략) 영화. 1970년대 한국에서는 상영되지 않아 전혀 몰랐던 유명한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흘러간 영화. 대사 한 마디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자막 한 글자 읽지도 못하면서 펑펑 울고 흐느끼며 끝까지 본 영화, <해바라기>. 이제 내게는 잊지 못할 영화가 되었단다. 그날 그렇게 울어버린 건, 영화 속 사랑을 잃은 한 여인의 숨죽인 통곡이 이민자의 외로움을 대신해주어서였을까? / 191p

 

 

 

   책을 읽으면서 참 인상적이었던 것은 문득 기억하고 싶고 되새기고 싶은 것이 생길 때면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보았던 것, 혹은 있었던 일을 들려주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말하는 대목이었다. 아내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그것을 상상해가며 그림으로 그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참 다정하다. 그 마음이 그림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것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페이지 곳곳에 담긴 소박한 그림들이 더 마음을 울리는 이유다.

 

 

 

 

 

 

   책에 실린 마지막 글귀에 “우리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고 보니 문득 지나온 인생이 보이더라. 어떤 때는 눈앞에 놓인 하루하루 살아내는 게 무척 힘들고, 벅차고, 피곤하기만 했을 때가 있었지. 그런데 여기 서서 돌아보니까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더라. 찬란했더라. 참으로 삶은 아름다운 것이었더라. 너희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었어.” 라고 써 있다. 살아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더 많고, 숨이 차고, 다 내려놓고 싶을 만큼 힘들 때가 종종 찾아온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그리 큰 일이 아니었다 싶을 만큼 잘 견뎌냈고, 또 힘을 내서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노부부의 이야기는 이처럼 모든 순간을 잘 견뎌내고 힘내서 살아온 어른들의 삶이 담겨져 있어서 더 아련하고 애틋했다. 그래서 언젠가 내 아이들이 힘들고 지탱할 것이 없고 외로운 순간이 찾아올 때 나의 이야기가 조금은 의지가 될 수 있도록 나와 나의 남편 역시 많이 기록하고 기억하려 한다. 이 아름다운 부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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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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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이후 계속되는 우리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저마다 달라도 너무도 익숙한 그녀와 나의 이야기!  

 

 

 

   최근 연예 뉴스 게시판이 브라를 하지 않고 공공장소에 나타난 한 여자 연예인에 대한 기사로 연일 뜨겁다. 분명 성적 비하 및 노골적이라 여겨질 만큼 민망한 댓글이 득시글거릴 것 같아서 기사를 미처 다 읽지도 않고 창을 닫아버렸다. 특히 꼴펨이니 워마드니 메갈이니 남자와 여자의 대결 구도로 번져서 서로 물고 뜯는 댓글이라면 이전에도 수없이 보았다. 사실 이 땅에서 서른여섯 해를 살아온 여자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주관을 실천한 그녀의 모습에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테다. 어느새 우리 사회가 ‘드러내고’, ‘뱉어내고자’ 하는 자유 의지를 더 이상 감추고 짓누를 수만은 없을 만큼 변화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도 놀라워하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두 해 전, 페미니즘을 화두에 내걸고 <현남 오빠에게>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조남주 작가를 비롯한 일곱 명의 젊은 작가들이 한 데 모여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고, 나아가 모두가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페미니즘을 지향하고자 쓴 소설집으로 당시 이러한 시도는 상당히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책으로 읽는 페미니즘과 SNS에서 드러나는 페미니즘, 내가 아는 페미니즘과 희망하는 페미니즘, 내 집에서의 페미니즘-딸들에게 설명하는 페미니즘과 남편을 설득하는 페미니즘, 내가 쓰고 싶었던 소설 속의 페미니즘과 결국 내 소설 속에 갇혀버리고 만 페미니즘이 모두 다 다른 언어’여서 ‘무엇보다도 실제의 내가 실천하는 페미니즘이 그 모든 페미니즘을 따라잡을 수 없어 나는 너무 자주 곤란해지곤 했다’는 김이설 작가의 고백처럼 여성들의 삶에 대해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와 고민들이 상당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고, 이는 많은 독자들에게 페미니즘의 진정성과 가치를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웅크리고 숨죽이고 있던 여성의 언어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 함께 공감하고, 고민하고 또 이야기해볼 수 있는 이러한 시도들이 있었기에 비록 더디지만 우리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해야 할 말이 있고 해야만 한다

 

 

   <현남 오빠에게> 후속작 <새벽의 방문자들>이 출간되었다. 우리 시대의 젊은 작가 장류진, 하유지, 정지향, 박민정, 김현, 김현진 등의 6인이 모여 저마다 다르지만 어쩌면 모두가 익숙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충격적이리만큼 사실적이고,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소외를 솔직하게 다룬 이 여섯 편의 작품들은 소설이라 하기에는 나와 내 이웃 혹은 친구들에게도 충분히 있어났을 법한 일들이어서, 마음이 불편해지다가도 금세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소설 속에는 여러 여성들이 등장한다. 포털사이트 관계사에서 댓글 모니터링 업무를 하며 홀로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는 삼십대의 나(장류진, 「새벽의 방문자들」), 무례한 남자 상사를 대차게 한 방 먹이고 자발적으로 공장을 나온 나 그리고 아이를 잃은 상처로 인해 버스정류장에서 하염없이 초등학교 운동장을 바라보는 룰루(하유지, 「룰루와 랄라」), 클럽의 밴드 멤버와 그루피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성년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요구하는 섹스를 받아들여야 하는 나 그리고 태연한 척 했으나 이혼한 부모의 힘 싸움에 상처를 받고 자신의 몸에 자해를 하는 초(정지향, 「베이비 그루피」), 자신의 정치적 신념만 앞세우며 곁에 있는 연인에게조차 훈계와 조소를 퍼붓는 연인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보라’(박민정, 「예의 바른 악당」), 선생들의 추행을 고발하기 위해 학교 복도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유미(김현, 「유미의 기분」), 사내 추행 때문에 그만둔 여자 친구를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녀를 꾸짖고 함께 저축한 데이트 통장까지 들고 가버린 남자 친구 때문에 이성을 잃어버린 나(김현진, 「누구세요?」)가 있다.

 

 

 

누구에게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었고 누군가 이해해주길 바라지도 않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김과 함께 있으면 어딘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갑갑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단지 그런 모호한 이유로 김과의 결혼을 포기한 여자를 두고 주변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고 굴러들어 온 복을 차버렸다고도 했다. 네 주제에, 라는 말도 들었다. 여자는 그런 말들을 흘려보낼 정도로 덤덤하지는 못했다. 왜 결국에는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고 남들이 미쳤다고 할 때마다 내가 정말 미친 짓을 한 거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초조한 적도 있었다. / 「새벽의 방문자들」 중에서 16p

 

 

가난하고 불안정하다고 해서 아버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도 그런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그런 어머니의 자식으로 살아가는 일이 어떤 빛깔이고 어떤 소리인지 안다. 가난에서는 쓴맛이 아니라 짠맛이 난다. 그 소금기를 혀끝에서 느껴본 사람은 부르르 몸서리치게 되고, 인생에 시간과 사랑의 양념을 치는 일에 인색해진다. 우리 사이에는 아이가 없으리라, 나는 짐작한다. / 「룰루와 랄라」 중에서 51p

 

 

지긋지긋하다고, 작작 좀 하라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내가 지겨워졌다. 평화와 고요를 원하는 사람에게 얘기 좀 하자며 추근거리기는 싫었다. 어차피 우리는 싸움닭 체질이 아니었다. 도전을 포기하자 관계는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결혼, 거기가 우리의 목적지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전진했을까, 후퇴했을까. 아니면 결혼이란 관계의 제자리걸음인 것일까. / 「룰루와 랄라」 중에서 62p

 

 

 

 

 

 

   각각의 소설에는 여성들이 아직도 뿌리깊이 박혀 있는 각종 편견과 배려 없는 농담들에 좌절하는 순간들이 등장한다. 느닷없이 침범하곤 하는 초인종 소리에 혼자 사는 여성으로써 불안에 떨고, 성적 판타지를 해소하는 출구로 거래를 하는 남자들과 그들의 소비 대상이 되는 여성들은 길바닥에 뿌려진 전단지만큼 하찮은 것이 되며(장류진, 「새벽의 방문자들」), 결혼을 앞두고 동거 중인 남자의 바나나를 손수 칼로 잘라 먹이는 정성은 들여도 정작 자신이 먹을 건 챙기지 못하는 것이나, 상사라는 권위를 앞세워 반말을 찍찍 내뱉는 과장의 권위의식은 번번이 불쾌하기 짝이 없다(하유지, 「룰루와 랄라」).

 

 

   P가 섹스를 하면서 콘돔을 쓰지 않고 자신의 욕구에만 충실 하는 사이 나는 생리가 하루만 늦어져도 아침저녁으로 테스트기를 사러 다닐 만큼 불안해해야 하고(정지향, 「베이비 그루피」), 월급다운 월급을 받지는 못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내 삶을 살기로 자처한다는 것이 고모의 눈에는 안정적이지 못한 일에 빌빌대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도 그렇다(박민정, 「예의 바른 악당」). 또 ‘여자는 꼬리가 아홉이라서 꼬리를 잘 친다는 얘기’를 농담이라고 던지는 남자들이 도처에 존재하고(김현, 「유미의 기분」), 밤낮 미스 리 미스 리 어쩌고 하며 툭하면 허벅지며 엉덩이를 주물럭대고 은근슬쩍 점심 먹으러 가는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제 물건을 밀어대던 직원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겠다는데, 정작 연인이라는 자는 “네가 사회생활 하는 법을 몰라서 그래!”하고 철딱서니 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다(김현진, 「누구세요?」).

 

 

 

사리 판단에 어두운 유권자일수록 선택의 기로에서 그저 익숙한 쪽을 선택할 것이다. 보라의 생각에 그따위 선택이란 폭력을 일삼는 남편에게 돌아가는 촌부들의 그것 같았지만 그런 이유라고 해도 간단히 무시해버릴 만한 것은 아니었다. / 「예의 바른 악당」 중에서 159p

 

 

그 종이 한 장 한 장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 놈 한 놈을 떠올리게 했다. 그 노랗고 작은 것들이, 그 보잘것없는 종이 쪼가리가 한데 모이자 크고 넓고 거대한 것이 이루어졌다. 많은 여학생들이 포스트잇으로 이루어진 그 네모난 세계에 연결됐다. 그것이 마치 자유로의 입구라도 되는 양 환호했다. 또한 많은 남학생들이 포스트잇으로 이루어진 그 정체불명의 세계에서 눈을 돌렸다. 그것이 마치 자신들의 내면으로 향하는 입구라도 되는 양 헐, 존나, 대박, 메갈, 꼴펨, 진지충이라는 말을 내뱉고 사라졌다. / 「유미의 기분」 중에서 214p

 

 

그 통장의 체크카드는 언제나 재영의 지갑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가끔 근사한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떠날 때 실은 각자 먹은 대로 낸 셈이건만, 나는 늘 이 정도는 한다는 듯 여유롭게 카드를 지갑에서 꺼내 자연스럽게 서버에게 건네는 그의 손짓이 늘 이런 파인 다이닝에서 여자 친구를 호강시켜주는 남자 행세를 하는 것 같아 간혹 찜찜한 기분이 들기도 했으나, 누구 하나라도 억울한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말에 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 「누구세요?」 중에서 248p 

 

 

 

  하여 소설 속의 여성들은 부조리와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을 시도하거나 연대를 도모한다. 성매매를 하기 위해 찾아온 새벽의 낯선 방문자들의 얼굴을 캡처하고(장류진, 「새벽의 방문자들」), 첫 아이를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잃고 홀로 심연에 빠진 룰루에게 다가가 자신도 함께 기억해주겠노라 말해주기도 하며(하유지, 「룰루와 랄라」), 연예와 우정 사이에서 소외를 느끼면서도 늘 침묵하기만 했던 보라는 결국 스스로 떠나기로 작정하고 그간 친절함으로 포장된 위선과 기만에 이제 저항하려 한다(박민정, 「예의 바른 악당」). 수많은 여학생들을 배려하지 않는 어른들의 비윤리적인 행동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까발리고(김현, 「유미의 기분」), 대상화되기만 했던 ‘보이는 자’에서 스스로 ‘보는 자’가 되어보기 위해 발칙한 시도를 감행한 (김현진, 「누구세요?」) ‘나’ 역시 그러하다.      

 

 

 

룰루의 눈 속에서, 조그만 꼬맹이가 조그만 손으로 터뜨린 조그만 폭죽 같은 불빛이 타올랐다가, 사그라졌다. 룰루의 그리움은 나의 고독이 되었다. 우리 것이 되었다. 나는 그 눈부시고 고결한 고통을 받아들였다. 내 뒤에 올 또 다른 여자의 고통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뎠다. 룰루,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당신의 권리예요. 그러니까 계속 싸워줘요. / 「룰루와 랄라」 중에서 82p

 

 

그러니까 나는 그때 내가 가진 밑천을 모두 털어 초대되지 않은 세계에 편법으로 침투했다는 생각. 그리고 끝내는 부끄러운 몰골로 추방당하고 말았다는 생각.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걸어 다닐 때마다 몰려드는 그런 감정을 아주 오래 의심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힘들었겠네.

초가 말했다.

너도. 힘들었겠네. / 「베이비 그루피」 중에서 143p

 

 

형석은 사과할 자격을 잃어버리지 않는 인간이야말로 자신을 만만히 여기지 않는 이라고 생각했고, 승우는 사과하지 못했다는 것을 평생 기억하는 인간이야말로 누군가를 만만하게 여기지 않는 이라고 생각했다. / 「유미의 기분」 중에서 221p

 

 

 

 

 

 

   여섯 편의 작품 중 특별히 의미 있게 읽힌 작품이 있다면 바로 「유미의 기분」이다. 5편의 작품이 모두 화자가 여자인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주인공이 남자다. 특히 형석은 동성애자이지만 이를 숨긴 채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이다. 어느 날 수업을 15분 정도 남겨두고 학생들과 드라마 이야기를 나누다가 농담 삼아 “여자는 꼬리가 아홉이라서 꼬리를 잘 친다”고 말했다. 그러자 학생 중 유일하게 유미가 정색을 하고 나서는 바람에 아이들 앞에서 멋쩍게 되었다. 이 때문에 형석은 유미의 그 거침없는 행동에 속으로는 ‘뻣뻣한 년’이라고 뇌까린다. 그런데 복도 한쪽 벽면에 그간 여학생들에게 성적 수치심이 가득 담긴 말을 함부로 내뱉고, 예의 없이 굴었던 선생들을 고발하는 포스트잇이 나붙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간 유미에게 불쾌감을 느꼈던 형석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마땅히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할 자신들의 존엄을 지키려한 유미의 용기 있는 행동에 이제 그녀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고민하기에 이른다. 이 땅의 수많은 유미들에게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 우리 모두가 고민해봐야 하는 것처럼.

 

 

 

 

 

 

   김현 작가는 자신의 작가노트에 ‘여전히 아무도 모르는 피해의 이야기를 생존의 이야기로 바꿔 쓰고 있는 이들에게 마음을 전한다. 계속 말하겠다.’고 써 놓았다. 언제부턴가 페미니즘이라는 말만 나와도 불편함과 불쾌감을 드러내고, 대체 언제까지 그런 소리를 해댈 거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직 해야 할 말은 많고 해야만 하는 말도 많다. 변화는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이다. <현남 오빠에게>를 비롯하여 <새벽의 방문자들>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시도와 또 계속된 새로운 시도들이 변화와 더불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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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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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을 이을 완벽한 차기작!

폐광촌을 둘러싼 살인 사건의 전말, 인간의 잔인한 이중성이 몰고 온 공포를 맛보다!

 

 

  지난 해, 스타 작가의 탄생을 예고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초크맨』의 저자 C. J. 튜더가 차기작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이 여름에 아주 완벽하게 어울릴만한 강렬한 도입부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를 가지고서. 해골이 산적해있고, 돌아갈 길이 막혀있는 듯한 공간에 홀로 서 있는 표지 속 소녀의 모습이 어쩐지 한편의 잔혹동화를 연상케 하는 공포 소설, 『애니가 돌아왔다』다.

 

 

 

25년 전, 탄광 속에 묻힌 진실은 무엇인가

 

 

   누군가는 절대로 돌아가지 말라고 말한다. 상황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기억하는 것과 다를 거라고. 과거는 과거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하지만 과거란 것은 지독하게도 살아나고 또다시 되살아나는 성향이 있다. 주인공인 조는 달라진 게 거의 아무 것도 없는, 불운한 과거를 여전히 묻어두고 있는 고향 안힐로 돌아간다. 사실 그가 돌아오는 것을 달가워할 이는 없다. 그럼에도 그는 마치 운명처럼, 언젠가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마을로 향한다. 엄밀히 말하면 두 달 전에 날아온 의문의 이메일 때문이다.

 

 

 

나는 네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그 사태가 다시 벌어지고 있어. / 36p

 

 

 

   안힐은 따뜻한 마을이 아니다. 혹독하고 음울하며 시큰둥하다. 폐쇄적이고 방문객을 불신하는 눈빛으로 대한다. 금욕주의적이고 견실한 동시에 지쳐 있다. 누가 들어오면 노려보고, 떠나면 땅바닥에 침을 뱉는 그런 마을이다. 과거 1949년에 안힐 탄광에서 낙반 사고가 벌어지면서 열여덟 명의 광부가 수십 톤의 돌무더기와 숨 막히는 흙 아래에 깔린 사건이 있었다. 안힐 탄광 참사라고 알려진 사고로, 수습이 된 시신은 열다섯 구에 불과했다. 1960년대에는 지반 침하로 벽이 무너져서 몇 명의 광부와 그들의 가족이 아래에 깔린 사고도 있었다. 훨씬 더 먼 과거, 1857년에는 아내를 칼로 찔러 죽인 에드거 혼이라는 남자가 대중들에게 붙잡혀 가로등 기둥에 매달려 교수형을 당하고 성례를 거치지 않은 얕은 무덤에 시신이 방치된 적이 있었는데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그는 매장됐을 때 숨이 붙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마을에는 여러 가지 소소한 사건이 벌어졌고 지하에 아직 묻혀 있는 석탄이 엄청 많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1988년에 안힐 탄광을 영원히 폐쇄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렇게 거기 남은 것은 고스란히 방치되고 버려졌다. 덕분에 누구도 안힐이 불운으로 얼룩진 마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엄마가 아들인 벤을 망치로 처참하게 살해하고 자신은 총으로 자살한 사건으로, 엄마는 죽기 전에 벽에다 피로 세 마디를 남겼다.

 

 

 

‘내 아들이 아니야’.

 

 

 

 

 

 

 

   조는 익명의 메일이 경고했던 것처럼 25년 전, 자신의 동생 애니에게 일어났던 일과 엄마와 아들이 죽은 이 사건에 무언가 연관성이 있으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래서 자신이 다녔던 학교의 영어 선생님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엄마와 아들이 죽은 그 집에 세를 들어 살기로 한다. 모두가 불길하게 여기는 바로 그곳에서 가슴 깊이 비밀로 묻어두었던 과거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그를 경계하며 돌아오지 말았어야 한다고 경고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25년 전, 어른들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던 폐광의 해치를 발견하고 호기심에 함께 들어갔던 그 날, 바로 그 일당들이다.

 

 

 

나는 귀신을 믿지 않는다. 우리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네가 무서워해야 하는 쪽은 죽은 사람들이 아니야. 살아 있는 사람들이지.” 거의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쁜 일이 남긴 잔상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은 믿는다. 그것들은 콘크리트에 찍힌 발자국처럼 우리의 현실이라는 천 위에 각인된다. 그 흔적의 원인은 오래전에 사라졌을지라도 남은 자국은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 / 33p

 

 

사람들이 말하길 시간은 치유의 힘이 엄청나다고 한다. 이 말은 틀렸다. 시간은 지우는 힘이 엄청날 따름이다. 무심하게 흐르고 또 흘러서 우리의 기억을 갉아먹고,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작고 뾰족한 조각들만 남을 때까지 불행이라는 커다란 바위를 조금씩 깎아낸다.

무너진 가슴은 다시 맞출 수 없다. 시간은 그 조각들을 거두어 곱게 갈 뿐이다. / 68p

 

 

  시간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열다섯 살의 크리스, 닉, 마리, 스티븐 그리고 조는 폐광의 갱도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찾았다는 크리스의 말에 한밤중에 다시 모이기로 한다. 가파른 계단과 어쩐지 발목을 붙드는 불길한 예감에 조는 내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항상 머리보다 마음이 앞서는 닉과 가학적인 성격의 스티븐 때문에 기어코 안으로 들어가고 만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간 곳은 놀랍게도 온통 유골로 가득한 동굴 무덤이었다. 그것도 어린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이다. 조가 내려가는 도중 발을 크게 다친 데다 크리스 역시 충격으로 정신을 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고 판단했을 무렵 이상한 소리가 들려 일동 긴장을 한다. 바로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그의 앞에 나타난다. 여덟 살의 애니, 바로 조의 동생 애니가 어느 틈에 그들을 몰래 따라온 것이었다. 애니의 등장에 아연실색해진 조는 서둘러 돌아갈 것을 종용하고, 스티븐은 유골이 마치 전리품이라도 되는 듯 챙겨가려 하다 그만 딱정벌레 떼를 건드리고 만다. 어마어마한 딱정벌레 떼의 기습에 혼비백산한 사이 그만 사고가 일어난다. 애니가 죽은 것이다.

 

 

 

어렸을 때는 여기가 손바닥 보듯 훤했다. 이제는 낯설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예전에 수갱이 있었던 곳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 해치가 있었던 곳도. 크리스 덕분에 해치도 들어가는 길도 함께 없어졌다. 나는 그게 영영 없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왜 몰랐을까. 계속 묻혀 있지 않는 것도 있다는 걸. 아이들은 찾아내기 마련이라는 걸. / 204p

 

 

쭈뼛쭈뼛하고 사회성이 떨어졌던 또 다른 아이. 또 다른 희생양. 하지만 그런 아이들이 가장 많은 걸 목격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아무도 모르게 흡수한다. 일화, 떠도는 소문, 학교 생활의 파편을 급류에 까닥까닥 떠내려가는 통나무처럼 붙잡는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아는 게 많은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무도 묻지 않기 때문이다. / 244p

 

 

아니야. 나는 또다시 생각했다. 이곳은 누가 소유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이곳은 그렇게 착각하도록 내버려둘지 몰랐다. 심지어 그렇게 착각해주길 바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곳의 수법이었다. 이곳은 그런 식으로 사람을 끌어들였다. 그런 식으로 소유했다. / 324p

 

 

 

   애니는 죽었다. 조와 친구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발을 다쳐 애니를 안고 갱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조는 친구들이 먼저 나가서 자신들을 구조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조는 애니를 안고 무리하게 올라가려다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고, 의식을 잃었다 깬 조는 일어나니 애니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자 혼자 집으로 돌아간 것이라 착각한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조는 겨우 집으로 돌아왔지만 불행히도 애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48시간 뒤, 믿기지 않지만 애니가 돌아왔다. 자신을 향해 미소까지 지으며. 그런데 어딘지 이상하다. 자신이 알고 있던 예전의 애니가 아닌 것 같다.

 

 

 

박식하고 현명해 보이길 바라는 사람들이 반복해서 지껄이는 문구가 있다. 어딜 여행하든 자기 자신에게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거다.

그것 헛소리다. 나를 붙잡고 있는 관계, 나를 규정하는 사람들, 나를 어떤 아이덴티티에 묶어놓은 익숙한 풍경과 일상에서 아주 멀찌감치 도망치면 적어도 당분간은 내 자신에게서 쉽사리 벗어날 수 있다. 자아는 구조물에 불과하다. 얼마든지 해체하고 다시 만들고 새로운 나를 으리으리하게 꾸밀 수 있다.

돌아가지만 않으면 된다. 돌아가면 새로운 내가 임금님의 새 옷처럼 벗겨져 알몸이 드러나고 추악한 단점과 실수가 만천하에 공개된다. / 108p

 

 

인생에 승자는 없다. 결국은 잃는 게 인생이다. 젊음, 외모,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것들. 나는 가끔 인갈을 진정으로 나이 들게 하는 것은 세월의 흐름이 아니라 아끼는 사람들과 사물들의 소멸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식의 나이 듦은 주사를 맞아도, 필러로 채워도 매끈해지지 않는다. 눈빛에서 아픔이 드러난다. 너무 많은 걸 접한 눈은 항상 그 사람의 속내를 드러내게 되어 있다. / 168p

 

 

 

   그렇게 아이들이 장난삼아 열었던 지하의 문은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저주가 풀린 것처럼 안힐의 아이들을 위협한다. 크리스, 애니, 벤이 그러했듯 폐광에 들어갔다 나온 아이들이 저마다 정신적인 문제를 앓거나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이제 이 불행의 역사는 끊어져야만 한다. 아직도 폐광을 각자 이익의 수단으로 삶고 있는 어른들의 이기심에 아이들이 희생되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렇게 소설은 끊임없는 위협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조가 나서서 사건을 진실을 파헤치고 원흉이 되었던 것들을 처단하면 되는 수순으로 흘러가는가 싶었는데, 이야기는 뜻밖의 상황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조가 미처 몰랐던, 혹은 그동안 그가 믿고 있었던 것이 진실이 아니었다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던 전작 『초크맨』이 그러했듯 이 소설 역시 한 장소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누구의 시선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기억으로 새겨져 저마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소름끼치게 그려나간다.

 

 

 

 

 

 

   아무래도 전작의 성공과 전개상 유사점이 많다는 이유로 『애니가 돌아왔다』가 과소평가될 우려가 적지 않으나, 개인적으로 압도적인 전개와 끝까지 독자의 마음을 놔줄 생각이 없는 스토리텔러로서의 역량이 그녀를 오랫동안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자극할 줄 알고,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 흡인력 있는 전개, 인간의 미묘하고 섬세한 심리를 파고들 줄 아는 작가로 ‘여자 스티븐 킹’이라는 수식어가 결코 어색하지 않으니 말이다. 때문에 역자의 컴퓨터에는 벌써 세 번째 원고가 들어있다고 하니 다음 작품이 무척 기대가 된다. 이 여름에 가장 완벽히 어울릴만한 공포 소설로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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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을 살기 위해 역사의 힘을 되새겨보는 시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쓸모 있는 역사 사용법!

 

 

 

   우리는 인문학 강의를 들을 때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자주 마주하곤 한다.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들의 지속적 상호작용의 과정이자,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고, 유시민은 <나의 한국현대사>에서 “이 시각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나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된다. 역사는 역사 밖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이나 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사람의 욕망과 의지다. 더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 매 순간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 좋은 것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오늘을 들여다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역사를 꼭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태정태세문단세’와 임진왜란이 ‘1592년’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독립운동가와 비슷비슷한 이름의 단체들이 많이 등장하는 항일 독립운동사는 그냥 기계적으로 달달 외워버리는 수밖에 없다. 너무나 모순적이지 않은가.

 

 

 

   모든 수업의 1강을 ‘역사는 왜 배우는가’에 할애한다는 대한민국 대표 역사 강사 최태성 역시 많은 학생들이 역사적 사실을 빨리, 많이 외우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며 시험이 끝나면 열심히 암기했던 것을 잊어버리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다 잊어도 괜찮다고, 다만 역사를 배우면서 느꼈던 감정만 잊지 않으면 된다고. 예를 들면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를 일본에 넘긴 을사오적을 공부할 때 느꼈던 분노를, 그 기분을 절대 잊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당부한다. 그 기분을 기억해두었다가 사회에 나가서 선택을 하거나 책임을 져야 할 때 떠올리라고 말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망설여질 때 역사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오랫동안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힘써온 저자는 <역사의 쓸모>를 통해 역사를 학문적인 관점이나 ‘실체’만을 강조하기보다 ‘쓸모’있는 학문이라는 점을 알려주려 한다. 또 역사의 본질이 삶의 태도를 성찰하고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혜안을 주는데 있음을 전하고자 한다.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역사의 쓸모>는 흔한 대부분의 역사서들처럼 역사적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재미있게 풀어쓰기만한 책이 아니다. 역사를 배우면 무엇이 좋은지, 우리 시대의 고민을 해결하고 삶을 모든 영역에서 역사의 교훈을 사용할 수 있게 한 일종의 자기계발서와도 같은 역사교양서다. 역사가 ‘삶이라는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설서’라고 밝힌 그의 말처럼 책은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과 결과를 보며 우리가 인생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역사,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주는 역사, 그래서 궁극적으로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게 하는 역사를 통해 많은 이들이 역사의 쓸모를 발견하고 역사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1장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 편에서는 우리가 왜 역사를 배워야하는지, 우리가 미처 모르고 간과했던 역사의 의미와 힘을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다. 여기에서는 원나라 간섭기에 민족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랐던 일연 스님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삼국유사」를 통해 비록 정사는 아닐지라도, 쓸데없다고 버려진 이야기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한 것은 물론, 괴로운 시대를 버틸 수 있는 힘과 에너지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또 칠천량해전 대패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은 원균을 통해 역사 속 인물의 선택에 어떤 이유가 있었을지, 나라면 어땠을까 하고 내 삶에 대입시켜 답해봄으로써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얻지 못했던 것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어 갑신정변의 급진개화파를 통해 새 날에 대한 ‘희망’을 품은 자들의 의지를 엿보고, 인생의 고비 앞에서 스스로 이루어낸 정약용을 통해 고난이 끝이 아님을 가르쳐준다.

 

 

 

역사는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 공부입니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의 긴 시간 안에 엄청나게 많은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어요. 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절로 가슴이 뜁니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았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고민과 선택과 행동에 깊이 감정을 이입했기 때문이죠. 그런 사람들을 계속 만나다 보면 좀 더 의미 있게 살기 위한 고민, 역사의 구경꾼으로 남지 않기 위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아무리 힘든 세상에서도 자신의 삶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법을 배우게 될 테죠. 그게 바로 역사의 힘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 저는 여러분이 역사를 그렇게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 40p

 

 

역사가 흘러가는 것을 보면 희망이라는 말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와요. 말하자면 역사는 실체가 있는 희망입니다. 아무런 근거 없이 조금 더 살아보자고, 버텨보자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단지 조금만 더 멀리 봤으면 좋겠어요. 지금 당장은 두렵겠지만 나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잖아요. 세상도 변하는데 나의 인생이라고 늘 지금과 같을까요? 힘든 세상에서 희망마저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50p

 

 

 

 

 

 

   2장 ‘역사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편에서는 혁신, 성찰, 창조, 협상, 공감, 합리, 소통이라는 주제를 역사 속 경험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그것을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실정에 맞춰 얼마나 이롭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 이야기해본다. 여기서는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워 모든 신라인들의 마음을 모으고 자신의 비전을 공유하려 했던 선덕여왕에게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법과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혁신을 만든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역사는 그 어느 것도 영원할 수 없음을 증명한 연개소문과 잉카문명의 멸망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한 이유를 강조하고, 구텐베르크와 아이폰, 한글을 통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대중의 욕구를 발견해내 마침내 세상을 이롭게 한 창조의 힘을 살펴본다. 섬세한 감각으로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기지를 발휘해낸 서희와 원종을 통해서는 협상의 덕목을, 정치 성향뿐만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마주하는 세대갈등을 통해서는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헤아려봄으로써 진정한 공감에 다가가는 법을 배워본다. 뿐만 아니라 장수왕의 선택을 통해서는 합리의 중요성을, 역사야말로 꽤 유용한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살펴보기도 한다.

 

 

 

왜 주변 나라의 이름을 탑에 새겼을까요? 한마디로 언젠가는 신라의 발아래 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신라가 작은 나라지만 힘 있는 나라가 되겠다는 것이었죠. 현대에는 고층빌딩이 많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없었잖아요. 황룡사 9층 목탑만 눈에 띄었겠지요. 경주 전역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을 겁니다. 경주 사람들이 아침에 눈 뜨고 일어나 농사를 지으러 나가면 무엇이 가장 먼저 보였을까요? 황룡사 9층 목탑이었겠죠. 이것이 선덕여왕의 바람이었어요. 신라인들의 마음을 모으는 것. 우리도 강해질 수 있다는 비전을 신라인과 공유하는 것이죠. / 87p

 

 

창조나 창의력을 말하면 사람들은 자꾸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해요. 그러나 아무리 새로워도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열광하지 않으면 널리 쓰이지 않습니다. 저는 소수를 위한, 소수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술은 역사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자유의 확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폭발력을 지닌 창조적 발명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 116p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어르신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할 때, 혹은 미국 국기를 들고 흔들며 친미 구호를 외칠 때, 일부 젊은 사람들은 경악합니다. 그런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박정희라는 지도자와 미국이라는 우방은 소위 ‘빨갱이’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주는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계에 자신도 속해 있던 거예요. 그런데 젊은 세대가 박정희 대통령을 부정하고 우방국 미국도 부정해요. 그들은 마치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중략)...내가 살아온 세월, 내가 쏟아부은 노력, 그리고 그것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나라는 존재가 너무나 억울한 것이죠. / 143p

 

 

 

 

 

 

   3장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편에서는 역사에서 롤모델을 찾고,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조언을 건네는 그들에게서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 여기서는 고려의 혁명을 꿈꾸고 민본주의를 실현하려 한 정도전과 대동법의 확산에 몸 바친 김육,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서 삶의 모든 것이 이미 결정 난 듯했을 때에도 가능성을 불신하지 않았던 장보고, 부와 권력을 모두 나라의 독립운동을 위해 바친 이회영 일가를 통해 우리에게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해보게 한다.

 

 

 

   이 중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조선의 최고 엘리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박상진의 삶을 살펴본 내용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는 열심히 공부를 해 원하던 판사가 되었지만 일본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징역과 사형을 선고할 수 없었기에 꿈을 버리고 독립운동가가 되어 의열 투쟁에 앞장섰다. 친일파의 후손은 계속해서 돈과 권력을 움켜쥔 채 떵떵거리는 사이, 박상진 의사의 후손은 가난 속에서 쓸쓸하게 살아야 했지만 그가 있었기에 또 함께 움직인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희망을 가졌고 마침내 독립에 이르렀다. 이는 그가 오직 판사가 되겠다는 꿈만 꿨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법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늘 당하고만 사는 평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기에 판사라는 직업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삶, 즉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을 꾸었던 것이다.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묻는다. 너의 꿈은 뭐냐고. 의사, 판사, 과학자, 대통령 등등. 이런 대답을 하면 부모들은 아이들을 기특해한다. 만약 모르겠다고, 없다고 하면 걱정과 실망스러운 눈빛을 할 테니 아이들은 그럴 듯한 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그 꿈을 이뤄서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는 부모들이 묻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동사의 꿈을 물어봐야 하는데 명사의 꿈만 듣고 나면 그걸로 끝인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도 거기까지만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자라면서 꿈을 잃어버린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닌 부모가 원하고 설계해놓은 삶을 따라가거나 진짜 꿈이 무엇인지 모르고 방황한다. ‘살아가는 데 직업은 무척 중요합니다. 어떤 직업을 가질지 고민하는 만큼 무엇을 위해서 그 직업을 원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해요. 도전도, 용기도 좋습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위한 도전이고, 무엇을 위한 용기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 최종 종착지는 동사의 꿈이었으면 해요.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삶에서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저자의 이 말이 유독 가슴을 두드린다. 덕분에 나는 아이에게 명사의 꿈이 아니라 동사의 꿈을 물어줄 수 있는 부모가 되리라 다짐했다.

 

 

자신의 인생만큼은 대안 없이 성급하게 비판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물론 자신이 비판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해결책을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나아가 그것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만이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조금이나마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늘어날 때 높게만 보이던 벽도 서서히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 179p

 

 

인생은 단 한 번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더욱 해답에 목말라 있는지 모릅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기 위해 책을 읽고 조언을 듣고 때로는 직접 부딪쳐가면서 답을 구합니다. 저는 김육이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의 일생으로 답했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던진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는 분이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나에게는 삶을 던져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가?’를 고민해보는 거예요. 그리고 ‘삶이 뭐 다 그렇지’라는 말 대신 ‘삶은 이런 거지’라는 말로 바꿔봤으면 합니다. 그런 귀중한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만으로도 우리의 하루는 이전보다 더욱 충만하게 채워질 테니까요. / 191p

 

 

 

 

 

 

   끝으로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편에서는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을 역사를 통해 살펴본다. 여기서는 자기중심을 잡고 떳떳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 이원익을 통해 상처받지 않을 힘이자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힘이라 할 수 있는 자긍심을 얻고자 한다. 또 어우동과 나혜석을 통해서는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할 우리 시대의 당면 과제를 살펴보고, 당파의 갈등과 대립, 민주주의 국민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인지 모색한다.

 

 

 

도처에 갈등 요인이 널려 있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에게는 당면한 문제에 나의 온도를 몇 도로 맞출 것인지 조절할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서인과 남인의 이념 싸움처럼 허무한 싸움에 나의 열정을 쏟을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나의 뜨거움이 많은 사람에게 자유와 행복을 선사하는 의미 있는 것이라면, 역사의 수레바퀴가 향하는 곳으로 힘을 더하는 일이라면 더욱 온도를 높여 뛰어야 하죠. 필요에 따라 더 차가워질 수도 반대로 더 뜨거워질 수도 있도록 의지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저는 이런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 268p

 

 

어쩌면 나와 타인의 관계, 나와 세상의 관계를 잘 정립하는 것이 인생의 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미겠어요. 좋은 관계가 주변에 많을수록 우리가 바라는 행복한 인생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테니 말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이 타인과 소통하고 함께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시대의 흐름을 읽고 인생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 역사를 배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 284p

 

 

 

   이렇듯 <역사의 쓸모>는 역사 속에서 살다간 수많은 사람의 선택과 결과를 통해 어떤 선택이 나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하고,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딱딱한 이론에 치중한 역사가 아니라 나에게 정말 쓸모 있는 역사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준다. 무엇보다 바로 앞에서 얘기해주듯 친근한 어투로 설명해주니 더욱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이래서 최태성, 최태성 하는구나 싶다고나 할까. 때문에 흔한 자기계발서 10권보다 이 책 한 권 읽어보라고 감히 주변에 추천 드리고 싶다. 특히 부모들이 먼저 읽어보고 많은 학생들이 역사를 공부하기 전에 이 책을 먼저 꼭 읽어볼 수 있게 권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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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사랑 오늘의 젊은 작가 21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아이돌, 팬픽, 이반으로 기억되는 그 시절, 소녀들의 이야기!

한 때 내가 머물러 앉아있던 자리를 더듬듯 그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설!

 

 

  “야, 야, 야. 내가 오늘 누구 봤는지 알아?”

   고등학생 시절,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 호들갑을 떨었다. 과장된 말투와 어조로 소문이란 소문은 죄다 옮기고 다니는 친구였던지라 이번엔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심드렁해지려는 찰나에 뜻밖의 이름이 불쑥 튀어나와 잠시 깜짝 놀랐다. 내가 아는 친구들만 해도 서너 명이나 될 정도로 많은 후배들 사이에서 동경의 대상이었던 바로 그 언니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 언니의 단짝이었던 다른 언니와 편지를 주고받고 했었는데……. 아무튼 친구는 바로 그 언니의 이름을 떠올리며 주말에 집근처에서 보았다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믿겨 지냐? 머리카락을 거의 허리까지 길러서 못 알아볼 뻔했다, 야.”

   그래, 그 언니도 짧은 커트 머리를 했었지. 2000년대 초반 당시 중학생이었던 우리들은 ‘귀 밑머리 3cm 단발머리’를 준수하는 것이 학교 교칙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뒷머리는 남자 아이들처럼 짧게 자르고 상대적으로 앞머리는 길게 내려서 얼굴을 반쯤 가리거나 치마 속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가방도 한쪽으로만 메고 다니는 것이 유행처럼 퍼져갔다. 그 중에서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어딘지 모르게 중성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친구들이 하나씩은 꼭 있었고, 그들은 후배 혹은 친구들의 인기를 차지했다. 여기에 춤까지 잘 추면 거의 아이돌과 다름없었으니, 그 언니 역시 그런 축에 줄곧 속해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더니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길러서 뭔가 가발을 쓴 것처럼 이상해보이더라고, 친구는 마치 징그러운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또 어마어마하게 웃긴 일이라는 듯 떠들어댔다. 너 그 언니 엄청 좋아했었잖아, 언니가 창밖으로 지나가면 모두가 보란 듯이 언니의 이름을 큰 소리고 부르고, 또 언니가 손을 흔들어주면 방방 뛰어다닐 정도로 좋아했던 그 시절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언니의 변해버린 외모만큼이나 마음이 싹 바뀐 친구의 말투에 나는 얼마간 씁쓸함을 느꼈다. 그때 그건 뭐였나. ‘한때’라는 건 다 그런 건가. 그 시절 우리를 내내 달뜨게 했던 것들, 내 모든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았던 것들, 마치 모든 것을 상실한 것처럼 밤새워 울게 만들었던 것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그 시절 우리를 사로잡았던 건 뭐였을까?

 

 

나는 내가 보고 겪은 일들이 목포라는 작은 항구도시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음을, 그것이 전국의 여러 도시에서 같은 시기에 놀라울 만큼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났음을 알게 되었다. 연구 작업 안에서 소녀들은 종종 ‘팬픽이반’이라 불렸다. 그것이 그녀들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부여받은 이름이었다. 엄격한 논문의 형식과 문장으로 이뤄졌으나 한때 내가 잘 알던 세계의 친숙하고 낯 뜨거운 예시로 가득한 글을 읽으면서 잊고 있던 많은 일들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 35p

 

 

 

   2000년대 초반은 H.O.T와 젝스키스를 필두로 한 아이돌 문화가 성행하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 ‘팬픽’이 공공연하게 읽히기 시작하던 때였다. 당시 여고생이었던 주인공 ‘나’ 역시 동성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팬픽 문화에 빠져들었고, 그 무렵 인기를 끌던 여느 가수들처럼 칼머리를 하고 힙합 스타일에 건들거리며 돌아다니는 아이들과 또 그들 사이에서 몇 반의 어느 누구가 실제 사귀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기도 했다.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니. 그건 어딘지 마음을 꽤나 불편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항구의 사랑>은 바로 그 시절, 한 여자아이가 자라나면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마주하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목포에서 자라나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오기까지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세 여자들과의 일화를 회상하면서 이야기는 펼쳐진다. 초등학생 때 다른 아이들보다 한 해 빨리 학교에 입학해 상대적으로 외소한 편이었던 나를 보호자처럼 보살펴줬던 친구 인희,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지 않는 데다 냉소적이지만 꽤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는 친구 규인, 그리고 단 한 번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선배 민선이 그들이다.

 

 

 

   주인공인 나는 초등학생 때와 달리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 인희가 갑자기 칼머리를 하고 힙합바지를 입고선 남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복도 먼발치에서 목격한다. 머리 모양하며 허세 가득한 인희의 태도가 불편했던 나는 그녀와 거리를 두었고, 인희의 첫사랑이 자신이라는 소문까지 들려왔지만 모른 척 해두고 만다. 그런데 그녀에게도 뜻밖의 감정이 찾아온다. 규인의 소개로 연극부 공연의 대본을 쓰는 데 도움을 주러 갔다가 주인공인 리더 역을 맡은 3학년의 민선 선배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활달한 성격에 어딘지 모르게 천진한 면이 있는 선배는 주목받는 걸 좋아했지만 주목받아 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주인공이 되는 상황을 즐기고 있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깊이가 없다고 보일 수 있는 면이었지만 나는 그 어린아이 같은 면에 오히려 마음이 갔고, 남다른 에너지에 끌렸다. 그때부터 민선 선배가 하는 사소한 말들이 자신에 대한 관심처럼 여겨졌고,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위협적일 만큼 자극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본능적으로 그에 이끌리고 만다.

 

 

 

왜 누군가를 사랑하면 갑자기 주변 모든 사람들이 위협적일 만큼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움은 도처에 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나는 울고 싶어진다. 그들은 모두 아름답고, 모두 나의 적이다. 그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둘러싸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들의 매력을 알아볼 것만 같아서 나는 애가 탄다. 그들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 82p

 

 

오랫동안 나는 내가 그녀를 사랑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더 이상 그 감정을 내가 선택한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가 감정을 소유했던 게 아니라 감정이 나를 소유했던 것만 같다. 강물의 표면에 붙들려 이리저리 떠다니는 나무토막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파악할 수도 없는 심오한 물살에 고통스럽게 휩쓸려 다녔던 것만 같다. 그 물살의 방향이 바뀌기 전까지는 계속 그렇게 붙들려 실려 가는 수밖에 없었다. / 103p

 

 

 

 

 

 

   사실 동성인 선배라는 것만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는 여느 사람들의 감정과 다를 바 없다. 나는 하루 종일 그녀와 같이 있고 싶고, 특별한 사이가 되고 싶고, 그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녀의 입에서, 그녀의 목소리로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렇게 절친했던 규인이와의 사이까지 멀어질 만큼, 내 안에서 울리는 경고 신호마저 무시하게 될 만큼 민선 선배를 향한 감정이 커져버린 나는 선배와 간 바닷가에서 선배가 쓴 ‘사랑해’라는 글씨를 보고 마침내 입을 맞춘다. 하지만 그건 그녀만의 감정이었던 걸까, 선배는 그 뒤로 나와 거리를 두었고 졸업 후 남자친구와 사귄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것은 한때 어찌어찌 일어난 일, 이제는 지나간 일로 여겨졌다. 나는 그때 일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그 일들이 새로운 세상에 맞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았다. “난 남자를 너무 좋아해서 안 될 거야.”라고 말하는 여자조차 한 여자에게 가장 커다란 사랑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새로운 세상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그때 일을 떠올리면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분명 존재했으나 오래전 까마득히 깊은 바다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는 대륙에 관해 생각해 볼 때처럼. / 153p

 

 

 

 

 

  이제 스무 살이 된 주인공은 목포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여느 대학 친구들처럼 남자친구들과 연애하고, 하이힐을 신고, 외모를 꾸미는 일에 집중한다. 남자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에게, 애인이 된 남자 선배에게 자신이 한 때 여자 선배와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건 결코 세상에 드러낼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언제고 파도에 휩쓸리고 말 모래 위에 새겨진 ‘사랑해’라는 글자처럼 견고하지 않았던 한 때의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렇게 믿으며 묻어두어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인희가 그녀를 찾아온다. 고등학생 시절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그때, 그 모습대로.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묻는다. “우리 고등학교 때 말이야, 그때 그건 다 뭐였을까?”

 

 

 

나는 온 힘을 다해 나 자신을 억제했다. 내 옆을 걷고 있는 그 아이에 대한 경멸감이 그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래. 넌 그런 걸 찾아다니는구나. 가십이 듣고 싶구나. 부풀리고, 색칠하고, 호들갑 떨고 싶겠지. 하지만 실제로 그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은 얼마나 초라했는지. 그 감정이 실은 얼마나 빈약하고, 가볍고, 누추했는지. 그걸 똑바로 직면해야만 할 때 얼마나 비참한지. / 116p

 

 

그때 나는 그것이 그 애 자신의 표현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아주 최근에 들어서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난 짧은 머리와 힙합 바지를 자동적으로 남성에 대한 모방이라고 여겼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들거리며 걷는 인희의 걸음걸이를 보고 남자를 흉내 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남성적이라고 말해지는 특성들이 당연히 남성들에게 속하는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여자들도 짧은 머리를 원할 수 있고, 그것이 -당연히- 그녀 자신의 표현일 수 있음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자처럼 짧은 머리’라는 표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차린 뒤로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 159p

 

 

 

 

 

 

   절대 세상 밖으로 드러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이렇게 쓰인 것은 어쩌면 인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주인공은 고백한다.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 앞에 인희가 찾아왔던 날, 여전히 그 시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머물러 있는 그녀가, ‘이반’과 ‘레즈비언’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감정이 부끄럽기만 했던 나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야 비로소 인희를 제대로 봐준 적이 없었음을 느끼게 된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들거리며 걷는 인희의 걸음걸이를 보고 남자를 흉내 내는 거라고만 생각했지 그녀 자신의 표현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민선 선배를 사랑했던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봐주지 않았던 친구 규인에게 섭섭했던 것처럼 어쩌면 인희 역시 마음속으로는 내내 말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게 나라고. 이런 모습도 나라고. 이렇듯 <항구의 사랑>은 한때 속절없이 빠져들어 있던 것들에서 물러났을 때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 나는 누구이며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들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솔직한 어투로 다가간다. 덕분에 같은 시대와 문화를 공유했던 한 사람으로서 시절에 대한 교감과 감정을 누구보다도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어 작은 것에도 달뜨고 설렜던 우리들의 마음을.

 

 

 

   인희를 떠올리게 하는 한 친구가 생각난다. 고등학생 시절 나의 짝이었던 그 친구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여자이고, 며칠 전에 손잡고 집까지 걸어갔다고 고백해왔다. 나는 조금 놀랍기는 했지만, 그날부터 친구가 여자 친구와 만나며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을 때마다 꽤 진지하게 들어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얘기해도 괜찮아?” 하고 물었을 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이해해주려고 하잖아.” 라고. 여자를 좋아하는 친구의 감정을 모두 공감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주려는 마음만으로도 친구는 고마웠나보다. 친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녀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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