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크맨』을 이을 완벽한 차기작!

폐광촌을 둘러싼 살인 사건의 전말, 인간의 잔인한 이중성이 몰고 온 공포를 맛보다!

 

 

  지난 해, 스타 작가의 탄생을 예고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초크맨』의 저자 C. J. 튜더가 차기작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이 여름에 아주 완벽하게 어울릴만한 강렬한 도입부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를 가지고서. 해골이 산적해있고, 돌아갈 길이 막혀있는 듯한 공간에 홀로 서 있는 표지 속 소녀의 모습이 어쩐지 한편의 잔혹동화를 연상케 하는 공포 소설, 『애니가 돌아왔다』다.

 

 

 

25년 전, 탄광 속에 묻힌 진실은 무엇인가

 

 

   누군가는 절대로 돌아가지 말라고 말한다. 상황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기억하는 것과 다를 거라고. 과거는 과거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하지만 과거란 것은 지독하게도 살아나고 또다시 되살아나는 성향이 있다. 주인공인 조는 달라진 게 거의 아무 것도 없는, 불운한 과거를 여전히 묻어두고 있는 고향 안힐로 돌아간다. 사실 그가 돌아오는 것을 달가워할 이는 없다. 그럼에도 그는 마치 운명처럼, 언젠가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마을로 향한다. 엄밀히 말하면 두 달 전에 날아온 의문의 이메일 때문이다.

 

 

 

나는 네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그 사태가 다시 벌어지고 있어. / 36p

 

 

 

   안힐은 따뜻한 마을이 아니다. 혹독하고 음울하며 시큰둥하다. 폐쇄적이고 방문객을 불신하는 눈빛으로 대한다. 금욕주의적이고 견실한 동시에 지쳐 있다. 누가 들어오면 노려보고, 떠나면 땅바닥에 침을 뱉는 그런 마을이다. 과거 1949년에 안힐 탄광에서 낙반 사고가 벌어지면서 열여덟 명의 광부가 수십 톤의 돌무더기와 숨 막히는 흙 아래에 깔린 사건이 있었다. 안힐 탄광 참사라고 알려진 사고로, 수습이 된 시신은 열다섯 구에 불과했다. 1960년대에는 지반 침하로 벽이 무너져서 몇 명의 광부와 그들의 가족이 아래에 깔린 사고도 있었다. 훨씬 더 먼 과거, 1857년에는 아내를 칼로 찔러 죽인 에드거 혼이라는 남자가 대중들에게 붙잡혀 가로등 기둥에 매달려 교수형을 당하고 성례를 거치지 않은 얕은 무덤에 시신이 방치된 적이 있었는데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그는 매장됐을 때 숨이 붙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마을에는 여러 가지 소소한 사건이 벌어졌고 지하에 아직 묻혀 있는 석탄이 엄청 많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1988년에 안힐 탄광을 영원히 폐쇄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렇게 거기 남은 것은 고스란히 방치되고 버려졌다. 덕분에 누구도 안힐이 불운으로 얼룩진 마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엄마가 아들인 벤을 망치로 처참하게 살해하고 자신은 총으로 자살한 사건으로, 엄마는 죽기 전에 벽에다 피로 세 마디를 남겼다.

 

 

 

‘내 아들이 아니야’.

 

 

 

 

 

 

 

   조는 익명의 메일이 경고했던 것처럼 25년 전, 자신의 동생 애니에게 일어났던 일과 엄마와 아들이 죽은 이 사건에 무언가 연관성이 있으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래서 자신이 다녔던 학교의 영어 선생님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엄마와 아들이 죽은 그 집에 세를 들어 살기로 한다. 모두가 불길하게 여기는 바로 그곳에서 가슴 깊이 비밀로 묻어두었던 과거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그를 경계하며 돌아오지 말았어야 한다고 경고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25년 전, 어른들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던 폐광의 해치를 발견하고 호기심에 함께 들어갔던 그 날, 바로 그 일당들이다.

 

 

 

나는 귀신을 믿지 않는다. 우리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네가 무서워해야 하는 쪽은 죽은 사람들이 아니야. 살아 있는 사람들이지.” 거의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쁜 일이 남긴 잔상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은 믿는다. 그것들은 콘크리트에 찍힌 발자국처럼 우리의 현실이라는 천 위에 각인된다. 그 흔적의 원인은 오래전에 사라졌을지라도 남은 자국은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 / 33p

 

 

사람들이 말하길 시간은 치유의 힘이 엄청나다고 한다. 이 말은 틀렸다. 시간은 지우는 힘이 엄청날 따름이다. 무심하게 흐르고 또 흘러서 우리의 기억을 갉아먹고,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작고 뾰족한 조각들만 남을 때까지 불행이라는 커다란 바위를 조금씩 깎아낸다.

무너진 가슴은 다시 맞출 수 없다. 시간은 그 조각들을 거두어 곱게 갈 뿐이다. / 68p

 

 

  시간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열다섯 살의 크리스, 닉, 마리, 스티븐 그리고 조는 폐광의 갱도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찾았다는 크리스의 말에 한밤중에 다시 모이기로 한다. 가파른 계단과 어쩐지 발목을 붙드는 불길한 예감에 조는 내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항상 머리보다 마음이 앞서는 닉과 가학적인 성격의 스티븐 때문에 기어코 안으로 들어가고 만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간 곳은 놀랍게도 온통 유골로 가득한 동굴 무덤이었다. 그것도 어린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이다. 조가 내려가는 도중 발을 크게 다친 데다 크리스 역시 충격으로 정신을 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고 판단했을 무렵 이상한 소리가 들려 일동 긴장을 한다. 바로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그의 앞에 나타난다. 여덟 살의 애니, 바로 조의 동생 애니가 어느 틈에 그들을 몰래 따라온 것이었다. 애니의 등장에 아연실색해진 조는 서둘러 돌아갈 것을 종용하고, 스티븐은 유골이 마치 전리품이라도 되는 듯 챙겨가려 하다 그만 딱정벌레 떼를 건드리고 만다. 어마어마한 딱정벌레 떼의 기습에 혼비백산한 사이 그만 사고가 일어난다. 애니가 죽은 것이다.

 

 

 

어렸을 때는 여기가 손바닥 보듯 훤했다. 이제는 낯설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예전에 수갱이 있었던 곳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 해치가 있었던 곳도. 크리스 덕분에 해치도 들어가는 길도 함께 없어졌다. 나는 그게 영영 없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왜 몰랐을까. 계속 묻혀 있지 않는 것도 있다는 걸. 아이들은 찾아내기 마련이라는 걸. / 204p

 

 

쭈뼛쭈뼛하고 사회성이 떨어졌던 또 다른 아이. 또 다른 희생양. 하지만 그런 아이들이 가장 많은 걸 목격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아무도 모르게 흡수한다. 일화, 떠도는 소문, 학교 생활의 파편을 급류에 까닥까닥 떠내려가는 통나무처럼 붙잡는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아는 게 많은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무도 묻지 않기 때문이다. / 244p

 

 

아니야. 나는 또다시 생각했다. 이곳은 누가 소유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이곳은 그렇게 착각하도록 내버려둘지 몰랐다. 심지어 그렇게 착각해주길 바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곳의 수법이었다. 이곳은 그런 식으로 사람을 끌어들였다. 그런 식으로 소유했다. / 324p

 

 

 

   애니는 죽었다. 조와 친구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발을 다쳐 애니를 안고 갱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조는 친구들이 먼저 나가서 자신들을 구조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조는 애니를 안고 무리하게 올라가려다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고, 의식을 잃었다 깬 조는 일어나니 애니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자 혼자 집으로 돌아간 것이라 착각한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조는 겨우 집으로 돌아왔지만 불행히도 애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48시간 뒤, 믿기지 않지만 애니가 돌아왔다. 자신을 향해 미소까지 지으며. 그런데 어딘지 이상하다. 자신이 알고 있던 예전의 애니가 아닌 것 같다.

 

 

 

박식하고 현명해 보이길 바라는 사람들이 반복해서 지껄이는 문구가 있다. 어딜 여행하든 자기 자신에게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거다.

그것 헛소리다. 나를 붙잡고 있는 관계, 나를 규정하는 사람들, 나를 어떤 아이덴티티에 묶어놓은 익숙한 풍경과 일상에서 아주 멀찌감치 도망치면 적어도 당분간은 내 자신에게서 쉽사리 벗어날 수 있다. 자아는 구조물에 불과하다. 얼마든지 해체하고 다시 만들고 새로운 나를 으리으리하게 꾸밀 수 있다.

돌아가지만 않으면 된다. 돌아가면 새로운 내가 임금님의 새 옷처럼 벗겨져 알몸이 드러나고 추악한 단점과 실수가 만천하에 공개된다. / 108p

 

 

인생에 승자는 없다. 결국은 잃는 게 인생이다. 젊음, 외모,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것들. 나는 가끔 인갈을 진정으로 나이 들게 하는 것은 세월의 흐름이 아니라 아끼는 사람들과 사물들의 소멸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식의 나이 듦은 주사를 맞아도, 필러로 채워도 매끈해지지 않는다. 눈빛에서 아픔이 드러난다. 너무 많은 걸 접한 눈은 항상 그 사람의 속내를 드러내게 되어 있다. / 168p

 

 

 

   그렇게 아이들이 장난삼아 열었던 지하의 문은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저주가 풀린 것처럼 안힐의 아이들을 위협한다. 크리스, 애니, 벤이 그러했듯 폐광에 들어갔다 나온 아이들이 저마다 정신적인 문제를 앓거나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이제 이 불행의 역사는 끊어져야만 한다. 아직도 폐광을 각자 이익의 수단으로 삶고 있는 어른들의 이기심에 아이들이 희생되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렇게 소설은 끊임없는 위협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조가 나서서 사건을 진실을 파헤치고 원흉이 되었던 것들을 처단하면 되는 수순으로 흘러가는가 싶었는데, 이야기는 뜻밖의 상황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조가 미처 몰랐던, 혹은 그동안 그가 믿고 있었던 것이 진실이 아니었다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던 전작 『초크맨』이 그러했듯 이 소설 역시 한 장소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누구의 시선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기억으로 새겨져 저마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소름끼치게 그려나간다.

 

 

 

 

 

 

   아무래도 전작의 성공과 전개상 유사점이 많다는 이유로 『애니가 돌아왔다』가 과소평가될 우려가 적지 않으나, 개인적으로 압도적인 전개와 끝까지 독자의 마음을 놔줄 생각이 없는 스토리텔러로서의 역량이 그녀를 오랫동안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자극할 줄 알고,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 흡인력 있는 전개, 인간의 미묘하고 섬세한 심리를 파고들 줄 아는 작가로 ‘여자 스티븐 킹’이라는 수식어가 결코 어색하지 않으니 말이다. 때문에 역자의 컴퓨터에는 벌써 세 번째 원고가 들어있다고 하니 다음 작품이 무척 기대가 된다. 이 여름에 가장 완벽히 어울릴만한 공포 소설로 이 책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