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귀신들 - 대한민국 수재 2,000명이 말하는 절대 공부법
구맹회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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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부에 통하는 절대 원칙!

대한민국 공부 수재들의 비법을 모아 놓은 절대 공부법!

 

 

  최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방과 후 영어 수업을 금지시키겠다는 정부의 안이 나오면서 부모들의 거센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선행학습규제법에 따른 정책이긴 하나, 경쟁 위주의 현행 교육과 각자도생해야만 하는 입시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영어조기교육의 필요성과 또 다른 사교육을 불러올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반발심은 쉽게 잠재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입시제도 앞에서 늘 갈팡질팡해야만 하는 부모와 자녀들의 고충이 더 이상 남일 같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일찍부터 부모와 자녀 모두 흔들리지 않는 바른 교육관과 올바른 공부 습관을 들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공부 잘하는 방법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공부귀신들>의 저자 구맹회는 우리나라가 높은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정작 가장 중요한 공부법을 가르치지는 않는 것에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대한민국 대표 원조 공신으로 불리는 강성태 역시 마찬가지다. 공부법만 알면 더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썩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공부법을 익히고 기초 습관을 탄탄히 들이는 것만으로도 지나친 사교육비와 공부 스트레스를 확실하게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대한민국 수재 2,000명이 말하는 절대공부법을 다룬 <공부귀신들>은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불안한 교육정책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주도적으로 올바른 공부 습관을 들이는 데 도움을 주는 자녀교육서이자 자기계발서다. 30년 가까이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현재는 공부법 연구와 공부 컨설팅에 주력하고 있는 저자는 대한민국 공부 수재들의 공부법 가운데 객관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방법만을 골라, 어떤 시험 앞에서도 합격할 수 있는 절대적인 공부 비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누구나 공부귀신이 될 수 있는 노하우를 총망라한 이 책은 긍정적인 자기 암시와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기', 머릿속의 눈을 통해 장기 기억 저장법을 일러주는 '암기', 이론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명품 오답 노트를 만드는 방법을 수록한 '이해', 점수를 올리는 데 가장 중요한 반복의 힘과 요약 정리 노트 만드는 비법을 적은 '반복', 국어와 영어, 수학과 같은 핵심 과목 정복법을 소개하는 '핵심 과목', 수업 시간과 자투리, 수면 시간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다룬 '시간 관리',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주도 학습의 힘을 이끄는 '자기 주도',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고 시험에 임할 수 있는 비법을 수록한 '시험 공략',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 관리', 누구나 공부귀신이 될 수 있는 우리 안의 '의지'를 북돋아주는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구성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바로 '머릿속의 눈'이다. 저자는 머릿속의 눈으로 이미지를 보는 방법은 공부를 잘하는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비법이라고 설명한다. 머릿속의 눈이란 어떤 대상을 머릿속에 이미지로 떠올리고, 그 이미지를 바라보는 가상의 눈을 가리킨다. 머릿속의 눈으로 보면 그냥 보았을 때와 다르게 머릿속에 강한 전기 자극이 생겨서 장기 기억으로 저장된다는 것이다. 세계 기억력 대회에 참가해 우승한 조슈아 포어는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기억력이 뛰어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뛰어난 기억력은 배워야 한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주의를 기울이면 기억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즉, 뛰어난 기억력은 어떤 선천적인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학습한 것을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위해 책에는 머릿속의 눈을 뜨기 위한 트레이닝 방법과 머릿속의 눈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수록해놓았는데, 이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백지 공부법'과 '마인드맵 공부법'은 아주 유용한 공부법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책을 덮고 백지에 쓰다 보면 제가 공부한 것을 끊임없이 제 머리를 굴려서 생각해야 하잖아요. 기억력에 계속 자극을 주는 거예요. 머리에. 책을 펴고 제가 쓴 거랑 책의 내용이랑 비교하면 미처 기억하지 못한 부분이 눈에 보여요. 그 책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 부분을 제대로 외우는 거죠." / 84p

 

 

 

   이 책을 읽으면서 옛 기억을 떠올려보면 참으로 후회되는 것들이 많다. 오답노트를 정리한답시고 자르고 붙이는데 의미 없이 시간을 낭비하고는 다시 펼쳐보지 않거나 몇 번 하다 말기를 반복하고, 학교나 학원 숙제에 매달리느라 예습이나 복습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늘 첫 단원부터 공부하느라 중후반 단원은 시간이 촉박해 덜 공부한 채로 시험을 치르기 일쑤였으며, 시험을 친 뒤에 틀린 문제를 거듭 되짚어봐야 하는데 패배감으로 얼룩진 시험지를 흉물스럽게 여기며 서랍장에 쑤셔 넣어버렸으니 말이다. 이러니 틀린 문제는 또 틀리고, 성적이 향상 되지 않고 늘 제자리를 맴돌았던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공부법들은 뒤늦게나마 이번에는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자신감과 의지를 불러 넣음과 동시에 나와 같은 전처를 밟지 않고 아이에게 좋은 가이드가 되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분 복습은 본격적인 공부에 앞서 전에 공부했던 내용을 2분 정도 훑어보는 시간이다. 불과 2분이지만 공부한 내용이 머릿속에 남아 있을 때라서 복습 효과는 매우 크다. 다음 2분 예습은 지금부터 공부할 범위 전체를 2분간 훑어보는 것이다. 먼저 큰 숲을 보면 전체적인 흐름을 알고 공부할 수 있다. / 142p

 

틀린 이유를 간단히 적어두면 도움이 된다. 실수로 틀렸으며 '실수', 계산이 틀렸으면 '계산', 이론을 몰랐으면 '이론', 공식을 몰랐으면 '공식', 풀이를 보고 풀었으면 '풀이'라고 적는다. 풀이를 봐도 이해가 안 되는 문제는 '모름'이라고 적고, 연습장에 더 자세히 적는다. 처음에 틀린 문제는 시간이 지난 뒤에 풀어도 또 틀리기 때문이다. / 179p

 

 

 

 

 

 

   아이의 교육 문제 앞에서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사교육을 하느냐 마느냐인 것 같다. 부모로서 늘 중심을 잃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하니까 나도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아이에게 무분별한 사교육은 시키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내 아이만 뒤쳐질까 불안해지는 것이 결국 부모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사교육 자체가 나쁘다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기 주도 학습법을 아이가 익힐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적어도 이에 맹신하거나 끌려가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뚜렷한 목표 의식을 세웠을 때 공부가 즐겁고 의지가 생겨서 더욱 잘할 수 있다는 이 절대적인 진리를 무시하지 말아야겠다.

 

 

 

한국개발연구원의 김희상 연구원은 사교육을 받는 학생과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한 학생들의 성적을 조사했다. 그는 고3 수험생이 월 100만 원씩 사교육비를 썼을 때 수능 전국 등수가 4등 오른 반면, 하루에 2시간씩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했을 땐 7만 등이 상승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자기주도학습 습관의 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또 한국노동연구원의 최형재 연구위원은 사교육 열풍은 실제 효과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교육에 대한 환상, 사교육을 받지 않을 경우의 불안 심리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 223p

 

 

 

   <타이탄의 도구들>이란 책을 펴낸 팀 페리스는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전략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 역시 벽에 못 하나를 박는 단순한 일조차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모양이 다르듯, 공부도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에 따라 성적이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인 방법을 이용해 올바른 공부 습관을 실천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흔들리는 교육관으로 갈팡질팡하는 부모들과 성적 향상을 꿈꾸는 모든 학생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되길 바란다. 덕분에 나 역시 오랫동안 손 놓고 있었던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외국어 과외 선생님보다 외국어 잘 하는 부모가 되겠다는 목표가 생겼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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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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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삶을 찾아 스토니브리지를 떠났던 이들이 다시,

호텔 스톤하우스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다!

아름다운 스토니브리지에서 치유의 힘과 삶의 희망을 얻은 사람들의 이야기!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아름다운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을 그리며 한 편의 시를 쓴 적이 있다. 고달픈 현실을 뒤로 하고 고향 혹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어떤 이상향의 세계로 돌아가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싶게 만드는 이 시는 먼 이국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도 퍽 인상적인 시 중 하나였다. 아일랜드가 고난과 시련의 꽤 복잡한 역사를 지닌 섬이란 사실을 잊을 만큼. 어쩌면 이 땅의 자연이 간직한 평화와 낭만이 스스로를 정화하고 치유하는 넉넉한 힘을 지닌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가이자 극작가, 칼럼니스트로 알려진 메이브 빈치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 <그 겨울의 일주일>에서도 이러한 아일랜드 특유의 정서와 따뜻한 매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단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어쩐지 누구나 돌아가고픈 고향이 그곳에 있을 것만 같은 바로 그곳, 아일랜드.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주일을 선물합니다, 호텔 스톤하우스에서

 

 

   아일랜드 서부에 위치한 스토니브리지. 여름엔 아들에게 천국 같은 곳으로, 대서양 연안에 위치해 연중 대부분 비가 오고 바람이 거세고 쓸쓸한 편이지만 절벽 길을 따라 걸으며 모래밭이 펼쳐진 해안과 들쭉날쭉 솟은 검은 암벽면을 바라보면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절경을 품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 겨울의 일주일>은 이곳 스토니브리지를 떠났던 이들이 이별과 상처를 겪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마음을 치유하는 이야기가 담긴 따뜻한 소설이다. 성장을 하고 나면 누구나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을 꿈꾸듯, 편물공장에서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시골 농부와 결혼하는 삶을 선택하기보다 새롭고 자유로운 선택의 길이 펼쳐져있는 도시로 나아가고픈 열망을 품는다. 치키, 눌라, 올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치키는 자유분방한 미국인 청년 월터 스타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뉴욕을 떠났지만 현실은 고달프고 이내 이별을 맞는다. 눌라 역시 드루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미혼모의 처지가 되어 더블린으로 떠나 혼자 아이를 낳고 악착같이 벌어 키웠지만 아이는 자랄수록 사고뭉치에 그녀를 실망시키기만 한다. 울라는 똑똑하고 계산이 분명하여 더블린으로 가 학업을 마치고 직장을 구해 커리어를 쌓고 있었지만, 상사의 불순한 태도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월터 스타를 따라오는 기회는 안 잡는 게 더 좋았을 거예요." 치키가 후회하며 말했다.

"과연 그럴까? 너는 편물공장에서 승진을 했겠지. 미친 농부와 결혼해 자식 여섯을 낳았을 테고, 그애들 직장을 찾아주려고 애를 써야 했을 거야. 나는 네 결정이 훌륭했다고 생각해. 너는 결단을 내리고 일자리를 달라고 나를 찾아왔어. 이십 년 동안 우리는 잘 지냈고, 그렇지? 네가 여기 뉴욕으로 온 건 잘한 일이었어. 이제 고향에 돌아가면 그 근방에서 가장 큰 저택의 주인이 될 테고. 지금까지 네가 걸어온 길에서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구나." / 36p

 

"저는 제 인생이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거든요."

"나도 내 인생이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지. 하지만 살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도 정리할 건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 75p

 

 

   저마다 후회와 상처로 얼룩진 마음에 위로가 필요하던 때, 치키는 고향 스토니브리지의 미스 시디의 권유로 그녀의 스톤 하우스를 매입해 호텔로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듣는다.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일이지만 그녀는 정신없이 바쁘고 복작거리는 환상의 세계에 불과했던 뉴욕에서의 생활을 접고 스토니브리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한편 놀라는 사고만치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다 친구인 치키의 소식을 듣게 되고, 그녀에게 자신의 아들을 부탁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더블린을 떠나 치키가 있는 스톤 하우스에 가게 된 리거는 처음에는 낯설고 어리둥절할 뿐이었지만 그곳에서 치키의 일을 도우며 점차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치키의 조카인 올라 역시 상사에게 퇴사 의사를 밝히고 잠시 휴식도 취할 겸 스토니브리지로 돌아와 스톤 하우스를 그럴 듯한 호텔로 만드는 데 일조하며 점차 이곳 생활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달아났어." 치키가 말했다. "네 엄마도 달아났고, 나도 달아났지. 너도 달아났고. 언젠가는 멈춰야 해. 지금 멈추도록 하자." / 81p

 

"응, 여긴 생각하기에 좋은 장소야. 바닷가에 나가면 더 작아진 기분이 들거든. 내가 덜 중요해지는 것 같고. 그러면 모든 것이 알맞은 비율을 되찾게 되지." / 127p

 

 

 

   이렇듯 저마다 다른 이유로 고향인 스토니브리지를 떠났던 이들이 다시 돌아와 스톤 하우스를 호텔로 개조하는데 동참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며 평화로운 일상과 마음의 여유를 되찾게 된다. 그 사이 호텔 스톤하우스는 치키를 중심으로 드디어 첫손님들을 맞게 된다. 전혀 친해 보이지 않는 예비 고부관계의 위니와 릴리언, 존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유명 배우 코리 살리나스, 의사 부부인 헨리와 니콜라, 회계사인 아버지를 따라 가족 회사를 운영하는 젊은 청년 안데르스, 이벤트에 응모해 당첨되어 오게 되었지만 어딘지 못마땅해 보이는 월 부부, 은퇴한 교장으로 타인에게 친절과 관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넬 하우, 사랑의 상처를 떠안고 온 프리다까지. 저마다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던 이들이 스톤 하우스에 속속들이 모여든다.

 

 

 

 

 

 

   <그 겨울의 일주일>의 역자는 이 소설이 마치 '고즈넉한 합창곡' 같다고 말한다. 저마다 다른 음색, 다른 선율과 리듬이 합쳐져 불협화음마저 하나의 화음으로 융화해낸 합창곡처럼 소설은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달 수 없는 저마다의 사연을 듣게 하고, 집중하게 하고, 위로하고, 치유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아마도 메이브 빈치는 세상의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떤 거창한 계기보다 자연스럽게 타인과 관계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참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인 듯하다. 앞서 예이츠가 그러했듯, 메이브 빈치가 그러했듯 어쩌면 아일랜드라는 곳이 우리를 그렇게 이끄는지도 모르겠다.

 

 

 

"안데르스, 제발 그만. 생각해봐. 내가 싫어하는 건 네가 아버지의 사업에 뛰어든다는 그 자체가 아니야. 네가 그 일을 싫어하고 앞으로도 쭉 그럴 거라는 사실이야. 하지만 너는 다른 건 해볼 생각도 하지 않잖아. 네가 결정할 문제지 그 사람들이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야. 네 인생이지 그 사람들 인생이 아니야. 너는 네 인생에 대해 뭐든 할 수 있어." / 309p

 

 

 

 

 

  이 차가운 겨울, <그 겨울의 일주일>을 통해 복잡하고 아픈 상처들을 잠시 내려놓고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치키가 그러했듯 나 역시 누군가에게 한결같이 다정하고 넉넉한 자리를 내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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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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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필체, 진리의 역설을 돌파해가는 역작!

모성의 강박과 타자의 불이해가 낳은 현대 사회의 모순을 그리다!

 

 

   공포는 대개 잠재된 것으로부터 온다. 잔인하고 가학적인 장면보다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잠재되어 있었거나 사소하게만 여겨졌던 불안과 좌절, 어그러진 의식 같은 것들이 견고했던 일상을 전복시키고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심리 혹은 그 자체다. 특히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무엇, 가장 사랑스러운 그 무엇으로부터 느끼는 낭패감이나 언젠가 자신의 숨통을 조일지 모른다는 데서 오는 공포감은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다. <달콤한 노래>는 이러한 인간의 내적 공포를 다소 충격적인 소재와 함께 다룬 소설로, 공포 이면에 숨겨진 고독과 두려움 같은 심리 묘사의 치밀함까지 돋보이는 역작 중 하나다.

 

 

 

 

 

 

완벽한 모성에의 강박과 소외로부터 비롯되는 공포

 

 

   한 가정에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문득 이전과는 다른 세상으로 진입한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단란했던 가정에 아이라는 존재 하나만 들어와도 분명 이전과는 다른 일상과 감정이 혼재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시시때때로 온갖 감정과 마주해야만 했다. 세상에 더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인 이 아이를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말을 할 수 없기에 울음과 짜증 등 온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를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데에서 비롯되는 어리둥절함과 좌절감, 때로는 아이의 침과 콧물을 내 옷으로 받아내기도 하고, 가방 안에 아이의 물건은 잔뜩 넣었지만 정작 내 짐은 달랑 지갑 하나 뿐인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 따위. 그보다 더한 것은 이 아이를 잘 키워야 하고 좋은 엄마이자 능력 있는 엄마까지 되어야 한다는 데에서 오는 강박과 희생에서 오는 피로감은 끊임없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달콤한 노래> 속 미리암도 마찬가지였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미리암이 느끼는 고통은 '밀라의 투정에 진절머리가 났고 아당이 첫 옹알이를 해도 무관심했다. 혼자 걷고 싶은 욕구가 하루하루 조금씩 더 커져가는 것이 느껴졌고, 거리로 나가 미친 여자처럼 울부짖고 싶었다. 때로 그녀는 속으로 '얘들이 날 산 채로 잡아먹는 구나.'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문장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또한 워킹맘들의 하소연이나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을 때 전업주부라고 하면 등을 돌리고 가버리는 사람들의 부류 속에서 느끼는 소외로 절망한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 행복, 단순하고 고요한 이 감옥 같은 행복이 더 이상 충분한 위안이 되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성공과 자유에 아이들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한사코 거부했다. 익사자의 머리를 바닷물 아래로 끌고 내려가 진흙 속에 처박는 닻 같은 존재.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그녀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런 생각은 옳지 않았고 정말 절망적이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느낌, 무엇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느낌, 다른 것을 위해 삶의 한 부분을 희생한다는 느낌을 늘 떨쳐버릴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 52p

 

 

 

 

 

 

 

 

   결국 미리암은 동창인 친구 파스칼을 만나 다시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되면서, 변호사로서의 커리어를 다시 쌓아가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해서는 두 아이를 돌봐줄 보모가 절실했다. 그녀는 아이들을 내준다는 생각을 하면 공포를 느낄 정도이면서도 마치 구세주를 기다리듯 보모가 나타나길 기다린다. 그때 미리암과 폴 부부에게 완벽에 가까운 보모, 루이즈가 등장한다. 한 주 두 주 흘러갈수록 루이즈는 점점 더 놀랍도록 눈에 띄지 않으면서 동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간다. 미리암이 꿈꾸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으로. 루이즈를 요정이라고 표현할 만큼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보모를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사실 루이즈는 죽은 남편이 물려주고 간 빚을 떠안아 가난에 허덕이고, 살고 있는 집의 월세가 밀려 언제 거리에 나앉을지 몰라 불안한 상태였다. 그러나 폴과 미리암의 가정에서만큼은 그러한 현실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돌보고 함께 여름휴가까지 떠나며 마치 가족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거리의 부랑자처럼 공허하게 떠돌다가도 이들의 가정 속에 들어가면 자신의 존재감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견고한 듯했던 이들의 관계가 점차 삐걱거리게 되는 사건들이 종종 발생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만 느껴졌던 루이즈에서 점점 수상쩍은 기색들이 엿보이는 까닭이다. 아이들을 향한 집착, 임금 압류를 권고하는 고지서, 쓰레기통에 버린 통닭을 다시 수습해 아이들에 먹인 듯한 흔적 등. 때문에 가족 같았던 그들의 분위기가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로 전락하는 느낌이 들자 루이즈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자신이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폴과 미리암 사이에 아이가 하나 더 생기지 않는다면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려면.'이란 표지의 강렬한 문구는 결국 '아이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라는 소설의 시작점으로 귀결된다. 이처럼 새 아이가 태어나려면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망상이 빚어낸 이 충격적인 소재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달콤한 노래>는 완벽한 모성에의 강박과 타자의 불이해, 고독과 소외로 얼룩진 현대 사회의 공포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기에 더욱 주목할 만하다. 매일 약을 뿌리고 억척스럽게 씻어내도 밤사이 무성하게 피어올라 야금야금 우리의 삶을 좀먹는 곰팡이처럼 결국엔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나고야 마는 불안과 상처들을 우리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 것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고독이 거대한 구멍처럼 모습을 드러냈고, 루이즈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몸과 옷에 달라붙은 고독으로 그녀의 모습이 빚어지고, 동작은 자그마한 할머니 몸짓같이 되었다. 고독을 저물녘, 어둠이 내리는 때, 식구 많은 집에서 이런저런 소리들이 올라오는 시간에 다가와 와락 그녀를 덮쳤다. 빛이 약해지고 소리들이 다가온다. 웃음소리, 헐떡이는 소리, 권태로운 한숨 소리까지. / 128p

 

 

처음으로 그녀는 늙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몸에 고장이 나기 시작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뼛속까지 느껴지는 통증을 생각한다. 늘어가는 병원비. 그리고 유리창이 더러운 아파트에서 앓아누워 보내는, 병든 노년의 불안. 그것은 강박증이 된다. 그녀는 이곳이 끔찍하게 싫다. 샤워실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가 그녀를 떠나지 않는다. 그녀는 입속까지 그것을 느낀다. 모든 이음새, 모든 틈새를 녹색 곰팡이가 가득 메우고 있는데 아무리 미친 듯이 문질러 없애봤자 밤사이 더 무성하게 피어오른다. / 203p

 

 

 

 

 

 

   이 책은 사실 영화 <요람을 흔드는 손>을 연상케 해서 주목한 소설이지만, 그보다 내밀하고 정교한 심리묘사와 현대 사회의 모순을 보여주는 견고한 작품이었기에 더욱 인상에 남을 듯하다. 레일라 슬리마니, 그녀를 기억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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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머무는 밤
현동경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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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해 가는 일상과 비워 가는 여행, 그 모든 순간의 기록!

사사로운 것에 흔들리고 무너지며 기꺼이 동요당할 수 있는 삶을 꿈꾸는 감성에세이!

 

 

 

   1년 전에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내내 물리적, 정신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한 노인이 우연히 알게 된 아내의 과거 행적을 쫓아 여행을 떠나는 내용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노인에게 있어 여행의 목적은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아내의 과거 찾는 데 있었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깨달아가는 즐거움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사사롭지만 정해진 일상의 규칙에서 벗어나 이제껏 해보지 못했던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여행'이었다. 그가 자신이 용기를 내어 집밖으로 발을 내딛지 않았다면, 여행을 하는 내내 만나게 되는 갖가지 사건과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마냥 두려워만 하고 있었더라면 감히 '미래'라는 것을 꿈꿀 수 있었을까. 여행이란 그런 것 같다. 반드시 물리적으로 어떤 먼 곳을 떠나는 게 아니라 일상을 떠받치고 미래로 나아가는 하는 어떤 자유의지를 얻어가는 과정 그 모두가 우리에겐 여행인 듯하다.

 

 

 

   <기억이 머무는 밤>의 저자 역시 살아온 틀을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낯선 것을 비롯한 두려움은 모두 여행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새로운 회사와 학교에 면접을 보러 가는 그 길의 두려움은 내 미래에 대한 여행인 것이고, 겪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삶의 성숙을 이끈다. 어쩌면 여행은 익숙하지 않은 또 다른 현실로 나아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나와 앞으로의 나를 견주게 하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수천 킬로미터가 넘는 이국의 풍경과 자유, 낭만과 고행으로 점철된 여느 여행에세이와 조금은 다른 글을 써내려간다.

 

 

 

 

 

 

 

현실. 그러고 보면 여행지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어딘가에서 '현실'에서 벗어난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는 듯했다. 먹고 싶은 거 먹고 쉬고 싶은 만큼 쉬는 것. 살아 숨 쉬는 내가 값을 주고 행하는 모든 것이 어찌 비현실이 될 수 있는지. 혹시 그 누군가 이 모든 걸 비현실로 정의 내렸기 때문에 현실과의 이해관계에서 숱한 장애물이 생겨나고 결국 잊어 가야만 살아가기 편하게끔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런지. / 221p 

 

 

 

   어쩐지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이름의 저자, 현동경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미련이 강한 사람이라 스스로를 소개한다. 이를 테면 만년필과 종이의 마찰음, 길거리 공중전화나 LP판에 마음이 이끌린다. 그러나 누구나 그러하듯 저자 역시 어느 가을날 건조하게 말라 부스러져 버린 낙엽 같은 세상에서 오늘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공허한 하루가 지나쳐가는구나 하는 일기가 그만 쓰여질 날을 꿈꾼다. 빗물 자국과 여러 얼룩이 뒤섞인 신발의 먼지를 일일이 털어 내는 일보다 어깨를 누르는 일상의 무게를 덜어내는 게 우선일 만큼 고단한 현실의 청춘들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여행을 통해 그것을 덜어내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세상이 수놓은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고 써내려가며 위로를 얻는다.

 

 

 

한참을 사막의 능선에 앉아 모래를 휘날리다 바지 한 번 훌훌 털고 일어나며 그래도 지금이 썩 나쁘진 않다고 위로한 이유는 나는 사막처럼 외로울 자신이 없다는 안일한 이유였다. 수많은 이들이 그곳에 내려 두고 갔을 셀 수 없는 근심들을 덮어 줄 만큼 나는 넓지 않아서, 이 좁은 마음에 안타까움을 담고 너를 담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조금은 더디게 지워지는 기억들에 아파하면서, 저기 아지랑이는 저 땅은 슬픔을 지우는 것만큼 행복도 함께 지울 거라는 질투 어린 위로를 하며, 놀이터 그네에 앉아 발밑에 모래를 모아 괜스레 이리저리 흩트려 본다. 이 모래는 그리 쉽게 자국들을 지우지 않을 거라 믿으면서. / 90p

 

 

 

 

 

 

 

   그녀의 글은 화려함에 가려져 그 빛을 숨길지언정 끝내 잃지 않고, 아련할지라도 연약하지 않은 '대낮의 낮달' 같은 은은함을 품고 있다. 덕분에 '나'와 '내 사람들' 또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의 향수와 감정 그 내밀한 속살 속에서 여행을 추억하는 <기억이 머무는 밤>은 좀 특별하다. 발칸의 작은 나라 마케도니아 오흐리드 사람들의 여유 있는 미소와 따스한 눈인사, 바라나시에서 만난 한 꼬마의 순수한 마음을 섣불리 돈으로 보답하려 했다 부끄러워진 기억 같은 것들. 특히 할머니와의 나고야 여행은 이 책의 그 어느 장면보다도 인상적이다.

 

 

 

   어릴 적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한국으로 건너온 할머니는 그 뒤로 아들 둘에 딸 넷을 낳아 평생 자식들을 키우는 데 힘을 쓴 것도 모자라 엄마와 아빠의 부재를 느끼지 못하도록 손녀에게까지 지극정성을 다하셨다. '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내 자신이 우선이었던 이기적인 나는 빳빳하던 여권에 하나둘 스탬프가 늘어 가는 동안에도 그녀가 그리는 고향, 일본에 함께 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던 저자는 마침내 70년 만에 할머니가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도록 나고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할머니는 자신이 살던 곳이 '상고'인지 '산고'인지 기억조차 흐릿했지만, 막상 고향에 도착하자 70년 만인 것이 무색할 만큼 너무나 익숙한 걸음으로 앞장 서 걸으며 지난날을 떠올린다. 이제는 편히 눈 감을 수 있겠다며 손녀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할머니의 음성과 그녀의 시간 안에 함께 했다는 것에 감사해하는 저자의 글이 코끝을 찡하게 한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70년 전 할머니의 기억과 70년 후 현재의 구글 맵에 의존해 여행을 시작했다. 마치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랄까. 할머니의 고향은 나고야 안에서도 외진 곳에 있는 주택단지에 불과해 정보랄 것이 하나도 없어 가는 내내 긴장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런 마음을 알아챈 건지 혹은 나랑은 다른 뜻으로 그녀 역시 마음을 졸이고 있던 건지 그녀는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순간 마음이 아려 왔다. 이유는 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그리고 할머니도 모두 알 수 있으리라 믿는다. / 34p

 

 

그래서인지 처음엔 세상을 보겠다고, 그 후엔 여유를 찾는다고 떠났던 여행이 이제는 왜인지 그냥, 하고 머뭇거리다 결국엔 '사람이 좋아서였나' 하고 되뇌게 된다. 지나온 날을 돌이켜 보면 숨 막히던 풍경도 놀랍도록 거대한 건물도 화려한 불빛도 모든 게 익숙해 더 이상 설레지 않을 때 다시금 떠나게 해 준 것도 사람이었고, 우습게도 나를 긴장케 하고 두려움을 안겨 준 것 또한 사람이었으나, 그러한 나를 흐르는 시간 속에 편안히 녹여낸 것 역시 끝내 사람이었기에, 이제는 어디선가 만날 그들에 대한 기대로 하여금 계속해서 떠나는 것 같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 131p

 

 

 

 

 

 

 

   여행에세이를 읽다보면 누군가는 사표 한 장 던져놓고 무작정 배낭 하나 짊어진 채 여행길에 올랐다고 하고, 역마살이 끼었다는 한탄을 늘어놓으며 월급을 모으는 족족 여행을 떠났다는 이도 있다. 이 모든 글에는 갑갑한 현실을 뒤로 하고 당신도 떠나보시라, 하고 권하는 무언의 부추김이 존재한다. 하지만 강요와 권유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대리만족 삼아 읽어보고자 했던 것이 때로는 발목을 붙드는 현실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용기를 내어보지 못하는 내 자신의 유약함만 더욱 마음에 남는 경우가 있다.

 

 

 

   고맙게도 <기억이 머무는 밤>은 그런 부분을 경계하려는 저자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질 만큼 가만가만 자신의 생각들을 덤덤하게 풀어놓는 데 그친다. 그녀는 그저 이 넓은 세상이 말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순간순간 포착하고 그것을 글자로 기록하고 싶을 뿐이었던 것 같다. 이것이 여행에세이라 말하지만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에 대한 세상의 수많은 단편들을 담은 이 책이 조금은 특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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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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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죽은 뒤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던 남자에게 찾아온 놀라운 삶의 변화!

과거가 아닌 앞으로 나아가는 삶에 대한 희망을 주는 가슴 따뜻한 소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아내 혹은 남편이 곁을 떠나 홀로 남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잠깐의 이별도 아쉽기 마련인데, 하물며 사랑하는 배우자가 세상을 떠난다면 그 거대한 상실감을 무슨 수로 메울 수 있을지 차마 짐작하기도 어렵다.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흔히 하는 위로의 말로,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 하듯 바쁜 일상과 삶의 변화에 기대어 조금이나마 잊을 수는 있겠지만 예순아홉 살이 된 은퇴한 열쇠수리공이자 미래라는 꿈을 꾸기엔 너무나 나이가 들어버린 노인으로서는 그저 아내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깃든 공간 속에 자신을 가두어두는 일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을 듯하다.

 

 

 

   딸 루시와 아들 댄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미리엄의 웃음소리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아서 페퍼는 아내가 죽은 지 1년 째 되는 날, 그녀의 유품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한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고 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식상한 위로를 건네던 딸 루시와 이제는 새 가정을 꾸리고 고향인 영국을 떠나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해 살고 있는 아들 댄이 더 이상 집 안을 박물관으로 만들지 말고 다 내다버리라고 퉁명스럽게 말한 것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아서는 아내와의 추억이 묻어난 유품을 정리하던 도중 벼룩시장에서 산 부츠 한쪽에서 하트 모양의 상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화려한 금팔찌가, 엄밀히 말하자면 코끼리, 꽃, 책, 팔레트, 호랑이, 골무, 하트, 그리고 반지까지 여덟 개의 참이 달려있는 장신구가 들어있는 것이었다.

 

 

 

여덟 개의 참, 그 의미를 찾아 아내의 과거를 추적하다

 

 

   초록빛의 에메랄드 보석이 박혀 있는 코끼리 참이 유독 인상적이었던 아서는 꼬리 부분에 새겨진 "아야, 0091 832 221 897"이란 글자를 발견한다. 그는 아야가 ‘동아시아나 인도의 보모 또는 가정부’를 일컫는 말이며, 인도의 국가번호가 0091이란 사실을 이내 깨닫게 된다. 그는 누구에게든 충동적으로 전화를 거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참에 얽힌 호기심에 이끌려 적혀진 번호를 누르고 만다. 이날의 전화 통화는 그가 미처 알지 못했던 과거 아내의 행적을 추적하는 신호탄이 된다. 이후 호랑이, 책, 꽃, 골무, 팔레트, 하트 참의 순서에 따라 그는 아내가 떠난 뒤로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집을 떠나 영국 배스, 런던, 프랑스, 인도 등에 이르는 뜻밖의 여행을 하기에 이른다.

 

 

 

드 쇼펑이라는 작자에 대해 아서가 느끼는 감정이 불안과 질투라고 해도, 그 감정으로 인해 그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의 몸에는 충격요법이 필요했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안락한 감옥을 뒤흔들 무언가가 필요했다. 미리엄과의 추억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는 그 집에 살고 있는 아서에게는 뭔가 다른 게 필요했다.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서 프레더리카가 촉촉하게 잘 있는지 보고 옷가지를 더 챙겨야지. 그다음엔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 126p

 

 

"만약 당신이 어떤 여자를 만났는데, 당신을 만나기 전에 그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사귀었고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했는데 그 얘기를 당신한테 하지 않았다면, 그게 문제가 될까요?"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했다. "아뇨. 그건 그 여자 사정인 거죠. 그러니까 제 말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요. 현재에 충실하고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현재에 만족한다면 왜 뒤를 돌아보겠어요?" / 163p

 

 

 

 

 

 

 

   여행을 하면 할수록 아서는 그가 알지 못했던 아내 미리엄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하며 꽤나 멋진 삶을 살기도 했던 그녀가 별 볼일 없는 열쇠수리공일 뿐인 자신에게로 와 과연 행복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수시로 고개를 든다. 아이들을 키운 뒤로 그들은 함께 새로운 곳들을 가보고 새로운 경험들을 했어야 했다고, 늘 정확하게 계획된 삶을 살았던 그의 고집스러운 생활 방식이 그녀의 숨통을 조인 것은 아닌지 후회와 자괴감이 일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과거를 쫓는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는 와중에 그는 서서히 깨닫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아내가 죽은 뒤 제자리에 머물러만 있던 그가 조금씩 궁리를 하고 결정을 내리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자신이 스스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강하고 더 속 깊은 사람이었고, 자신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발견이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실은 나 자신에 대해서도 배우고 있어요." 그가 시인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날 때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변하고 성장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다른 사람들도 날 만나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을 수도 있겠지요. 기분이 묘합디다." / 172p

 

 

그 사람들과 사건들이 아서의 내면에서 불러일으킨 것은 갈망이었다. 욕정이나 그리움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는 돕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호랑이가 그를 공격했을 때 살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오렌지색 짐승이 그를 내려다볼 때, 그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생각했다. / 226p

 

 

 

   참의 역사, 아내의 과거를 추적하는 동안 아서가 발견한 것은 결국 그 자신에 관한 것들이었다. 참은 아내의 과거를 찾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소원했던 딸과 아들과의 유대를 복원하고, 벽을 세우고 있었던 이웃과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에게 한 발짝씩 다가가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아내 미리엄은 지금 비록 곁에 없지만 그녀를 추억하고 함께 사랑했던 이들이 그의 곁에 있는 한 흘려보내기보다 채워가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여행을 하면서 미리엄이 알았던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내가 하는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이 날 기억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구나. 미리엄은 더 이상 여기 없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아직 살아 있어." / 272p

 

 

 

 

 

 

 

   <아서 페퍼>는 <오베라는 남자>와 <브릿마리 여기 있다>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과 유사한 경향이 있지만 깐깐하고 모난 구석이 있는 노년의 캐릭터가 아닌,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고 평범하지만 연륜과 지혜를 지닌 캐릭터가 주인공이란 한다는 점에서 보다 공감이 가는 작품이다. 때문에 늘 과거에 집착하고 후회의 말들을 곧잘 하곤 하는 나의 조부모님에게 아서의 이야기가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당신 삶은 과거에 멈춘 것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때가 나에게도 오기를 바래보게 된다. 무엇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내 사람과의 삶을 더욱 사랑하고 충만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리라. 아서가 그러했듯, '왜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고 있을 땐 그 순간을 즐기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미련으로 삶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삶의 순간순간과 그것을 함께 한 사람들에 감사해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깨닫게 해준 <아서 페퍼>는 이 차가운 겨울날, 그 어느 책보다 내게 완벽하고 따뜻한 독서가 되어 주었다. 꽤 오랫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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