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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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필체, 진리의 역설을 돌파해가는 역작!

모성의 강박과 타자의 불이해가 낳은 현대 사회의 모순을 그리다!

 

 

   공포는 대개 잠재된 것으로부터 온다. 잔인하고 가학적인 장면보다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잠재되어 있었거나 사소하게만 여겨졌던 불안과 좌절, 어그러진 의식 같은 것들이 견고했던 일상을 전복시키고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심리 혹은 그 자체다. 특히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무엇, 가장 사랑스러운 그 무엇으로부터 느끼는 낭패감이나 언젠가 자신의 숨통을 조일지 모른다는 데서 오는 공포감은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다. <달콤한 노래>는 이러한 인간의 내적 공포를 다소 충격적인 소재와 함께 다룬 소설로, 공포 이면에 숨겨진 고독과 두려움 같은 심리 묘사의 치밀함까지 돋보이는 역작 중 하나다.

 

 

 

 

 

 

완벽한 모성에의 강박과 소외로부터 비롯되는 공포

 

 

   한 가정에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문득 이전과는 다른 세상으로 진입한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단란했던 가정에 아이라는 존재 하나만 들어와도 분명 이전과는 다른 일상과 감정이 혼재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시시때때로 온갖 감정과 마주해야만 했다. 세상에 더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인 이 아이를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말을 할 수 없기에 울음과 짜증 등 온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를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데에서 비롯되는 어리둥절함과 좌절감, 때로는 아이의 침과 콧물을 내 옷으로 받아내기도 하고, 가방 안에 아이의 물건은 잔뜩 넣었지만 정작 내 짐은 달랑 지갑 하나 뿐인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 따위. 그보다 더한 것은 이 아이를 잘 키워야 하고 좋은 엄마이자 능력 있는 엄마까지 되어야 한다는 데에서 오는 강박과 희생에서 오는 피로감은 끊임없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달콤한 노래> 속 미리암도 마찬가지였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미리암이 느끼는 고통은 '밀라의 투정에 진절머리가 났고 아당이 첫 옹알이를 해도 무관심했다. 혼자 걷고 싶은 욕구가 하루하루 조금씩 더 커져가는 것이 느껴졌고, 거리로 나가 미친 여자처럼 울부짖고 싶었다. 때로 그녀는 속으로 '얘들이 날 산 채로 잡아먹는 구나.'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문장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또한 워킹맘들의 하소연이나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을 때 전업주부라고 하면 등을 돌리고 가버리는 사람들의 부류 속에서 느끼는 소외로 절망한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 행복, 단순하고 고요한 이 감옥 같은 행복이 더 이상 충분한 위안이 되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성공과 자유에 아이들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한사코 거부했다. 익사자의 머리를 바닷물 아래로 끌고 내려가 진흙 속에 처박는 닻 같은 존재.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그녀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런 생각은 옳지 않았고 정말 절망적이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느낌, 무엇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느낌, 다른 것을 위해 삶의 한 부분을 희생한다는 느낌을 늘 떨쳐버릴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 52p

 

 

 

 

 

 

 

 

   결국 미리암은 동창인 친구 파스칼을 만나 다시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되면서, 변호사로서의 커리어를 다시 쌓아가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해서는 두 아이를 돌봐줄 보모가 절실했다. 그녀는 아이들을 내준다는 생각을 하면 공포를 느낄 정도이면서도 마치 구세주를 기다리듯 보모가 나타나길 기다린다. 그때 미리암과 폴 부부에게 완벽에 가까운 보모, 루이즈가 등장한다. 한 주 두 주 흘러갈수록 루이즈는 점점 더 놀랍도록 눈에 띄지 않으면서 동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간다. 미리암이 꿈꾸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으로. 루이즈를 요정이라고 표현할 만큼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보모를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사실 루이즈는 죽은 남편이 물려주고 간 빚을 떠안아 가난에 허덕이고, 살고 있는 집의 월세가 밀려 언제 거리에 나앉을지 몰라 불안한 상태였다. 그러나 폴과 미리암의 가정에서만큼은 그러한 현실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돌보고 함께 여름휴가까지 떠나며 마치 가족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거리의 부랑자처럼 공허하게 떠돌다가도 이들의 가정 속에 들어가면 자신의 존재감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견고한 듯했던 이들의 관계가 점차 삐걱거리게 되는 사건들이 종종 발생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만 느껴졌던 루이즈에서 점점 수상쩍은 기색들이 엿보이는 까닭이다. 아이들을 향한 집착, 임금 압류를 권고하는 고지서, 쓰레기통에 버린 통닭을 다시 수습해 아이들에 먹인 듯한 흔적 등. 때문에 가족 같았던 그들의 분위기가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로 전락하는 느낌이 들자 루이즈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자신이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폴과 미리암 사이에 아이가 하나 더 생기지 않는다면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려면.'이란 표지의 강렬한 문구는 결국 '아이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라는 소설의 시작점으로 귀결된다. 이처럼 새 아이가 태어나려면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망상이 빚어낸 이 충격적인 소재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달콤한 노래>는 완벽한 모성에의 강박과 타자의 불이해, 고독과 소외로 얼룩진 현대 사회의 공포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기에 더욱 주목할 만하다. 매일 약을 뿌리고 억척스럽게 씻어내도 밤사이 무성하게 피어올라 야금야금 우리의 삶을 좀먹는 곰팡이처럼 결국엔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나고야 마는 불안과 상처들을 우리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 것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고독이 거대한 구멍처럼 모습을 드러냈고, 루이즈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몸과 옷에 달라붙은 고독으로 그녀의 모습이 빚어지고, 동작은 자그마한 할머니 몸짓같이 되었다. 고독을 저물녘, 어둠이 내리는 때, 식구 많은 집에서 이런저런 소리들이 올라오는 시간에 다가와 와락 그녀를 덮쳤다. 빛이 약해지고 소리들이 다가온다. 웃음소리, 헐떡이는 소리, 권태로운 한숨 소리까지. / 128p

 

 

처음으로 그녀는 늙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몸에 고장이 나기 시작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뼛속까지 느껴지는 통증을 생각한다. 늘어가는 병원비. 그리고 유리창이 더러운 아파트에서 앓아누워 보내는, 병든 노년의 불안. 그것은 강박증이 된다. 그녀는 이곳이 끔찍하게 싫다. 샤워실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가 그녀를 떠나지 않는다. 그녀는 입속까지 그것을 느낀다. 모든 이음새, 모든 틈새를 녹색 곰팡이가 가득 메우고 있는데 아무리 미친 듯이 문질러 없애봤자 밤사이 더 무성하게 피어오른다. / 203p

 

 

 

 

 

 

   이 책은 사실 영화 <요람을 흔드는 손>을 연상케 해서 주목한 소설이지만, 그보다 내밀하고 정교한 심리묘사와 현대 사회의 모순을 보여주는 견고한 작품이었기에 더욱 인상에 남을 듯하다. 레일라 슬리마니, 그녀를 기억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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