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트로트 특서 청소년문학 16
박재희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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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와 판소리,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울리는 이들의 조화가 만들어낸 이야기!

 

 

 

어린애가 동요나 부르지 무슨 뽕짝이냐.

쪼그만 게 뭘 안다고 트로트야.

앞길이 뻔하다. 밤무대 가수나 되겠지.

슬픈 노래 부르지 마라, 애늙은이 같다. / 35p

 

 

 

   아주 까마득한 옛날부터 환갑잔치 전문 가수인 엄마를 따라다니던 지수다. 엄마 손을 놓칠까 봐, 엄마가 어디로 가버릴까 봐, 마이크 잡고 노래하는 엄마의 한복치마 속에 숨어 있던 아이가 언제부턴가 엄마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롱으로, 다음에는 동요로, 어른들이 좋아하는 흘러간 옛날 노래로 자랑거리를 늘려갔다. 그렇게 엄마가 부르는 노래를 다 부를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트로트 신동이라 불렀다. 현인 선생님이 살아서 돌아오신 것 같다며 천재라고 치켜세워주는 사람들 앞에서 엄마는 입 안 가득 미소를 머금으며 말하곤 했다. “얘 아빠가 누군지 아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국창 하방울 선생님의 독자, 하 동 자, 국 자. 요절한 천재 명창 하동국! 놀라셨죠? 그러실 줄 알았다니까요, 호호.” 하고 웃어보였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아이가 무슨 뽕짝이냐며, 박수 치고 돈을 주면서도 사람들은 흉을 보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노래 부르는 동안만큼은 행복했다. 튀김 장수 아들도 아니고, 연립주택 아이도 아니고, 온전한 가수 하지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래 부르는 동안만큼은.

 

 

 

쪼그만 애가 송아지, 짝짜꿍이나 부르지 무슨 사랑가, 이별가를 부르냐.

어린애가 판소리를 하네. 너무 어려워서 어른도 10년은 공들여야 겨우 소리목을 얻는다는데.

청승맞은 소리 부르다가 앞길 막히면 어쩔래? / 96p

 

 

 

   선재는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소리하는 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를 따라, 명창 조은필 선생님을 따라 다녔다. 어른들을 따라다니면서 흥부의 아들 노릇을 하고, 이몽룡을 하고, 16세 처녀를 사러 다니는 뱃사람 노릇을 했다. 선재가 생각하기에 판소리에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멋이 있었다. 그건 동요나 트로트와는 차원이 다른 멋이었다. 갓 쓰고 도포 입고 부채를 촤르르 펴며 노래할 때, 노래에 따라 울고 웃는 사람들의 호흡이 온몸으로 느껴질 때의 전율을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쪼그만 아이가 동요나 부르지 않고 사랑가와 이별가를 부른다고 염려하는 사람들은 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재는 판소리가 좋았다. 무엇보다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고 신비한 게 판소리의 세계였다.

 

 

 

트로트와 판소리의 세계, 지수와 선재 두 소년이 이뤄가는 조화 그리고 우정 

 

 

 

   『어쩌다, 트로트』는 삼대 째 판소리의 명맥을 잇고 있는 선재와 판소리 대신 트로트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지수의 우정과 성장을 담은 청소년 소설이다. 일찍이 요절한 명창 하동국의 아들인 지수는 남들보다 특별한 가수가 되려면 판소리부터 떼라는 엄마의 성화에 하는 수없이 ‘운경 소리공방’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판소리를 배우고 있는 선재를 만난다. 두 소년은 서로를 통해 비슷한 듯 서로 다른 트로트와 판소리의 세계에 대해 알아간다. 그러는 사이 지수는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트로트 무대에 올라서고, 선재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지수를 보며 자신 역시 판소리 대신 트로트라는 새로운 꿈에 도전하려는 꿈을 갖는다.

 

 

 

“난 트로트 부를 때 기분이 좋아. 경쾌한 노래, 슬픈 노래 다 좋아. 좀 우울할 때, 기분이 엿 같은 때 혼자 코인 노래방 가서 목이 찢어져라 트로트를 불러. 트로트는 혼자 불러도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려 부르는 느낌이 들거든. 노래 부를 때만큼은 나는 왕따가 아니야.” / 63p

 

 

 

 

 

 

   최근 <미스터 트롯>를 포함한 각종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의 인기에 힘입어서일까. 『어쩌다, 트로트』는 청소년 소설에서 보기 드문 ‘트로트’라는 소재를 끌어 들여와 매우 흥미롭다. 트로트 신동이라 불리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어린 트로트 가수들을 모티브로 삼은만큼, 트로트에 얽힌 정서와 고유의 매력을 전달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반면 화려한 무대 이면에 트로트에 대한 불편한 인식 혹은 어린 트로트 가수를 이용하려는 방송 생태계의 고질적인 문제에 주목한 것 또한 눈길을 끈다. 소설의 다른 한 축인 ‘판소리’ 역시 마찬가지인데, 대중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는 우리 전통 문화의 현주소와 이에 얽힌 착잡한 심경이 여러 인물들을 통해 사실감 있게 그려져 있다.

 

 

 

“황제에게 벼슬을 받은 국창 하승백의 증손자가 술집 젓가락 장단에 놀아나는 뽕짝, 천박한 트로트를 부르다니. 박 선생님, 어떻게 외아들을 이렇게 키우셨습니까? 동국이가 살아 있다면……. 정말 기가 막히네요. 섭섭합니다.” / 50p

 

 

일단 뜨자. 주변 돈을 다 쓸어다 부어도 일단 뜨기만 하면 로또, 대박이다. 뜨면 갚는 건 순식간이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출연자뿐이 아니었다. 반말 반, 욕 반인 PD와 AD, 외주 카메라 팀, 음향 팀, 소품 팀, 조명 팀도 동조하는 것 같았다. 시청률 뜨면 모두 같이 몸값이 뜨고, 그러면…….

‘그러면? 계약 조건이 달라지겠지. 그런데 나는 왜 이 아사리판에 있을까? / 81p

 

 

“가벼운 것도 수준이 있지, 이건 소리판이 아니라 시장 바닥…….”

“쌤 말씀 아랑요. 무슨 마음인지도 알아요. 그렇지만 소리꾼은 추임새 넣어줄 구경꾼을 잃으면 소리를 놓아야 해요. 하동국 쌤을 잊으셨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무대가 더 없어요. 완창 네 시간, 앉아 있을 사람도 없어요. 판소리가 아무리 좋아도 다들 가버릴걸요? 아줌마, 아저씨, 노인들도 그렇고, 젊은 사람들은 더더욱 안 앉아 있어요.” / 102p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저평가되고 있는 트로트에 대한 인식, 전통문화는 전통 그대로 고수되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 것인가. 『어쩌다, 트로트』는 이러한 괴리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두 소년의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우리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무엇보다 묵묵히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지수와 새로운 꿈을 향해 발을 내딛으려는 선재를 통해 내가 품고 있는 꿈은 무엇인지, 청소년 독자들이 꼭 확인해보기를 응원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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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의 디테일 - 위대한 변화를 만드는 사소한 행동 설계
BJ 포그 지음, 김미정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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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행동에서 시작하는 위대한 습관의 완성!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나는 분명 달라져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의 많은 경험들이 단절되고 연초에 세운 계획 역시 많이 축소된 한 해였다. 어린 두 아이를 키우다보니 외부 활동보다는 대부분 집안에서의 활동으로 대체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만한 여지가 충분치 않았다. 그래도 주어진 여건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해보기는 했다. 이를 테면 홈트 영상 3개 챙겨보며 운동하기, 집 근처에 있는 산에 꾸준히 오르기, 하루 한 끼 탄수화물을 줄인 식단 챙기기, 오후 6시 전에 저녁 식사 마치기, 잠들기 전에 딱 한 권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 등이다. 비록 모든 것을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잘 지켜왔고, 특히나 몸무게를 11kg나 감량한 것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눈에 띄는 큰 변화라 할 만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최근에 들어서 다소 의지가 누그러들었다. 몸무게 감량의 경우 생각했던 목표치를 넘어선 데다 더 이상 눈에 띄게 감소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남편의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서 정기적이었던 산행마저 자주 거를 수밖에 없는 외부적인 요인도 있었다. 몇 번이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았지만 처음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할 때의 의지는 좀처럼 다시 솟구치지 않았다. 이러다가 또 실패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새해가 되면 다시 또 똑같은 도전을 거듭하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슬슬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사소한 행동 설계가 위대한 변화를 이끈다면

 

 

 

   행동과학자이자 『습관의 디테일』의 저자 BJ 포그는 첫 장에서부터 “어제 또 폭음을 하고 말았어. 나는 틀려먹었어.” “또 늦잠을 잤어. 나는 왜 이리 게으를까” “또 운동을 빼먹었어. 나는 의지가 너무 약해.” 라고 자신을 탓하는 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부터 ‘내 탓하기’는 그만두라고 조언한다. 분명히 말하는데, 당신 탓이 아니라고 말이다. 우리가 변화에 실패하는 원인은 ‘내’가 아니라 ‘접근 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격상의 결함이 아니라 설계상의 결함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20여 년간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한 저자는 다음과 같은 포그행동모형을 통해 우리가 왜 그동안 실패를 거듭했던 것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B = MAP

행동이 발생하려면 동기와 능력과 자극이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 31p

 

 

 

   행동은 MAP, 즉 동기(Motivation), 능력(Ability), 자극(Prompt)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작용할 때 일어난다고 한다. 동기는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하는 ‘욕구’다. 능력은 그 행동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이고, 자극은 그 행동을 하라는 ‘신호’다. 그런데 이 세 요소 중 하나라도 충분하지 않다면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책에서는 매일 운동을 하기로 했던 케이티가 침대에서 휴대전화를 하느라 운동을 빼먹기 일쑤라며 고민하는 사례가 나온다. 그녀의 사례를 행동모형에 따라 분석해보면 운동 시간을 알리는 휴대폰 알림이 울림으로써(동기), 휴대폰을 만지게 되고(능력-하기 쉬움), 매일 일정한 시간에 휴대폰 알림이 또 울리게 되는(자극) 일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휴대전화를 과다 사용하게 되는 행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일어나자마자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시간을 확인하고(동기), 앱 하나만 누르면 되는 손쉬운 행동으로 인해 밤사이 올라온 SNS 게시물을 확인하며(능력), 각종 광고 및 메시지 알람으로 인해 휴대폰은 수시로 울려댄다(자극). 이렇게 휴대폰을 사용하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휴대폰 보느라 낭비한 시간을 아까워하며 푸념하는 일은 이제 당연한 일과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에 저자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시도해볼 것을 권한다.

 

 

 

1순위, 자극_ 어떤 행동을 하게 할 자극이 있는지 확인하라.

2순위, 능력_ 행위자에게 행동을 할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라.

3순위, 동기_ 행위자가 행동을 하도록 동기 부여가 되는지 확인하라. / 51p

 

 

 

  케이티를 비롯한 나의 경우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저자는 높은 수준의 동기를 변화시키기보다 자극과 능력을 바꾸는 방법들이 좀 더 현실적이고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한다. 즉, 휴대전화에 설치한 앱 제거하기, 휴대전화를 침대 맞은 편 책상에 두거나 주방에 두는 등 물리적인 거리 두기의 방법으로 사용을 어렵게 만들고, 휴대전화 대신 시계로 알람을 맞추어 자극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러자 케이티의 경우 휴대전화라는 방해 요인이 없어지자 계획대로 운동이 실행되었다. 이와 같은 방법은 나에게도 종종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 충전기를 다른 방에 둠으로써 충전을 하는 동안만이라도 휴대폰 사용을 하지 않게 되고, 일정 시간 뒤에는 알림을 꺼둠으로써 자극을 제거했더니 혹시나 메시지 같은 게 온 게 없을까 만지작거렸던 휴대폰 사용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틈틈이 기분 전환삼아 하곤 했던 게임도 아예 지워버렸다. 이렇게 휴대전화 과다 사용과 같이 나쁜 습관을 줄이거나 반대로 좋은 습관을 정착시키는 과정에 있어서도 동기, 능력, 자극의 요소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보다 더 쉽고 빠르게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듯하다.

 

 

 

동기만으로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오로지 동기 수준만 높여서는 목표와 열망을 달성할 수 없다. 동기는 행동 모형의 세 요소 중에서 가장 예측할 수 없고 신뢰할 수 없는 요소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동기에만 집중한다. 이는 단기적으로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동기만으로는 지속적인 변화를 이룰 수 없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지속적으로 동기를 높게 유지하거나 동기를 확실히 조작하지 못한다면 장기적 변화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방법은 없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동기의 변덕은 성격적 결함이 아니다. 동기의 변덕에 의지하지 말고 피해가야 한다. / 75p

 

 

꾸준히 습관을 지키고 싶다면 B=MAP 모형에서 능력을 조정해야 한다. 능력은 조정하기 쉬운 요소이다. 하기 버거운 행동이라면 하기 쉽게 쪼개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기의 강도는 바뀌지만 능력은 새로운 습관을 반복할수록 강화된다. 그리고 능력의 강화는 습관을 뿌리내리게 한다. / 112p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는 이루고 싶은 변화가 크건 작건 출발점은 아주 작은 행동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습관을 설계할 때는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때 지속가능성의 핵심을 이끄는 것은 ‘단순함’이다. 즉, 하기 버거운 행동이라면 하기 쉽게 쪼개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기의 강도는 바뀌지만 능력은 새로운 습관을 반복할수록 강화된다. 그리고 능력의 강화는 습관을 뿌리내리게 한다. 쉽게 말해 일반적으로 행동은 반복될 때 더 쉬워진다. 예를 들어 매일 책 읽기를 습관으로 삼고 싶다면 일단 책을 펴고 한 단락 읽기를 해본다. 물 마시기를 습관으로 들이고 싶다면 가반에 물병을 넣어 다니고 물병 안의 물 전체가 아닌 한 모금 마시기부터 해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책에서 소개하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앵커 설정’이다. 앵커 설정이란 작은 행동(새로운 습관)을 실행하도록 상기시킬 생활 속 기존 일과를 말한다. 만약, 팔굽혀펴기를 하고 싶은 이의 경우 ‘소변을 본’ 후에(앵커 설정) ‘팔굽혀펴기를 2회’(작은 행동)를 할 것이라고 설정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방법은 나에게 그 어떤 방법들보다 주효했다. 나의 경우 ‘화장실을 다녀온’ 후에(앵커 설정) ‘물 한 잔 마시기’(작은 행동)를 통해 물을 자주 마시는 습관들이기를 시작했다. 평소 물을 잘 마시지 않는 편인 나는 어떤 이유로든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하면 물 한 잔 마시기를 했더니 평소보다 많은 양의 물을 섭취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물 한 잔 마신’ 후에(앵커 설정) ‘스쿼트 5개 하기’(작은 행동)까지 추가로 했더니 평소에 하기 싫어서 거르기만 했던 스쿼트를 저절로 하게 되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었다.

 

 

“성공은 성공으로 이어진다.” 너무도 유명한 이 말은 나도 연구를 통해 수없이 확인한 사실이다. 하지만 놀랄 만한 일은 따로 있다. 성공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설령 아주 작은 성공이라도 이뤄낸다면 곧바로 자신감이 커지고 다시 유사한 도전을 하려는 동기가 높아진다. 이를 성공 모멘텀이라고 부르자. 성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작은 습관 기르기에서는 작은 성공의 신속한 달성을 목표로 한다. / 228p

 

 

● 작은 습관 이상을 하려고 자신을 압박하지 말라. 아프거나, 피곤하거나, 그냥 기분이 내키지 않을 때는 그 습관을 최소한으로 축소하라. 그 이상을 원하면 언제든 기대치를 높일 수 있고, 필요할 때는 최소한도로 기대치를 낮출 수 있다. 융통성도 이 기술의 일부다. / 244p

 

 

 

 

 

 

 

  이 외에도 책에서는 하고 싶은 습관을 선택하고 조정하는 행동 크래프팅 기술 훈련법, 뇌에 습관을 각인시키기 위해 즉시 ‘축하’함으로써 내면에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마인드세트 기술법 등 일상의 작은 습관들이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 행동 설계법들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저자는 행동 설계가 단순히 5킬로그램 체중 감량이나 저녁 식사 중에는 휴대 전화 내려놓게 하기 위한 게 아니라, 마치 ‘나비효과’처럼 우리가 설계하는 습관 하나하나, 우리가 축하하는 작은 성공 하나하나, 우리가 이룬 변화 하나하나가 개인적 삶을 넘어서 퍼져나간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에서 오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행동 설계는 우리가 지향하는 사람이 되고 우리가 더불어 살고 싶은 가족, 팀, 공동체, 세상을 만들어가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내가 세운 사소한 계획 하나가 결코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그 생각으로 조금 더 최선을 다해보는 건 어떨까. 이제 2020년을 마무리 하고 새로운 새해를 맞이할 즈음이 다가왔다. 오늘도 계획 세우기와 실패를 거듭하며 현재의 내 모습과 내가 되고 싶은 모습 사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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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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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상징체계로 쌓아올린 좀 더 심오한 형태의 스릴러!

『태고의 시간들』에 이어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왜 올가 토카르추크를 노벨문학상에 선정한 것인지를 충분히 설명하게 한다!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크워츠코 계곡의 어느 산골 마을. 눈이 잔뜩 내린 추운 겨울밤, 누군가가 두셰이코의 문을 두드린다. 과격하고 불길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두셰이코는 몇 안 되는 이웃 중의 한 명인 ‘괴짜’를 통해 ‘왕발’이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이곳 산골 마을에 사계절 내내 거주하는 사람이라고는 두셰이코 자신과 괴짜 그리고 왕발 뿐, 나머지 주민들은 추위를 피해 10월에 이미 대문을 걸어 잠그고 도시로 돌아가고 없는 상태라 두셰이코는 별도리 없이 왕발의 오두막으로 향한다. 왕발은 마치 몸이 스스로와 결투를 벌이다가 장렬히 나자빠진 것처럼 기괴한 자세를 하고서 누워 있었는데, 퉁퉁 부어오른 혓바닥 아래에서 질식사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날카로운 뼛조각이 발견된다. 불에 탄 동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구이용 프라이팬, 동물의 잔해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마룻바닥 그리고 말끔하게 절단된 사슴 머리. 왕발의 시체만큼이나 끔찍한 그의 집을 둘러보던 두셰이코는 문득 이곳으로 오는 길에 마주쳤던 야광 빛 연녹색 눈동자 사슴 두 쌍을 떠올린다.

 

 

 

숲속 여기저기를 헤매는 들사슴은

인간의 영혼에 불안을 안긴다.

-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전조」 중에서 / 119p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의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폴란드의 어느 산골 마을에서 일어난 한 남자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슴을 포획해 잡아먹다 목에 뼛조각이 걸려 질식한 것으로 보이는 남자의 죽음은 그렇게 단순하게 마무리되는 듯하지만 이를 시작으로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미스터리한 사건에 그나마 단 하나의 실마리가 있다면, 살해된 피해자들의 주변으로 빙 돌아가며 남겨져 있는 사슴 발자국뿐이다. 오직 두셰이코만이 이 미스터리한 죽음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동물이 인간에게 복수를 하는 거야. (…) 동물들은 강하고 지혜로워. 그들이 얼마나 영리한지 우리가 모를 뿐이지.”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왕발의 죽음이 어쩌면 좋은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를 혼란스러운 삶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었으니까.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을 그의 해코지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으니까. 그렇다, 갑자기 나는 죽음이 살균제나 진공청소기와 마찬가지로 정의롭고 유익한 것임을 깨달았다. 고백하건대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18p

 

 

이 오두막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실감이 나기 시작하면서 공포가 서서히 엄습했다. 왕발은 덫으로 사슴을 포획한 뒤, 도살해서 구워 먹었다. 한밤중에 고요와 침묵 속에서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하늘에서는 벼락도 치지 않았다. 그 어떤 손길도 죽음으로 인도한 적은 없지만, 결국 악마는 처벌을 받았다. / 28p

 

 

 

 

 

 

   그도 그럴 것이 두셰이코는 이 마을 안에서 인간이 동물에게 가하는 무자비한 행동에 줄곧 분노하곤 했다. 숲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니면서 버젓이 밀렵을 해대는 사냥꾼과 마을 사람들, 사망자가 발생한 장소 근처에서 무도회를 여는 그물버섯 채집 협회, 사냥꾼은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인 자연을 보살피는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라 옹호하는 신부, 모피 암거래를 위해 여우를 키우는 농장까지. 두셰이코를 둘러싼 공동체들은 불의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법의 테두리’라는 그들만의 논리 안에서 끊임없이 동물들이 죽어나가는 광경을 지켜보며 깊은 회환과 절망에 빠진 두셰이코는 총을 든 사냥꾼들 앞에서 거칠게 항의하고, 경찰에 거듭 호소하거나 교회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신부를 질타해보기도 하지만 어느 미친 노파의 헛소리로 취급될 뿐이다.

 

 

 

먹먹한 슬픔과 비탄. 매번 동물이 죽을 때마다 느껴지는 이러한 회환과 애도의 감정은 아마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나의 애도가 끝나면, 또 다른 애도가 이어지므로 나는 끊임없이 상중이다. 이것이 나의 상태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눈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차갑고 뻣뻣한 어른 멧돼지의 털을 계속 쓰다듬었다. / 148p

 

 

“동물들은 정의감이 매우 강하거든요. 내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아니면 부당하게 꾸짖거나 약속을 어길 때마다 나를 바라보던 그 애들의 눈빛이 기억나요. 내가 도대체 왜 신성한 법칙을 어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지독히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곤 했죠. 그 애들은 내게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정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덧붙였다. “우리에겐 ‘세상을 보는 관점’이 있지만, 동물들에게는 ‘세상을 느끼는 감각’이 있답니다. 아시겠어요?” / 281p

 

 

“그거 아세요? 우리가 때로는 스스로 창조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무엇이 나쁜지 좋은지도 직접 정하고, 자신을 위해 의미의 지도를 손수 그리면서요. 그러고 나서는 자신이 고안해 낸 뭔가를 쟁취하려고 평생을 아등바등 살아갑니다. 문제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버전을 갖고 있어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거죠.” / 309p

 

 

 

   이처럼 소설의 전반부가 한 마을에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에 의해 이야기가 촉발되었다면, 중후반부는 인간의 잔혹성을 고발하고 분노하며 홀로 외로운 투쟁을 이어가는 두셰이코의 의식에 기대어 전개된다. 때문에 독자들은 이제까지 보았던 여느 스릴러처럼 범인이 누구이고 살인의 동기가 무엇인지 그 과정을 쫓아가는 양상이 아닌 독특한 상징체계로 쌓아올린 좀 더 심오한 형태의 스릴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별과 행성의 위치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인과 관계와 명맥하게 일치한다고 믿는 범우주론적인 관점의 점성학, 사건의 단서이자 복선의 구실을 하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철학,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지대를 배경으로 한 지형적 특성, 인간과 동물 혹은 생태 전체에 관한 모럴리티를 다룬 주제 의식은 올가 토카르추크만의 남다른 소설적 지형도를 완성한다. 그런 의미에서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태고의 시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좋은 소설이란 그 외피가 스릴러이든 로맨스이든 상관없이 세상을 향해 지혜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던 작가의 신념이 잘 반영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노는 정신을 명료하고 날카롭게 만들고, 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다른 감정을 모두 휩쓸어 버리고 몸을 통제한다. 분노는 분명 모든 지혜의 근원이다. 왜냐하면 분노에는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 30p

 

 

그러려면 우리는 자신의 눈과 귀를 활짝 열어 두어야 하며, 사실과 일치시키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대목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하며, 어떤 사건이 다양한 층위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많은 사건이 실은 단일 사건의 여러 측면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은 거대한 그물이며, 그 어떤 사물도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하나의 전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세상의 미세한 조각들은 평범한 사고방식으로는 꿰뚫기 어려운, 복잡한 연결망의 우주에 의해 나머지 다른 조각들과 견고하게 묶여 있다. 그렇게 세상은 작동한다. / 87p

 

 

“고통받는 사람은 신의 뒷모습을 본다.”

나는 여기서 뒷모습이란 게 등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엉덩이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신의 앞모습조차 상상하기 힘든데 뒷모습은 과연 어떨까. 어쩌면 이 말은 고통받는 사람은 일종의 쪽문과도 같은 특별한 창구를 통해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축복을 받으며, 고통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진리를 포착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보면 건강한 사람이란 결국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삶의 조화와 균형이 맞춰지는 법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165p

 

 

 

 

 

 

   첨부하여 더 하고 싶은 말은 남아 있지만 소설의 결말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어서 여기서 줄여야 할 듯하다. 충격적이고도 다소 호불호가 갈릴 듯한 결말에 대한 해석은 모든 독자들의 몫일 테니까. 다만,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던 저 외침과 실존적 투쟁이라는 당위성 안에서도 발견되는 인간의 이중성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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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특별판)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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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영이 있는 한 이 세계는 어쩐지 아름다울 것 같다!

말랑말랑하지만 견고한 정세랑의 언어는 늘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 학교에는 아무래도 뭔가가 있다. 출근 첫날부터 느낄 수 있었다. 안은영은 유감스럽게도 평범한 보건교사가 아니었다. 은영의 핸드백 속에는 항상 비비탄 총과, 무지개 색 늘어나는 깔때기형 장난감 칼이 들어 있다. 어째서 멀쩡한 30대 여성이 이런 걸 매일 가지고 다녀야 하나 속이 상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은 멀쩡하지 않아서겠지. 안은영, 친구들에게는 늘 ‘아는 형’이라고 놀림받는 소탈한 성격의 사립 M고 보건교사, 그녀에겐 이른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그것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 18p

 

 

 

  엑토플라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미세하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입자들의 응집체들을 안은영은 볼 줄 아는 아니 그것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일종의 미색 젤리 같은 이 응집체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무지개빛 플라스틱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 그리고 은영 본인의 기운이 필요하다. 비비탄 총은 하루에 스물두 발, 플라스틱 칼은 15분 정도. 여기에 이집트산 앙크 십자가와 터키의 이블 아이 혹은 바티칸의 묵주와 부석사의 염주 같은 영험한 것들의 힘을 빌리면 스물여덟 발에서 19분까지 늘일 수 있다. 가운 안, 허리 뒤쪽으로 비비탄 총과 장난감 칼을 꽂고 다니는 30대 여성의 보건교사라니. 어쩐지 내막을 안다 해도 그건 꽤나 엉뚱해 보이고, 내막을 모르면 더더욱 수상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2학년 1반의 담임이자 한문 과목을 가르치는 홍인표에게도 안은영은 어딘지 미덥지 않아 보이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이상한 여자 경보기’를 울리게 한다. 평소 교무실과는 데면데면했던 은영이 대뜸 그를 찾아와 자신의 반 학생인 승권이가 뭔가에 물린 것 같다며 조퇴시켜야겠다고 하자 난색을 표한다. 사실 인표는 M고의 설립자인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교직을 택했지만 이 학교에선 해마다 자살을 선택하는 아이가 생겼고, 각종 사고와 비행의 빈도 역시 상당히 심각해서 상당히 난감해하던 중이었다. 때문에 자신의 반 학생이 어딘가 나빠 보였다는 은영의 말에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직접 승권을 찾아나선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인표는 승권을 찾아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만 하면 되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고 여겼던 게 틀림없다. 학교 지하실에, 할아버지 때부터 지하층 입구를 동여매고 있는 쇠사슬 저 너머에 사특한 기운을 품고 있는 어떤 존재가 아이들을 헤치려 하고 있는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안은영의 눈에만 보이는 지독한 사념의 유기체들이어서 마침 지하실을 살펴보던 은영을 따라 우연히 지하실로 들어간 인표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봉인되어 왔던 뜻밖의 미스터리를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지하 깊숙한 곳에서 몸을 잔뜩 부풀린 존재가 인표로 인해 봉인 해제되고, 학교는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일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그 사이로, 우리의 보건교사 안은영이 무지개빛 플라스틱 칼과 비비탄 총을 든 채 스타킹 발을 하고서 학교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복도를 내달리기 시작한다.

 

 

 

“이 못생긴 새끼, 죽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 43p

 

 

 

 

 

보건교사 안은영은 내 친구

 

 

 

   『보건교사 안은영』은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줄 아는 M고 보건교사 안은영이 한문 교사 홍인표와 함께 학교에 깃든 미스터리를 해결해나가는 일종의 판타지 소설이다. 안은영은 주말이면 남산 타워에 가서 연인들이 채워 놓은 자물쇠로부터 사랑의 힘을, 명승지나 절 탑에서는 소원의 힘을 에너지로 삼아 소모되는 기운을 충전하고 때로는 욕도 서슴지 않지만, 자신이 필요한 곳이면 통굽 슬리퍼를 벗어던진 채 스타킹이 찢어지도록 뛰어다닌다. 뭐 이렇게 명랑한 러브젤리매직파워판타지히어로가 다 있는지. 죽은 자의 영혼을 보거나 퇴마사를 소재로 한 장르물은 많이 봐왔지만 플라스틱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을 든, 그것도 누구도 쉽게 주목하지 않는 보건교사가 히어로로 등장하는 작품은 처음이 아닐까. 다소 유치해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쿨하고 발랄한 영웅의 등장은 이제껏 우리가 기다려왔던 여성 캐릭터를 드디어 만난 것 같은 가슴 벅찬 느낌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세계의 단단한 부분을 밟고 살아간다면 자신은 발이 빠지는 가장자리를 걸어야 함을 슬슬 깨달아 가던 중이었다. 그리하여 완전히 아이처럼 보였던 정현이 점점 젤리처럼 보였다. / 51p

 

 

은영은 다른 종류의 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어느새부터인가는 보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 123p

 

 

 

 

 

 

 

 

   왜 정세랑은 학교를 배경으로, 하필이면 보건교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학교의 그 수많은 선생님들 중에서 보건교사(나 때는 양호실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건실은 학생들이 자주 오가는 교실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특별히 아픈 일이 없으면 보건교사와 얼굴을 마주할 일도 없다. 심지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에서는 보건실이 복도 끝의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해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보건실은, 보건교사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지만 늘 그곳에 머물러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세랑은 어떤 교리나 이념에 좌우되지 않고 오로지 학생들의 안전과 안녕을 우선으로 살펴봐줄 수 있는 한결 같은 존재에게서, 그들의 사소해 보이는 친절에서 영웅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들여다본 게 아닐까. 우리가 자라던 시절에 사랑과 정의의 힘으로 우리의 자아를 수호해주었던 세일러문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가장 여린 존재들을 지켜줄 안은영이 지금 이곳에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정세랑은 그걸 믿게 해준다. “아뇨, 햇빛과 아이들은 우리 편이에요.”라고 말할 줄 아는 안은영이 있는 세계, 선한 사람이 지닌 힘을 믿는 세계. 우리는 이미, 그 세계를 살고 있다고.

 

 

 

은영은 핸드백 속의 비비탄 총과 깔때기 칼을 생각했다. 정현이 아파했더라면, 혹 정현이 한 사람에게라도 해를 끼쳤다면 예전에 정현을 분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현은 너무나 무해했다. 격하게 몸부림치며 부서지는 죽음도 있는가 하면 정현처럼 비누장미같이 오래 거기 있는 죽음도 있는 것이다. / 53p

 

 

은영은 문득 크레인 사고 뉴스를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 되짚어 보았다. 어째서 그렇게 크고 무거운 기계가 중심을 잃고 부러지고 휘어지고 떨어뜨리고 덮치는 일이 흔하단 말인가. 새삼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이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비싸서 그래. 사람보다 크레인이. 그래서 낡은 크레인을 계속 쓰는 거야. 검사를 하긴 하는데 무조건 통과더라. / 195p

 

 

- 칙칙해지지 마, 무슨 일이 생겨도. / 198p

 

 

 

 

 

  끝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드라마는 소설과 분위기가 비슷한 듯 다른 결을 띄고 있어서 상당히 흥미롭다. 소설이 발랄하고 명랑한 느낌이라면 드라마는 좀 더 미스터리한 장르적 성격에 충실한 느낌이다. 고무적인 것은 소설에서 설명되지 않는 혹은 너무 가볍게 흘러간 듯한 요소들을 드라마에서는 좀 더 설득력 있는 형태로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안은영의 고뇌와 성장에 보다 집중한 부분이 그러하다. 인영과 인표와의 관계가 급하게 수습된 듯한 소설의 마무리 역시 드라마에서는 시간을 두고 풀어갈 듯하여 좀 더 탄탄한 그림을 기대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상 작품은 대체로 만족을 하지 못하는 편인데, 이번 작품의 경우는 어느 한쪽이 기운다기보다 각자의 언어를 활용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다만 영상을 보기 전에 소설을 꼭 먼저 읽어보시기를, 보다 안은영 다운 힘을 소설에서 먼저 느껴보시길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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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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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쇄락이 삼켜버린 것들, 그 자리에 폐허처럼 남겨진 사람들!

배반된 신념, 순응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마는 자본주의 논리의 비정함에 이내 숨이 막힌다!

 

 

 

   무주는 이석에게 거듭 묻는다. 병원이 왜 좋으냐고. 병원에 오면 다 아픈 사람인데 나는 아픈 데 없이 멀쩡하니 좋고, 남들은 병원에 돈 쓰러 오는데 나는 돈 벌러 오니까 좋고, 가끔 빈 침대에서 낮잠도 잘 수 있고 아프면 공짜로 약도 주니 좋고……. 그러다 이석이 “병원이 좋은 게 아니고 집이 싫다”고 헤벌쭉 웃는 것으로 이 쓸데없어 보이는 듯한 문답을 끝낸다. 누구보다 빨리 병원으로 출근해 회진하는 의사보다 더 자주 병동을 돌며 환자와 인사하고, 간호사나 동료에게 자주 농담을 걸고 허튼소리도 하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성실하고 늘 철저한 사람, 이석은 선도병원 내에서 가장 평판이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비록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끄는 소리가 묘하게 신경이 거슬리고, 한번 당한 일은 잊지 않고 손해 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며 부당한 일을 겪으면 반드시 되갚아주는 섬뜩한 면모도 지니고 있지만, 작은 월급으로 아픈 아이의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가장이라는 점은 그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하다. 무엇보다 무주로서는 서울에서 낯선 이인시로 내려와 선도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 막역한 우정과 베풀어준 이석에게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가, 그런 이석의 비리를 고발해야만 하는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은 지방의 한 종합병원을 배경으로, 철저한 자본주의의 논리 안에서 윤리적인 인간으로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비애로부터 출발한다.

 

 

 

정의와 공존, 그 불완전성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신과 율법을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자부했으나 예수는 그들을 ‘위선자들’이라 꾸짖었다. 무주는 자신이 꼭 바리새인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예수를 죽임으로써 더 높고 훌륭한 인간이 되려 했던 바리새인처럼, 스스로 ‘어떤 공명심과 정의감에 홀린 건지 무지의 장막 아래에서 싸구려 도덕심에 고취’되어 이석을 고발한 것에 대해 수시로 저항감을 느낀다. 거의 모든 구매 건에서 이석의 리베이트를 찾아낸 무주는 한때 자신이 태연히 저질렀던 비리와 관행으로 인해 지방 병원으로 내쳐진 과거의 자신과 완전히 결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겼던 게 분명하다. 이제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날 아이를 생각하면 떳떳한 아빠이고 싶고, 이석을 감싸느라 알고도 모른 체하면 공모자 취급을 받거나 부주의하고 태만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테니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의 병원비 때문에 이석이 어쩔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닐까, 고작해야 몇 개월 감봉이나 경고 조치가 내려질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이석이 사직 처리되자 그만 자책감이 들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무주는 완벽하게 좌우대칭이 맞는 세계, 균형이 잡힌 세계란 없다고 생각해왔다. 모든 것은 비뚤어져 있고 기울어져 있기 마련이라고. 그런 점에서 세계는 애초 구나 정육면체처럼 정확하고 완벽한 형상이 아니라 오히려 트램펄린 같은 것이었다. 똑바로 서면 균형을 잃는 곳, 균형을 유지하려면 비틀거리거나 한쪽 발을 구부리고 팔을 뻗어야 하는 곳, 뒤뚱거려야만 가까스로 설 수 있는 곳 말이다. 그런 세계이므로 균형을 잃은 태도를 오히려 균형 잡힌 태도로 여겼다. / 40p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무주는 자신이 이석을 고발한 사실이 병원 내에 이미 파다하게 퍼져 있음을 알게 된다. 직원들은 이석이 저지른 비리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이석이 아닌 무주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제 원칙주의자라는 그간의 평을 오히려 비아냥거리로 삼거나 조롱하고 경멸하는 눈빛을 숨기지 않는다.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무주는 더 이상 이석을 향한 미안한 마음은커녕 이석을 대신해 자신이 비난을 받는 상황이 도무지 참기 힘들어 충동적으로 사무장이 지시한 일이라 말해버리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석의 아이가 죽었다는 소문까지 겹쳐져 직원들은 더욱 냉랭한 태도를 취할 뿐이다. 결국 이 일을 계기로 무주는 야간 근무자로 보직에서 밀려나고, 아이마저 유산이 되어 아내와의 관계 또한 멀어지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 믿음직한 남편이자 아빠 그리고 성실한 직원으로 인정받고자 했던 무주의 바람은 상명하복의 질서와 경쟁주의로 점철된 자본주의의 조직 문화 속에서 철저히 매도된다. 때문에 개원 예정인 요양시설의 본부장으로 복귀하게 된 이석이 무주와의 대화 속에서 『나태복음』 8장의 구절을 인용하는 장면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마태복음』 8장에 이런 구절이 있어.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서 계속 곱씹었어. 예수는 인자하고 자비롭다면서 죽은 사람한테 왜 이러나, 사람이 죽었는지 이렇게 야박해도 되나…… 이해할 수 없었지. 한참 새기니까 조금 알 것도 같더라고.”

“무슨 뜻인데요?”

“영혼이 죽은 자는 내게 필요 없다, 불신자는 불신자에게 가고 믿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나를 따르는 건 믿는 자로 충분하다는 뜻이려나.” / 140p

 

 

 

 

 

  잘못된 관행과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한 조직일지라도 조직에 성실하고 순응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비정한 논리. 양심의 가책보다 조직에서 배제되는 것이 더욱 공포스러운 현실 앞에서 무주가 병원의 영업 방식에 순응하며 끝내 병원비가 체납된 환자를 병실 밖으로 끌어내는 장면은 우리가 얼마나 이 완고한 논리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기어코 확인하게 한다. 어쩌면 그것은 소설의 배경인 병원이라는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 생명의 보존이라는 숭고한 가치마저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내쳐질 수도 있는 이분법적인 공간, 환자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자본주의의 생존적 논리 앞에서 공존이란 의미는 그저 공허하게 느껴질 뿐이다.

 

 

 

이 일로 무주는 병원이 걱정하는 게 환자는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병원이 바라는 건 병상이 비지 않는 것이지, 환자의 완치가 아니었다. / 69p

 

관행만큼 편하고 안전한 건 없었다. 문제가 불거지면 ‘관행’이 비난받을 것이었다. 자신 말고도 그렇게 한 선배와 지시를 내린 과장이 곁에 있다고 생각하면 다소 편해졌다. 장부에서 부풀린 수많은 돈 중 자신이 직접 주머니에 챙겨 넣은 돈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더욱 마음을 놓았다. / 75p

 

 

“그렇지만 거미줄이라고 해도 두 마리, 세 마리가 함께 있으면 안 됩니까? 왜 있잖아요, 공존. 여기서는 안 됩니까?”

“거미줄 하나에 거미 두 마리가 함께 있는 게 공존이 아니야. 그건 자연계를 무시한 처사지. 한 거미줄에 한 마리씩의 거미가 여러 개 늘어서 잇는 것, 그게 공존이야. 다른 거미줄을 넘보지 않는 상태가 공존인 거라고.” / 134p

 

 

 

 

 

 

   배반된 신념, 배제에 대한 불안, 순응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마는 자본주의 논리의 비정함을 이토록 잘 묘사한 작품이 또 있을까.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나는 병원, 이인시, 서울 그 어디에도 완전히 소속되지 못하고 떠도는 무주를 보며, 이것이야말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 가장 근원적인 공포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때문에 “병원에 영안실이 있으니까 귀신이 있다느니 어떻다느니 떠들어대지만 정작 무서운 건 귀신도 시체도 아닙니다. 사람이죠.”라던 효의 말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파고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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