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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트로트 ㅣ 특서 청소년문학 16
박재희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0월
평점 :

트로트와 판소리,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울리는 이들의 조화가 만들어낸 이야기!
어린애가 동요나 부르지 무슨 뽕짝이냐.
쪼그만 게 뭘 안다고 트로트야.
앞길이 뻔하다. 밤무대 가수나 되겠지.
슬픈 노래 부르지 마라, 애늙은이 같다. / 35p
아주 까마득한 옛날부터 환갑잔치 전문 가수인 엄마를 따라다니던 지수다. 엄마 손을 놓칠까 봐, 엄마가 어디로 가버릴까 봐, 마이크 잡고 노래하는 엄마의 한복치마 속에 숨어 있던 아이가 언제부턴가 엄마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롱으로, 다음에는 동요로, 어른들이 좋아하는 흘러간 옛날 노래로 자랑거리를 늘려갔다. 그렇게 엄마가 부르는 노래를 다 부를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트로트 신동이라 불렀다. 현인 선생님이 살아서 돌아오신 것 같다며 천재라고 치켜세워주는 사람들 앞에서 엄마는 입 안 가득 미소를 머금으며 말하곤 했다. “얘 아빠가 누군지 아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국창 하방울 선생님의 독자, 하 동 자, 국 자. 요절한 천재 명창 하동국! 놀라셨죠? 그러실 줄 알았다니까요, 호호.” 하고 웃어보였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아이가 무슨 뽕짝이냐며, 박수 치고 돈을 주면서도 사람들은 흉을 보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노래 부르는 동안만큼은 행복했다. 튀김 장수 아들도 아니고, 연립주택 아이도 아니고, 온전한 가수 하지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래 부르는 동안만큼은.
쪼그만 애가 송아지, 짝짜꿍이나 부르지 무슨 사랑가, 이별가를 부르냐.
어린애가 판소리를 하네. 너무 어려워서 어른도 10년은 공들여야 겨우 소리목을 얻는다는데.
청승맞은 소리 부르다가 앞길 막히면 어쩔래? / 96p
선재는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소리하는 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를 따라, 명창 조은필 선생님을 따라 다녔다. 어른들을 따라다니면서 흥부의 아들 노릇을 하고, 이몽룡을 하고, 16세 처녀를 사러 다니는 뱃사람 노릇을 했다. 선재가 생각하기에 판소리에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멋이 있었다. 그건 동요나 트로트와는 차원이 다른 멋이었다. 갓 쓰고 도포 입고 부채를 촤르르 펴며 노래할 때, 노래에 따라 울고 웃는 사람들의 호흡이 온몸으로 느껴질 때의 전율을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쪼그만 아이가 동요나 부르지 않고 사랑가와 이별가를 부른다고 염려하는 사람들은 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재는 판소리가 좋았다. 무엇보다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고 신비한 게 판소리의 세계였다.
트로트와 판소리의 세계, 지수와 선재 두 소년이 이뤄가는 조화 그리고 우정
『어쩌다, 트로트』는 삼대 째 판소리의 명맥을 잇고 있는 선재와 판소리 대신 트로트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지수의 우정과 성장을 담은 청소년 소설이다. 일찍이 요절한 명창 하동국의 아들인 지수는 남들보다 특별한 가수가 되려면 판소리부터 떼라는 엄마의 성화에 하는 수없이 ‘운경 소리공방’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판소리를 배우고 있는 선재를 만난다. 두 소년은 서로를 통해 비슷한 듯 서로 다른 트로트와 판소리의 세계에 대해 알아간다. 그러는 사이 지수는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트로트 무대에 올라서고, 선재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지수를 보며 자신 역시 판소리 대신 트로트라는 새로운 꿈에 도전하려는 꿈을 갖는다.
“난 트로트 부를 때 기분이 좋아. 경쾌한 노래, 슬픈 노래 다 좋아. 좀 우울할 때, 기분이 엿 같은 때 혼자 코인 노래방 가서 목이 찢어져라 트로트를 불러. 트로트는 혼자 불러도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려 부르는 느낌이 들거든. 노래 부를 때만큼은 나는 왕따가 아니야.” / 63p
최근 <미스터 트롯>를 포함한 각종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의 인기에 힘입어서일까. 『어쩌다, 트로트』는 청소년 소설에서 보기 드문 ‘트로트’라는 소재를 끌어 들여와 매우 흥미롭다. 트로트 신동이라 불리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어린 트로트 가수들을 모티브로 삼은만큼, 트로트에 얽힌 정서와 고유의 매력을 전달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반면 화려한 무대 이면에 트로트에 대한 불편한 인식 혹은 어린 트로트 가수를 이용하려는 방송 생태계의 고질적인 문제에 주목한 것 또한 눈길을 끈다. 소설의 다른 한 축인 ‘판소리’ 역시 마찬가지인데, 대중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는 우리 전통 문화의 현주소와 이에 얽힌 착잡한 심경이 여러 인물들을 통해 사실감 있게 그려져 있다.
“황제에게 벼슬을 받은 국창 하승백의 증손자가 술집 젓가락 장단에 놀아나는 뽕짝, 천박한 트로트를 부르다니. 박 선생님, 어떻게 외아들을 이렇게 키우셨습니까? 동국이가 살아 있다면……. 정말 기가 막히네요. 섭섭합니다.” / 50p
일단 뜨자. 주변 돈을 다 쓸어다 부어도 일단 뜨기만 하면 로또, 대박이다. 뜨면 갚는 건 순식간이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출연자뿐이 아니었다. 반말 반, 욕 반인 PD와 AD, 외주 카메라 팀, 음향 팀, 소품 팀, 조명 팀도 동조하는 것 같았다. 시청률 뜨면 모두 같이 몸값이 뜨고, 그러면…….
‘그러면? 계약 조건이 달라지겠지. 그런데 나는 왜 이 아사리판에 있을까? / 81p
“가벼운 것도 수준이 있지, 이건 소리판이 아니라 시장 바닥…….”
“쌤 말씀 아랑요. 무슨 마음인지도 알아요. 그렇지만 소리꾼은 추임새 넣어줄 구경꾼을 잃으면 소리를 놓아야 해요. 하동국 쌤을 잊으셨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무대가 더 없어요. 완창 네 시간, 앉아 있을 사람도 없어요. 판소리가 아무리 좋아도 다들 가버릴걸요? 아줌마, 아저씨, 노인들도 그렇고, 젊은 사람들은 더더욱 안 앉아 있어요.” / 102p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저평가되고 있는 트로트에 대한 인식, 전통문화는 전통 그대로 고수되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 것인가. 『어쩌다, 트로트』는 이러한 괴리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두 소년의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우리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무엇보다 묵묵히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지수와 새로운 꿈을 향해 발을 내딛으려는 선재를 통해 내가 품고 있는 꿈은 무엇인지, 청소년 독자들이 꼭 확인해보기를 응원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