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게 (반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나이 든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자신에 대한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지금, 여기' 있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

 

 

   집안의 어르신들을 만날 때마다 '옛날에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다~' 로 운을 떼어 '그 땐 정말 잘 나갔었는데' 하는 말로 회상에 잠기다가 이내 '이러지 말 걸, 저러지 말 걸, 이렇게 해 볼 걸' 하는 후회하는 말로 귀결되는 한탄의 소리를 매번 듣곤 한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다 지나간 이야기를 해서 뭐 하느냐고, 매번 하는 말 지겹지도 않느냐며 눙을 치기도 하지만 기력이 쇠해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이제는 더 이상 많지 않다는 생각에 빠져들면 들수록 과거의 젊음, 영광, 미처 해보지 못하는 것들에 미련이 생기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면 다 그런 것일까. 나 역시 해보지 못한 것들에 미련이 가득한 말들을 젊은 사람들 앞에서 늘어놓을까봐 벌써부터 마음이 씁쓸해진다.

 

 

 

   인간은 누구나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결국 몸이 변한다는 것이고 젊었을 때 '성장'으로 느꼈던 변화를 어느샌가 '쇠약해진 것'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 많은 사람이 노화를 실감하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서른 하고도 중반에 이른 나 역시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몸의 변화를 곧잘 실감하곤 한다. 몸뿐만이 아니다.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기가 생각만큼 여의치 않는 것을 느낀다. 내 개인의 생활보다 아이와 가족을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많아졌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건가, 동년배의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는 동시에 이런 탄식을 내뱉곤 한다.

 

 

 

나이가 든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나이 든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해야 할 것인가.'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진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자신의 저서 <마흔에게>를 통해 마흔이라는 문턱 앞에서 혹은 노년의 인생에 접어든 시점에서 겪게 되는 갖가지 고민과 해결책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조언한다. 특히 '아들러 심리학'과 '플라톤 철학'의 대가답게 그들이 남긴 철학이 비추는 삶의 지혜를 전하면서, 한탄하거나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자신과 어떻게 어울리며 살 것인지를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그는 예순 살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여전히 즐겁고 가슴 뛰는 경험이라고 고백한다. 중요한 것은 배움 앞에서 나이는 중요치 않다는 점이다. 필요한 것은 특별한 재능과 적성이 아니라 약간의 도전 정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새로운 기회 앞에서 '무리야', '못해'라고 말하며 주저하기를 반복한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불완전한 용기'로, 불완전한 자신을 미처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하지만 저자는 새로 시작한 일이니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잘하게 되는' 것의 첫걸음이라고 독려한다.

 

 

 

 

 

 

   특히 병에 걸리고 나이가 들어서 전처럼 일하지 못하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현실에 무기력해지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옛날에는 나도 잘 했는데, 나이가 드니 예전 같지 않구나' 하며 자신의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사람도 있다. 이는 어떤 순간이든 성과의 크기를 묻고 '생산성'을 기준으로만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가치를 오로지 생산성에서 찾지 말고 몇 살이 되어도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를 조언한다. 얼마 전에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 요리점을 운영한다는 취지의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치매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어떤 상태든 그들이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타자에게 공헌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뭔가 그럴 듯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더라도 도전하는 마음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에 자신의 마음을 쏟을 수 있다면 병에 걸린다는 게, 나이가 든다는 게 새로운 용기를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 대목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나에게 가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때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산성을 유일무이한 가치로 삼아온 사람은 일을 그만두면 나 자신에게 가치를 찾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퇴직하여 잃는 것은 소속이나 직책, 직위뿐입니다. 나이가 들어 이래저래 쇠약해졌다고 해도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가치를 있는 그래도 인정하고 '지금, 여기' 있는 나를 좋아한다." / 190p

 

 

 

 

   이렇듯 <마흔에게>는 인생에 있어서 내리막길이 가지는 의미와 그간의 경험으로 체득한 인생의 지혜가 빛을 발하는 노년의 즐거움을 전하면서 동시에 부모와 자식 간에 관계 앞에서 현명해지는 법도 함께 고민해본다. 개인적으로 어릴 때는 부모에게 한없이 받기만 했던 관계에서 이제는 내가 부모가 되고, 또 나의 부모의 노년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깊은 상태라 이 대목을 유독 관심 있게 읽은 것 같다. 여기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은 부모와 자식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즉, 타자에게 평가와 인정을 바라지 않고, 자신과 부모와의 과제를 명확히 구분하며, 부모와 자식은 자신의 이상과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아는 것이다. 특히 자식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적당한 거리가 매우 중요한 듯하다. 아이가 자신의 얘기를 하려고 할 때 부모의 기준에서 절대로 판단하거나 나서지 말 것, 멋대로 해석을 더하거나 상상으로 행간을 메우고 아는 것처럼 말하면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이는 말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이는 어떤 인간 관계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라고 느낄 때는 먼저 이야기를 도중에 끊지 않는 걸 알았을 때입니다.

(…) 그 다음은 판단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입니다. 이야기를 털어놓은 사람은 의견과 비평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치 있는 코멘트나 조언을 구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심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입니다. / 224p 

 

 

 

 

 

 

 

   다람쥐는 먹이가 되는 도토리를 발견하면 구멍을 파서 여기저기에 묻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다람쥐는 이내 자신이 도토리를 묻은 장소와 묻은 사실을 잊어버린다고 한다. 다람쥐가 있는 곳에 풀숲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다. 잊어버린 도토리가 싹을 틔우고 자라서 숲을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다람쥐의 습성을 통해 기시미 이치로는 '잊어버려도 괜찮다'고 말한다. '지금, 여기'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 풍요로운 숲을 만들고, 다음 세대의 양식이 되는 도토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과거를 생각하고 후회하거나, 미래를 생각하고 불안해질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마냥 걱정만 하고 주저앉아 있기보다 지금, 바로 여기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야 말로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꽤 마음이 넉넉해지는 기분이다. 이 책이 마흔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는 삶의 지혜를, 노년의 인생에 접어든 이들에게는 위안이자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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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요 - 그저 좋아서 떠났던 여행의 모든 순간
안혜연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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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느린 일상 같은 여행,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여행과 생활의 미묘한 경계에서 하루하루 쌓여가는 오늘과 내일의 이야기들!

 

 

 

   가만히 돌이켜보면 다양한 일정의 해외 패키지여행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혼자서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다. 거창한 여행지는 아니지만 어느 지역의 미술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면 그 지역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무작정 끊어 떠났고, 가보고 싶은 서점이 생기면 마찬가지로 부랴부랴 새벽부터 기차역으로 출발했던 시간들. 혼자였기에 어디를 가도 상관없었고, 무얼 먹어도 상관없었으며 이후의 일정은 아무래도 좋았던,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발견했을 때 다가오는 감동으로 몸을 떨기까지 추억들은 이상하게도 잊혀 지지 않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업무가 많아지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혼자 떠나는 여행은 더 이상 꿈꾸지 못할 일이란 생각이 든다. 하물며 이제는 운전도 할 수 있고 마음의 여유도 더 생긴 듯한 데도 선뜻 움직이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다 때가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많이 돌아다녀볼걸, 까짓것 그냥 부딪혀볼걸 하는 후회들이 더 진하게 밀려드는 요즘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뒤 당신은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닻줄을 풀고 안전한 항구에서 나와 항해를 시작하라.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라."

 

 

 

   때문에 <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요>를 읽으며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한 대목이 덜컥 마음을 붙든다. '떠나고 싶어지면 그냥 떠나라. 혼자여도 괜찮다. 떠나는 데 필요한 것은 용기나 돈이 아닌 포기다. 낯선 바람을 따라나서 보면 단번에 안다.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걸.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인생은 그럭저럭 잘 굴어간다는 걸. 내 눈으로 그걸 확인하기까지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던 너무도 당연한 이치.' 라던 저자의 독려까지도.

 

 

 

또 다른 일상으로 

 

 

   <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요>는 스스로를 작가의 탈을 쓴 백수라 칭하는 6년차 프리랜서 여행작가 안혜연의 여행에세이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두고 위태로운 길 위의 작가가 되기를 선택했던 그녀는 두둑한 통장 잔고보다 자유로운 공기에 취해 보내는 시간을 더 흡족해하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자신의 일상 같은 여행을, 여행 같은 일상을 가만가만 기록해두었다. 파리, 피렌체, 하노이, 방콕, 사막, 제주 등. 그녀가 머물거나 다녀온 곳들은 저마다 다채로운 색채와 감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글 안에서는 오늘의 하루를 다정히 채워주는 어떤 일상적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무언가를 보러 간다는 데 의미를 두기보다, 그곳에서의 공기를 한껏 들이켜고 그네들의 수수한 일상을 엿보고 그저 머물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특유의 느긋한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무언가를 보러 갈 때도 있다. 호기심이 일거나 어떤 장면을 보고 마음이 동할 때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보지 않아도 흡족한 게 여행이다. 왜 꼭 뭘 봐야 한다고 생각할까? 우두커니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홀짝이며 도란도란 수다 떠는 것도 여행이고 뒷짐 진 채 슬렁슬렁 마을 산책하는 것도 여행인데! 대단한 볼거리를 봐야 여행인가? 성산일출봉에 오르고 섭지코지를 거닐고 협재해수욕장에 몸 담그고 한라산 등반을 해야 여행다운 여행을 한 걸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남들이 다 보는 거 덜 보더라도 각자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리며 생기를 되찾았다면 그걸로 됐다. 맑은 공기 한껏 들이켜고 제주도민의 수수한 일상을 엿보고 그저 머물렀다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 40p

 

 

 

 

 

  산책길에 우연히 알게 된 베르갈랑 공원의 한적함, 파리의 재래시장에서 인심 좋은 콧수염 아저씨가 "치즈는 먹어봐야 안다"며 여러 가지 치즈를 맛보여주던 순간들, 오갈 데 없는 창작자들의 몸 뉠 곳을 마련해주는 예술가들의 안식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덩치에 비해 작아 보이는 목욕탕 의자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모닝커피를 즐기는 팔자 늘어진 호이안의 아저씨들, 커피 한 잔이 무려 10만 엔 즉 100만원을 호가하는 20년 숙성 커피를 차마 다 즐길 수 없어 2천 엔으로 겨우 한 숟가락 맛보는 웃지 못할 경험까지. 때로는 숙소에서 빈대의 습격을 당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노상방뇨를 해야 하는 낯부끄러운 일까지 겪어야하기도 했지만 여행을 하다 만난 수많은 인연들, 인도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짜이 한 잔이 주는 감동, 단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들의 대낮 같은 휴식이 주는 위안이 그녀를 계속해서 이끄는 것이리라.

 

 

여행하다 만난 이들 중에서는 마음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어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고 한낱 스쳐가는 바람처럼 지나가는 인연도 있다. 잡으려고 해서 잡히는 것도 아니고 피하려고 해서 피해지는 것도 아니더라. 인연은 그런 건가 보다. 이어질 사람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어지고 끊어질 사람은 끊어내지 않아도 매일매일 조금씩 멀어져가는 것.

길 위에서 만난 당신들, 잘 지내나요? / 174p

 

 

코끼리는 야생 동물이다. 상상해보라. 화가 치밀면 사람을 짓밟을 수도 있는 야성을 지닌 코끼리가 고분고분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고 몇 사람이 올라타도 내치지 않는 데 이르기까지 코끼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존중받아야 한다. 공정여행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좋다. 코끼리를 타지 않는 것, 동물학대로 이루어지는 공연에 눈길을 주지 않는 것. / 201p

 

 

 

 

 

 

   <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요>를 읽으며 '그 날, 그 순간이 참 행복했다'던 저자의 고백과 함께 스미는 가을바람이 내내 내 맘을 살랑살랑 간질이는 기분을 느꼈다. 따뜻한 햇살이 등살을 감싸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동안 어디론가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럼 이제 나의 일상은 안녕한지, 또 안녕하기 위해 나는 나에게 소소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어떤 여행 하나 정도는 선물해줄 수 있지 않을 런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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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게 산다는 것 - 불필요한 감정에 의연해지는 삶의 태도
양창순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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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나를 괴롭혀왔던 불필요한 감정으로부터 의연해지는 법이 필요한 때!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딱 그만큼만 살아도 충분한 삶을 위한 마음 솔루션!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사람, 아마도 상처를 받았겠지?', '가만히 있을 걸. 왜 나서서 일을 크게 만든 걸까'.

   잠자리에 들기 전, 나는 그날 있었던 일 중에 가장 후회되는 일이나 부끄러운 일이 있으면 내내 그것을 곱씹느라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한다. 분명 상대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지를 상상하느라 이불 속에서 내내 뒤척이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를 얼마나 빨리 털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고민들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으리라.

 

 

 

   <담백하게 산다는 것>의 저자 양창순 의학박사는 나처럼 실수했던 장면을 필름처럼 계속해서 되감으며 돌려보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나 또한 지독한 완벽주의자까지는 아니지만 그녀의 말처럼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고, 가벼운 실수에 대해 웃어넘길 수 있는 유연성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마음의 유연성이라고 하면 꽤나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생각의 폭을 한 마디만 넓혀 딱 그만큼만 더 여유를 갖자고 말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는 어느새 '담백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지나친 기대치를 내려놓을 때 담백한 삶은 더 가까워진다

 

 

   인간관계 심리학의 바이블로 정평이 난 베스트셀러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양창순 의학박사가 <담백하게 산다는 것>이란 제목의 책을 들고 찾아왔다. 저자가 책에서 밝히는 '담백'한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스트레스가 높을 때 우리의 뇌는 음식과 산소를 요구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에서 자극적이고 빨리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을 먹으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반면 마음이 편안할 때는 대체로 간이 덜하고 담백하면서도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찾게 된다. 따라서 담백함이란,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누리는 행복감일 수도 있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저자는 음식이든 인간관계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필요한 만큼만 절제한다면 많은 부분이 심플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때 몇 가지 매뉴얼만 생각하면 된다. 첫 번째는 열 사람을 만나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사실 한두 명이 고작이듯, 내가 만나는 열 명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모두 완벽하게 성공하길 바라기보다 실수와 단점에 대해 여유로워진다면 일도 인간관계도 더 담백해지리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만큼 내 이야기는 가능한 줄이고 절제하는 편이 좋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너무 애쓰며 살아가지 않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항상 자신을 몰아붙여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저자는 열정과 독선, 확신과 아집이 종이 한 장 차이이듯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과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은 비슷해 보여도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생각보다 불필요한 것들에 발목을 잡힌 채, 생각보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나를 포함한 그들을 보면서 '인간은 밖에서 자신을 괴롭히지 않으면 스스로를 괴롭히는 데 천재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러니 남이 나를 괴롭히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것만으로도 삶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방법은 '모든 불필요한 감정으로부터 의연해지고, 조금 더 담백하게 살아가기'가 아닐까 한다. / 68p

 

 

이 세상에 나를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여 겁먹거나 위축될 필요는 없다. 다만 상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면 자신을 돌아볼 기회로 삼으면 된다. 좋은 경험은 좋은 경험대로, 나쁜 경험은 나쁜 경험대로 나를 성장시키는 주춧돌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또 다른 담백한 삶의 기술이다. / 104p

 

 

 

 

 

 

   책에서는 담백한 삶을 방해하는 몇 가지 요소로 아집, 나르시시즘, 자만심, 열등감을 꼽는다. 그 중 남편이 신혼 초에 외도를 했다는 문제로 십 수 년째 싸우는 부부의 상담 이야기가 유독 인상적이다. 부부는 숱한 갈등 중 모든 결론은 남편의 바람으로 귀결되어 내내 해결되지 못한 채 지속되었고, 이는 아내를 끝끝내 괴롭혔다. 끝이 없는 원망과 의심, 경멸과 비난, 힐책과 수모까지. 그로 인해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있는 에너지로 인해 아내는 지쳐갔다. 이때 저자는 그녀에게 우리가 누군가의 잘못을 용서하고 서로의 관계에 변화를 가져오고자 하는 이유는 결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님을 조심스레 이야기해준다. 남편에 대한 이해와 용서는 결코 그를 위한 일이 아님을 말해준 것이다. 특히 아집에서 비롯되는 행동이 결국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자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말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이해와 용서는 오직 자신의 귀중한 시간과 잠재력을 낭비하지 않고, 제대로 쓰기 위한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내게도 마음속에 새겨둘 말한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로 인해 내 마음을, 내 시간을 분노로 채울 필요가 없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분노하는 데 낭비하는 에너지보다 더 적다는 점은 분명하다. / 142p

 

 

실제로 요즘 뇌 과학 분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수록 우리의 뇌세포가 더 건강해진다고 한다. 우리 뇌의 여러 부위에 걸쳐 있는 '보상회로'가 즐거움을 관장하는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 회로가 더욱 많은 부위에 연결되면서 뇌가 건강하게 변하고, 삶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것을 국내의 한 연구진이 MRI 영상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 207p

 

 

 

 

 

 

   담백한 삶이란 과거와 미래에 내 자신을 뺏기지 않고 현재 이 시점에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보는 능력이자, 지나친 기대치를 내려놓을 때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불필요한 감정을 억지로 붙든 채 아등바등 살며 내 에너지를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기보다 이제는 오롯이 나를 바라보고 최대한 의연해질 것, 그것이 내가 가장 나답고 건강하게 사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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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문장 수업 - 하루 한 문장으로 배우는 품격 있는 삶
김동섭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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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신화, 철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서양 문명의 뿌리에 다가가다!

서양 문명을 이해하고 그들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는 고품격 라틴어 강의!

 

 

   제2외국어 선택을 앞두고 있었던 학창시절, 영어를 제외하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제2외국어라하면 고작해야 독일어 혹은 일본어뿐이었다. 비전이나 활용도를 생각했다면 일본어를 선택했겠지만 당시에는 입시가 더 중요했기에 나는 상대적으로 익히기 쉬운 독일어를 선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쉬운 일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즐거움보다, 그 안에 녹아들어 있는 상대의 문화를 알아가는 데 재미를 느끼기보다, 하나라도 더 정답을 맞히는 데만 급급했던 만큼 빠른 속도로 흥미를 잃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입시 때문이 아니라 라틴어나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와 같이 다양한 언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물론 지금에라도 늦지 않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독학으로 하기에는 어쩐지 막막해서 선뜻 뛰어들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라틴어 문장 수업>은 평소 라틴어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에게는 입문 도서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외국어 전문 도서들이 워낙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어서 여러모로 선택의 기회가 많아졌지만, 문법과 회화로 바로 뛰어들기보다 관련 언어가 어떠한 배경으로 탄생되었고 또 그것이 언어권 사용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발전되어 왔는지 그 과정이 선행된다면 좀 더 이해와 접근에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라틴어 문장 수업>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명문장을 선별하여 기본 문법뿐만 아니라 배경이 되는 로마 제국의 역사와 문화, 철학, 신화까지 수록하고 있으니 그들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얻어가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Festina lente! 천천히 서둘러라!

 

 

   라틴어는 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제국 중 하나인 로마 제국에서 사용되던 언어이다. 천 년 이상 지속되어 온 로마는 온 유럽을 자신들의 기준, 즉 자신들의 언어와 제도로 재편했다. 그런 점에서 로마 제국의 언어인 라틴어는 서양인들의 정신세계를 투영하는 거울과도 같다. 이에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라틴어를 배우면 좋은 열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영어 어휘의 50퍼센트 이상이 라틴어이다.

2. 현대 학문의 용어들은 대부분 라틴어이다.

3. 법률과 논리의 언어이다.

4. 인간이 만든 사장 논리적인 언어이다.

5. 인지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언어이다.

6. 전 세계에 라틴어의 후예들이 있다.

7. 서구 문명의 뿌리가 되는 언어이다.

8. 기독교의 언어이다.

9. 문화적 수준을 높이는 언어이다.

10. 라틴어를 배우는 것은 자기완성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 / 15p 

 

 

 

   학자들은 라틴어가 인류가 사용한 언어 중에서 가장 정확하고 논리적인 언어라고 말한다. 그런 이유에서 혹자는 라틴어의 문법이 너무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에 저자는 복잡한 라틴어의 문법을 가능한 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 라틴어로 기록된 경구, 속담, 격언 등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기본 구조와 알파벳, 그리고 발음에 대한 간단한 설명까지 부록으로 함께 수록해놓았다. 덕분에 하루에 한 문장씩 차근차근 접근해가다보면 라틴어의 실체와 고대 로마인들의 역사, 지혜, 영성, 문학, 철학, 예술, 사랑, 삶의 태도에까지 공감할 수 있게 되니 라틴어와 더욱 친숙해질 계기가 될 것이다.

 

 

 

 

 

 

   책에 수록된 여러 문장들 중에서 'Animum fortuna sequitur(행운은 용기를 뒤따른다)', 'Si vis amari ama(사랑받고 싶으면 사랑하라)', 'Secrete amicos admone; lauda palam(몰래 꾸짖고 공개적으로 칭찬하라)', 'Oculus se non videns, alia videt(눈은 자기 자신은 못 보면서, 다른 것은 본다)', 'Media vita in morte sumus(생의 한 가운데 우리는 죽음 속에 있다네)' 등의 문장들은 깊은 울림을 준다. 아울러 반드시 라틴어를 배우고 싶어서 이 책을 접한 독자가 아니더라도 이 문장 속에 녹아든 옛 현자들의 지혜와 역사 속 인물들, 신화 속 이야기들은 충분히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책을 읽다보면 어디선가 접해본 적이 있는 격언과 속담, 단어들이 어떤 유래를 통해 탄생되었는지 배울 수 있고, 이제껏 몰랐던 라틴어만의 매력까지 느낄 수 있으니 이 책을 통해 라틴어 공부에 대한 흥미도를 높여보면 어떨까 싶다.

 

 

 

내가 언제 죽을지 안다면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을 것이고

내가 어디에서 죽을지 안다면

그곳에 자주 들러 친해보려고 노력할 것이고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나를 지켜줄 사람들이

자식이라면 태어나줘서 고맙고

아내라면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할 것이다. / 241p

 

 

 

 

 

 

   로마의 한 무명 시인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읊은 시다. 어쩐지 이 시가 내내 마음에 남는다. 아직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다고 믿는 우리들에게 죽음은 그리 가까이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우리가 늘 죽음의 한 복판에 있다는 생각으로 산다면 오늘, 매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느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 <라틴어 문장 수업>은 인생의 무상함 혹은 인생의 소중함, 나를 채우는 삶에 대한 기쁨에 대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어서 매우 값진 독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반드시 라틴어를 배우고 싶은 이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책이 전하는 잔잔한 울림을 느껴보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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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 우주인
야로슬라프 칼파르시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우주 공상과학 이전에 한 나라의 역사와, 개인의 삶, 철학을 오롯이 담은 놀라운 소설!

자신이 누리는 것은 잃어보아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는 감동적인 이야기!

 

 

   우주는 인류의 터전으로 한계점에 임박한 지구의 대안인가, 광활한 미지의 세계를 향한 순수한 탐험의 대상인가, 최첨단 과학 기술을 누가 먼저 멀리 쏘아 올려 정치적 깃발을 꽂을 것인가를 두고 강대국들이 벌이는 상징의 무대인가. 우리는 그간 수많은 소설과 영화 등의 작품을 통해 우주를 향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의 시도들을 보아왔다. 소설 <보헤미아 우주인> 역시 그런 의미의 성격을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조국 체코의 부름을 받아 우주비행사가 되어 금성으로 떠난 야쿠프 프로하스카, 그의 눈에 비친 광활한 우주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너머에 존재하는 극한의 외로움, 내적 고독 등 통해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까지 말하자면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마션> 등의 유사 작품을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체코의 역사와 격변기를 지나온 한 남성이 겪어야만 했던 과거와의 사투, 범우주적인 가치들을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꽤나 진지한 질문들을 던지는 작품으로 조금은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다. 자칫 천문학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공상 과학으로 가득한 SF 소설을 기대했다면 내적 묘사와 자아 성찰로 가득한 이 소설에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문장과 섬세한 작가의 필력에 빠지게 되면 이 책에 쏟아지는 찬사와 수식들이 결코 아깝지 않음을 금세 깨닫게 된다.

 

 

 

정반대 상황이 되어보지 않고는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이 누리는 것은 잃어보아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 357p

 

 

 

   2018년 봄, 체코의 국민들은 국유지 감자밭에서 발사되는 우주왕복선 얀후스 1호에 잔뜩 기대를 모으고 있다. 우주라는 거대한 세상을 향해 쏘아 올리는 자국의 눈부신 과학 발전을 지켜보며 국민들은 마치 조국의 승리를 맛보는 듯한 희열에 휩싸인다. 그도 그럴 것이 1939년 나치에 점령당한 뒤, 19345년 다시 독립국가가 되었으나 스탈린의 지원을 받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쿠데타로 공산주의 국가가 된 체코는 소련군의 침공을 맞고 무혈, 비폭력 혁명을 이끌어낸 바츨라프 하벨의 '벨벳 혁명'을 거듭하며 가슴 아픈 역사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정치적 격변기를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체코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한몸에 받으며 얀후스 1호에 탑승한 야쿠프 프로하스카는 체코의 변화를 상징하는 이 위대한 역사와 과학적 영광까지 함께 짊어지고 금성과 지구 사이에서 관측되는 '초프라'라는 불가사의한 입자를 체취하기 위해 우주로 떠난다.

 

 

 

   카렐대학교 천체물리학과 교수이자 우주 먼지 연구자인 야쿠프는 사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전문 비행사도 아니고, 지구로 안전하게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것이 과거 공산 정권 아래에서 국가를 위해 일했던 아버지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기회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권의 영웅이었던 아버지가 인민의 배신자이자 국가의 악당이 되어버리자 야쿠프는 거의 마녀사냥에 가까울 정도로 주위의 야멸찬 시선과 폭력에 얼룩진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나마 자신을 한결같이 지켜준 할아버지와 할머니마저도 어렵게 일군 고향집을 떠나 서글픈 죽음을 맞이해야했고, 이것이 그에게는 내내 상처로 남았다. 이렇듯 소설은 아버지의 과오를 씻고 자신을 손가락질 했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함과 동시에 이제는 자신이 국민의 영웅이 되려는 야쿠프의 굴곡진 인생과 가슴 아픈 체코의 역사를 정교하게 엮어나간다.

 

 

 

"당신 아버지는 부역자이자 범죄자, 오늘날까지 우리 나라를 괴롭히는 것들의 상징입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의 아들로서 움직이고 전진하며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로부터 멀어지는 겁니다. 야쿠프 프로하스카, 충성스러운 공산주의자의 아들, 개혁을 거친 공산주의자의 빛나는 본보기인 거죠. (…) 시민의 겸손한 종복이자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인 동시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화신이며 과학자이기도 하고요. 나는 우주에 체코인을 보내고 싶고, 그 체코인은 당신이 될 거야. 유럽은 우리를 비웃을 테고 부담을 떠안을 납세자들은 회의론으로 울부짖겠지만, 이 계획에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고, 우리는 당신을 잘 포장해서 그 이미지를 팔아먹을 수가 있어요. 프라하의 우주인. 변화된 나라의 상징이 우리 깃발을 우주로 가져가는 거지. 이해하겠소?" / 79p

 

 

나는 눈을 감고 수를 세며 지금 아버지가 나를 떠메고 세상의 모든 언어로 사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한다. / 150p

 

 

 

 

 

 

   하지만 순조로울 것 같았던 우주비행에 있어서도 난관이 있었으니, 바로 사랑하는 아내 렌카를 오랫동안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아내와의 화상 통화만을 고대했던 그에게 어느 날, 렌카는 통화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마치 다른 삶을 살기라도 할 것처럼 변화하기 시작한 그녀의 태도에 그는 더더욱 지독한 외로움에 휩싸인다. 그러면서 야쿠프는 그녀와 나누었던 그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마치 예견된 불행이었던 것처럼, 야쿠프가 초프라에 가까이 접근해 마침내 미션을 성공하기에 이르려는 순간 얀후스 1호가 비상사태에 빠지고 그 역시 죽음에 임박하고야 만다. 우연의 기회로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기도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영웅이라는 허울만 남겨져있을 뿐 더 이상 이 땅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자가 되어버리고 난 뒤였다.

 

 

 

나에게 헛된 것은 없다. 하누시에게도, 렌카에게도, 체코 우주국에게도, 늘 저 너머와 밑, 다음, 아래쪽을 찾는 고집스러운 인간의 눈에도 헛된 것이라고는 없다. 공기와 행성 그리고 건물과 몸뚱이를 구성하는 원자들, 빈둥거리며 생명과 생명에 반하는 왕조 전체를 견디고 있는 원자들 속에도, 헛된 것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 198p

 

 

 

   어쩌면 작가는 야쿠프가 우주 공간에 있을 때가 아니라 지구로 돌아왔을 때 보고 느끼고 겪게 되는 일들에 더 마음을 쏟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라는 감정 밖에서 부부가 서로 얼마나 다른 것을 보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들, 남편의 집착과 남편이 필요로 하는 것들에 가려지지 않는 인생을 원했던 렌카의 진짜 삶을 뒤늦게 목도하고만 야쿠프를 보면서 '정반대의 상황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없고 누리던 것을 잃었을 때에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다'는 깨달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주에 있을 때 내가 임무에 참여해도 되는지 아내의 허락을 받았던 순간들을 머릿속에서 꾸며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질문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내가 결정했다. 내가 평생 동안 이런 식으로 행동한 건 아닌지, 이런 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내 몸속에 흐르는 또 다른 유전적 유산, 즉 아버지는 결코 인정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특징은 아닌지 궁금했다. / 334p

 

 

내가 들어선 곳은 서재였는데 책장에는 그녀의 책인 전 세계 소설들만 꽂혀 있고 내 두꺼운 논픽션 책들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 둘이 읽던 책을 보더라도 나는 지구 외부의 모든 걸 정복하고 싶어 했던 반면 렌카는 내가 떠나고 싶어 한 행성의 구석구석을 알고 싶어 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 348p

 

 

 

 

 

 

   <보헤미아 우주인>은 우주란 물리적으로 먼 어느 행성과도 같은 지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계하는 모든 것들, 내 삶,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 소설이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범우주적인 가치와 철학을 모두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이 소설만이 보여주는 대담하고도 독창적인 부분들은 분명 이 작가의 이름을 계속해서 기억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덕분에 차기작을 기다리게 만드는 작가가 한 명 더 생겼다는 것이 기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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