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요 - 그저 좋아서 떠났던 여행의 모든 순간
안혜연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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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느린 일상 같은 여행,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여행과 생활의 미묘한 경계에서 하루하루 쌓여가는 오늘과 내일의 이야기들!

 

 

 

   가만히 돌이켜보면 다양한 일정의 해외 패키지여행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혼자서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다. 거창한 여행지는 아니지만 어느 지역의 미술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면 그 지역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무작정 끊어 떠났고, 가보고 싶은 서점이 생기면 마찬가지로 부랴부랴 새벽부터 기차역으로 출발했던 시간들. 혼자였기에 어디를 가도 상관없었고, 무얼 먹어도 상관없었으며 이후의 일정은 아무래도 좋았던,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발견했을 때 다가오는 감동으로 몸을 떨기까지 추억들은 이상하게도 잊혀 지지 않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업무가 많아지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혼자 떠나는 여행은 더 이상 꿈꾸지 못할 일이란 생각이 든다. 하물며 이제는 운전도 할 수 있고 마음의 여유도 더 생긴 듯한 데도 선뜻 움직이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다 때가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많이 돌아다녀볼걸, 까짓것 그냥 부딪혀볼걸 하는 후회들이 더 진하게 밀려드는 요즘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뒤 당신은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닻줄을 풀고 안전한 항구에서 나와 항해를 시작하라.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라."

 

 

 

   때문에 <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요>를 읽으며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한 대목이 덜컥 마음을 붙든다. '떠나고 싶어지면 그냥 떠나라. 혼자여도 괜찮다. 떠나는 데 필요한 것은 용기나 돈이 아닌 포기다. 낯선 바람을 따라나서 보면 단번에 안다.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걸.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인생은 그럭저럭 잘 굴어간다는 걸. 내 눈으로 그걸 확인하기까지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던 너무도 당연한 이치.' 라던 저자의 독려까지도.

 

 

 

또 다른 일상으로 

 

 

   <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요>는 스스로를 작가의 탈을 쓴 백수라 칭하는 6년차 프리랜서 여행작가 안혜연의 여행에세이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두고 위태로운 길 위의 작가가 되기를 선택했던 그녀는 두둑한 통장 잔고보다 자유로운 공기에 취해 보내는 시간을 더 흡족해하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자신의 일상 같은 여행을, 여행 같은 일상을 가만가만 기록해두었다. 파리, 피렌체, 하노이, 방콕, 사막, 제주 등. 그녀가 머물거나 다녀온 곳들은 저마다 다채로운 색채와 감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글 안에서는 오늘의 하루를 다정히 채워주는 어떤 일상적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무언가를 보러 간다는 데 의미를 두기보다, 그곳에서의 공기를 한껏 들이켜고 그네들의 수수한 일상을 엿보고 그저 머물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특유의 느긋한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무언가를 보러 갈 때도 있다. 호기심이 일거나 어떤 장면을 보고 마음이 동할 때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보지 않아도 흡족한 게 여행이다. 왜 꼭 뭘 봐야 한다고 생각할까? 우두커니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홀짝이며 도란도란 수다 떠는 것도 여행이고 뒷짐 진 채 슬렁슬렁 마을 산책하는 것도 여행인데! 대단한 볼거리를 봐야 여행인가? 성산일출봉에 오르고 섭지코지를 거닐고 협재해수욕장에 몸 담그고 한라산 등반을 해야 여행다운 여행을 한 걸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남들이 다 보는 거 덜 보더라도 각자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리며 생기를 되찾았다면 그걸로 됐다. 맑은 공기 한껏 들이켜고 제주도민의 수수한 일상을 엿보고 그저 머물렀다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 40p

 

 

 

 

 

  산책길에 우연히 알게 된 베르갈랑 공원의 한적함, 파리의 재래시장에서 인심 좋은 콧수염 아저씨가 "치즈는 먹어봐야 안다"며 여러 가지 치즈를 맛보여주던 순간들, 오갈 데 없는 창작자들의 몸 뉠 곳을 마련해주는 예술가들의 안식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덩치에 비해 작아 보이는 목욕탕 의자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모닝커피를 즐기는 팔자 늘어진 호이안의 아저씨들, 커피 한 잔이 무려 10만 엔 즉 100만원을 호가하는 20년 숙성 커피를 차마 다 즐길 수 없어 2천 엔으로 겨우 한 숟가락 맛보는 웃지 못할 경험까지. 때로는 숙소에서 빈대의 습격을 당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노상방뇨를 해야 하는 낯부끄러운 일까지 겪어야하기도 했지만 여행을 하다 만난 수많은 인연들, 인도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짜이 한 잔이 주는 감동, 단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들의 대낮 같은 휴식이 주는 위안이 그녀를 계속해서 이끄는 것이리라.

 

 

여행하다 만난 이들 중에서는 마음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어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고 한낱 스쳐가는 바람처럼 지나가는 인연도 있다. 잡으려고 해서 잡히는 것도 아니고 피하려고 해서 피해지는 것도 아니더라. 인연은 그런 건가 보다. 이어질 사람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어지고 끊어질 사람은 끊어내지 않아도 매일매일 조금씩 멀어져가는 것.

길 위에서 만난 당신들, 잘 지내나요? / 174p

 

 

코끼리는 야생 동물이다. 상상해보라. 화가 치밀면 사람을 짓밟을 수도 있는 야성을 지닌 코끼리가 고분고분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고 몇 사람이 올라타도 내치지 않는 데 이르기까지 코끼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존중받아야 한다. 공정여행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좋다. 코끼리를 타지 않는 것, 동물학대로 이루어지는 공연에 눈길을 주지 않는 것. / 201p

 

 

 

 

 

 

   <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요>를 읽으며 '그 날, 그 순간이 참 행복했다'던 저자의 고백과 함께 스미는 가을바람이 내내 내 맘을 살랑살랑 간질이는 기분을 느꼈다. 따뜻한 햇살이 등살을 감싸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동안 어디론가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럼 이제 나의 일상은 안녕한지, 또 안녕하기 위해 나는 나에게 소소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어떤 여행 하나 정도는 선물해줄 수 있지 않을 런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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