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 - 스탠딩에그 커피에세이
에그 2호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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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노래처럼, 곱게 갈린 커피의 은은한 향기처럼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가느라 수고한 당신을 위한 스탠딩에그의 따뜻한 커피에세이!

 

 

   사각사각(엄밀히 생각하면 서걱서걱, 혹은 드르륵드르륵에 가깝다).

   칼리타 핸드밀에 원두를 넣고 곱게 갈릴 때 나는 소리가 참 좋다. 아니, 밀봉이 되어 있던 갓 볶은 원두를 꺼낼 때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고소한 원두향을 맡은 순간부터 이미 나는 매료된 상태다. 드리퍼에 알맞게 간 원두를 넣고 이제 2분 남짓한 시간 동안 정성을 들여 물을 내릴 때, 나도 모르게 호흡을 가다듬어가며 경건해지는 그 마음까지도. 한때는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왕창 부어 꿀물처럼 마신다고 놀림을 받던 흑역사도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섬세하고도 정교한 커피 맛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마도 카페에서 커피 만드는 법을 배우고부터였을 것이다. 혹은 더 거슬러 올라가 인테리어를 하는 남편을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카페를 찾아다닌 것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동안에 커피로 인해 기억되는 추억도 생기고, 커피를 마셨던 공간으로 인해 기억되는 사람도 늘어났다. 고작 한 잔의 마실 것에 불과한데, 커피는 내게 가장 달콤한 여유와 안정을 주었다. 한 뼘 크기의 믹스 커피에서부터 풍성한 우유 거품으로 만든 라테에 이르기까지, 그날의 분위기와 기분에 따라 다른 커피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내 하루도 매일 특별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에 나는 커피가, 아직도 마시고 싶은 커피가 많아서 더 좋다.

 

 

 

 

The Best Coffee is The Coffee You Like.

당신이 좋아하는 커피가 최고의 커피입니다.

 

 

   왠지 책을 펼치면 아몬드 계열의 원두향이 맡아질 것만 같은 아담한 책 한 권을 만났다. 평소 「오래된 노래」와 「여름밤에 우린」란 노래를 좋아해서 내 플레이리스트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뮤지션, 스탠딩에그의 에세이다. 게다가 커피에세이라니. 미처 몰랐던 사실인데 스탠딩에그의 멤버 에그2호님이 망원동에서 ‘모티프 커피바’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니, 그들의 음악적 색채만큼이나 책 곳곳에서 드러나는 커피에 대한 특유의 감수성도 허투루 읽히지 않는다. 적어도 매일 수십 잔의 커피를 만들어보고, 맛과 향의 미묘한 차이를 혀끝의 감각과 코끝의 감각으로 느끼며, 그 한 잔을 위해 카페를 찾는 사람들의 얼굴을 수도 없이 마주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갓 추출한 에스프레소 한 잔에서, 우연히 뛰어 들어간 카페에서, 뒷골목의 카페에서 만난 바리스타와 나눈 “I like it"이라는 한마디에서 일상의 바이브를 느끼고 그만의 감각적인 언어로 풀어쓴 여러 에피소드들이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커피가 우리의 무미건조한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고, 내일을 다시 기대하도록 만들게 하는 그 무엇이 된다는 것을, 물과 에스프레소가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듯 우리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라는 그 깨달음에 자연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세상엔 여전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오랜 시간 여전할 때 점점 아름다워지는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는 절대적인 무언가가 어느 날 우리로부터 그 여전한 것들을 순식간에 앗아버리곤 한다...(중략)...이것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삶이 우리에게 야박한 탓이다. 그래서 이 삶 속에서 하루를 버텨야 하는 나는 오늘 연희동 길을 걷고, 매뉴팩트 커피로 가기 위해 16개의 작은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문을 밀고 들어가는 순간 나는 오늘도 이 안에 가득한 ‘여전함’들에 한 번 더 안도한다. / 28p

 

 

실제로 매일 수십 잔의 커피를 만들다 보면 똑같은 원두, 똑같은 방식이라 하더라도 매번 그 맛이 미묘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닫는다. 그렇다. 만약 당신이 어느 날 평생 잊지 못할 커피 한 잔을 마시게 된다 하더라도 당신 또한 그날의 커피와 똑같은 커피를 다시는 마실 수 없단 이야기다. 그러니 맛있는 커피를 대할 때면 천천히 한 모금씩 입에 머금을 때마다 그 순간에 흐르는 음악과 주변의 공기, 빛과 온도, 앞에 앉은 사람의 표정을 기억하기 위해 온 감각을 집중해야 한다. (인생의 모든 근사한 순간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태도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당신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 60p

 

 

 

 

   나를 비롯한 우리 대부분은 언젠가부터 SNS를 통해 다른 이들의 삶을 관찰하고 은밀히 동경하는데 익숙해지고 있다. 누군가가 올린 근사한 커피 한 잔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인생 커피라고 추켜세우는 해시태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거기다 시선을 압도하는 멋진 인테리어까지 겸비한 카페라면 당장 우리의 주말을 그곳에서 채워갈 생각으로 마음이 앞서가기도 한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커피를 마시러 가는 건지, SNS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에그2호님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몇 년 전 라이프스타일이 근사해 보여 인스타그램을 팔로잉하던 A씨가 올린 한 장의 사진-그의 손에 들린 투명한 플라스틱 컵, 그 컵에 인쇄된 하늘색 병 모양의 로고와 블루보틀이라는 감각적인 네이밍, 자신의 ‘인생 커피’라는 A의 코멘트, 그리고 수천 개의 ‘좋아요’-에 압도되어 그 순간 이미 뉴올리언즈를 내 인생 커피로 삼아버렸다고 고백한다(이 말에 아직 블루보틀을 접해보지 않은 나는 뉴올리언즈를 검색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스위스 취리히의 뒷골목에 자리한 작은 카페의 창문 앞에 멈춰 서서 ‘인생 커피’라는 단어의 무분별함에서 오는 피로감과 그 말미에 밀려오는 ‘인생이란 단어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부터 마침내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찾아간 유명 카페에서 인증 샷에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의 안식처처럼 찾곤 했던 작은 뒷골목의 어느 카페가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참 오랜만에 그곳을 떠올렸다. 없어지지는 않았겠지, 조만간 그곳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모금 입안에 넣자 몽글몽글한 느낌이 적절한 온도로 퍼지고, 혀 깊은 곳부터 잘 익은 포도의 달콤함이 진하게 와닿더니 이어서 화사한 ‘보라색’이 한가득 확 퍼졌다. (그래, 라벤더의 향이다.) 따뜻한 커피가 부드럽게 목을 타고 내려가면 마지막엔 지나간 달콤함과 함께 삽싸름하고도 화한 허브의 느낌이 입안에 남는다. 깔끔한 피니시였다. 나는 마지막 한 모금을 넣고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게이샤를 느끼기 위해 모든 신경을 내 입안에 집중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가는 라벤더 향을 힘겹게 따라가고 있었다. / 53p

 

 

나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근사한 노래 제목을 적은 메모지를 들고 자리로 돌아와 식어버린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오, 그런데 그 미지근한 커피 맛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었지만 카페 내부에 흐르는 음악들-캐러멜 시럽보다 달곰쌈쌀하면서 우유만큼이나 부드러운 음악, 에스프레소 같은 진한 풍미를 지닌 솔 뮤직-에 진즉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커피 맛을 이런 식으로 평가해도 되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저는 커피 맛을 평가하고 싶지 않아요. 그저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즐기고 싶어요.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요.” / 80p

 

 

  책을 읽다보면 그가 런던에서 마신 플랫화이트를, 도쿄에서 마신 게이샤를 한 모금 마셔보고 싶어진다.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LP의 아날로그 사운드가 평범한 아메리카노마저 특별하게 만드는 베드포드 애비뉴의 “파이브 리브스”도 가보고 싶어진다. 언제든 스스로 커피를 만들어 마실 수 있는 바리스타들이 일부러 ‘돈을 내서 마시고 싶다던’ 아이스 큐브 라테 맛집 연남동의 “도깨비 커피집”에도. 카페를 연 지 2년 만에 찾아온 커피의 권태감을 잊게 해줬다던 롯폰기의 블랙 커피마저도. 블랙 커피는 분명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그가 보았던 오래된 두 친구의 연주를 나도 볼 수만 있다면 쓴 커피도 어쩐지 달게만 느껴질 것 같다.

 

 

 

“1분만 더 있다가 드세요.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를 뜨거운 물에 섞는 거잖아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물과 에스프레소는 서로 다른 성분이라서, 서로에게 완벽히 섞이고 녹아들 시간이 필요해요. 그제야 진짜 아메리카노가 되죠.” / 138p

 

 

나는 오랜만에 가정용 커피 메이커로 내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은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 모금의 커피가 가슴을 타고 내려가 몸 안에 온기가 퍼질 즈음, 커피에 대한 애정이 다시 서서히 살아나 있음을 느꼈다. 그 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말이다.

‘그래, 좀 더 편안하게 대해야겠다. 오래된 친구를 곁에 두듯이.’

커피를 나의 10년 지기 친구라고 한다면, 내가 그에게 처음 같은 열정을 지니는 것도, 그에게 여전히 새롭고 특별한 매력을 기대하는 것도 억지스러운 일일 테니 말이다. / 187p

 

 

‘만약 정말로 사랑이 그저 뇌에 전달되는 전기 신호에 불과하다면,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나는 차라리 그 사실을 모른 채 그저 나의 진심이라 믿고 사랑하고 싶다.’

커피에 대한 내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나는 커피 맛이 단지 어떤 성분과 비율에 따라 정해진다고 믿고 싶지 않다. 그것이 과학적 사실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실험실에 갇혀서 눈을 가린 채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어디선가 좋은 음악이 흐를 때, 올해 첫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때,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하고 있을 때…….

똑같은 커피도 분명 훨씬 맛있게 느껴지니까. / 206p

 

 

 

 

 

  두 해 전 여름, 카페에서 직접 핸드 드립으로 내려 마셨던 코스타리카 한 잔이 무척이나 좋아서 아직까지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문득 책을 읽는 내내 그 커피가 다시 생각나서 오랜만에 핸드드립 도구들을 꺼내보았다. 아,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원두가 신선하지 않아 단번에 인상이 윽, 하고 찌푸려졌다. 두 아이를 키우며 핸드드립은 어쩐지 사치 같아서, 원두를 일일이 가는 것이 번거로워서 믹스 커피나 편의점 커피만 마시느라 사놓았던 원두를 죄다 방치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내일 아침이면 원두를 사러 가야할 것 같다. 커피 한 잔으로 기억될 나의 멋진 하루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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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선물 - 해피 모지스마스!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지음, 류승경 옮김 / 수오서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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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 찬란하고 평온한 크리스마스를 위한 단 하나의 책!

모지스 할머니의 아기자기한 겨울 풍경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림 동화! 

 

 

 

고요하고 거룩한 크리스마스.

모든 게 평온하고 모든 게 찬란합니다.

천국의 평화 같은 단잠에 들겠지요.

천국의 평화 같은 단잠에 들 거예요.

 

 

 

   ‘모지스 할머니’로 불리며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화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그녀는 1860년에 태어나 12세부터 15년 정도를 가정부로 일을 했다고 하지요. 그러다 남편을 만난 후 버지니아에서 농장 생활을 했고, 관절염으로 자수를 놓기 어려워지자 바늘을 놓고 붓을 들었다고 해요. 그때 그녀의 나이가 76세라니 믿겨지나요?

 

 

 

 

 

 

   한 번도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데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아기자기함으로 그림 곳곳에서 따스한 온기가 오롯이 전달됩니다. 그렇게 무려 101세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왕성하게 활동하여 1,600여 점에 달아하는 작품을 남겼다하니 ‘인생이란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네요.

 

 

 

   모지스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크리스마스는 어떤 풍경이었을까요. 겨울은 매서운 날씨가 찾아오는 계절이지만, 유리처럼 투명한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재미를 놓칠 수 없는 계절이고, 썰매를 타고 눈길을 쌩쌩 달리며 숲을 누빌 수 있는 행복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다 함께 모여 크리스마스에 쓸 나무를 구하러 갈 때면 참으로 신이 났어요. 또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밀 상상을 하며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올 때면 얼마나 더 설레었을까요.

 

 

 

   그렇게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와 따뜻하게 불이 지펴진 몸을 녹이자면 저절로 감사한 마음을 들 것 같아요. 그저 마음껏 누리고 마음껏 상상할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겠지요. 이렇게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 속 겨울은 너무도 따스해서 매서운 추위도 잊힐 만큼 우리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 안는 것만 같습니다.

 

 

 

추위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겁니다.

쌓인 눈도 꽁꽁 언 연못도 사르르 녹겠지요.

그리고 다시 봄이 오면 말들은 들판을 달릴 거예요.

 

 

 

 

 

 

   모지스 할머니가 기억하는 첫 크리스마스는 네 살 때라고 해요. 산타클로스가 누구인지 잘 몰랐지만 커다란 장난감 보따리를 등에 짊어지고 다닌다는 말을 듣고 겁이 나면서도 은근히 설레기도 했던 시절을 추억하지요. 문득 나에게 있어서 크리스마스는 어떤 날이었을까를 떠올려보았지만 좀처럼 생각이 나질 않네요. 그냥 산타클로스가 실은 아빠였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만 기억이 납니다. 오히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 처음 맞은 크리스마스가 더 많이 생각납니다. 크리스마스에 놀이 공원으로 놀러 가본 게 처음이었거든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놀이 공원의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캐럴을 들으며 남편과 나 그리고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아이와 회전목마를 탔는데, 그게 이상하게 기분이 참 좋았어요. 크리스마스란 그런 건가 봐요. 추위 따위가 뭔가요, 사랑하는 사람과 천진난만하게 뛰어놀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을요. 저는 그 기쁨을 조금 늦게 알아버렸지만, 사랑하는 두 아이에게만큼은 오롯이 느끼게 해주고 싶네요.

 

 

 

 

 

 

  모지스 할머니의 이 따뜻한 그림 동화를 읽으며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어떤 추억을 남길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따스한 꿈이 자라날까요. 모지스 할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이 책을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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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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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터지다가도 어느새 감동으로 코끝이 찡해지는 가족 소설!

인생의 마지막 생일 파티를 맞은 한 남자와 그를 둘러싼 대가족의 유쾌발랄한 시트콤 같은 이야기!

 

 

  며칠 전날 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게 여름쯤이었으니, 그간 마음의 준비는 늘 하고 있었기에 충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다만 생에 워낙 미련이 많으셨던 분이라 끝끝내 다 채워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세상을 떠나보내게 한 것이 죄송스러울 따름이었다. 외할머니가 마지막까지 애타게 찾으셨다던 그분은 과연 장례식장에 나타나셨을까, 나는 아직 그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꽤 오랫동안 만날 수 없었던 친척들을 그곳에서 마주했다. 낯설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듯 강렬하게 이끌리는 감정이란 게 이런 것인가, 단 한 번도 손잡아 준 적이 없고 등조차 토닥여준 적이 없던 우리들이 외할머니의 부재를 통해서야 비로소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우리들의 시대는 다 흘러갔다. 이제는 너희들의 시대야.”

   나의 아빠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조부모님 세대와 이렇게 모두 이별을 하였으니 이제 나의 부모님 세대가 다음 이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왈칵 눈물이 밀려나왔다. 언제 이렇게 늙어버리셨나, 어느새 세월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이 나이가 들어버린 나의 부모님과 삼촌들 그리고 이모들의 얼굴을 훑어보면서, 아빠의 말처럼 이제는 가족의 중추가 우리 세대로 바뀌어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이렇게 작은 공간에 모두가 모였을 때에야 비로소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사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 죽음이 끊어진 줄로만 알았던 인연을 다시 이어붙이고 이렇게 가족이라는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붙들게도 한다는 것. 죽음이 반드시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바로 그곳에서 또렷이 마주할 수 있었다. 나의 ‘죽음’이 흩어졌던 가족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고, 대화를 할 수 있게 하고 화해를 할 수 있게 한다면, 그리하여 내 죽음이 어떤 식으로든 의미 있을 수 있다면 퍽 아름다운 것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나요, 외할머니? 빅 엔젤처럼 말이에요.

 

 

 

누군가는 이미 겪었고, 누군가는 앞으로 겪을 일이기에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은 뿔뿔이 흩어져있던 대가족을 한 데 모아 인생의 마지막 생일파티를 열면서 자신의 죽음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맞이하는 한 노인의 이야기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누구에게나 무겁기 마련이지만, 가장 번잡스럽고 떠들썩하게 마지막 생일을 보내며 가까워져오는 마지막 시간을 미처 화해하지 못했던 가족을 끌어안고 따스한 인사말을 건네며 이렇게 유쾌하게 마무리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특히 가문의 가장 큰 어른이자 수장으로, 한때는 가족 위에 군림하던 가부장적인 아버지였기에 죽음 앞에서 화해를 시도하는 이러한 과정이 자칫 신파로 그려질 법도 하지만, 소설은 특유의 시트콤 같은 발랄함으로 마지막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삶과 죽음’, ‘상처와 화해’, ‘연민과 사랑’과 같은 진부해 보이는 주제마저 화려한 축제 속의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소설 곳곳을 밝힌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 엄수를 중시하여 가족 중 누구도 느릿하게 구는 꼴을 절대로 두고 보지 못하는 그 유명한 빅 엔젤 데 라 크루스가 하필이면 자신의 생일 전날 열린 어머니의 장례식에 늦게 되어 무슨 알리바이를 댈까 전전긍긍해하는 모습 하며, 무기력하게 하반신을 모두 드러내가며 딸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해야만 하는 천덕꾸러기가 된 것에 몰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그러하다. 그러면서도 생일 파티에 난입한 총잡이 앞에서 당장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거친 욕설을 내뱉는 장면에서는 이 소설이 마지막까지 눈물 콧물 흘리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 일체 없음을 단호하게 보여준다.

 

 

 

빅 엔젤 데 라 크루스는 시간을 엄수하기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미국인들은 그를 가리켜 ‘독일인’이라고 부르곤 했다. 참 웃긴 일이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멕시코인이라고 해서 시간을 안 지킬 거라고 생각하다니. 비센테 폭스가 일처리를 제때 하지 못한 적이 있냔 말이다. 호로새끼들. 그놈들의 생각을 고치는 게 그의 소명이었다. / 16p

 

 

“아주 넓은 해안이 있어. 우리는 모두 자그마한 호수야. 그런데 저 물 한가운데가 요동치면, 중심에서부터 퍼진 물결이 완벽한 원을 이루거든.”

그때 그는 이렇게 대꾸했었다.

“데이브, 지금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인생이 그런 거라고, 멍청아. 너 말이야. 물결은 처음에 세차게 시작하지만, 해안으로 갈수록 점점 약해지지. 그러다 다시 안으로 돌아오고. 돌아오는 물결은 눈에 보이지 않아. 하지만 분명히 존재해서 세상을 바꾸는 법이야. 그런데 너는 지금 본인이 뭔가 성취했는지 어떤지 의심이나 하고 있잖아.” / 41p

 

 

휠체어에 앉은 그는 매처럼 사나웠다. 그는 비밀 병기처럼 복도에 뿜어지는 신부의 입 냄새를 맡았다. 빅 엔젤은 수천 명의 조카들과 손녀들과 자식들을 가리켰다. 그의 형제자매들은 이제 구세대였다. 맨 앞줄에 음산하게 앉아 있는 그들. 모두 마마의 유골함을 바라보며 동시에 똑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이제 제일 윗세대군. 이제 다음으로 죽는 게 우리겠지. 그들은 뒤를 돌아보다 빅 엔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그를 매일 같이 봤는데도 그랬다. / 94p

 

 

 

 

 

 

   멕시코인인 아버지와 미국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답게 멕시코인들의 생활상과 시대적 배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점 또한 눈에 띤다. 이는 빅 엔젤의 할아버지 세대에서부터 아버지, 그리고 빅 엔젤 자신의 경험담과 배다른 동생인 리틀 엔젤 그리고 자식인 랄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그려진다. 이를 테면 피부색이 너무 진한 갈색이라는 이유로 세군도는 로스앤젤레스 동쪽에 있는 공공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수 없었고, 1932년에는 대대적인 멕시코인 추방 분위기에 따라 2백만 명의 메스티소들이 잡혀서 기차에 짐짝처럼 실려 국경 너머로 보내졌다. 빅 엔젤과 같이 일했던 회사 중역들은 멕시코인이라면 바닥을 쓸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게 마련이라 생각했으며, 컴퓨터 센터장이나 사이버 시스템 관리자로 일하는 멕시코인을 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혐오감을 드러내며, 세상천지에 이런 일이 일어나버렸으니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며 은밀하게 자기들끼리 모여서는 정족수가 넘는 회의를 해버리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랄로는 파병이 되면 자동으로 미국인이 된다는 말에 넘어가 미국의 군인이 되었지만 결국엔 추방을 당해 어둠 속에서 티후아나 강을 건너 몰래 미국으로 들어와 이제는 아버지의 차고에서나 사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 그러하다.

 

 

 

그 시절, 빅 엔젤은 직업이 두 개였다. 가끔은 세 가지 일을 할 때도 있었다. 불쌍한 페를라는 어두운 아파트에서 고생을 했다. 그녀는 그저 멕시코로 돌아가고 싶었다. 엔젤이 왜 이토록 미국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건 더 나은 삶이 아니었다. 적어도 고향에서는 더불어 사는 이웃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다. 심지어 희망도 있었다. 티후아나에서는 파티를 하고 싶으면, 길 한가운데에다 모닥불을 지필 수 있었단 말이다. / 252p

 

 

“내가 떠나서 미웠겠지. 알아. 내가 형을 비롯해서 모두를 깔보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도 알아. 뭐, 어쩌면 그랬을지도. 난 평생 살아남기 위해서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어쩌면 형에게서조차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그런데 이제 형이 날 떠나려 하고, 나는 형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가 없어. 난 언제나 생각했어. 내가 원했던 아버지를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그리고 이제껏 내가 원했던 아버지는 사실 형이었어.” / 423p

 

 

모든 사람은 비밀을 품고 죽는다. 빅 엔젤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가장 끔찍한 사실을 안전하게 숨긴 채로 죽을 테니까. 삶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또한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긴 투쟁이다. 이것이 그의 가장 은밀한 비밀이었고, 그건 결코 죄가 아니었다. 다만 그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것 뿐이었다. / 466p

 

 

 

 

 

 

   이 소설이 흥미로운 소재와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작법으로 이목을 끄는 것에 비해 어느 정도의 호불호를 지닌 작품임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하자면 그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을 듯하다. 독자로서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멕시코-미국의 국가 관계 및 사회적 배경과 그만큼 복잡하고 방대한 가족 관계로 인한 몰입의 어려움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때로는 시적인 표현을 쓰다가도 때로는 저급하게 느껴지리만큼 직설적인 표현으로 인해 문학적 감흥을 떨어뜨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의미 있는 것은 세대와 시대를 넘어서서 ‘죽음’이라는 주제를 좀 더 삶 가까이에 끌어와 축제처럼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죽음이란 이미 그 자체로 숭고한 것이기에 마냥 진지하고 엄숙하게 받아들이기보다, 비록 시끌벅적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질지라도 내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가장 따뜻하고 즐거운 시간을 채워가는 것으로 이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이러한 순간은 찾아올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갈무리 할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다. 어쩌면 불의의 사고나 재난이 아니라 이렇게 세상과 작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생의 가장 큰 행운이 아니겠는가. 빅 엔젤이 보여주었던 바로 그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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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20년 - 엄마의 세계가 클수록 아이의 세상이 커진다
오소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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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더 크게 키워주는 법!

아이만 돌보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위한 책!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현재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엄마들을 수식하는 각종 단어들 가운데 아들 둘이라 ‘목메달’,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뜻하는 ‘경단녀’, 집에서 육아를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전업맘’이란 타이틀을 달고서. 아들만 둘이라 딸을 더 낳아야하지 않겠느냐는 생판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말까지 꾸역꾸역 들어가며, 집에서 놀면 뭐하겠느냐고, 아이 조금만 더 키우고 직장에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경제적인 활동이 없으면 노는 사람처럼 치부하는 세상의 온갖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가며 말이다. 그래서 커피 만드는 일을 배워보고 싶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더니 아이의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에 맞춰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고, 어린이집 휴일에는 아이를 맡기느라 또 여기저기 눈치를 봐야하는 속사정은 ‘이렇게 하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나’ 하고 자괴감만 늘어갔다.

 

 

 

   그런 가운데 유일하게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한 것은 ‘책’이었다. 줄곧 책이나 글을 쓰는 일과 관련된 일을 해왔기에 출산 후 손을 놓고 지내는 것이 내내 아쉬웠던 찰나에, 책을 읽고 나름의 생각을 서평으로 정리해 블로그에 올려보기로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특히 평소 책편식이 심했던 터라 소설책만 줄곧 읽기보다는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보게 되면서, 출판사가 운영하는 각종 블로그와 SNS를 통해 서평단이나 서포터즈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 하나씩 도전해본 것이 좋은 계기가 되었다. 혼자였다면 절대 읽지 않았을 책을 의무적으로라도 읽게 되고, 책과 어울리는 예쁜 사진을 찍기 위해 야외로 나가거나 카페로 가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핑계도 생겼다. 내가 쓴 서평이 우수 서평으로 채택되는 신기한 경험도 하고, 출판사의 마케터님들로부터 서평 제의도 받고,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뜻밖의 좋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건 더더욱 행운이었다.

 

 

 

   덕분에 나는 요즘, 삶의 활력뿐만 아니라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던 자존감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음을 느끼는 중이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가 스스로 책을 가져와 내 옆에 앉아 읽으려 하고, 신랑도 내가 읽고 있는 책에 관심을 기울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책 문화가 가족 문화로 형성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의 20년』의 오소희 작가 역시 이렇게 말했다. “‘엄마’라는 이름의 당신, 당신의 인생은 소중합니다. 당신에게 기회를 주세요. 돈을, 시간을, 열의를, 당신을 성장시키는 데 쓰세요. 운동이든, 독서든, 꾸준히. 당신을 든든히 지켜줄 당신의 세계를 가꾸세요.” 라고. 비록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준 이 소소한 기회가 ‘엄마’라는 자리에서 요구되는 세상의 수많은 기준으로부터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게 하고, 정서적인 안정과 새로운 유형의 에너지를 얻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변화는 시작된 것이니까.

 

 

 

 

 

 

엄마라는 자리는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당신은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무궁무진한 능력을 가졌습니다.

당신에게 기회를 주세요. / 17p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를 통해 대한민국 엄마들이 꼭 한 번 만나고 싶어 하는 여행 작가이자 엄마 작가인 오소희의 신작 『엄마의 20년』은 아이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한 엄마들을 위한 책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세계여행’이라는 새로운 여행 장르를 개척한 여행자답게 ‘평범하지 않은’ 육아 방식으로 그간 많은 엄마들과 소통하며 그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자 노력해왔던 그녀다. 실제 강연장에 나가면 그녀가 엄마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나를 찾고 싶어요”였다고 한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상당수가 ‘가정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지레 포기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어째서 대한민국 엄마들은 왜 이구동성으로 ‘나’를 찾고 싶다고 할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나’를 잃어버리게 만들었을까? 책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녀는 엄마들이 ‘나’를 잃어버렸는데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 못하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한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 그리고 입시 중심적인 사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활동은 낮은 임금, 보육시설 미비 등 다양한 장애물에 걸려 차단당한다. 입시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활동은 대학입시까지 무려 20년을 아이에게 붙잡혀 차단당한다. 이렇게 두 번 차단당하고 나면 금방 50대가 넘어버린다. ‘내 세계’를 적극적으로 가꿀 가능성은 바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남성 중심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을까? 이 공고한 입시 교육 사회의 현실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녀는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꼭 당장 돈을 버는 활동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 엄마가 카페에 가서 책만 꾸준히 읽어도, 매일 등산만 열심히 해도, 그 활동은 결국 의미 있는 사회적 활동이 되어 남성 중심 사회에 균열을 가할 수 있다고 말이다. 엄마 스스로 자신의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내 육아 목표는 OO야. 대학이 아니야!”라고 당당히 선언할 수 있다면 불행한 입시육아를 거부할 힘이 생긴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엄마의 성장을 삶의 중심으로 바꿔야만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엄마의 세계가 클수록 아이의 세상이 커진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엄마가 베이커리를 배우면 아이는 빵을 많이 먹으며 자랄 것이고, 엄마가 노래를 배우면 아이는 엄마의 흥얼거림을 따라 하며 자랄 겁니다. 엄마가 노력하는 동안, 아이는 그 일부를 자기 세계에 하나씩 가져가는 것이죠. 그거면 충분합니다. 엄마가 아이의 세계를 전부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아니에요. 엄마가 탐색하는 전 과정이 아이에게는 다양한 체험이 되기에, 엄마가 ‘THE 가치’를 좀 뒤죽박죽 찾아내도, 찾아낸 시기가 좀 늦어진다 해도 괜찮습니다. 저처럼, 아이를 낳은 뒤에야, 아이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찾아내도 괜찮아요. / 63p

 

 

 

내가, 내 가정에서부터 먼저, 성적분리불안을 끊어내고 더 중요한 가치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당장 아이 앞에 놓인 접시에 반찬 한 가지라도 더 놓아줘야 한다는 강박부터 내려놓읍시다. 부모가 반찬 한 가지에 연연하면 아이도 평생 반찬 생각밖에 못 해요. ‘큰 시야’가 ‘큰 가정’을 만들고 ‘큰 아이’를 만듭니다. / 83p

 

 

 

가족을 앞에 세우고 자신은 뒤에 서는 철저한 보조자의 역할. 그것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가로막힌 사회에서 친정엄마에게 허용된 유일한 사회적 역할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정엄마는 자신의 욕구를, 남편과 자식이 쓸 화장실 청소보다도 더 나중으로 미루고 돌보지 않았어요. 자신이 이루지 못하는 꿈을 자식이 이루어주길 바랐지요. 생활은 고되고 자아는 돌볼 겨를이 없으니 지친 감정을 (무서운 남편이나 귀한 아들 말고) 만만한 딸들에게 퍼붓는 일도 흔했습니다. 수많은 딸들이 수시로 엄마의 ‘감정 펀칭백’이 되었을 뿐 아니라, 엄마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는 역할까지 해내야 했어요. / 118p

 

 

 

 

 

 

   이렇게 앞서 1부에서 이 사회가 얼마나 조직적으로 아이를 가진 여자는 ‘그걸로 끝’이라는 ‘조연 의식’을 심어놓았는지, 얼마나 교묘하게 아이를 잘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과도한 모성 신화’를 유지시켜 왔는지 짚어보았다면,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인생을 잘 가꾸는 법과 그 잘 가꿔진 인생 안에서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는 방법 15가지를 제안한다. 이 중 단호하게 ‘내 인생은 나의 것, 애 인생은 애의 것’이라 외쳐볼 것, 가족 단위의 욕망에 짓눌려 살았던 친정엄마로부터 물려받은 낡은 ‘엄마’의 롤모델은 지울 것, 전업맘이라고 해서 나를 홀대하던 습관을 버리고 무조건 화장대로 달려가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할 것, 애 학원비 20만원은 안 아까운데 내 활동비 20만 원은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매일, 자신에게 어떤 감정 상태를 선사할지 스스로 선택할 것, ‘꾸준히’ 할 수 있는 ‘활동공동체’를 만들 것, 가족이 공통으로 향유할 수 있는 가족 문화를 만들 것 등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엄마가 자기 삶을 돌보지 않고 아이에게만 집중하면, 아이도 엄마의 간섭과 통제를 막아내는 데만 집중하고, 성인이 되면 성장과정에서 생긴 불균형을 메우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것, 즉 엄마의 삶이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같은 맥락에서 ‘나의 활동’은 진정으로 나 자신을 위한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책을 읽을 때도 육아책을 선택하지 않는 겁니다. 스릴러든 로맨스든 내 취향이 단긴 책을 읽는 거지요. 산을 가더라도 평소에 아이와는 갈 수 없었던 난코스를 가보고요.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면 학부모들, 남편, 부모, 시부모, 회사 사람 말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나의 욕망, 나의 관심, 나의 견해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그렇게 딸린 식구라곤 없는 사람처럼, 그냥 잠시 나를 사는 겁니다. 역할을 떠나, 존재를 느끼는 거지요. 그런 순간이 바로 내가 나에게 말을 걸고, 내 말을 들어주는 순간입니다. / 168p

 

아이에게 엄마의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언제라도 뛰어가 도와줄 거예요. 그러나 뛰어가기 전에 “혼자 해볼 수 있겠니?”라고 한 번 더 물을 거예요. “혼자 해보겠다”고 하면 비록 미덥지 않더라도 ‘믿으면서’ 과감히 물러날 거예요.

아이에게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아이가 도움을 청하더라도 정중히 거절할 거예요. 아주 편한 엄마 역할이지요. 내가 내 운전대를 양보하지 않듯, 아이를 조수석으로 밀어내고 대신 운전해주는 짓 같은 건 하지 않는 겁니다. / 226p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면 매주 금요일 밤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영화를 보는 식으로 시작하는 겁니다. 부모와 아이가 순서대로 ‘My week’를 정해 한 주씩 돌아가며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게 하는 거예요. 이때, 부모가 아이에게 교육적인 영화를 보이려는 흑심을 품으면 이 ‘금요영화관’은 금방 문을 닫을 거예요. 아무리 다른 사람이 고른 영화가 내 취향에 맞지 않아도 군말 없이 같이 봐줘야 합니다. 아무리 유기농만 먹이는 엄마라도 이때는 팝콘과 치킨을 준비하는 거고, 아무리 깔끔한 엄마라도 이때는 거실 바닥에 이불을 펴주는 거지요. 아빠 역시 제아무리 중요한 ‘불금 회식’이 있어도 제때 들어와야 합니다. 아이 시험기간에도 영화관 문은 닫지 않아야 해요. 그래야 이 모임이 지속됩니다. / 250p

 

 

 

 

 

 

   언제가 되었든, ‘THE 가치’를 찾기만 한다면, 그런 게 지구상에 있는 줄도 모르고 죽는 부모를 두는 것보단 자식에겐 이득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다시 말해 아이‘를’ 자랑으로 삼는 부모가 되기 보다 아이‘가’ 자랑으로 삼는 부모가 되는 게 우선이라고 말이다. 엄마가 되는 순간 내 삶은 없어졌다고 방관하고 놓아버리는 순간에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라고, 엄마가 자기계발을 하면 아이는 스스로 엄마가 열어놓은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을 보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나의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덕분에 외할머니의 시간을, 나의 엄마의 시간을 많이 생각했다. 그녀들이 나에게 기꺼이 베풀어준 희생과 헌신에 감사히 여기면서 앞으로 내가 만들어가야 할 시간에 대해서 계속 고민해봐야겠다. 그러는 동안에 내 자존감이 다시 바닥을 찍을 것 같을 때면, 또 아이만 생각하느라 나를 뒷전으로 밀어 둘 것 같을 때면 내 눈에 가장 잘 보이는 책장에서 이 책을 몇 번이고 꺼내서 읽어보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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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라이프 2021-03-25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출판사 북라이프 입니다.<투콤마>님 ‘엄마의 20년‘ 도서 리뷰를 보고 오소희 작가님 신간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출간 소식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도서소개 일부입니다.

˝떠남이 제한된 시기, 모두가 집에 머물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떠나지 않고도 행복해지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답답한 일상을 환기해줄 특별한 장소를 찾아 떠나던 과거의 방식 대신, 지금 머무는 자리에서 행복을 찾는 이들에게 ‘자기만의 세계를 가꾸는 이들의 멘토’ 오소희 작가의 존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오소희 작가님 신간에도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나를 중심으로 미디어 읽기
이승화 지음 / 시간여행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넘쳐나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미디어를 읽는 법!

 

 

  가만히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의 하루는 대부분을 미디어가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을 위해 EBS교육방송을 틀어 놓고,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한 후면 휴대폰 어플을 이용해 라디오를 들으며 집안일을 한다. 이후 둘째 아이가 잠이 들면 나는 책을 읽거나 전에 읽은 책의 서평을 적기 위해 컴퓨터를 켠다. 블로그에 접속해 쓴 글을 정리해 업로드하고, 휴대폰으로는 인스타그램으로 전날 도착한 책 사진을 정성껏 찍어 게시한다. 그런 뒤에 아이가 자고 일어나면 이제 Btv를 켜서 베이비프로그램을 틀어놓은 채 아이와 책을 읽거나 교구나 장난감을 이용해 시간을 보낸다. 저녁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자기 직전까지 TV는 습관처럼 켜져 있고, 첫째 아이도 태블릿으로 영어 동화나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곤 한다. 이쯤 되고 보면 미디어 속에 내 세상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이처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다 보니 이제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를 의식조차 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그나마 아이가 있다 보니 휴대폰이나 태블릿 이용 시간을 적당히 제한하거나 아이가 보지 말아야 할 유해한 프로그램을 차단하는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그만큼 우리는 누가 더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느냐가 관건인 시대에 이미 돌입했다. 더 이상 미디어의 긍정적 기능과 부정적 기능을 저울질만 하고 있는 시대는 지난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미디어를 어떻게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주체적으로 소비하고 생산하는가의 문제를 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중심으로 미디어 읽기』는 보다 능동적으로 미디어에 대해 고민해보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울 수 있는 참 시의적절한 책인 듯하다. 미디어를 공부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미디어를 수동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미디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바란다. 그간 당연하게 접해온 미디어를 조금은 낯설고 새롭게 바라보며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미디어를 100% 활용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독서교육과 문화콘텐츠학을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미디어란 “다른 사람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을 이어주는 통로”라고 정의한다. 즉, 다른 사람의 고민과 생각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미디어라는 것이다. 미디어는 우리의 의식과 사고를 구성하며, 단순히 세상에 대한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인지 양식까지도 바꾸어준다.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며,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릴 줄 아는 눈을 만들어준다.”라고 말했다.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더 깊어지고, 더 영리해지고, 더 많은 사람과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이러한 정보와 생각을 얻으려면 미디어에 종속되지 않고 미디어를 제대로 알고 잘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쏟아지는 미디어의 내용을 그저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문에 미디어의 내용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생각을 이해하고, 나의 생각을 더 깊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미디어 읽기’라고 소개한다.

 

 

 

누구든지 생산적인 활동을 할 때 갑자기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다듬는 과정에서 책이나 방송, 인터넷에서 자료를 얻고,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등의 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넓게 보면 모두 미디어의 틀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를 훼방꾼으로만 여기는 것은 이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관점을 갖는 것이다. 항상 접하는 미디어를 창의적이고 창조적으로 접한다면 거기서 쌓은 능력과 지식은 더 많은 분야에서 발휘될 것이다. / 18p

 

 

‘이미지(영상)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지금, 그런 구분은 더는 의미가 없다. 독서교육의 권위자 돌로레스 더킨 교수는 ‘읽기’를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이라 정의했다. 문자뿐 아니라 그림이나 영상, 말투, 음악에서도 우리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이 읽기라고 할 수 있다. / 20p

 

 

 

 

 

 

  『나를 중심으로 미디어 읽기』는 앞서 말한 ‘미디어 읽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읽고 쓰는 능력’이란 의미의 리터러시와 미디어가 합쳐진 말로, 미디어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오늘날 미디어가 빠르게 발전하고 변화함에 따라 미디어 리터러시의 개념도 수시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것인데, 책은 미디어 접근 능력, 미디어의 비판적 이해 능력, 창의적 표현 능력, 소통 능력의 기준에 따라, 우리가 활용할 미디어를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원하는 정보를 찾아내 그것을 생산적인 활동으로 바꾸는 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법을 제시함으로써 평소 미디어에 대해 잘 몰랐던 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다음은 호기심이다. 그 이야기가 왜 불편했을까? 왜 비슷한 내용인데 어떤 것은 감동적이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을까?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는 많은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궁금함이 그 미디어를 입체적이고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같은 장면을 위해서 촬영했다면 어떨까? 내가 저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같은 마음으로 이어져 창조성도 기를 수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에 포함된 궁극적 의미 중 하나가 미디어를 활용하고 제작하는 능력인 것도 이러한 이유다. ‘읽고 쓴다’는 것은 ‘소비하고 생산한다’는 말로 이어질 수 있다. / 36p

 

 

이 모든 것은 미디어를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귀결된다. 미디어를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 귀한 원석처럼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원석이라고 한 이유는 내가 다듬어서 마무리를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명한 고전, 남들이 다 좋다는 명작이라도 내가 의미 있게 읽지 않으면 아무 가치가 발생하지 않는다.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것을 내 안에 받아들일 대 그 작품은 비로소 내게 가치를 갖는다. 값을 따질 수 없는 보석이든, 조금 기억에 남는 돌멩이든, 동전 한 닢이든, 그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도 나의 몫이다. / 52p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작품을 다양한 관점에서 읽는 방법을 소개한 부분이 인상 깊어 남기고자 한다. 첫 번째는 작가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관점이다. 작품은 작가의 ‘자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진한 유전자를 물려받는다는 관점에 따라, 작가의 또 다른 작품들을 통해 작가의 성향과 세계관까지 깊이 있게 읽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두 번째는 시간이나 공간적 배경에 초점을 맞추어 그 당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관점이다. 시대와 배경에 대한 많은 지식은 작품의 의미를 더 풍요롭게 해주는데, 이것이 과거 역사에만 그치지 않고 거시적으로 사회를 보는 시선과 접목되어 현시대의 정치나 경제와도 긴밀히 연결을 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사를 알수록 세계문학을 이해하고 감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세 번째는 내재적 관점, 즉 작품 자체에 좀 더 집중하는 경우다. 이는 내용과 형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가, 어떻게 전달하는가 등에 집중해서 작품을 읽어봄으로써 작품의 매력을 더 진하게 느껴보는 방법이다. 네 번째는 독자의 감상과 반응을 중요시하는 경우다. 어떤 지식이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감상에 충실하게 작품을 바라보는 방법이다. 한발 더 깊이 나아가 ‘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와 자신의 경험을 편하게 꺼내면서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발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내가 활용하는 다섯 마디 리뷰법을 소개한다. 원하는 항복을 더하고 빼면서 자신만의 리뷰 스타일을 만들어보자.

한마디: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한 문장으로 정리

두마디: 작품에 대한 감상을 한 문장으로 정리

추천 대상: 이 작품이 도움될 것 같은 사람

이미지: 작품을 이미지화하여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나의 질문: 작품을 내면화하는 질문 / 190p

 

 

 

 

 

 

   이 외에도 책은 여러 형태의 미디어 특성에 따라 제각기 다른 미디어 읽기의 방법들을 소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디어를 활용해 감상문 쓰기와 발표안 만들기, 책방송 만들기, 나만의 콘텐츠 제작법 등 생산적이며 지속가능한 실천법까지 소개하고 있어 알차다. 서평 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을 해석하는 방법에서부터 어떻게 글을 쓰면 좋은지, 또 그것을 미디어의 특성에 맞게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생각해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미디어가 일상이 된 지금, 늘 습관적으로 켜고 끄기를 반복하며 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만큼 이를 각성하고 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나의 미디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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