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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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터지다가도 어느새 감동으로 코끝이 찡해지는 가족 소설!

인생의 마지막 생일 파티를 맞은 한 남자와 그를 둘러싼 대가족의 유쾌발랄한 시트콤 같은 이야기!

 

 

  며칠 전날 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게 여름쯤이었으니, 그간 마음의 준비는 늘 하고 있었기에 충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다만 생에 워낙 미련이 많으셨던 분이라 끝끝내 다 채워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세상을 떠나보내게 한 것이 죄송스러울 따름이었다. 외할머니가 마지막까지 애타게 찾으셨다던 그분은 과연 장례식장에 나타나셨을까, 나는 아직 그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꽤 오랫동안 만날 수 없었던 친척들을 그곳에서 마주했다. 낯설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듯 강렬하게 이끌리는 감정이란 게 이런 것인가, 단 한 번도 손잡아 준 적이 없고 등조차 토닥여준 적이 없던 우리들이 외할머니의 부재를 통해서야 비로소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우리들의 시대는 다 흘러갔다. 이제는 너희들의 시대야.”

   나의 아빠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조부모님 세대와 이렇게 모두 이별을 하였으니 이제 나의 부모님 세대가 다음 이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왈칵 눈물이 밀려나왔다. 언제 이렇게 늙어버리셨나, 어느새 세월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이 나이가 들어버린 나의 부모님과 삼촌들 그리고 이모들의 얼굴을 훑어보면서, 아빠의 말처럼 이제는 가족의 중추가 우리 세대로 바뀌어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이렇게 작은 공간에 모두가 모였을 때에야 비로소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사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 죽음이 끊어진 줄로만 알았던 인연을 다시 이어붙이고 이렇게 가족이라는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붙들게도 한다는 것. 죽음이 반드시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바로 그곳에서 또렷이 마주할 수 있었다. 나의 ‘죽음’이 흩어졌던 가족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고, 대화를 할 수 있게 하고 화해를 할 수 있게 한다면, 그리하여 내 죽음이 어떤 식으로든 의미 있을 수 있다면 퍽 아름다운 것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나요, 외할머니? 빅 엔젤처럼 말이에요.

 

 

 

누군가는 이미 겪었고, 누군가는 앞으로 겪을 일이기에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은 뿔뿔이 흩어져있던 대가족을 한 데 모아 인생의 마지막 생일파티를 열면서 자신의 죽음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맞이하는 한 노인의 이야기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누구에게나 무겁기 마련이지만, 가장 번잡스럽고 떠들썩하게 마지막 생일을 보내며 가까워져오는 마지막 시간을 미처 화해하지 못했던 가족을 끌어안고 따스한 인사말을 건네며 이렇게 유쾌하게 마무리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특히 가문의 가장 큰 어른이자 수장으로, 한때는 가족 위에 군림하던 가부장적인 아버지였기에 죽음 앞에서 화해를 시도하는 이러한 과정이 자칫 신파로 그려질 법도 하지만, 소설은 특유의 시트콤 같은 발랄함으로 마지막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삶과 죽음’, ‘상처와 화해’, ‘연민과 사랑’과 같은 진부해 보이는 주제마저 화려한 축제 속의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소설 곳곳을 밝힌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 엄수를 중시하여 가족 중 누구도 느릿하게 구는 꼴을 절대로 두고 보지 못하는 그 유명한 빅 엔젤 데 라 크루스가 하필이면 자신의 생일 전날 열린 어머니의 장례식에 늦게 되어 무슨 알리바이를 댈까 전전긍긍해하는 모습 하며, 무기력하게 하반신을 모두 드러내가며 딸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해야만 하는 천덕꾸러기가 된 것에 몰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그러하다. 그러면서도 생일 파티에 난입한 총잡이 앞에서 당장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거친 욕설을 내뱉는 장면에서는 이 소설이 마지막까지 눈물 콧물 흘리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 일체 없음을 단호하게 보여준다.

 

 

 

빅 엔젤 데 라 크루스는 시간을 엄수하기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미국인들은 그를 가리켜 ‘독일인’이라고 부르곤 했다. 참 웃긴 일이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멕시코인이라고 해서 시간을 안 지킬 거라고 생각하다니. 비센테 폭스가 일처리를 제때 하지 못한 적이 있냔 말이다. 호로새끼들. 그놈들의 생각을 고치는 게 그의 소명이었다. / 16p

 

 

“아주 넓은 해안이 있어. 우리는 모두 자그마한 호수야. 그런데 저 물 한가운데가 요동치면, 중심에서부터 퍼진 물결이 완벽한 원을 이루거든.”

그때 그는 이렇게 대꾸했었다.

“데이브, 지금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인생이 그런 거라고, 멍청아. 너 말이야. 물결은 처음에 세차게 시작하지만, 해안으로 갈수록 점점 약해지지. 그러다 다시 안으로 돌아오고. 돌아오는 물결은 눈에 보이지 않아. 하지만 분명히 존재해서 세상을 바꾸는 법이야. 그런데 너는 지금 본인이 뭔가 성취했는지 어떤지 의심이나 하고 있잖아.” / 41p

 

 

휠체어에 앉은 그는 매처럼 사나웠다. 그는 비밀 병기처럼 복도에 뿜어지는 신부의 입 냄새를 맡았다. 빅 엔젤은 수천 명의 조카들과 손녀들과 자식들을 가리켰다. 그의 형제자매들은 이제 구세대였다. 맨 앞줄에 음산하게 앉아 있는 그들. 모두 마마의 유골함을 바라보며 동시에 똑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이제 제일 윗세대군. 이제 다음으로 죽는 게 우리겠지. 그들은 뒤를 돌아보다 빅 엔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그를 매일 같이 봤는데도 그랬다. / 94p

 

 

 

 

 

 

   멕시코인인 아버지와 미국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답게 멕시코인들의 생활상과 시대적 배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점 또한 눈에 띤다. 이는 빅 엔젤의 할아버지 세대에서부터 아버지, 그리고 빅 엔젤 자신의 경험담과 배다른 동생인 리틀 엔젤 그리고 자식인 랄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그려진다. 이를 테면 피부색이 너무 진한 갈색이라는 이유로 세군도는 로스앤젤레스 동쪽에 있는 공공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수 없었고, 1932년에는 대대적인 멕시코인 추방 분위기에 따라 2백만 명의 메스티소들이 잡혀서 기차에 짐짝처럼 실려 국경 너머로 보내졌다. 빅 엔젤과 같이 일했던 회사 중역들은 멕시코인이라면 바닥을 쓸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게 마련이라 생각했으며, 컴퓨터 센터장이나 사이버 시스템 관리자로 일하는 멕시코인을 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혐오감을 드러내며, 세상천지에 이런 일이 일어나버렸으니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며 은밀하게 자기들끼리 모여서는 정족수가 넘는 회의를 해버리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랄로는 파병이 되면 자동으로 미국인이 된다는 말에 넘어가 미국의 군인이 되었지만 결국엔 추방을 당해 어둠 속에서 티후아나 강을 건너 몰래 미국으로 들어와 이제는 아버지의 차고에서나 사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 그러하다.

 

 

 

그 시절, 빅 엔젤은 직업이 두 개였다. 가끔은 세 가지 일을 할 때도 있었다. 불쌍한 페를라는 어두운 아파트에서 고생을 했다. 그녀는 그저 멕시코로 돌아가고 싶었다. 엔젤이 왜 이토록 미국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건 더 나은 삶이 아니었다. 적어도 고향에서는 더불어 사는 이웃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다. 심지어 희망도 있었다. 티후아나에서는 파티를 하고 싶으면, 길 한가운데에다 모닥불을 지필 수 있었단 말이다. / 252p

 

 

“내가 떠나서 미웠겠지. 알아. 내가 형을 비롯해서 모두를 깔보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도 알아. 뭐, 어쩌면 그랬을지도. 난 평생 살아남기 위해서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어쩌면 형에게서조차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그런데 이제 형이 날 떠나려 하고, 나는 형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가 없어. 난 언제나 생각했어. 내가 원했던 아버지를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그리고 이제껏 내가 원했던 아버지는 사실 형이었어.” / 423p

 

 

모든 사람은 비밀을 품고 죽는다. 빅 엔젤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가장 끔찍한 사실을 안전하게 숨긴 채로 죽을 테니까. 삶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또한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긴 투쟁이다. 이것이 그의 가장 은밀한 비밀이었고, 그건 결코 죄가 아니었다. 다만 그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것 뿐이었다. / 466p

 

 

 

 

 

 

   이 소설이 흥미로운 소재와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작법으로 이목을 끄는 것에 비해 어느 정도의 호불호를 지닌 작품임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하자면 그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을 듯하다. 독자로서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멕시코-미국의 국가 관계 및 사회적 배경과 그만큼 복잡하고 방대한 가족 관계로 인한 몰입의 어려움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때로는 시적인 표현을 쓰다가도 때로는 저급하게 느껴지리만큼 직설적인 표현으로 인해 문학적 감흥을 떨어뜨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의미 있는 것은 세대와 시대를 넘어서서 ‘죽음’이라는 주제를 좀 더 삶 가까이에 끌어와 축제처럼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죽음이란 이미 그 자체로 숭고한 것이기에 마냥 진지하고 엄숙하게 받아들이기보다, 비록 시끌벅적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질지라도 내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가장 따뜻하고 즐거운 시간을 채워가는 것으로 이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이러한 순간은 찾아올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갈무리 할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다. 어쩌면 불의의 사고나 재난이 아니라 이렇게 세상과 작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생의 가장 큰 행운이 아니겠는가. 빅 엔젤이 보여주었던 바로 그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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