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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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정한 가족과 관계 맺기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소설!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이 잃어버렸던 기회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다!

 

 

  마흔을 앞두고 있는 요즘, 문득 조바심이 일기 시작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선택지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은, 내게 주어진 기회들도 함께 줄어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을 내조하고 있는 지금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지만 나이의 제한 때문에, 시간의 제약 때문에 망설이거나 포기하게 되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듯해서다. 그렇게 소거하고 소거하다보면 정작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때가 오는 것은 아닐까 그게 더 두렵기도 하다. 덕분에 나는 세상의 많은 ‘엄마’들이 잃어버리고만 ‘기회’들이 부쩍 눈에 밟힌다. 소설 『클락 댄스』도 바로 그런 기회에 관한 이야기다. 가족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느라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거듭 놓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성 그리고 그녀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 그것은 세상의 많은 엄마와 여성들을 향한 아름답고도 따뜻한 헌사다.

 

 

 

새로운 희망과 자기발견을 위한 메시지

 

 

 

저 학생들은 모두 완벽하게 행복한 집에서 살고 있을까? 집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 감추고 있는 학생은 한 명도 없을까? 누구도 그런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 30p

 

 

 

  이따금 아이들은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하곤 한다. “엄마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1967년, 윌라 드레이크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지고 없는 집 안 풍경에 슬쩍 두려워진다. 사실은 늘 있는 일이었다. 불같이 화를 내는 순간이 지나고 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엄마. 다짜고짜 혼자 집을 나가버리곤 마치 아무 일 아니었다는 듯 돌아와 천연덕스럽게 집안을 누비곤 했던 엄마. 더 슬픈 사실은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은 또 엄마에게 두 팔 벌리고 다가가 위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결국 윌라를 비롯해 여동생인 일레인의 삶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훗날 윌라는 엄마처럼 되지 않기 위해, 자식들이 엄마 기분이 어떤지 몰라서 노심초사하며 아침마다 방문을 살짝 열고 엄마의 기분을 살피며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했으니까. 반면 일레인은 아예 가족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그나마 윌라와 드물게 서로 얼굴을 마주할 때도 마치 어떤 자연재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처럼 강박적으로 어린 시절 얘기를 반복하곤 한다. 그나마 소리 한 번 지른 적 없는 자상한 아빠가 늘 곁에 있었다는 것은 두 딸들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윌라가 자기중심적인 성격의 데릭과 피터 같은 남자에게 이끌린 이유가 아빠의 우유부단한 성격에 대한 불만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괴팍한 엄마 밑에서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면 제일 슬픈 게 뭔지 알아?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은 또 엄마에게 두 팔 벌리고 다가가 위안을 얻어야 한다는 거야. 정말 불쌍하지 않아?”

“일레인, 이제 그만하고 잊어버려.” 윌라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윌라는 그렇게 매몰차게 말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100p

 

 

일레인의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순간 윌라는 동생과 터놓고 소통할 수 있었지만 놓쳐버린 기회들이 떠올랐다. / 106p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자신의 꿈을 접고 일찍이 데릭과의 결혼을 선택한 윌라는 보복 운전을 하다가 일어난 사고로 인해 그만 남편을 잃게 된다. 뜻밖의 젊은 미망인이 된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상처처럼 끌어안고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피터라는 남자와 재혼한 그녀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쓴 것과 달리 성인이 된 두 아들과는 데면데면하게 지내다 어느 날,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아들 션의 전 여자친구였던 드니즈가 다리에 총을 맞아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어린 그녀의 딸을 돌볼 사람이 없게 되어 이웃이 윌라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사실 셰릴은 션의 딸이 아니었기에 윌라에겐 볼티모어까지 날아가 셰릴을 돌봐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었지만 윌라는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향해 기꺼이 비행기에 오른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알지 못한다. 이렇다 할 만한 일이 없어 다소 무기력해진 상태에 빠져 있던 자신의 삶에 뜻밖의 변화가 찾아올 줄은.

 

 

 

“내가 어떻게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는지 알려줄까?” 아빠가 물었다.

“네, 말씀해주세요.” 윌라가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난 하루를 각각의 개별적인 순간들로 쪼개기 시작했단다.” 아빠가 말했다. “앞으로 더 이상 기대할 건 아무것도 없었거든. 그래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내가 감사히 여길 수 있는 순간들이 존재했지.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첫 커피를 마실 때, 작업실에서 뭔가 근사한 걸 만들고 있을 때, 텔레비전에서 야구 경기를 볼 때처럼 말이다.” / 108p

 

 

“죽음 뒤에도 그런 일이 생겨요.” 윌라가 남자에게 말했다. “남편이 죽은 후 줄곧 저도 그랬어요. 때로는 치매에 걸린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을 정도예요. 아마 이혼도 또 다른 종류의 사별이 아닐까 싶어요.”

“친구들이 제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불편해한다는 게 다르죠.” 남자가 말했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래요. 다들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어려워하죠.” / 117p

 

 

 

  볼티모어라는 낯선 동네에서 셰릴과 드니즈를 돌보며 윌라는 이제껏 느끼지 못한 새로운 감정을 갖게 된다. 자신이 꽤 괜찮은 할머니이자 보호자라는 믿음을 주는 사랑스러운 셰릴, 퉁명스럽게 말하곤 하지만 솔직하고 꾸밈없는 드니즈, 수다스럽고 오지랖이 넓어 보이는 괴짜 같은 마을 사람들까지. 이들과 나누는 따뜻한 정과 연대는 이제껏 데릭과 피터가 앞만 보고 돌진하는 동안 뒤에서 그들이 벌려 놓은 걸 치우고 사과하고 설명하며 세월을 보냈던 윌라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걸 시도해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동요되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난 그렇게 어리지도 않아요. 보기보단 훨씬 어른스럽거든요.”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겠지.” 피터가 말했다. “좀 더 커서 지금 이때를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러나 윌라는 셰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윌라도 어린 시절에 그런 감정을 느꼈었다. 조심스럽고 주의 깊은 어른이 어린아이의 몸속에 살고 있는 느낌.

그러나 나이가 든 지금은 모순되게도 성인이 된 어른의 얼굴 뒤에 열한 살쯤 된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 187p

 

 

“왜 그냥 바라기만 해요? 왜 우유부단하게 망설이기만 하세요? 왜 모든 일에 정면으로 나서지 않고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서 있는 거예요?” / 252p

 

 

 




 

 

 

 

  이처럼 『클락 댄스』는 가족과 타인을 배려하느라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던 한 여성이 새로운 삶과 기회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이 가족들에게 희생하느라 잃어버렸던 기회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메시지가 참 따뜻하다. 비록 단란한 일상과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에 불과할지라도 소통의 부재, 부모의 자존감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 등 진정한 가족과 관계 맺기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잔잔한 힘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 따뜻한 봄날, 이 책을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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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행복
김미원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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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쓸쓸하며, 때로는 서글퍼지는 삶의 여운이란 이렇게나 길다!

소소한 듯하지만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삶이라는 글쓰기!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당연히 주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 아무리 원해도 내 것이 아닌 것은 오지 않는다든 것, 내가 누군가를 저울질할 때 나도 저울질을 당하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 삶이란 결국 그 안에서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지난한 과정이라는 것을 나는 해를 거듭하면서 보다 절실히 깨닫고 있다. 어쩌면 이 원숙한 작가에게도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즐거운 고통』, 『달콤한 슬픔』 그리고 『불안한 행복』에 이르기까지, 삶의 이면과 아이러니 사이를 헤매며 매순간 흔들리는 연약한 우리의 숙명을 응시하는 그 시선이 꽤나 깊다. 살아 있는 것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가까이 느끼고, 가고 있는 길보다 가지 않은 길에 더 마음이 쓰일지라도 끊임없이 인생을 관조하며 ‘쓰기’를 통해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심중이 묵직하다. 덕분에 나는 또 한 번 다짐한다. 살면서 부닥치는 모든 것들, 그 인생의 기미를 나 역시 놓치지 않고 살며 읽고 쓰겠다고.

 

 

 

‘자기만의 방’이 있는 삶에 대하여

 

 

 

  이따금씩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딸이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들만 둘이 있는 나에게 그렇게 말할 때 마다 나는 괜한 말을 한다며 핀잔을 준다. 딸이라고 다 살가운 것도 아니고, ‘친구 같은 딸’이란 그럴 듯한 말로 딸에게 부담 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서다. 다만 엄마에게 딸이란 같이 나이 들어가는 여자이자, 친구이자 동지이고 또 다른 ‘나’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가 된 딸은 어머니의 눈물과 삶을 이해한다고. 그녀 역시 한 어머니의 딸이자, 이제는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가 된 딸을 둔 어머니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삶’이라는 것이 내내 눈에 밟히는 모양이다. 내가 어머니의 삶을 지켜보며 자랐고 이제는 내가 어머니라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또 어머니가 되어가는 딸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이제야 엄마라는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자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니까. 덕분에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엄마가 하지 못한 것들에 대신 미련이 남아서, 이제는 딸에게 의지하고 어깨를 기대는 순간이 많아질 것 같다던 고백이 꼭 나의 엄마가 하는 말인 것 같아서 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엄마가 가져다주러 갈게.”라는 말에 “그것 가져다주려고 여기까지 뭐 하러 와.” 하는 말 대신 “응. 조심히 와. 기다릴게.”라고 말해주어야지. 그리고 마주 앉아서 푸념이든 하소연이든 뭐든 들어나 주어야지, 하고.

 

 

 

때론 인생이 너무 가벼워 날아가지 않을까 겁이 날 정도로 행복한 적도 있었고, 때론 인생을 힘겹게 메고 지고 올라간 적도 있었다. 내가 가벼울 땐 누군가 삶의 무거움으로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내가 가파른 고개를 올라갈 때는 누군가 콧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숲길을 거닐고 있었을 것이다.

평안과 평안하지 않음이 교직되어 내 인생의 옷을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행복에 취해 있지도 말 것이며, 힘들다 해도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니 투정을 부리지 말아야 할 일이다. / 16p

 

 

내가 냉소적인가. 하지만 나는 늙음이란 “우리가 마음속으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바깥에서는 모든 사람이 보는 것”이란 마르케스의 말에 한 표를 던진다. 이것만큼 노인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나는 알지 못한다.

몸이 늙어 노인인 것을. 아이의 욕망과 노인의 욕망이 같은 것이라 해도 아이의 욕망은 귀여워 보이고 노인의 욕망은 추해 보인다. 어찌 생각하면 노인은 이성이 배제된 탐욕과 세상 경험으로 인해 축적된 오기와 고집덩어리일 수도 있다. / 25p

 

 

이제, 아침에 검던 머리 저녁에 희어지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읊었던 이백을 떠올리고, 태아에게서 죽음을 보았던 릴케를 떠올린다. 내가 우울한가.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기억하면서 삶이 더 행복해졌다. 한시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연필로 진중하게 꼭꼭 눌러 쓴 일기장처럼 인생을 살 수 있다. 어느 한순간도 흘려보내지 않고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 솔직하게, 에두르지 않고. 돌아가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고 아름다운 것들은 넘쳐나지 않는가. / 31p

 

 

 




 

 

 

 

  남편의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듬성듬성 흰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아빠의 것이 아니라 남편의 흰 머리카락을 뽑고 있으려니 세월이 참 무상하게 느껴진다. 어릴 적의 나는 멋도 모르고 아빠의 흰 머리카락을 뽑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 중 꽤나 의미 있는 일처럼 느껴졌는데, 아빠는 그때 자신의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지금 남편의 얼굴을 보니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고 보면 우리 부부는 같은 초등학교를 나와 어린 시절부터 쭉 같은 동네에서 자랐는데, 그 세월이 켜켜이 쌓여 이제는 흰 머리카락을 뽑아주는 사이가 되었으니 신기한 일이다. ‘노가다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현실 감각과 솔직함을 그가 지녔기 때문’이라던 책 속의 글귀처럼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것도 꼭 그 이유였다. 인테리어를 업으로 삼고 있는 남편은 섬세하면서도 생활력이 강하고 현실적이어서 나와는 정반대인 구석이 있지만 그래서 믿음직하고 신뢰가 갔다. 한량처럼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지지해주어서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은 바쁜 시간을 쪼개 매일 빠듯하게 움직이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버릴 만큼 갖은 스트레스를 떠안고 살고 있으니 많이 미안해진다. 그게 다 우리를 품기 위한 노력이라는 걸 알기에 더 고마워지는 요즘이다. 지금은 비록 두 아이들 돌보느라 남편보다는 아이들에게 모든 걸 맞추고 있지만,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온전히 당신을 보살피고 사랑해주겠노라 이 글을 빌려서 약속해야지.

 

 

 

젊을 때는 경험한 것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살아온 세월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어 노인의 기억은 누더기가 된다. 이렇게 보면 노인은 거짓말쟁이라는 이야기는 일견 억울할 수 있다.

나를 합리화하기 위해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정당화하고, 기억을 왜곡하고 재구성하지 않으면 우리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기억이 불완전할수록 행복해질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 50p

 

 

나이 들어가며 당연히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모든 것이 내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하여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지혜를 배운다. 두려운 것은 내가 행복하다고 충만한 감정에 빠져 있을 때 타인의 아픔을 망각하는 것이다. 행복에 도취되어 다른 중요한 것을 잃을까, 놓치는 게 있을까 경계한다. / 84p

 

 

 



 

 

 

 

  어쩌다보니 책에 대한 감상보다는 나의 이야기가 꽤나 길어지고 말았는데, 수필이란 건 그런 것 같다. 타인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가장 진솔한 이야기 중에 하나라고. 결혼, 엄마, 가족, 중년과 노년의 경계에 선 자아, 삶과 죽음, 내가 가지 못한 수많은 길에 대한 담담하고 솔직한 그녀의 이야기에서 나와 나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삶을 더듬어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나만의 죽음 방식을 생각하며 카를 힐티처럼 맑은 정신으로 경치 좋은 곳에서 책을 읽다가 동백꽃처럼 꺾어지고 싶다던 그 고백을, 더 늙기 전에 노아처럼 불가능한 것을 한번 꿈꾸고 기다려보겠노라는 바람을 나도 기억하고 몸에 새겨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여담이지만 여행지 속에서 예술가의 삶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성찰해낸 마지막 장은 또 다른 형식의 책으로 다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여기서 쓰지 못한 마지막 장에 대한 리뷰는 꼭 나중에 다른 책으로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독자가 있다는 건 작가에게 또 다른 책을 써볼 이유가 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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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읽는 말 - 4가지 상징으로 풀어내는 대화의 심리학
로런스 앨리슨 외 지음, 김두완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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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면 ‘말이 가진 힘’에 공감하게 된다!

진정한 관계와 대인 근력을 키우기 위한 의사소통 기술!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하거나 책을 읽기 전에 나는 항상 저자의 소개글을 살펴보곤 한다. 어느 나라 출신인지, 전공은 무엇인지, 과거의 저작들은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타인을 읽는 말』은 저자의 독특한 이력이 단연 눈길을 끄는 책이다. 부부이자 학자이며 동반자인 로런스 앨리슨과 에밀리 앨리슨은 20여 년 동안 살인, 강간, 아동 성 착취, 테러리즘 등 수백 건의 중대 사건을 분석하고 심리학적 조언을 제공해온 프로파일러이자 심리학자다. 특히 이들이 만든 가족 치료 프로그램은 영국 내 80여 개의 학교, 10여 개의 청소년 비행 전담팀 등 기타 수많은 사회 복지 기구에서 쓰이고 있고, 대테러 심리 전략인 라포르 기반 대인 관찰 기법 모델은 특수 경찰 팀에서 테러 용의자들의 신문 방식을 개선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범죄심리학자인 부부가 완성한 ‘상대를 읽어내고 움직이는 심리 대화법’이란 과연 무엇일까. 여느 화술책이나 심리학 서적과의 차이점은 또 무엇일지 궁금한 마음으로 따라가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책이다.

 

 

 

상대방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 기술, 라포르 전략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라포르(rapport)란, 동의, 상호이해, 공감 등을 특징으로 하는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뜻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두 사람이 서로 ‘통했을’ 때 형성되는 게 라포르다. 『타인을 읽는 말』의 저자인 로런스 앨리슨과 에밀리 앨리슨은 성공적인 대인관계의 바탕에는 라포르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과 매일 라포르를 형성하고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포르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나 공식을 알지 못해서 타고난 성격의 문제로 여기곤 하는데, 모든 인간관계를 더 긍정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라포르를 형성하는 요소를 이해하고 공식을 파악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라포르로 얻을 수 있는 것

● 새로운 친분과 관계를 만들고 사회적 고립을 막을 수 있다.

● 배우자, 자녀, 친구, 부모와의 관계를 더 탄탄하고 더 깊이 있게 만들 수 있다.

● 한층 더 향상된 의사소통 능력으로 할 말은 하면서도 동료, 관리자, 주요 고객과 효과적인 비즈니스 관계를 펼칠 수 있다.

● 동의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상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어렵고 까다로운 상황을 부정적 방향이 아닌 생산적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 20p

 

 

 

  라포르를 형성하기 위한 핵심 원칙은 크게 네 가지다. 솔직함(Honesty), 공감(Empathy), 자율성(Autonomy), 복기(Reflection)다. 첫 번째로 원하는 바를 위해 속임수나 기만을 쓰는 것이 아닌 분명한 메시지와 진정성, 단순 명쾌함을 동반한 ‘솔직함’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네 친구 이마에 붙은 파리를 없애려고 손도끼를 쓰지는 말라”와 같은 중국 속담처럼, 솔직함을 대놓고 무기 삼아 상대방에게 무안을 주기보다는 필요한 만큼의 힘만 쓰기를 주의해야 한다. 또한 상대방의 신념과 가치를 위해 ‘공감’하고, 겁을 주거나 힘을 써서 순응이나 복종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자발적’ 동의를 통해 협조를 끌어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자. 개인적으로는 상대방 이야기의 기저에 흐르는 메시지를 되짚어보는 ‘복기’야말로, 얼마나 이 과정을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대화에 깊이와 풍성함이 더해지고 이해도와 친밀도가 높아진다는 점에서 반드시 연습해볼 필요가 있는 대화법인 듯하다. 주로 언쟁에 빠질 위험이 있을 때,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을 직설적으로 지적하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변화를 유도하고 싶을 때,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상대와 대화를 나눌 때 책에서 일러주는 복기의 표현법을 잊지 말고 꼭 활용해봐야겠다.

 

 

 

다수의 연구 결과에서도 강압적인 작전은 궁극적으로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당장에는 통할지 몰라도 결국에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억압적 전략에 ‘악의적 순응’이나 ‘직장 내 일탈’로 대응한다. 겉으로는 협조하는 척하다가 자신을 통제하려는 사람의 권위를 약화하거나 좀먹는 행동을 한다. 직장에서 이는 불필요한 병가, 성과 저하, 악의적 뒷담화, 회사에 대한 악평, 직장 내 도난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10대 자녀에게서는 부모와 사이가 틀어지거나, 규칙에 따르기보다는 걸리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 형태로 대항한다. 배우자는 부엌 청소는 돕겠지만 자기 전까지 상대를 무시한다. / 46p

 

 

상대가 무엇을 했는지에 집중하기보다는 당신이 그 상황을 그렇게 대하게 만든 생각과 느낌을 곱씹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어떤 표현으로 설명을 할지 생각해 보자.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한테 든 생각은….” “그가 나를 떠나가 버렸을 때, 내 기분은….” “내가 남편(아내)한테 문자를 보냈을 때, 나한테 든 생각은….”

자신의 행동을 이와 관련된 생각과 느낌의 측면에서 묘사하는 능력은 1단계 공감을 완전히 익히는 데 필요한 열쇠다. / 77p

 

 

공감은 다정하고 친근하게 대하는 것과 별개다. 이건 공감이 아니다. 우리가 논의한 것처럼, 진심 어린 공감을 보이려면 상대방과 그 사람이 신경 쓰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상대가 이슬람 국가 테러리스트든, 무장 강도든, 성범죄자든 상관없다. 다만 누군가의 동기, 가치, 행동을 이해한다는 게 꼭 그것들에 동의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의 입장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판단이나 의견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진심 어린 관심을 보여야 한다. / 85p

 

 

 




 

 

 

 

4가지 상징으로 타인을 읽는 법, 애니멀 서클

 

 

  물론 라포르 전략이 모든 의사소통 상황에서 관계를 개선하는 데 유용한 무기가 되어준다고 하지만, 저마다 다른 유형의 사람들 앞에서 모두 동일한 효과로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타고난 리더로 갈등을 즐기지만, 또 어떤 사람은 사교적이지 않아서 물러서 있기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솔직하고 직설이고 비판적이지만 공격적이나 위협적으로 느껴져서 갈등을 유발하는 ‘티라노사우르스’ 형, 겸손하고 끈기가 있어 생각이 깊지만 대립의 상황에서 회피하거나 순응하려 드는 ‘쥐’ 형, 확실한 결정과 통제를 통해 리더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었지만 자칫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고 독단적일 때가 있는 ‘사자’ 형, 모두에게 친근감 있고 다정하지만 공과 사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도를 넘은 친근감과 애착으로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원숭이’ 형을 꼽을 수 있다.

 

 

 

  책은 바로 이 네 가지 유형을 통해 자신이나 상대방이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대입해보고 각각 유형에 따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나눌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한다. 특히 애니멀 서클이 지향하는 목표는 우리는 주요 의사소통 방식 네 가지 중 하나의 기질을 주도적으로 타고나지만, 각각의 의사소통 방식을 어느 정도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원래 수줍음을 많이 타는 쥐일지라도 때로는 자기주장을 해서 사자가 돼야 하고, 원래 친근한 원숭이일지라도 때로는 티라노사우루스처럼 다른 사람에게 비판적이거나 확실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나는 어떤 동물 방식에 강하고, 일반적으로 어떤 방식이 천성적으로 거리가 먼지 파악해봄으로써 태생적으로 강한 영역은 무엇인지, 나아가 대인 기술을 개선하고 확장하려면 어느 영역에 집중해야 하는지 파악해보는 이러한 과정은 성숙하면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의사소통 능력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통제 전략은 효과가 있어 보이지만 당신의 ‘적’이 한 수 앞선 방법을 찾거나 티라노사우루스만큼 커져서 돌아오면 힘을 잃는다. 당신은 통제 효과를 잠시 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전략을 자녀와의 관계에서 내내 고집스럽게 쓰면, 아이들은 신뢰와 존중이 아닌 원망을 키우게 된다. 자녀가 부모를 따르는 건 선택원이 없어서지, 부모의 이유를 이해하고 부모의 규칙을 존중해서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짧게나마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아이들에겐 분명한 경계 구분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억지로 말을 듣게 해서 만들어진 분위기는 궁극적으로 두려움과 반항을 낳는다. 그것은 신뢰, 존중, 배려,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랑을 무너뜨린다. / 187p

 

 

논의가 격화됐을 때 당신이 자녀에게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다면, 자녀는 이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첫째는 논쟁이 언쟁으로 변해서 더는 생산적이지 않을 때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자녀의 입장에서는 언쟁이 일정 수준에 다다랐을 때 한발 물러서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더 낫다는 걸 배울 필요가 있다. 둘째는 시간을 갖고 마음을 진정시킨 뒤 감정이 누그러졌을 때 다시 문제로 돌아옴으로써 자신의 감정 상태를 다스리는 것이다. 이것은 감정적 자기 조절로, 성장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 233p

 

 

어색하고 까다로운 대화를 영원히 피할 수는 없다. 나이를 먹어서도 그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어떻게 할 텐가. 우리는 언젠가 그런 경험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피하기보다는 잘 해결할 수 있도록 자신감과 기술을 갖추는 편이 더 낫다.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균형 잡히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직접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능력이다. / 69p

 

 

 




 

 

 

 

  애니멀 서클에 나를 대입하다보면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 못지않게 내가 힘들어하는 영역이 무엇이고 그것을 발달시키는 방법에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배우게 된다. 덕분에 나는 나쁜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을 간혹 보일 때가 있는 남편이 쥐의 유형인 아이와 어떻게 소통을 나눠야할지 알 수 있게 되었고, 나쁜 쥐의 태도로 곤란한 상황을 회피할 때가 있는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공유하는 생활이 적고 일과가 상이한 우리 부부가 상대방의 하루를 비교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감정과 경험에 감사와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고, 아이의 감정 상태에 어떻게 반응하고 조절해주어야 할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타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이에 적절히 반응하며 관계를 맺기란 참 어려운 일이지만 이 책을 통해 좀 더 능숙하고 유연한 소통 능력을 기를 수 있어 의미 있는 독서였다. 거듭 추천해도 아깝지 않을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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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신경썼더니 지친다 - 섬세하고 세심한 사람들을 위한 실전 안내서
다케다 유키 지음, 전경아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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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본심을 소중히 여길 때 더욱 단단해진다!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들을 위한 위로와 응원, 더 이상 나를 탓하지 마세요!

 

 

  “사람이 많은 곳에 있으면 피곤해.”, “너무 생각이 많아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겠어.”, “저 사람, 나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걸까?.”, “나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싫다고 말하면 저 사람이 기분 나빠할까?”, “너 편한 대로 해. 나는 아무래도 괜찮아.” 섬세한 이들은 상대의 사소한 말투와 표정, 감정 그리고 주변 환경과 분위기에 특별히 민감한 편이다. 하지만 섬세한 사람이 ‘잘 느끼는’ 성질에 대해 누군가는 “너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별 것도 아닌 걸 일일이 신경 쓰고 그래?” 하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점점 타인과의 만남이 버거워지고, 새로운 일을 하거나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소극적이 될 때가 많다. 지금까지 적은 글은 다른 누구도 아닌, 모두 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간 나는 적당히 둔감해질 것을 무던히 애써왔다. 특히 관계 앞에서 상대방의 분위기에 나의 감정까지 좌지우지되었던 것을 최대한 모른 척 하거나 이도저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그 자리를 피하는 쪽을 택했다. 또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진짜 내 사람들을 살피는 데에만 마음을 쏟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다만, 아직까지는 타인지향적인 성격이 앞서서 나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 타인의 의견에 맞추는 쪽이 더 편한 것은 변함이 없다. 엄마의 이러한 성격을 나의 첫째 아이가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도 마음에 쓰인다. 그나마 희소식라면 희소식인 것은 ‘섬세함은 환경에 의한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이며, 선천적으로 키 큰 사람이 있는 것처럼 선천적으로 섬세한 사람이 있다’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 박사에 따르면 다섯 명 중의 한 명꼴로 ‘선천적으로 타고나기를 섬세한 사람’이 존재하며, 이런 섬세함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타고난 기질이라고 한다. 또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의 조사에 따르면 섬세한 사람은 갓난아기 시절부터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같은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때 신경의 흥분과 관련된 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과 코르티솔도 다른 아이보다 많이 나온다고 한다. 『너무 신경 썼더니 지친다』의 저자 다케다 유키 역시 인간만이 아니라 어떤 종이든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체’의 비율은 비슷하며 어쩌면 전체의 종이 잘 살아남기 위해서 일부 더욱 신중한 개체가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한다. 즉, ‘섬세함’이란 나와 타인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더 살아남기 위해 택한 기질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이 말은 어쩐지 위로가 된다.

 

 

 

섬세함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자

 

 

 

  『너무 신경 썼더니 지친다』는 섬세한 이들이 자신의 기질을 이해하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서 관계 속에서 행복해지는 노하우를 담은 실용서다. 타고난 섬세한 감각을 기준으로 자신에게 좋은 것, 나쁜 것을 구분하고 자신에게 맞는 인간관계와 직장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주목할 점은 섬세함을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닌 장점으로 본다는 데 있다. 저자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진심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가 섬세한 사람의 행복을 가르는 승부처라고 말한다.

 

 

 

  책은 총 5장에 걸쳐 섬세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술들을 소개한다. 본격적인 내용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1장에서는 섬세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며 자신이 어떠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보고자 한다. 이를 테면 섬세한 사람의 특징은 ‘감지하는 능력이 특출’나다는 점이다. 사람의 감정, 자리의 분위기와 같은 인간관계에 관한 것에서부터 빛과 소리, 기온 등의 환경 변화까지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과 몸 상태, 자기 자신의 기분, 새롭게 떠올린 아이디어처럼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난 것’도 예민하게 감지해낸다. 때문에 세심하지 않은 사람보다 타인의 감정과 분위기에 자극을 받는 강도가 커서 더 빨리 지쳐버린다. 또한 느끼는 힘이 강하다 보니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문제와 재작업해야 할 상황을 재빠르게 알아차린다. 나아가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된다’라는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이 특징인 섬세한 사람들은 최선의 방법에 따라 행동하려고 하는 성향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이 외에도 책에는 섬세한 사람들의 특징을 다양하게 열거하고 있는데, 읽다보면 '어쩜 다 내 얘기야‘하고 탄식하게 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각각의 특징은 저마다의 장점이 있음을 강조하며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과 기술을 제시한다.

 

 

 

세심한 사람에게는 마음이 푹 쉴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음껏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과하게 받은 자극을 흘려보내면, 밝고 온화했던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여 새로운 자극을 즐길 만한 여유를 가져야 다른 사람과 함께 있고 싶고, 누군가와 왁자지껄 떠들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 것입니다. / 33p

 

 

“생각만 많고 행동을 하지 못해.” “최선의 방법을 찾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어.”

그렇게 깨달았을 때, ‘일단’을 도입하면 일상 업무와 생활이 훨씬 빨라집니다.

“방향성을 설명하고 나서 부탁하는 게 최선이지만 일단 데이터를 보여 달라고 하자.”

“그거 하고 나서 이걸 하는 게 좋겠지만 그건 지금 하지 못하니까…… 일단 이것부터 하자.”

처음에는 “사실 다른 방식으로 하는 편이 좋았는데!”라고 낙담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로 몇 번 해보면 “최선이 아니어도, 일이 굴러간다”는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 40p

 

 

그건 마치 다양한 장난감이 들어있는 투명한 공(=의견)으로 가득찬 캡슐완구에서 억지로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공만을 꺼내려는 것과 같습니다. 상대방의 ‘정답’이라고 생각되는 공을 꺼내려고 하지만 다른 의견이 쓰인 공에 막혀 버리듯이, 말문이 막혀 ‘의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나는 내 의견이 없어”라고 생각한다면, 먼저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를 골라 혼자서 마음껏 떠오르는 생각을 하나하나 종이에 적어보세요.

혹은 가족과 친구 등에게 “상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는데요”라고 말해보세요.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상대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의견이 술술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 47p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섬세한 감각의 세기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나는 이렇게 배려하는데 왜 저 사람은 나를 배려해주지 않지?” “나만 손해 보는 기분이야.” “나는 이렇게 속상한데, 저 사람은 내 마음을 알아주지도 않고 너무 무심해.” 이런 생각들로 인해 관계에 소원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저자는 섬세하지 않은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는 자신의 감각과는 차이가 있다는 걸 꼭 알아두라고 조언한다. 섬세한 사람과 섬세하지 않은 사람은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토대가 되는 ‘감각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섬세한 사람이 아무리 “알아달라”, “눈치채달라”고 호소해봤자 섬세하지 않은 사람이 ‘알아차리기’, ‘눈치채기’란 불가능하다. 섬세하지 않은 사람에게 없는 것(섬세한 감각)을 “알아 달라”고 요구해봤자 무리라는 뜻이다. 이에 섬세하지 않은 사람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각을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고 이쪽에서 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말로 알려주는 것, 서로 의논하는 것이 중요하다. 덕분에 나는 상대가 정말 몰라서, 알아채지 못해서 일어난 오해를 상대방의 무심함으로 돌린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람이 떠남으로써 일시적으로 고독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얼굴에 드러내면서 하고 싶은 걸 하며 지내는 동안에, 반드시 “네가 좋아”, “당신도 멋지네”라고 말해주는 사람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친구와 가족, 여태까지 맺어온 인간관계 속에서도 “그렇게 생각했었구나.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해줘서 기뻐”라고 당신의 기분과 의지를 존중하는 사람, 여러분을 소중히 대해주는 사람은 남을 것입니다.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면 이렇듯 인간관계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느긋하고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지낼 수 있는 관계가 늘어나게 됩니다. / 92p

 

 

섬세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일단 ‘별거 아닌 일을 부담없이 부탁하는’ 연습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부탁하여 도움을 받는 경험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도 괜찮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조금만 부탁해^^”는 섬세한 사람의 인생을 지탱해주는 말입니다. 사소한 일부터 부탁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그러면 누군가와 어느새 큰 고민도 상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118p

 

 

 




 

 

 

 

  저자는 ‘섬세한 감각을 봉인하자’고 하는 것은 ‘눈 덮인 산에서 잠이 드는 무모한 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감각이 마비되면 스트레스를 받아도 알지 못하게 되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심신 모두 피폐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섬세한 사람에게 섬세함이란 자신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분이며, 섬세함을 ‘좋은 것이다’라고 받아들여보자. 무엇보다 자신의 본심인 ‘이렇게 하고 싶다’라는 바람을 소중히 여기고, “나에게는 섬세한 면도 엉성한 면도 있어요. 그게 나입니다.” 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보자. 나도 이 책을 읽으며 그렇게 다짐해보기로 했다. “내가 느낀 감정이 나한테는 정답이었어!”라는 말을 주문처럼 삼아보면서.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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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고전 읽기의 즐거움 서가명강 시리즈 15
홍진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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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학과 고전 문학 읽기의 즐거움을 단박에 선물하는 책!

이토록 재미있고 다양한 해설을 즐길 수 있다면 고전 문학에 대한 장벽은 낮아지지 않을까!

 

 

  몇 주 전, 나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으며 또 다시 낭패감에 빠지고 말았다. 문장의 흐름대로 의식이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기존의 독서법으로는 쉬이 접근하기 어려운 데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어 읽어가면서도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수고로움을 번번이 겪었기 때문이다. 그건 단지 『시지프 신화』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고전 문학을 읽을 때마다 앓게 되는 나의 고질병 같은 것이었다.

 

 

 

  물론 하루에도 수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볼거리도 넘쳐나는 시대에 어렵게만 느껴지는 고전 문학은 굳이 읽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과 세계에 대한 진지하고 변함없는 고민을 담고 있으면서 시대가 달라져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고전 문학에 대한 열망은 또 다시 나를 붙든다. 이처럼 좌절과 열망을 반복하는 고전 문학 읽기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현직 서울대 교수진의 강의를 엄선한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열다섯 번째 시리즈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은 바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독자들을 위해 쓰인 책이다. 헤세, 괴테, 호프만스탈, 카프카에 이르기까지, 매혹적인 고전 읽기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고전 읽기의 즐거움

 

 

 

  서점에 방문했다가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눈에 띄는 한 책을 발견했다. 바로 『데미안』이다. 화제가 되고 있는 여러 책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고전 문학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광경이 무척 흥미로웠다. 어째서 이 작품은 이토록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현대인들에게 있어 『데미안』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졌다. 홍진호 교수는 우리가 『데미안』을 읽는 이유는 어쩌면 모두 인생의 중요한 한 순간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그들에게 『데미안』은 책장 속에 꽂혀 있는 여러 소설들 중 하나가 아니라 삶의 가장 개인적인 부분에 연결되어 있는, 어쩌면 지나간 삶의 일부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 중에서도 헤세가 끊임없이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강조한 것이야말로, 20세기 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이 이 소설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것이 가치가 있고 없는지, 삶과 가치의 모든 기준이 불분명한 방황의 시기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만큼 멋진 위로의 말은 없을 테니까.

 

 

 

  이처럼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은 『데미안』이라는 고전 문학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그것을 즐기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해석’이라 부르는 세심한 독서와 성찰을 통해, 작품의 배경이나 당대의 가치관 또는 작품 밖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 등으로 하여금 작품을 올바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한편, 『데미안』이 문학작품은 ‘해석’을 거쳐야만 진정한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작품이라면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통』 은 한 작품이 여러 해석의 층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는 한 번만 읽어서는 눈치 채기 어려운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비극적인 짝사랑이라는 줄거리 층위의 이야기(경험, 진정성), 그 아래 숨어 있는 계몽주의와 질풍노도 예술관의 대립, 기독교 안에 머무르지만 교리를 보다 자유롭게 해석하는 범신론적 종교관, 궁정과 공직사회 문화를 비판하면서 귀족 계급과 시민계급 사이의 정치적 갈등을 보여주는 정치관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다양한 해석의 층위는 독자와 작품 간의 거리를 좁히고 좀 더 밀도 있는 독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헤세가 유년기와 젊은 시절을 보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전통적인 인간관과 세계관, 가치체계가 붕괴되었지만, 아직 새로운 인간관과 세계관, 가치체계가 자리를 잡지 못한 혼돈 상태가 이어졌다. 개인의 삶으로 비유하자면 교육을 통해 배운 부모세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이유 없이 거부하지만, 아직 이를 대체할 새로운 가치간과 세계관을 갖추지 못한 현대 유럽 문명의 ‘사춘기’와도 같은 시기가 바로 유럽의 세기전환기였던 것이다. / 57p

 

 

인간 개개인이 세계, 혹은 총체로서의 자연이 개별화된 존재이며, 개별화된 상태를 벗어나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때 삶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발상은 『데미안』에 나타난 헤세의 인간관과 일맥상통한다. 인간은 개별화된 존재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연의 일부이며, 총체로서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 혹은 우리가 ‘나’로 인식하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작고 힘없는 존재이지만, 자연적 존재로서 내면 깊은 곳에 세계 전체를 가지고 있는 일종의 마이크로 코스모스라는 생각은 헤세와 니체, 쇼펜하우어를 하나로 묶어준다. / 65p

 

 

이 질풍노도는 1767년부터 1785년까지, 문예사조로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유행한 경향으로, 20대 초반의 젊은 작가들이 주도한 것이었다. 이들은 모든 것을 이성의 잣대로 판단하는 계몽주의적 예술에 반대하며, 직관과 천재적 영감, 격정적인 감정, 예민한 감수성을 다시 문학과 예술의 중심에 놓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 문학 운동의 핵심에 『젊은 베르터의 고통』을 쓰던 시기의 젊은 괴테가 있었다. / 126p

 

 

 




 

 

 

 

  앞서 헤세의 『데미안』,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통』처럼 익히 알려진 작품과 달리 책에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작가의 작품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호프만스탈의 「672번째 밤의 동화」다. 복잡한 해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와도 같은 작품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한 부잣집 남자가 하인의 누명을 풀어주러 시내에 나갔다가 말에 차여 죽는다는 비교적 간단한 줄거리를 하고 있지만 너무나도 긴, 뜻을 알 수 없는 묘사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수께끼 같은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홍진호 교수는 세기말의 염세적인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유미주의라는 예술 사조를 끌어온다. 유미주의란 ‘아름다움’ 즉, 미의 창조를 예술의 유일한 가치로 삼는 것을 일컫는다. 호프만스탈은 소설 「672번째 밤의 동화」를 통해 최대한 유미주의적 이상을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결코 순수한 유미주의적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결코 “삶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유미주의적 삶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진화의 원동력은 가능한 한 많은 개체를 생산해내고자 하는 자연적 의지, 즉 성적 욕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생물의 내면에 존재하며 모든 생물을 진화로 이끄는 가장 본질적인 자연적 성질은 바로 성적 욕망이다. 인간 역시 자연현상이며 진화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면 그들의 본질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다른 생물들과 다를 바 없이 바로 성 욕망이다. 오랜 기독교의 전통 속에서 항상 죄악으로 여겨져 은폐되고 억압되었던 성 욕망이 이제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성격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 166p

 

 

이렇게 본다면 문명의 끝자락에서 태어나 유미주의적 삶을 살아가다가 결국 유미주의적 삶의 내적 모순 때문에 몰락하고 마는 상인의 아들 이야기는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의 죽음은 유미주의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자세를 드러내주지만, 동시에 유미주의적 삶을 체현하고 있는 주인공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율배반은 이 이야기의 작가인 호프만스탈이, 이미 극복되어버린, 혹은 극복하는 과정에 있는 과거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섬세하고 예민한 젊은 유미주의자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연민은 구제할 길 없이 몰락할 수밖에 없는 자에 대한 연민이라는 점에서 우울한 정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 233p

 

 

 

  마지막으로 만나게 될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시골의사』는 독자가 정보나 경험의 부족으로 해석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해석이 불가능한 작품의 예를 보여준다. 홍진호 교수는 수십 년에 걸친 평론가들과 연구자들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정설이라 할 만한 해석이 나오지 않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는 작품과 작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프란츠 카프카라고 말한다. 저자는 ‘카프카의 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카프카의 작품을 올바로 이해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작품을 즐기는 수단’이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은 작품과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또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들을 함께 동원하여 작품을 해석해보고, 처음 읽을 때 해독할 수 없었던 내용을 하나씩 알게 되어갈 때 느끼는 즐거움을 알려주고자 한다. 최종적으로 작품 전체의 의미가 보이고, 작가의 의도를 깨닫게 될 때 느끼는 기쁨은 정서적 감동과는 전혀 다른, 지적인 울림이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책을 읽고 나면 고전 문학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어서 빨리 소개된 작품들을 읽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국내 번역본 중에 호프만스탈의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환상문학은 몇 가지 공통적인 성격을 갖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초자연적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일상생활을 결정짓는 법칙성이 깨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안정적으로 보이는 우리 세계의 질서가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환상문학이 현실비판적인 성격을 가진다면, 이는 바로 초자연적 사건으로 생겨난 이러한 ‘세계의 균열’ 때문이다. / 270p

 

 

카프카는 벌레로의 변신이라는 초현실적 상징을 사용함으로써 현실세계의 모순을 보다 강조하여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 사건을 활용하여 독자를 우선 현실세계 맥락에서 멀리 떼어놓았다가, 알게 모르게 다시 접근하여 현실세계의 모순을 눈앞에 덜컥 던져놓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어쩌면 그동안 너무나 익숙한 것으로,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을 현실 문제를 다시 한 번 충격적인 방식으로 인지하도록 만들어준다. / 276p

 

 

 




 

 

 

 

  사실 고전 문학을 읽다보면 책의 말미에 수록된 해석을 읽는 것조차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에 비해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은 비교적 다양한 층위에서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되어 있어 유쾌한 지적 탐험을 한 듯한 기분이다. 이 책으로 하여금 독일 문학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되었을 뿐더러 당시 독일의 시대 상황과 문학 사조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믿고 읽는 서가명강 시리즈답게 독일 문학과 고전 문학에 대한 흥미를 한껏 끌어올려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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