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어디에나 있어! - 제21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 부문 수상작 사회와 친해지는 책
이남석.이규리.이규린 지음, 김정윤 그림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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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더 즐겁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디자인에 관한 모든 것!

이제껏 몰랐던 디자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지식 쏙쏙 어린이 교양책! 

 

 

 

   직업상 우리 부부는 주말이 되면 아이와 함께 새로운 디자인이 돋보이는 창의적인 공간을 자주 찾곤 한다. 신랑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고, 나 역시 한때 출판사에 몸을 담으며 편집 디자인과 관련된 업무를 주로 해왔기 때문에 늘 새로운 아이디어와 참신한 발상이 돋보이는 공간, 혹은 사물에 유독 관심이 많은 편이다. 비록 아이가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디자인이라는 개념 하에 기존의 발상을 해부하고 새롭게 조합해보려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시도들을 아이에게 꾸준히 노출시켜줌으로써, 아이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다.

 

 

 

   이 때문에 '디자인'을 주제로 한 어린이 교양서가 출간되어 무척 반가웠다. 디자인이란 것이 단순히 미적 감각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과 공공성 등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만큼, 어린이들에게도 이에 대한 개념과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쉬운 이야기책이 나왔기에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우리 모두를 위한 디자인의 가치

 

 

   <디자인은 어디에나 있어!>는 창비에서 실시한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를 통해 당선된 작품으로 어린이를 위한 디자인 입문서이자 교양서다.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나 소셜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저자들이 모여 어린이들이 어렵지 않게 디자인의 개념과 가치를 이해하고 디자인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특히 쌍둥이인 유진이와 예린이가 디자인 엑스포를 방문해 그곳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디자인 엑스포로 들어선 유진이와 예린이는 가장 먼저 대형 스크린을 통해 다양한 디자인 분야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게 된다. 흔히들 알고 있는 패션 디자인, 광고 디자인을 비롯하여 기업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시아이 디자인, 활자의 서체를 디자인하고 다양한 매체에 쓰이는 타이포그래피, 비상구나 화장실처럼 시설, 사물, 개념 등을 단순하게 그림 문자로 나타낸 픽토그램 등 디자인이란 이름의 다양한 영역들을 알게 된다. 이어 '유니버설 디자인'을 주제로 한 두 번째 부스에서는 장애,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 제품들을, '인간 공학 디자인'을 주제로 한 세 번째 부스에서는 인간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편안하고 효율적인 제품과 서비스, 환경을 고려한 제품들을 경험한다. 이곳에서는 안내원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이 직접 디자인 물품들을 만져보고 체험해봄으로써 디자이너가 어떠한 철학을 가치고 디자인을 실현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디자인 철학은 디자인을 할 때 방향을 잡아 주는 원칙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멀리 있는 목적지를 향해 떠날 때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나침반 같은 거지요." / 17p

 

 

"디자이너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관심이 많아요. 어떤 때 편안함을 느끼는지, 자기도 모르게 하는 행동은 무엇인지 세심하게 관찰하지요. 덕분에 더 쓰기 좋은 키보드나 기발한 의자를 만들 수 있는 거예요." / 32p

 

 

 

 

 

 

   다섯 번째 부스에서 아이들은 디자이너들이 늘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창의적인 대안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하는 시도들을 엿보게 된다. 특히 네덜란드 디자이너 위르헌 베이의 진공청소기 의자는 가장 인상적이다. 의자 모양의 커다란 먼지 봉투가 진공청소기와 연결되어 있는 제품이다. 재미있는 시도이기는 하지만 누가 봐도 예쁘지도 않고 불편하다고 여길 만하다. 안내원 역시 널리 쓰이는 상품으로 만들기에는 실패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지같이 삶의 부정적인 부분도 의자처럼 쓸모 있고 긍정적인 것으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전하고자 한 디자이너의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 이 외에도 '재활용'이라는 개념의 리사이클링, '새활용'이라는 개념의 업사이클링 통해 환경을 위한 디자인과 버려진 자동차 방수포를 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한 사례를 통해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디자인의 따뜻한 철학을 일깨워준다.

 

 

 

 

 

 

디자인의 가치가 높아지는 시대, 디자인으로 생각하는 법

 

 

   안내원은 유진이와 예린이에게 디자이너가 꿈이 아니더라도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디자인이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미래에는 좋은 디자인 제품과 서비스를 알아보고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학교에 제출하는 리포트나 발표 수업에서만 하더라도 서체나 그림과 같은 디자인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디자인을 잘 이용할수록 내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기에 용이한 것은 물론, 세상을 더 편리하고 안전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데 디자인이 이롭게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디자인을 보다 가깝게 느낄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디자인의 출발점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디자이너는 삶을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지요. 그러다 보면 문제점이 드러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도 떠올라요. 세상의 다양한 변화를 예민하게 알아채는 감각도 중요하지요." / 79p

 

 

"좋은 디자이너라면 통합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꼭 디자이너가 꿈이 아니더라도 디자인을 공부하면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어요. 그래서 어린이들이 디자인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 80p

 

 

 

 

 

 

   평소 디자인에 관심 있던 예린이와 달린 유진이는 디자인 엑스포에 입장할 때만 하더라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점차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책의 말미에 저자 역시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생각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지고, 좀 더 창의적이며 세상을 이롭게 만들기 위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고 하니 우리 아이에게도 이런 기회를 자주 열어주기 위해 고심해봐야겠다. 끝으로 이 책이 많은 아이들에게 세상을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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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롭 - 위기의 남자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5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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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의문의 죽음을 동시에 추적하는 형사 해리 보슈의 대활약상!

섬뜩한 진실과 거듭된 반전, 치밀하고도 흡인력있는 전개로 눈을 뗄 수 없는 범죄 스릴러!

 

 

 

   여름이 찾아올 무렵, 서점가 문학 코너에 두드러지는 변화가 있다면 바로 '스릴러' 및 '추리 소설'과 같은 장르 소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이다. 한때 서점에서 근무한 적이 있던 나 역시 당시 유명 추리 소설 시리즈와 인기 있는 스릴러물만 뽑아서 진열할 계획을 세우곤 했다. 먼저 유명 작가들을 선별해 목록을 만들던 도중 나는 처음으로 마이클 코넬리라는 이름을 마주했다. 당시 그에 대한 첫인상은 생각 이상으로 작품 수가 상당하다는 것, 표지만 보아도 무척 하드보일드한 내용일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원작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영화관까지 찾아가서 봤던 작품이라 대표적인 작품들을 엄선해서 진열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더 이상 그의 작품을 가까이 접하지 못했는데, 최근 들어 그의 작품이 미국 드라마로 방영되고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만 하더라도 무려 열다섯 편이나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왜 지금껏 읽어보지 못했지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바로 그 열다섯 번째 신작 <드롭: 위기의 남자>편을 읽고서야 뒤늦게 정주행하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외로운 코요테 같은 형사, 해리 보슈의 강렬한 범죄 스릴러

 

 

   이쯤되면 거의 실존하는 인물처럼 느껴질 것 같다. 오랫동안 형사 해리 보슈의 활약을 지켜봐온 독자들은 이제는 그냥 '믿고 보는 시리즈'라고 증언하는 걸 보면 말이다. 열다섯 번째 시리즈로 돌아온 <드롭: 위기의 남자>는 특수살인사건 전담반에 있던 보슈가 미제사건 전담반으로 돌아온 지 1년째 되는 해에 벌어진 사건들을 추적하는 사회 범죄 스릴러다. 그는 10년 전쯤 퇴직연금을 전부 수령하고 경찰국에서 퇴직했다가, 2년 후 경찰국의 퇴직유예제도 덕분에 경찰국으로 돌아와 남은 근속 기간이 기껏해야 이제 39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파트너인 데이비드 추와 함께 남아도는 사건과 특별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사건을 맡아서 수사하는 이른바 '깍두기' 팀으로 움직이며 자신이 맡을 사건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거의 10년 전쯤 보슈는 퇴직연금을 전부 수령하고 경찰국에서 퇴직했다.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그리고 2년 후에 경찰국의 퇴직유예제도(Deferred Retirement Option Plan, DROP) 덕분에 경찰국으로 돌아왔다. 드롭은 경험 많은 형사들이 경찰국에 오래 몸담으며 가장 잘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 마련된 제도였다. 보슈가 가장 잘하는 일은 살인사건 수사였다. 그는 7년 계약을 맺고 다시 돌아온, 이른바 '재생 타이어'였다. / 32p

 

 

 

 

 

 

   때마침 보슈 팀에게 1989년도에 발생한 미제 사건 하나가 맡겨진다. 피살자는 릴리 프라이스, 19세 여대생이다. 어느 일요일 오후 그녀는 베니스비치에서 룸메이트 한 명과 놀다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집으로 혼자 가던 중 성폭행을 당해 교살되었고, 이후 후미진 곳의 바위 위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정액은 없었으나 당시 피해자의 목 뒤쪽, 오른쪽 귀밑에서 작은 혈흔 하나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을 최근에서야 다시 분석한 결과 클레이턴 S. 펠이란 자의 것으로 판명이 난 것이다. 펠의 전과를 보면 여러 차례 체포된 기록이 있고 공연음란죄와 불법 감금, 강간 혐의로 세 번 유죄판결을 받은 기록도 있기에 누가 봐도 그가 범인임을 의심할 수는 없으나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클레이턴 펠은 1981년생으로 사건이 발생한 1989년에는 불과 여덟 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고작 여덟 살인 아이가 자신보다 훨씬 큰 성인을 성폭행하고 교살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한편, 샤토마몽트 호텔에서 시의원 어빈 어빙의 아들 조지 토머스 어빙의 투신 사망 사건이 발생한다. 국장실의 호출로 보슈에게 이 투신 사망 사건까지 함께 떨어지는데, 이제 막 미제 사건 하나를 전달받은 보슈로서는 동시에 두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난제를 떠안고만 다. 일명 '하이 징고(high jingo)'. 경찰국 수뇌부가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사건 혹은 정치적 압력이 많이 들어오는 사건을 일컫는 말로, 정치적 외압 때문에 수사권을 휘두르기가 쉽지 않은 것은 불 보듯 뻔한 노릇이었다. 거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어빙 의원이 특별히 그를 지목하여 수사 요청을 한 것이라 더더욱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어빙으로서는 대안이 없었던 게 분명했다. 비록 적대 관계에 있는 사이이긴 하나 공평하고 진실만을 쫓는 보슈의 진정성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높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자네가 그랬지. 모두가 중요하거나 아무도 중요하지 않다고. 그 말이 기억나는군. 이 사건이 그 말이 진심인지를 시험하겠군. 적의 아들도 중요한가? 적의 아들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것인가? 적의 아들을 위해서도 철저히 수사할 것인가?" / 42p

 

 

"뭐가 까칠하다는 거야? 내가 맡은 사건에 정치적인 간섭이 들어오는 건 딱 싫어하는 거? 이거 알아? 오늘 다른 사건도 하나 맡았어. 열아홉 살 아가씨가 강간당하고 해변가 바위 위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어. 게들이 그 아가씨의 몸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대. 그런데 그 사건을 해결하라고 나를 불러낸 시의원은 한 명도 없었어. 웃기지 않아?" / 89p

 

 

 

옳은 길을 찾기 위해 틀린 길을 헤매야 한다

 

 

   보슈는 사건에 대한 정보와 결론을 종용하는 어빙의 끊임없는 외압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논리대로 사건을 수사해나간다. 다른 형사들이 간과하는 부분들에서 진실의 냄새를 맡고 예리하게 추적해가는 기민함을 보이는 동시에, 곳곳에서 자신의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딸과 더 오래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책임 앞에서 고민하고, 늘 막연하게 거부해왔던 '악'에 대한 이중성 앞에서 깊은 회의를 느끼기도 하며 조직 내의 구조적인 모순 앞에서 절망하기도 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덕분에 해리 보슈 형사에 대한 이미지가 꽤 입체적으로 그려져 왜 이 기나긴 시리즈를 계속 읽어야 하는 것인가 대한 물음에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악이 환경의 영향을 받아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해. 클레이턴 펠이 바로 그런 경우인 것 같고. 하지만 펠처럼 악을 실현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똑같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도 악한 행동을 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 그러니까 환경 말고 다른 것도 있는 거야. 등식의 반대편. 사람들은 잠재된 무언가를 가지고 태어나고 특정한 환경하에서만 그 무언가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 아닐까? 모르겠어, 해나. 정말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걸. 확실히는 모를 거야. 가설만 갖고 있을 뿐이고. 그 가설들은 길게 보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피해를 막지는 못할 테니까." / 232p

 

"이게 바로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예요. 이자와 같은 인간들 때문에. 이런 괴물들은 우리가 막아 세울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거든요. 숭고한 일이에요, 우리가 하는 일. 그걸 잊지 마세요. 선배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했는지 기억하시라고요." / 387p

 

 

 

 

 

 

   <드롭: 위기의 남자>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섬뜩한 진실, 뜻밖의 반전으로 사회 범죄 스릴러가 갖춰야 할 요소들을 고루 갖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경찰과 이를 둘러싼 사회 조직의 내부를 직접 들여다보듯 사실적으로 그려나가면서 다양하고 현실적인 캐릭터들로 플롯의 완성도를 높인 점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장르를 좋아하는 한 명의 독자로서,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몰아치듯 내달릴 수 있었던 점이 무척이나 좋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길과 조직의 논리 사이에서 부딪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이제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앞으로의 시리즈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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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일기 1
자까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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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현실적일 수 없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빵빵 터지는 리얼 캠퍼스 라이프 웹툰!

 

 

 

 

   친척 오빠가 다니는 대학교에 합격하여 사전답사도 할 겸 밥도 얻어먹을 겸 캠퍼스를 홀로 찾아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사실 대학 생활에 대한 이렇다 할 로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캠퍼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여긴 신세계다!'라는 느낌이 팍 들었더라죠. 묵직한 전공 서적을, 그것도 원서로 된 알 수 없는 제목의 책들을 저마다 한 쪽 손에 들고 다니는 언니와 오빠들을 보며 이들이야말로 수능 따위에 찌들지 않은 진정한 지성인의 모습이다라고 느꼈어요. 같은 과 점퍼를 입고 지나가는 무리를 보며 학교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에 살짝 전율이 일기도 했고요. 원하는 강좌를 선택해 자율적으로 일정을 짤 수 있고, 교정에서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다니며 캠퍼스 커플이란 것도 해볼 수 있고, 대학 축제 때는 연예인까지 온다는 말에 대학 생활은 역시 멋진 거구나… 뭐 이런 착각 같은 것을 제대로 했더랍니다. 실상은 학기 내내 밤샘 리포트 작성과 조별 발표, 아르바이트를 뛰느라 꽃 같은 대학 생활 따윈 없었습니다.

 

 

 

   새내기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들은 여기에 없단다라고 말하게 되는 때도 오더란 말이지요. 하지만 졸업을 하고 사회로 진출해 마침내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또 이때만큼 재미있었던 시절은 다시없을 것이란 걸 부쩍 느끼게 되는 요즘입니다. 날이 좋아서, 혹은 날이 너무 좋지 않아서 수업이란 걸 가끔 빼먹는 호사도 누려보고, 밤 늦게까지 부어라 마셔라 해도 튼튼한 간 덕분에 다음 날에 또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부어라 마셔라 할 수 있는 젊음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비록 꿈에 그리던 로망 넘치는 캠퍼스 따윈 없지만 그 시절, 가장 되돌아가고 싶은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웹툰 한 편이 있어 평소 찾아가며 재미있게 읽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까 님의 <대학일기>!

 

 

 

 

 

 

페이지 마다 빵빵 터지는 리얼 캠퍼스 일기

 

 

   네이버 웹툰으로 이미 <대학일기>를 접한 분들이라면 자까 님의 분신인 듯한 하얗고 동글동글한 캐릭터에 일단 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특히 이 순둥순둥, 몽글몽글한 귀여움이 현실 그림체로 돌변할 때마다 어찌나 깔깔거리고 웃게 되는지 그야말로 반전 매력이 쩐달까요. 작품을 보며 혼자서 큭큭 대고 웃는 제 모습을 행여 누가 보지 않을까 눈으로 흘깃 둘러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이 작품을 미처 알지 못했던 분들이라 하더라도 각종 SNS에 돌아다니는 짤을 통해 접하신 분들이 상당히 있을 거예요. 개인적으로 대학 생활을 이토록 현실적으로 재미있게 그려낸 작품이 또 있을까 싶어요.

 

 

 

 

 

 

   이렇듯 네이버에서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웹툰 <대학일기>가 두 권 분량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1화에서 100화까지 연재된 작품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낸 것인데, 휴대폰 화면을 넘겨가며 읽던 것을 지면으로 만나니 새로운 기분이 들었어요. 웹툰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4컷 만화 부록까지 수록되어 있으니 소장하는 즐거움까지 얻을 수 있고요.

 

 

 

   대학생의 일상을 담은 내용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이 시기에 흔히 고민하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혹은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을 말 그대로 일기처럼 다루고 있어 20대란 시기를 통과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내용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저도 겪었고 또 누군가가 겪고 있을 그런 일들 말이에요. 음… 10대가 읽는다면 20대의 현실을 미리 깨달을 수 있는 팩트 폭격이 될 수 있을까요? 뭔가… 사악한 웃음을 짓게 되는 30대입니다. 하하.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들은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새어나오는 웃음이 민망해지지 않을 만한 장소에서 읽으셔야 한다는 것을 당부 드립니다. 페이지를 넘기다 재미있는 컷을 찍어 주변 지인에게 사진 전송을 하는 경험을 하게 될 거라고 감히 자부도 해봅니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명탐정 코난>이 계속 어린 코난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자까 님도 쭉 대학생인 채로 <대학일기>를 그려주심이… 죄송합니다.

 

 

 

(평소에 쓰던 서평글과는 다르게 써봤습니다. 이렇게 써 보는 것도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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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조커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5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이규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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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기업 테러를 두고 펼쳐지는 두뇌 싸움!

일본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인간 심리의 밑바닥을 파헤치는 압도적인 소설!

 

 

 

 

   조커(Joker).

   트럼프 카드 게임에서 사용되는 조커는 일종의 와일드 카드다. 게임 내에서 조커는 다양한 역할을 한다. 때로는 최고위인 비장의 카드가, 때로는 유해한 카드가 되기도 하는 이 양면의 성격 때문에 우리는 조커 패를 손에 쥐게 되는 순간 마음이 동요되는 것을 느낀다. 내 손에 들린 이 조커 패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이에 따라 판이 달라질 수도 있다. 만약 우리의 인생이 이와 같은 게임이라면, 기묘한 반전 혹은 나와 누군가의 인생을 쥐고 흔들 수 있을 만한 이 특수한 카드가 손에 들어오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1조 엔대 대기업의 운명을 쥐고 흔들기 위해 뭉친 '레이디 조커'

 

 

   <레이디 조커 1>은 세 권의 분량에 이르는 시리즈 중 그 첫 번째 책이다. 사상 초유의 대기업 테러를 다룬 이 소설은 일본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인간 심리의 밑바닥을 파헤치는 작가의 치밀하고도 집요한 시선이 압도적인 필력으로 완성된 사회 범죄 미스터리다. 정경 유착 및 소외계층의 차별 등 일본 굴지의 대기업 히노데 맥주와 사회의 각종 부조리한 일면들로부터 희생당한 이들이 한 데 모여 기업 테러를 감행하고,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는 고다 형사의 활약이 예상되는 소설이다.

 

 

 

   일명, 레이디 조커. 이들의 요구 조건은 현금 20억, 인질은 350만 킬로리터의 맥주다. 1조 엔대 대기업을 테러하기 위해 뭉친 다섯 남자는 스스로를 레이디 조커라 부르지만, 정재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만한 이 어마어마한 계획을 실행하기에는 다소 평범해 보인다. 약국을 운영하며 경마장을 찾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 모노이, 장애인 딸을 키우는 트럭 운전수 누노카와, 이십 대 중반으로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일명 요짱, 재일조선인으로 신용금고에서 근무하는 고 가쓰미, 경시청의 현역 형사로 있는 한다까지. 성격도, 하는 일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뜻하지 않은 사고나 불운을 덧입고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살아가는 일본의 수많은 가장 혹은 청년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수많은 영화와 다수의 작품에서 보이는 기업 테러 공모자들은 하나같이 특수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엘리트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떠올려보면, 이들의 계획은 무모해보일 정도다. 어째서 이들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은 이 위험천만한 테러를 감행하게 된 것일까.

 

 

 

   소설의 시작은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히노데 맥주 주식회사 가나가와 공장으로 장문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이를 작성한 오카무라 세이지는 히노데로부터 퇴사를 권고 받은 마흔 명의 직원들 가운데 하나다. 그가 쓴 편지에는 가난한 소작민으로 태어나 입양이 된 후 히노데 맥주에 입사하기까지 오카무라 그 자신의 개인사와 당시 회사 동료였던 노구치 등 피차별 부락민들이 벌인 노동 쟁의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빈궁을 면치 못했던 소시민들의 모습과 신분제도 하에 천민 부락민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들은 일본의 암울한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의 부조리는 현대 사회로 접어들고 후세에까지 이어져 마침내 한 청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불의의 사고를 낳고 만다. 오카무라 세이지의 동생인 모노이는 자신의 손자가 히노데 맥주 회사로부터 아버지가 부락 출신이라는 이유로 시험에 떨어진 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깊은 회의에 빠져든다. 결국 경마장에서의 인연을 계기로 알게 된 네 남자와 합심하여 히노데 맥주와 모순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향해 묵직한 한 방을 내던지기로 결심한다.

 

 

 

"누노카와가 일전에 자기 딸을 두고 조커를 뽑은 격이라더군.

그때 문득 생각했어.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을 조커라고 한다면,

우리야말로 조커라고." / 258p

 

 

 

다들 겁에 질린 개처럼 미친 듯이 짖어대며 물어뜯기 바쁩니다. 허구한 날 일하고 먹고 자는 것밖에 모르는 생활 속에서 굶주린 기억이 골수에 사무치니 천해질 수밖에요. 냉정하게 생각하질 못하니 천할 수밖에. 그렇게 보면 이 나라 전체가 천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도망치면 부모 형제가 따돌림을 당하고 굶어죽을 테니 결국 전장에 나가기는 했지만, 천하다 천하다 해도 가난한 놈이 가난한 나라를 침략하는 것만큼 천한 게 없어요. 그걸 잘 아는 내가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이유로 살육을 저질렀으니, 인간이란 참으로 가련한 존재가 아닙니까. / 26p

 

 

이 나라의 역사를 만들어온 차별이라는 긴 터널의 출구에서, 여전히 일부 남은 장벽을 방패 삼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령 장벽이 철거된다면 그들 중 대부분은 또 터널 밖에 만연한 무지와 무관심을 규탄하며 새로이 장벽을 쌓고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사수하려 들지 않을까? 평등이니 차별이니 하는 것도 이렇게 서로를 보완하며 일부 사람들에게 존재이유를 제공하는 장치에 불과하지 않을까? 뒤집어서 보자면 그런 평등이나 차별과 무관했던 스물두 살의 아들은 그들이 말하는 세계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 63p

 

 

 

 

 

 

   소설은 히노데 맥주 회사를 노리는 범인 집단 '레이디 조커' 외에도 히노데 맥주 회사를 이끌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영진들, 히노데 맥주 회사의 사장인 시로야마 쿄스케가 납치됨으로써 범인 집단이 노리는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하는 고다 형사 외 경시청 형사들, 누구보다도 발 빠르게 사건의 추이를 쫓아나가는 기자진들의 시점을 교차 반복한다. 이로 인해 수많은 정치인과 교류하며 뒤로는 시중은행과 증권사의 금융 자본, 관청, 지하 금융이 한 데 얽혀 부패한 냄새를 풍기는 기업의 생리와 엄격한 상하 관계 속에서 불거지는 경찰 내부 조직의 알력들, 누구보다 먼저 사건을 쫓아가 보도해야 한다는 신문 기자들의 직업 생태계까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사회 시스템의 구조적인 모순과 이해관계들을 진중한 시선으로 읽어내고 다양한 인물의 시점을 치밀하게 교차시키면서 탄탄한 플롯을 완성시킨 저자의 필력에 감탄하게 되는 대목이다.

 

 

 

시로야마 역시 시대가 달라지리라고 예감은 했다. 활황기는 언젠가 천장을 칠 테고, 부동산과 주식은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다. 대량 소비를 즐기는 부자들의 시대가 끝나고 이어서 도래할 시대는 한마디로 '소시민적 결벽'이리라는 것이 시로야마의 예감이었다. 절약, 소형화, 간소화, 개인주의 같은 키워드로 표현할 수 있을 서민의 심정은 물질적 풍요를 포기하고 정신적 충실을 지향하며 사회에 '결벽'을 요구할 것이다. 결벽의 시대에는 정계와 은행, 기업의 체질도 그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 기업이 이윤 추구에 앞서 사회적 의무와 윤리를 요구받을 시대는 생각보다 머지 않았다. / 98p

 

 

 

 

 

 

   1권의 초중반부까지는 사건의 발단을 풀어내는 과정으로 인해 속도감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으나 시로야마 사장이 납치된 이후부터는 쫓기듯 빠른 호흡으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만큼 흡인력 작품이라 무려 세 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마저도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뒤늦게야 안 사실이지만 이토록 남성적인 성격의 소설을 쓴 작가가 사실은 여자라는 것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기도 했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놀라워하지 않을까.

 

 

 

   웬만하면 다음 편의 예고글을 미리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소설은 앞으로의 일을 예측할 수 없어 나도 모르게 그만 읽고 말았다. 그런데 더 모르겠다. 레이디 조커는 과연 이 어마어마한 계획을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고다 형사는 사건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인지, 앞으로 펼쳐질 2권과 3권의 내용이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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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례 시간 - 수업이 모두 끝난 오후, 삶을 위한 진짜 수업
김권섭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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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국어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격려와 응원의 시간!

일상과 고전 속에 담긴 삶의 지혜를 들려주는 선생님의 진짜 수업! 

 

 

 

   수업을 모두 파하고 담임선생님의 종례 시간만을 앞두고 있을 때면 교실은 늘 들썩들썩한다. 그 시간이 다가오면 아이들의 마음은 미묘하게 술렁인다. 이때의 마음을 아는 선생님은 우스갯소리로 "공부해. 다른 길로 새지 말고." 하고 단속하며 간단히 끝내기도 하고, 어떤 선생님은 훈화 말씀을 장황하게 늘어놓아 애꿎은 시간을 축 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조례 혹은 종례 시간에는 대부분 그날의 전달 사항이나 아이들을 단속하는 정도에 그치는 말씀이 다인지라 지금껏 이 시간을 특별하게 여겨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서울 중앙여자고등학교의 현직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며 <종례 시간>의 저자 김권섭 선생님은 이러한 조례와 종례 시간을 누구보다 특별하게 여긴 듯하다. 그는 이 시간을 통해 교사와 학생이 서로 존중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익힐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 특히 종례는 학생들이 더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교사의 정성을 담아 마련한 '언어의 잔칫상'이라 표현한다.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밥상머리 교육'시간이자, 서너 시간의 수업과 갖가지 잡무로 지친 심신을 일으켜 학생들 마음에 다가가는 때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담임선생님과 마음을 나누고 눈빛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진정한 시간은 이때뿐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우리는 그 의미를 곧잘 잊곤 했던 것 같다.

 

 

 

   이렇듯 <종례 시간>은 각종 동서양 고전과 사회 문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교훈들을 아이들에게 전해준 현식 교사의 따뜻한 가르침이 수록된 책이다. 배움은 교과서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려는 선생님만의 '진짜 수업'을 글로 모은 것이다.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에만 매달려 있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교훈은 때로 지루할 것만 같지만 과거의 인물을 통해 오늘을 살 지혜를 얻고, 다양한 고전과 문학 작품 속에서 성찰의 시간을 전하려는 선생님의 수고로움을 통해 아이들은 다정한 격려와 의지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따뜻한 당부의 말씀

 

 

   책에는 일상의 사소한 소품과 현상들, 행위 등을 통찰함으로써 제자들에게 삶의 교훈과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들을 전한 글들이 다수 눈에 띈다. '손과 장갑' 편에서는 손이 있어야 장갑을 사듯이 내가 있어야 내게 맞는 삶을 꿈꿀 수 있음을 전하고, '코골이' 편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단점을 갖고 살아가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에 따라 삶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음을 일러준다. '압정' 편에서는 압정이 손으로 누르는 넓은 부분과 벽에 고착되는 못으로 이뤄진 단순한 기능을 가졌지만 어느 한 부분이 없으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듯 학생들이 못에 해당하는 부분만 중요하게 여기고 넓은 부분은 무시하는, 이른바 자기가 관심 있는 영역은 최고라고 중시하지만 다른 분야는 얕보는 갇힌 사고를 염려한다. 이처럼 소소한 일상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저자의 생생한 교훈은 언젠가 나의 아이에게도 들려줄 만한 좋은 예인 것 같아 자주 들춰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학생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장점은 귀울림과 같아서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그것만이 우리의 장점이라고 말이에요. 성적이 뒤처졌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진 학생이 있다면 자기 장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친구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엄마나 아빠도 알아주지 않는 장점이 많을 거예요. 자기가 그렇게 장점이 많은 사람임을 확인한다면 성적이 다소 나쁘다고 해서 자기를 업신여길 이유가 없다는 걸 인식하게 될 거예요. 여러분은 누구나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 20p

 

 

청(聽)만으로 듣기가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듣기는 상대방을 존경할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완전한 듣기는 말하는 사람이 나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왔으며 그래서 그의 말이 내게 꼭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듣는 행위입니다. 이를 가리켜 경청(敬聽)이라고 합니다. 경청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는다는 뜻입니다. (…) 자신을 바꾸고 싶은가요? 단점을 고치고 싶은가요? 경청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 34p

 

 

 

 

 

 

   국어 선생님답게 우리말이나 한자의 뜻을 풀이해 옛사람들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는 글들 또한 인상 깊다. '다시 살아보기'편에서는 적을 소(少)와 눈 목(目)이 합해진 글자, 살필 성(省)을 살펴본다. 이 글자는 눈을 작게 뜬 모습을 그린 것인데, 우리가 흔히 멀리 바라볼 때는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 보려면 눈을 작게 뜨듯 성(省)은 자기와 아주 가까이 있는 대상을 바라보는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자기와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는 바로 자기이며, 반성이라는 것은 타인을 향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향하고 있음을 상기하고 항상 지나간 시간을 낭비하여 쓰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기를 권한다.

 

 

 

   옛 선조들이 날마다 하는 일을 통해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단정히 붙들 것을 조언하기도 한다. 바로 비녀 꽂기다. 계집 여(女)에 아이에게 젖을 먹인다는 의미를 더한 것이 어미 모(母)인데, 이 글자에 비녀 꽂은 모습을 보탠 것이 늘 매(每)다. 이 글자는 비녀 꽂기가 늘 하는 행위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남성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팔을 벌리고 선 남성을 나타내는 큰 대(大)에 비녀를 꽂은 모습을 그린 글자가 지아비 부(夫)로, 여성이든 남성이든 비녀를 꽂은 뒤에야 비로소 방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제나를 의미하는 글자(每)에 마음 심(心)을 보탠 것이 회(悔)인데, 이 글자는 비녀로 머리를 묶듯이 마음을 붙들어 매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담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크게 뉘우칠 일이 생기기 때문에 이 글자(悔)를 뉘우칠 회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듯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면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매야 한다. 날마다 비녀를 꽂아 머리를 단정하게 하듯이 마음에 비녀를 꽂아야 한다는 옛 선조들의 가르침은 꼭 새겨둘 일인 듯하다.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남성 중심 사회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남성을 여성보다 우선시하는 사고가 확산되었습니다. 'man'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일차적으로 '남성'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의미로 '사람들, 인류'라는 뜻풀이가 나옵니다. 남성만으로 인류 전체를 대신하는 게 온당할까요? 어느 국어학자는 다른 사람에게 빌붙어 살다는 뜻을 가진 '며늘'에 사람을 나타내는 '이'가 결합하여 '며느리'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 자칫하면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또한 편협하고 치우친 기준을 진리라고 믿기 쉽습니다. 비유하자면 자기는 맑은 하늘을 보았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시야를 가리는 먹구름을 본 것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 66p

 

 

 

"현대인들은 자기가 자기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믿지 않는 것 같아요." - 르카르 / 176p

 

 

 

   <탈무드>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고 한다.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은 망가진 도자기를 손가락으로 두드려 시험해보지 않는다. 그러나 좋은 도자기를 만들었을 경우 손가락으로 두드려 시험해본다 이 때문에 하느님은 올바른 사람을 시험한다'는 말이다. 하느님은 합당한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또 시험을 하려 든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해야 할 일이 차츰 많아지고, 그것이 점점 버거워지면서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인가 하고 괴로워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외부에 탓을 돌리거나 술이나 다른 무언가에 의지함으로써 잊으려하기보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시험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앞으로 사회에 나가 온갖 시험에 맞서게 될 제자들에게 사람은 시련을 넘어서 능하지 못한 부분을 보완함으로써 자기 완성에 이른다는 선생님의 이러한 말씀이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

 

 

삶은 자신에게 덮쳐 오는 고통이나 충격을 극복해 가는 과정입니다. 그 충격과 고통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큰 인물로 성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는 시련을 넘어서면서 능하지 못한 부분을 보완함으로써 자기 완성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만이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해집니다. / 214p

 

 

 

 

 

 

   <종례 시간>은 그 근본이 제자들에게 전하는 선생님의 당부이자 격려의 메시지이기는 하나, 사회의 큰 어른 중 한 명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좋은 말씀이 되는 책이라 생각된다. 고단한 하루를 내려놓고 싶을 때 이 책의 어느 페이지도 상관없으니 한 번씩 들춰서 자신의 상처를 쓰다듬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특히 공부에 지치고 진로에 고민하고 있을 자녀들이 있는 부모라면 이 책을 꼭 선물해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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