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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롭 - 위기의 남자 ㅣ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5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평점 :

두 의문의
죽음을 동시에 추적하는 형사 해리 보슈의 대활약상!
섬뜩한 진실과 거듭된 반전, 치밀하고도 흡인력있는 전개로 눈을 뗄 수 없는 범죄
스릴러!
여름이 찾아올 무렵, 서점가 문학 코너에 두드러지는 변화가 있다면 바로 '스릴러' 및 '추리 소설'과 같은 장르
소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이다. 한때 서점에서 근무한 적이 있던 나 역시 당시 유명 추리 소설 시리즈와 인기 있는 스릴러물만 뽑아서 진열할
계획을 세우곤 했다. 먼저 유명 작가들을 선별해 목록을 만들던 도중 나는 처음으로 마이클 코넬리라는 이름을 마주했다. 당시 그에 대한 첫인상은
생각 이상으로 작품 수가 상당하다는 것, 표지만 보아도 무척 하드보일드한 내용일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원작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영화관까지 찾아가서 봤던 작품이라 대표적인 작품들을 엄선해서 진열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더 이상 그의 작품을 가까이 접하지 못했는데, 최근 들어 그의 작품이 미국 드라마로 방영되고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만 하더라도
무려 열다섯 편이나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왜 지금껏 읽어보지 못했지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바로 그 열다섯 번째 신작 <드롭:
위기의 남자>편을 읽고서야 뒤늦게 정주행하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외로운 코요테 같은 형사, 해리 보슈의 강렬한 범죄
스릴러
이쯤되면 거의 실존하는 인물처럼 느껴질 것 같다. 오랫동안 형사 해리 보슈의 활약을 지켜봐온 독자들은 이제는 그냥
'믿고 보는 시리즈'라고 증언하는 걸 보면 말이다. 열다섯 번째 시리즈로 돌아온 <드롭: 위기의 남자>는 특수살인사건 전담반에 있던
보슈가 미제사건 전담반으로 돌아온 지 1년째 되는 해에 벌어진 사건들을 추적하는 사회 범죄 스릴러다. 그는 10년 전쯤 퇴직연금을 전부 수령하고
경찰국에서 퇴직했다가, 2년 후 경찰국의 퇴직유예제도 덕분에 경찰국으로 돌아와 남은 근속 기간이 기껏해야 이제 39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파트너인 데이비드 추와 함께 남아도는 사건과 특별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사건을 맡아서 수사하는 이른바 '깍두기' 팀으로
움직이며 자신이 맡을 사건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거의 10년 전쯤 보슈는 퇴직연금을 전부 수령하고 경찰국에서 퇴직했다.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그리고 2년 후에 경찰국의 퇴직유예제도(Deferred Retirement Option Plan, DROP) 덕분에 경찰국으로
돌아왔다. 드롭은 경험 많은 형사들이 경찰국에 오래 몸담으며 가장 잘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 마련된 제도였다. 보슈가 가장 잘하는
일은 살인사건 수사였다. 그는 7년 계약을 맺고 다시 돌아온, 이른바 '재생 타이어'였다. / 32p
때마침 보슈 팀에게 1989년도에 발생한 미제 사건 하나가 맡겨진다. 피살자는 릴리 프라이스, 19세 여대생이다.
어느 일요일 오후 그녀는 베니스비치에서 룸메이트 한 명과 놀다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집으로 혼자 가던 중 성폭행을 당해 교살되었고, 이후 후미진
곳의 바위 위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정액은 없었으나 당시 피해자의 목 뒤쪽, 오른쪽 귀밑에서 작은 혈흔 하나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을
최근에서야 다시 분석한 결과 클레이턴 S. 펠이란 자의 것으로 판명이 난 것이다. 펠의 전과를 보면 여러 차례 체포된 기록이 있고 공연음란죄와
불법 감금, 강간 혐의로 세 번 유죄판결을 받은 기록도 있기에 누가 봐도 그가 범인임을 의심할 수는 없으나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클레이턴 펠은 1981년생으로 사건이 발생한 1989년에는 불과 여덟 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고작 여덟 살인 아이가 자신보다 훨씬 큰 성인을
성폭행하고 교살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한편, 샤토마몽트 호텔에서 시의원 어빈 어빙의 아들 조지 토머스 어빙의 투신 사망 사건이 발생한다. 국장실의 호출로
보슈에게 이 투신 사망 사건까지 함께 떨어지는데, 이제 막 미제 사건 하나를 전달받은 보슈로서는 동시에 두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난제를 떠안고만
다. 일명 '하이 징고(high jingo)'. 경찰국 수뇌부가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사건 혹은 정치적 압력이 많이 들어오는 사건을 일컫는
말로, 정치적 외압 때문에 수사권을 휘두르기가 쉽지 않은 것은 불 보듯 뻔한 노릇이었다. 거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어빙 의원이 특별히 그를
지목하여 수사 요청을 한 것이라 더더욱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어빙으로서는 대안이 없었던 게 분명했다. 비록 적대 관계에 있는 사이이긴 하나
공평하고 진실만을 쫓는 보슈의 진정성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높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자네가 그랬지. 모두가 중요하거나 아무도 중요하지 않다고. 그 말이
기억나는군. 이 사건이 그 말이 진심인지를 시험하겠군. 적의 아들도 중요한가? 적의 아들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것인가? 적의 아들을 위해서도
철저히 수사할 것인가?" / 42p
"뭐가 까칠하다는 거야? 내가 맡은 사건에 정치적인 간섭이 들어오는 건 딱 싫어하는
거? 이거 알아? 오늘 다른 사건도 하나 맡았어. 열아홉 살 아가씨가 강간당하고 해변가 바위 위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어. 게들이 그 아가씨의 몸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대. 그런데 그 사건을 해결하라고 나를 불러낸 시의원은 한 명도 없었어. 웃기지 않아?" / 89p
옳은 길을 찾기 위해 틀린 길을 헤매야 한다
보슈는 사건에 대한 정보와 결론을 종용하는 어빙의 끊임없는 외압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논리대로 사건을
수사해나간다. 다른 형사들이 간과하는 부분들에서 진실의 냄새를 맡고 예리하게 추적해가는 기민함을 보이는 동시에, 곳곳에서 자신의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딸과 더 오래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책임 앞에서 고민하고, 늘 막연하게 거부해왔던 '악'에 대한 이중성
앞에서 깊은 회의를 느끼기도 하며 조직 내의 구조적인 모순 앞에서 절망하기도 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덕분에 해리 보슈 형사에 대한
이미지가 꽤 입체적으로 그려져 왜 이 기나긴 시리즈를 계속 읽어야 하는 것인가 대한 물음에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악이 환경의 영향을 받아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해. 클레이턴 펠이 바로 그런
경우인 것 같고. 하지만 펠처럼 악을 실현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똑같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도 악한 행동을 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 그러니까 환경 말고 다른 것도 있는 거야. 등식의 반대편. 사람들은 잠재된 무언가를 가지고
태어나고 특정한 환경하에서만 그 무언가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 아닐까? 모르겠어, 해나. 정말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걸. 확실히는 모를
거야. 가설만 갖고 있을 뿐이고. 그 가설들은 길게 보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피해를 막지는 못할 테니까." / 232p
"이게 바로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예요. 이자와 같은 인간들 때문에. 이런
괴물들은 우리가 막아 세울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거든요. 숭고한 일이에요, 우리가 하는 일. 그걸 잊지 마세요. 선배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했는지 기억하시라고요." / 387p
<드롭: 위기의 남자>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섬뜩한 진실, 뜻밖의 반전으로 사회 범죄 스릴러가 갖춰야 할
요소들을 고루 갖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경찰과 이를 둘러싼 사회 조직의 내부를 직접 들여다보듯 사실적으로 그려나가면서 다양하고
현실적인 캐릭터들로 플롯의 완성도를 높인 점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장르를 좋아하는 한 명의 독자로서,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몰아치듯 내달릴 수 있었던 점이 무척이나 좋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길과 조직의 논리 사이에서 부딪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이제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앞으로의 시리즈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