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의 꽃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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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의 사슬에서 고통 받으며 살아온 이들의 눈물겨운 생의 의지!

 

   1945년 8월 6일, 미국 폭격기가 최초의 핵무기인 “리틀 보이”를 일본의 히로시마 상공 580m에서 떨어뜨렸다. 원자폭탄을 장착한 에놀라 게이를 필두로 호위와 사진 촬영을 위해 출동한 나머지 2대의 공습기가 히로시마를 상대로 원자 폭탄을 투하한 것이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미국이 벌인 치열한 전투에 대한 결말은 원자 폭탄에 대한 항복으로 이어졌고, 조선은 해방을 맞았다. 만약 원자 폭탄이 아니었다면 일본의 항복을 앞당길 수 있었을까. 유무죄를 떠나 많은 조선인들에게 있어 미국의 이 같은 행위는 조선을 핍박한 일본으로 하여금 ‘응징의 대가’가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해방을 맞은 조선인들의 기쁨 이면에는 당시 히로시마에 살고 있던, 무려 7만 명에 이르는 또 다른 조선인들에게 잿더미가 된 삶이 존재하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유전처럼 대물림되어 그들의 2세와 3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더더욱 알지 못했다. <흉터의 꽃>은 원폭의 사슬에서 고통 받으며 살아온 이들의 눈물겨운 생의 의지를 담은 소설로, 한국사가 미처 알려주지 않은 뼈아픈 상처들을 담은 가슴 시린 이야기이다. 북한 핵문제, 사드 배치, 미국 전술핵 재배치로 핵에 대한 잠재적 위기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오늘, 원폭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의 육성은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핵의 참극을 경고하는 그 어떤 메시지보다 강렬하다.

 

 

 

흉터에 아로새겨진 그날의 참상 

 

 

   소설은 무명 소설가이자 교사인 정현재가 K를 만나 경상남도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라 불린다는 뜻밖의 말을 듣는 데에서 시작한다. 장바닥에서 술에 취해 술꾼들과 드잡이를 하던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땅, 애증의 기억으로 가득 찬 그의 고향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라 불린다는 말은 생소하기만 하다. 국내에 유일한 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 들어섰을 정도로 합천에 유독 원폭 피해자가 많은 이유가 무엇인지, 왜 합천 사람들은 일본 히로시마에 간 것인지 모든 것이 의문스럽기만 하다. 정현재는 이를 소재로 삼은 소설을 쓰기 위해, 자신 역시 의식 저편에 묻어두고 있었던 원폭 진료증을 가진 피해자 2세로써 그날의 참상을 마주하기 위해 원폭피해자복지회관을 찾아간다. 그는 얼굴에 심한 화상 흉터를 지닌 강분희 할머니에게서 그녀의 아버지 강순구가 가난에서 벗어나 식구들을 먹고 살리기 위해 히로시마로 이주하는 이야기를 듣는 데서부터 원폭 투하 당시를 복기해나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의 방사능이 악마의 숨결처럼 히로시마 곳곳으로 무섭게 퍼져나갔다.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는 사람들의 끔찍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강력한 열선으로 인해 옷과 살갗이 들러붙은 채 타버리며 죽어간 사람들의 몸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깨진 유리파편이 온몸에 박힌 채 울부짖는 사람들, 끔찍한 화상을 입어 피부가 누더기처럼 녹아내린 사람들, 내장과 눈알이 튀어나온 사람들이 내지르는 비명에 히로시마는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 40p

 

 

 

원폭지옥에서 살아남은 조선인들은 공포에 떨었다.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칼로 찔러 죽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또다시 죽음의 구렁텅이로 굴러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들 귀국을 서둘렀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만 보면 죽이겠다며 몽둥이를 들고 쫓아왔다. 관동대지진 때도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워 조선인들을 무참히 살육했던 일본인들이었다. 우물에 독을 탔다는 누명을 씌워 조선인들만 눈에 띄면 죽창으로 닥치는 대로 찔러 죽이고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미국이 투하한 원자폭탄에 처참하게 당한 분풀이를 애꿎은 조선인들에게 하고 있었다. 일본에 남아 있다가 언제 개죽음을 당할지 몰랐다. / 70p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은 수많은 일본인과 죽지 못해 그곳으로 이주해온 조선인들의 삶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비명과 신음이 빽빽한 밀림 같은 곳에서 부패한 시체들이 들끓고, 산 자와 불타는 시신들의 혼이 유령처럼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듯한 히로시마의 풍경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그날의 참상은 생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생생한 것이어서 차마 마주하기 힘들 정도였다. 동철과 행복한 미래를 꿈꿨던 분희가 원폭으로 인해 흉측한 얼굴을 얻게 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었듯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삶은 어떤 형태로든 짙은 상처를 떠안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결국 히로시마를 뒤로하고 고향인 합천으로 강순구 일가는 돌아오게 되지만, 그들을 맞이하는 건 가난과 원폭이 남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잔해들뿐이다.

 

 

 

그는 원폭 피해자들이 감수해야 했던 사회적 차별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원폭 피해자들은 일본 원폭 피해자들과 달리 삼중고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식민지 백성으로 받아야 했던 차별과 고통, 피폭으로 인해 병든 몸과 경제적 곤궁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 자식들이 받을 불이익에 대한 걱정으로 그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국가와 사회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왔기 때문에 원폭 피해자들의 피해의식이 남달리 컸다는 것을 깨달았다. / 209p

 

 

 

  무너진 생에 의지를 일으키다

 

 

   강분희 할머니의 이야기는 나아가 딸인 박인옥에게로 이어진다. 어릴 적부터 하반신에 힘이 없어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퇴부무혈성괴사증을 앓게 되는 그녀의 고통은 원폭의 피해가 2세와 3세에게 대물림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당시 원폭의 참상을 겪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남았으나 오래 살지 못했고, 유전이라는 형태로 그들의 자식들에게까지 전이되어 아픔은 끊임없이 되풀이 되었다. 훗날 박인옥은 원폭 2세 환우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려 노력한 김형률을 만남으로써 일대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한다고, 전쟁은 끝났으나 여전히 피해자들은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고 있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용기 있는 시도들을 해나간다. 그간 정현재에게 있어서도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이란 마치 잊고 싶은, 외면하고 싶은 아버지라는 존재에 맞닿아있는 불편한 존재였다. 그는 강분희와 박인옥이 겪은 험난한 삶의 여정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생의 의지를 보고서야 드디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딸을 인정하게 된다.

 

 

 

“원폭 2세 환우 문제는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와 사회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십 년 동안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도록 강요당해왔습니다. ……또한 일본 정부의 차별적인 피폭자 원호 정책으로…… 인권이 유린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사람답게 살아가지 못하고…… 인간의 존엄성마저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드는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지…… 국가와 사회에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소외와 차별을 받는 것은…… 또 다른 국가권력으로부터의 폭력을 당하는 것이며…… 인권유린을 당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 428p

 

 

 

   현재 히로시마는 71년 전, 원폭이 터진 곳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생명의 힘을 발산해내고 있다. 시체더미와 잿더미가 뒤얽힌 죽음의 땅에서 푸른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광경을 지켜보는 정현재의 모습을 통해서, 흉터가 꽃이 되어 빛나는 아름다운 과정을 목격한 것만 같다. 이 소설의 가장 빛나는 지점은 화상 자국으로 얼룩진 분희의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분희 그 자체로만 바라봐주었던 동철의 빛나는 사랑과, 원폭의 피해자 가족이라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옥의 아들 진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현서와 같은 존재들에 있는 듯하다. 인간이 하는 행동 중에 가장 어리석고 끔찍하고 추한 것이 바로 전쟁이라면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사랑이 아닐까, 오직 사랑만이 원자폭탄마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전세계 핵무기가 만 오천 기가 넘는다면서? 그것뿐이겠어?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원자력 발전소는 어떻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제일 높다면서? 북한 핵문제에다 사드 배치, 미국 전술핵 재배치 주장까지 나오는 판국이잖아.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몰라. 대한민국은 핵의 나라야. 우리 모두는 핵을 머리에 베고 살고 있어.” / 414p

 

 

 

   K의 말처럼 우리는 잠재적인 핵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느닷없이 찾아온 원폭이라는 재앙 앞에서, 그날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를 겪어야 했던 많은 사람들처럼 우리 모두는 핵을 머리에 베고 있다는 그의 말을 허투루 듣고 넘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위안부 피해지 할머니와 소녀상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원폭의 상처를 위로할 수 있는 사회적인 관심과 인도적인 지원이 더욱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이상 흉터가 흉터로써만 남지 않도록. 흉터도 꽃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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