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 1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일상이 서사가 되는 기이하고 놀라운 작품
노르웨이 문학의 정수, ‘나’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치열한 자기 고백



  탄생과 죽음. 삶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한 개인의 삶 속에서 낱낱의 일상, 사랑과 슬픔, 행복과 절망, 상처 등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글로 담아내는 작업이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나’의 민낯을 들여다보기 위해 자기 투쟁적 고백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숱한 불면의 밤과 자기 내부를 갉아먹는 치열함에 맞서 싸워야하는 것과 다름없다. 더구나 그것이 소설이라면, 픽션이라는 살을 덧붙이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소설적 요소를 배제하고서 자신을 거침없이 드러낼 수 있는 일이란 가능한 것인가. 단순한 일기조차도 우리는 진실을 모두 다 담아내지 못한다. 하지만 <나의 투쟁>의 저자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스스로와 주변의 모든 존재들로부터 타협하기를 거부한다. 자신의 내밀한 본능과 욕망, 자기 경멸의 순간까지 생생한 민낯을 고백하기 위해 스스로를 분해하고 해체하는 작업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러한 소설이 있을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다소 생소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문학이 일어나고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강렬한 세부적 요소들을 분해하고 해체해야 한다. 분해하고 해체하는 작업이 바로 ‘글쓰기’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창조라기보다는 오히려 파괴에 가까운 작업이다. 랭보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감탄할 만한 점은, 랭보가 너무 젊은 나이에 이것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것을 자신의 삶에도 적용했다는 것이다. 랭보에게는 글쓰기뿐만이 아니라 삶에서도 자유가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 자유 때문에, 그는 심지어 글쓰기도 옆으로 밀쳐두었다. 그는 글을 쓰는 작업이 어느 사이엔가 자신을 얽어매는 집착과 구속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이를 분해하고 해체하게 되었다. 자유는 파괴에 움직임을 더한 것이다. / 302p



   <나의 투쟁> 1권은 저자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인 크나우스고르의 유아기, 청소년기, 장년기와 현재를 교차 반복하여 진행되는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은 ‘죽음’의 이미지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여덟 살 때 우연히 TV에서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된 기억으로부터 이야기는 전개된다. 시작이 그러했듯 소설은 시종일관 죽음이라는 그늘에서 쉬이 떠나질 않는다. 단순히 삶과 생명의 종식을 뜻하는 죽음이 아니라 숨결이 부재하는 사물처럼 자신의 방 안에 있는 벽과 바닥, 천장과 창문에서도 죽음을 느낀다.


   그 중심에는 집안을 불안으로 채우는 ‘아버지’가 존재한다. 어쩌면 아버지 자체가 그에게 불안을 주는 존재인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하는 행동만 보아도 어떤 감정인지 알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던 그에게 때로는 엄격하고, 때로는 너그러워지는 아버지의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을 마주할 때 혼란스러워지는 자신에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땅의 많은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느끼는 감정이 이와 유사할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한없이 따뜻한 존재, 아버지는 적대적인 듯 그러나 가장 강한 팔로 가족을 굽어 살피는 기둥 같은 존재. 가족이라는 집단 속에서 가장 양가적인 감정을 지닐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아버지가 아닐까.


의미에는 충만함이 필요하고, 충만함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시간에는 저항이 필요하다. 지식은 사물과 현상과의 간격이고, 정체적 상태이며, 의미의 적이다. 1976년 그날 저녁, 내 머릿속에 그린 아버지의 모습은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그 당시 여덟 살 소년의 눈으로 본 아버지의 모습이다. 예상이 불가능하고 조금은 두려운 존재. 또 다른 하나는 지금의 내 눈, 즉 아버지와 비슷한 또래의 성인 남자의 눈으로 본 모습이다. 거쳐간 시간에 따라 삶의 의미가 하나하나 뜯겨져 나간 그런 존재 말이다. / 21p



   소설은 이런 아버지와의 관계, 한 가정을 이루어 스스로 아버지가 된 저자의 모습,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와 그의 죽음을 수습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 또한 저자가 자신의 형과 함께 아버지의 죽음을 정리하는 과정에 있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아버지의 처참하고 추악한 죽음이 낳은 흔적들은 그의 정신을 통째로 뒤흔든다. 나 또한 할머니의 죽음을 목도했고, 얼마 전 아무 것도 먹지 못하면서 몸속에 있는 것마저 토해내며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외할머니를 보고 온 탓에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먹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죽음’이라는 존재가 마치 살아서 나를 두텁게 휘감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마치 아버지의 무덤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여긴 말 그대로 무덤이야. 우린 마치 아버지의 무덤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아. 아버지가 앉아 숨을 거둔 그 의자는 아직도 거실에 있어. 그뿐 아니라 과거의 것들은 모두 여기 있어. 그러니까 내가 어렸을 때 접했던 모든 것이 아직도 여기 남아서 나를 덮쳐오곤 해. 이해할 수 있겠니? 어떤 면에서 보면, 난 이것들에 너무나 가까이 닿아 있기 때문에 괴로워. 나의 지난날, 아버지의 지난날… 과거의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나를 덮쳐와.” / 580p



   가장 원초적인 감정과 자기 인식으로 점철된 이 소설을 완성함에 있어 저자는 주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주저하지 않는 듯하다. 아버지의 추악한 죽음뿐만 아니라 저자의 삶과 주변을 둘러싼 모든 인물에게까지도 지독할 정도로 사실적이기를 요구한다. 아버지가 원고를 봤다면 고소를 했을 거라는 형의 말처럼, 실제로 작가의 삼촌과 숙모의 실명이 거론된 탓에 명예훼손으로 법정에 섰을 정도라 하니 그의 거침없는 진솔함은 혁신적이기까지 하다. 소설 속의 그의 태도는 굉장히 이중적인데 이 또한 서슴없이 드러낸다. 때로는 여성적인 것을 혐오하는 완곡한 남성에 가깝다가도 아버지의 죽음에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다. 모든 것들로부터 한 발 물러난 사람처럼 겉돌지만 사소한 순간과 공기의 흐름까지도 기억에 담아 내밀하게 문장을 통해 담아내는 섬세함은 놀라울 정도이다. 개성 있는 문장가는 아니지만 일상에 기민한 감각의 촉수를 드리우고 진득하게 글쓰기를 실천한다.


나는 슈트케이스에 달려 있는 조그마한 바퀴들을 혐오한다. 너무나 여성적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남자다우려면 뭔가를 직접 들어서 옮겨야지, 쩨쩨하게 바퀴 위에 놓고 굴리면 안 된다. 내가 슈트케이스의 바퀴를 싫어하는 이유는 또 있다. 그건 간편함과 지름길과 값싼 지질함과 싸구려 이성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조그맣고 무의미한 것들이라도 이런 요소를 포함한 것들을 보면 반발하곤 한다. 세상 속에 살며 세상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로 산다 할 수 있는가.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면 우린 가벼운 그림 한 장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힘을 쓰지 않고 모아둔다면, 모아둔 힘은 도대체 어디에다 써먹을 생각인가. / 359p


내 속에도 어제의 감정들이 남긴 자취는 찾아볼 수 없었다. 느낌과 감정은 물과 같다. 항상 주변 상황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하니 말이다. 당시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거웠던 감정,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오래도록 지속될 것만 같았던 느낌들조차도 자취를 남기지 않는 까닭은 그것들이 무뎌지고 단단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니 감정과 느낌은 무뎌지고 단단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상태를 유지할 뿐이다. 막힌 웅덩이 속의 물이 고요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 396p



   앞서 말했듯 전개 과정은 현재와 과거, 또는 더한 과거로 훌쩍 넘어갔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는데 의외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자아내지는 않는다. 현재의 순간을 붙드는 찰나의 기억이 있다면 그것까지 모두 끄집어내는 그의 글이 자신과의 투쟁에서 비롯됨을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속도감 있는 전개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개의치 않는다. 그런 것에 민감한 작가라면 애초에 이런 글쓰기의 과정이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이런 새로운 문학에 좀 더 마음을 열어도 좋을 것 같다.

   현재 노르웨이 문단에서는 입센 이후로 이 젊은 거장의 등장을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또한 그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라 하니 이어지는 그의 고백에 계속 귀를 기울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투쟁> 1권이 600쪽 이상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한 권에 그치지 않고 곧 2권과 3권 혹은 그 이후의 권들까지 계속 출간될 것 같으니 미리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독자들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 여담이지만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사진을 보는 순간, 그의 섹시한 아우라에 심쿵 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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