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안보윤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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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은 내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

각자 따로가 아닌 같이 함께를 감각하게 하는 8편의 소설들!

 

 

 

  현대 사회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타인과의 소통과 접촉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인도되었다기술의 시대 속에서 타인은 곧최소한의 필요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더욱이 코로나19는 단절고립의 동의어처럼 작용하여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되었다그런 가운데 사회적 약자들 혹은 소수자들로 포함되는 여성저소득층노인장애인성 소수자이주 노동자 등은 차별과 배제 그리고 폭력의 위협으로부터 더 잦은 소외감을 느껴야만 했다그러나 그 덕분에 우리는 또 다른 교훈을 얻기도 했다공존과 연결 그리고 연대의 가치와 중요성만이 이 세계의 불안으로부터 서로를 돌보고 구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이 통증의 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한 번 더 말을 건네는 데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문학의 쓸모란 바로 이런 것이다. ‘각자 따로가 아닌 같이 함께를 감각하게 하는 것문학이 그 기나긴 세월 우리 곁에 함께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형용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재현해냄으로써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영역을 확장하게 하기 때문이다당신의 고통이 내일 나의 고통이 될 수도 있음을 자각하고배제와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언제든 자리를 달리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그렇게 우리는 문학으로 하여금 함께 아파해야 하고 저항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무해하지만 그래서 불편한 약자라는 이름에 대하여

 

 

  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 공존하는 소설』 속 인물들 역시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 사회적 약자들이다선하지만 그래서 타인에게 내내 이용만 당하는 언니가 등장하는 안보윤의 소설 밤은 내가 가질게주 6일씩 일하면서 정신없는 서울살이를 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느냐며 한심한 존재로 취급받는 가 주인공인 서유미의 에트르정식 직원이 아니라서 무기한 강제 휴직을 권고 받은 청년 노동자 해주의 모습을 담은 서고운의 소설 빙하는 우유 맛외모 때문에 남자로 종종 오해받던 주인공이 오히려 자신이 여성인 것을 발각당하는 순간에 폭력의 대상으로 내몰리는 김지연의 공원에서」 등등이 그러하다.

 

 

 

  이들은 대체로 무해하지만소설 속 주변 인물들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존재들이다분명 불편함과 부당함을 당하는 건 이들 약자들인데정작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자들의 몫은 따로 있는 것처럼 주변 인물들은 이들을 한심해하거나 조롱하거나 거리를 둔다. “너는 그게 선의라고 생각하지돌아보고 미적거리고 자꾸 여지를 남기는 거.” 안보윤의 소설 밤은 내가 가질게」 속 대사는 우리 시대가 이들을 어떻게 감각하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저 방문 너머에서 바깥 소리에 귀 기울이며 카톡을 쓰고 지우고 다시 썼을 언니가 떠올랐다침대 아래방석도 러그도 없는 맨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을 언니가열심히 살수록 불행해지고 남의 호의에 기생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언니가희망이 가장 두렵고 끈기가 가장 무서운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끝끝내 인정하려 들지 않는 선하고 한심한 언니가. / 안보윤밤은 내가 가질게」 중에서 39p

 

 

휴대폰 매장과 카페옷 가게에서 일했지만 명함 한 장 만들지 못했고 이력서에 적을 경력도 변변치 않다찡이나 나나 근면 성실했지만 그건 자랑도 자부도 되지 못했다기본 중의 기본일 뿐이었다주위 사람들도 다 시간을 쪼개고 욕망을 유보하며 살았다정신없이 바쁘게 지내 왔는데도 서른 살의 겨울을 생각하면 인생을 대충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초라했다. / 서유미에트르」 중에서 64p

 

 

우리 관계가 알려지면 아무도 네 편을 안 들어줄 거야너만 더 욕먹을 거야맞을 만한 짓을 했다고맞아도 싸다고 수군거릴 거야비도덕적인 인간의 말은 들을 가치도 믿을 이유도 없다고 하겠지.”

기영은 멀찍이 떨어져서 우리의 관계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자신은 무관하다는 듯이. / 김지연공원에서」 중에서 140p

 

 

요즘 제일 필요한 게 노인 시설이에요고령화 시대잖아요.”

현대아파트 입주자 대표는 고령화거나 말거나 주민 동의도 없이 이렇게 허가를 팡팡 내주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사무실 한가운데서 소란을 피웠다아무튼 우리는 요양원 같은 거 허락 못 하니까 그렇게 알라고 자꾸만 큰소리를 내서 경화가 끌어내다시피 데리고 나왔다. / 조남주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 중에서 205p

 

 

 




 

 

 

 

  “아파!라고 말해야 돼아니면 이렇게라도.” 빙하는 우유 맛에서 해주는 48개월이 되어도 말을 하지 않는 민지의 이마를 자기 이마에 가만히 포개며 이렇게 얘기한다말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이마를 맞대면 된다그리하여 눈을 마주하고 서로의 체온을 느낌으로써 민지의 아픔을 느끼려 한다정작 엄마는 이런저런 과외 선생님을 붙여가며 말을 하게끔’ 하는데 열을 올리지만 해주는 민지의 말할 수 없음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조남주의 소설 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에서는 노인 요양 보호원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이를 반대하던 백은빌딩’ 학원 원장 대표인 경화가 엄마의 치매 소식에 태도에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여준다엄마를 돌봐야 하는 입장이 되면서 사회적 약자의 편으로 돌아선 경화의 모습은 또 다시 이기적으로 보이지만고통을 가까이 느끼는 입장이 되어보아야 그들의 아픔을 깨닫게 되는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그런 밤이 있었다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 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었다. / 최은영고백」 중에서 131p

 

 

사냥을 나간 에스키모들이 얼음 벌판에서 개를 끌어안고 잠드는 밤을 개의 밤이라고 한 대요.”

별 희한한 밤도 다 있군.”

얼어 죽지 않으려고요.”

얼어 죽지 않으려고 개를 끌어안고 잔단 말이야에스키모들이나 그러라고 해나는 차라리 얼어 죽고 말 테니.”

천지사방 어둠과 얼음뿐이라고 생각해 봐요온기를 구할 게 개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요고요한 밤거룩한 밤 말이에요.” / 김숨고요한 밤거룩한 밤」 중에서 152p

 

 

 




 

 

 

 

  「밤은 내가 가질게에서 언니는 순진하게 이용만 당하는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동생에게 아무 의심 없이 대할 수 있는 존재가 내 앞에 있다는 거그래서 내가아직 상냥한 채로 남아 있어도 된다는 거그게 나한테는 정말 중요하다고 말한다아무 의심 없이타인을 향한 상냥한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건 때로는 어리석고 미련해보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마음들이 더 자주 타인과 이웃에게 귀를 기울이고 손을 내밀게 하는 건 아닐까생각하게 한다이렇듯 책을 읽고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느끼다보면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은 내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또는 그 안에서 지금의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부디 이 책이 사회 곳곳의 낮은 자리를 더듬고나아가 공존의 의미와 연대의 가치를 나누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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