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하는 소설 - 미디어로 만나는 우리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김애란 외 지음, 배우리.김보경.윤제영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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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속의 우리 그리고 진정한 소통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여덟 편의 단편들!

 

 

 

  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 연결하는 소설은 김애란, 구소현, 오선영, 서이제, 김혜지, 임현석, 김보영, 전혜진까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쓴 소설 중 미디어 즉 연결을 주제로 한 단편 소설 한 편씩을 수록해 엮은 책이다. 미디어란 인류가 원시 시대부터 자신의 의사나 감정 또는 객관적 정보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마련한 수단으로, 기본적인 의사소통 수단인 언어에서부터 인쇄, 디지털, 소셜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왔다. 이제 미디어는 그것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우리 삶의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과연 서로를 얼마나, 온전히 연결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남긴다. 특히 책 속의 여덟 편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실은 우리가 사이의 진실된 연결을 얼마나 갈망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던지는 미디어 속의 우리 그리고 진정한 소통의 가치를 되새겨 보시길 바란다.

 

 

 

거기, 당신 있나요?

 

 

나는 이 세계에서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 그 말에서 빠져 나온 숨결과 기운들로 이뤄진 영이다. 나는 커다란 눈이자 입, 하루치 목숨으로 태어나 잠시 동안 전생을 굽어보는 말이다. 나는 단수이자 복수, 안개처럼 하나의 덩어리인 동시에 각각의 입자로 존재한다. 나는 내가 나이도록 도운 모든 것의 합, 그러나 그 합들이 스스로를 지워 가며 만든 침묵의 무게다. / 침묵의 미래, 김애란중에서 16p

 

 

 

  첫 수록작인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속의 는 하나의 언어가 사라지는 순간 그 말에서 빠져나온 일종의 영혼이다. ‘는 소수 민족으로 더 이상 자신과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이가 없어 평생 고독 속에서 자신의 을 그리워했던 마지막 화자의 죽음을 반추한다. ‘의 마지막 화자는 소수 언어 박물관이라는, 이른바 사라져 가는 언어를 보존하고 가치를 알리기 위해 설립된 박물관의 전시실에서 홀로 고향의 언어를 지켜내었던 살아있는 테이프였다. 검은 피부에 우아한 속눈썹을 가진 그는 눈감기 전, 자기 말을 알아듣는 누군가가 한 명쯤 곁에 있길 바랐다. 하물며 이나 그래같은 아주 간단한 말이라도, 누군가 건네주길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그건 노인뿐만이 아니었다. 소수 언어 박물관의 사람들은 혼자라는 단어를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만지고 또 만졌다. 김애란 작가는 그들의 고독을 이렇게 묘사한다. ‘몸에 좋은 독이라도 먹듯 날마다 조금씩 비관을 맛봤다. 고통과 인내 속에서, 고독과 두려움 속에서, 희망과 의심 속에서 소금처럼 하얗게, 하얗게 결정화된 고독…… 너무 쓰고 짠 고독.’ 그렇게 노인의 죽음으로 이 땅에 오래된 언어 하나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소설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언어가 사라진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거냐고.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했던 모두의 이야기가,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침묵에, 미래가 있느냐고.

 

 

 

그에게 모어란 호흡이고, 생각이고, 문신이라 갑자기 그걸 안 하고 싶어졌다해서 쉽게 지우거나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말과 헤어지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말과 잘 사귄 것도 아니었다.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는 자기 삶의 대부분을 온통 말을 그리워하는 데 썼다. 혼자 하는 말이 아닌 둘이 하는 말, 셋이 하면 더 좋고, 다섯이 나누면 훨씬 신날 말. / 침묵의 미래, 김애란중에서 34p

 

 

 


 

 

 

 

  비슷한 맥락에서 사라져가는 언어,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고요한 시대라는 미래를 형상화한 김보영의 고요한 시대역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인데 만약 다음 세대가 언어를 생각의 도구로 쓰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릇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마음은 앞으로 어디에 담기겠느냐고. 그러면서도 작가 김보영은 인지 언어학자인 신영희의 목소리를 빌려 이렇게 지적한다. “마음은 물이고 언어는 그릇이야. 물은 그릇에 따라 모양이 변하지.” 때로는 언어가 마음의 형태를 좌지우지하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왜곡시킬 수도 있는 법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언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담긴 본질임을, 나와 타인이 진실된 소통을 나누는 데 있어야 한다는 작품의 메시지가 큰 울림을 준다.

 

 

 

언어는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리 좋은 소통 도구가 아니다. 대화를 할 때 실상 의미 전달의 80퍼센트는 표정이나 몸짓 따위의 비언어적 대화가 차지한다. 언어가 전해질 때는 주의를 기울일 때 뿐이고 대개의 사람들은 대개의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맥락은 전해지지 않는다. 서술어는 들리지 않고 명사만 들린다. 더 거칠게 말하면 그 명사에 숨은 심상만 들린다. / 고요한 시대, 김보영중에서 170p

 

 

나라에서는 단어를 골랐다. ‘괴담’, ‘허위 선동’, ‘근거 없는’.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던 무수한 것들을 광우병이 진실인가 거짓인가의 문제로 후려치고 축소시켰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간단히 한두 단어로 후려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신영희는 언어학자가 되었다. 언어가 그날을 모독하고 현상을 바꾸었기에.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언어고 사람의 마음은 언어에 담기며, 경험은 사라지고 언어만이 남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 고요한 시대, 김보영중에서 185p

 

 

 

  TV라는 매체에 의해 한 가정이 소비되는 과정을 여실하게 보여준 오선영의 후원명세서, 어린이 유튜버의 삶과 허상을 날 것 그대로 묘사한 김혜지의 지아튜브, 중고거래 앱을 통해서 타인과 소통을 시도하고 편견을 해소해가는 과정을 그린 임현석의 무료나눔 대화법도 인상적이다. 또 알고리즘의 굴레에 갇혀 끊임없이 위시리스트를 갈구하는 화자가 주인공인 서이제의 위시리스트♥」는 우리 세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라 특히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매체가 등장했다 사라지는 가운데서도 이라는 매체만이 줄 수 있는 가치를 전하는 구소현의 시트론 호러와 전혜진의 바이센테니얼 비블리오필,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읽는 즐거움을 환기시킴으로써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과소비를 막으려면 온라인 스토어에 들어가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겠지만, 그걸 알면서도 자꾸만 온라인 스토어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담고 또 담았다. 내가 이 옷을 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담았다. 일단은 담고 또 담았다. 담고 또 담아도 장바구니는 무거워지지 않았다. 무거워지지 않아서 담고 또 담았다. 담고 또 담아도 되었다. / 위시리스트, 서이제중에서 105p

 

 

바닥엔 식탁 다리에 눌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내 만이 공들이고 신경 쓰던 것. 그것을 들어낸 자리였다.

() 나는 어두운 바닥으로 하나씩 떨어지는 수신 대기음을 들으면서, 지금 대화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냉장고야? 그건 아내만이 알고 있다. 아내만이 아이에게 해 줄 말이 있다. 내게도 판단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고, 나는 아내를 붙잡고 한참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슨 원목이라고 했지? 이젠 그때 흘려들었던 아내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다. / 무료나눔 대화법, 임현석중에서 159p

 

 

더 많이 알고 싶고 읽고 싶고 느끼고 싶은 그 마음과, 책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에 대해서. 이제는 지난 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린, 그 집념이라는 것에 대해서. 오직 그 집념을 이루기 위하여, 숨만 붙은 채 2백 년을 살아온 한 몸뚱이에 대해서.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할 수 있을까.

가슴이 뛰었다. / 바이센테니얼 비블리오필중에서 235p

 

 

 

 

 

 

 

  『함께 걷는 소설, 끌어안는 소설에 이어 연결하는 소설에 이르기까지, ‘소설이라는 이야기가 주는 남다른 무게감이 참 좋다. 이 시리즈를 차곡차곡 수집함으로써 얻는 즐거움을 다른 많은 분들도 누려보시길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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