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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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에 관한 기나긴 사유, 그것이 전하는 삶의 다양한 질문들!

읽기가 쉽지 않지만, 거듭 읽는다면 반드시 진가가 드러나는 작품!

 

 

  소설가 최수철은 카뮈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행간의 숨은 의미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카뮈의 작품은, 특히 『시지프 신화』는 문장의 흐름대로 의식이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기존의 독서법으로는 쉬이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어가면서도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는 수고로움을 번번이 겪어야 했던 참 까다로운 독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삶의 부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명철한 의식과 반항에의 열정을 집요하게 추구했던 예술가이자 한 인간의 고뇌가 묵직한 밀도로 다가오는 까닭이었다. 신의 형벌로 인해 영원히 산 밑에서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삶을 살아야 했던 시지프에게서 ‘비록 삶은 비극적일 수는 있어도 절망적이지는 않으리’라고 믿었던 카뮈의 신념이 이토록 절실하게 다가오는 때가 또 있을까 해서 말이다.

 

 

 

부조리에 대한 반항 그리고 열정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부조리란, ‘이치에 맞지 아니하거나 도리에 어긋남 또는 그런 일’을 뜻한다. 인간과 세계, 인생의 의의와 현대 생활과의 불합리한 관계를 나타내는 실존주의 철학의 주요 용어로, 실존주의의 대표 작가로 잘 알려진 카뮈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역시 부조리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인간과 비합리성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을 다룬 『이방인』, 『페스트』에서는 특히 부조리에 대한 그의 저항 의식이 잘 드러난다. 『이방인』과 같은 해에 발표된 『시지프 신화』 또한 마찬가지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삶이란 의미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으로부터 출발하는 부조리에 관한 철학적 고찰이다. <부조리의 추론>, <부조리의 인간>, <부조리의 창조>에 이르기까지, 10장 분량도 채 되지 않는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 이야기에 다다르기 위해서 우리는 부조리에 관한 이 기나긴 사유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부조리는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는 명철한 이성이다 / 76p

 

 

 

  카뮈의 부조리 철학을 위해서는 우선 그의 생애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1913년 11월 7일, 카뮈가 태어난 해의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지 상태였다. 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아버지가 전투에서 전사함으로써 문맹인 어머니는 빈약한 종신 연금을 받으며 가정부로 일했다. 이에 카뮈는 “나는 마르크스를 통해 자유를 배운 것이 아니다. 가난을 겪으면서 자유를 배웠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한 바가 있을 만큼 지독한 가난과 질병을 뚜렷하게 의식했다. 훗날 아내 시몬에게 마약을 공급해 주는 의사가 그녀의 정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폐결핵이 재발하여 이에 대한 후유증으로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응시하려던 계획이 좌절되는 등 그의 삶에 있어서 ‘부조리’는 내내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았다.

 

 

 

설사 시원찮은 이유를 대고서라도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세계는 낯익은 세계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돌연 환상과 빛을 박탈당한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낀다. 이 낯선 세계로의 유배에는 구원이 없다. 그에게는 잃어버린 고향의 추억도 약속된 땅의 희망도 다 빼앗기고 없기 때문이다. 인간과 그의 삶, 배우와 무대 장치의 절연, 이것이 다름 아닌 부조리의 감정이다. / 19p

 

 

인간 자신의 비인간성 앞에서 느끼는 이 불안, 우리의 됨됨이가 보여주는 이미지 앞에서 경험하는 측량할 길 없는 이 추락, 우리 시대의 어느 작가가 말한 바 있는 ‘구토’, 이것 또한 부조리다. 마찬가지로 어떤 순간 거울 속에서 우리와 마주치는 그 이방인, 우리 자신의 사진들 속에서 다시 만나는 친근하면서도 음산한 형제, 이것 또한 부조리다. / 32p

 

 

 



 

 

 

 

  그러나 카뮈는 ‘이 세계는 합리적이지 않다. 이것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전부다. 그러나 부조리한 것은 바로 이 비합리와, 명확함에 대한 미칠 것 같은 열망의 맞대면이다’고 말한다. 또한 ‘산다는 것은 곧 부조리를 살려 놓는 것이다. 부조리를 살린다는 것은 무엇보다 부조리를 주시하는 것이다. 에우리디케의 경우와는 반대로, 부조리는 오직 우리가 그것을 주시하던 눈길을 딴 데로 돌릴 때 죽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유일하게 일관성 있는 철학적 태도는 곧 반항이다’라고 생각한다. 즉, 카뮈는 부조리 앞에서 우리 모두는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반항하는 열정을 가져야만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현실을 벗어나 종교적, 형이상학적으로 시선을 돌릴 것이 아니라, 삶의 다른 가능성을 모두 살고자 하는 열정으로 나아가 죽음을 내 방식대로 재창조하겠다는 생각으로 글쓰기에 몰두한 것이다. 그렇게 ‘정복 혹은 연기, 무수한 사랑, 부조리한 반항 같은 것들은 인간이 미리부터 패배한 전장에서 자신의 존엄성에 바치는 경의’라고 표현한 그는 자신의 문학적 성취를 통해 이를 증명해낸 셈이다.

 

 

 

자명한 것은 은폐한다거나 방정식의 한쪽 항을 부인함으로써 부조리 자체를 제거해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부조리로 살아갈 수 있는가, 아니면 논리가 부조리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다고 명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철학적 자살이 아니라 그냥 자살 그 자체다. 나는 다만 자살에서 감정적인 내용을 걸러 내고 그것의 논리와 정직함을 알고 싶을 따름이다. 그 외의 모든 태도는 부조리의 정신에는 속임수요, 정신이 명백히 드러내 보여 주는 것 앞에서 뒷걸음질하는 것에 불과하다. / 77p

 

 

인간 조건 속에는 근원적인 부조리성과 동시에 움직일 수 없는 위대함이 깃들어 있다. 이는 모든 문학에 빈번히 등장하는 주제다. 부조리와 위대함 이 두 가지는 마치 당연한 일이기라도 하듯 서로 일치한다. 다시 한 번 되풀이하거니와 이 두 가지는 우리 영혼의 과도한 야망과 소멸하고 말 육체의 기쁨을 서로 갈라놓는 어처구니없는 절연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처럼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육체를 추월하는 것이 바로 그 육체의 영혼이라는 사실, 바로 이것이 부조리다. / 193p

 

 

중요한 것은 부조리와 더불어 살아 숨 쉬는 것, 그것이 주는 교훈을 인정하고 그것의 살을 되찾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부조리한 즐거움의 전형은 바로 창조다. “예술, 오로지 예술. 우리는 예술을 가지고 있기에 진리로 인하여 죽지 않을 수 있다.”라고 니체는 말했다. / 144p

 

 

 

  때문에 카뮈는 그리스 신화 속의 시지프를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온다. 그는 ‘시지프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저 산꼭대기에서 되돌아 내려올 때, 그 잠시의 휴지의 순간’이라고 설명한다. 신의 저주에 의해 영원히 산 밑에서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시지프. 카뮈는 시지프에게서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고 표현하며 이 부조리한 영웅의 끊임없는 투쟁에서 우리의 삶을 투영한다.

 

 

 

  작가 사르트르가 발표한 소설 『구토』의 서평을 쓴 카뮈는 그 속에서 “삶의 부조리를 확인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고 오직 시작일 뿐이다. 그것은 거의 모든 위대한 정신이 출발점으로 삼은 진실이다. 관심거리는 부조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이끌어 내는 귀결들과 행동 규율”이라 한 바가 있다.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향해 돌아가는 시지프의 저 투쟁처럼 부조리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이끌어내는 삶의 귀결과 행동 규율이라는 카뮈의 말은, 오늘날 우리가 순간순간 마주하게 되는 삶의 부조리 앞에서 어떠한 정신과 행동으로 나아가야하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시지프가 부조리한 영웅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그의 열정뿐 아니라 그의 고뇌로 인해 부조리한 영웅인 것이다. 신들에 대한 멸시, 죽음에 대한 증오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은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일에 전 존재를 바쳐야 하는 형용할 수 없는 형벌을 그에게 안겨 주었다. 이것에 이 땅에 대한 정열을 위채 지불해야 할 대가다. (…) 경련하는 얼굴, 바위에 밀착한 뺨, 진흙에 덮인 돌덩이를 떠받치는 어깨와 그것을 고여 버티는 한쪽 다리, 돌을 되받아 안은 팔 끝, 흙투성이가 된 두 손의 온통 인간적인 확실성이 보인다. / 182p

 

 

“이 세계 자체는 합리적이지 않다. 이것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전부다. 그러나 부조리한 것은 바로 이 비합리와, 명확함에 대한 미칠 것 같은 열망의 맞대면이다. 그 명확함에 대한 호소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메아리친다. 부조리는 인간과 세계에 똑같이 관련된다. 지금으로서는 부조리만이 그들과 세계를 똑같이 관련된다. 지금으로서는 부조리만이 그들을 이어 주는 유일한 매듭이다. / 253p

 

 

 




 

 

 

 

  개인적으로 『시지프 신화』는 반드시 재독이 필요한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부조리한 인간> 편에서 부조리에 대응하는 인간으로 제시된 ‘돈 후안주의’는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을 비롯해서 행간에 숨은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에 여전히 나는 미숙한 까닭이다. 그럼에도 삶의 부조리를 인정하되 그것을 끊임없이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치열하게 고민한 이 작가의 정신만큼은 오롯이 전달된다. 이제껏 카뮈 하면 『이방인』과 『페스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그의 사상적 단초가 되는 『시지프 신화』를 읽어보시라 추천 드린다. 마침 JTBC에서 방영될 드라마 <시지프스>가 시지프를 모티브로 시작된 이야기라고 하니 이 책도 참고해보시면 좋을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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