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과 열심 - 나를 지키는 글쓰기
김신회 지음 / 민음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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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에세이 작가 김신회, 글 쓰는 행위에는 모든 감정이 들어있다던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

 

 

 

   13년 동안 에세이를 쓴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나의 일상을, 그것도 여러 권의 책에 걸쳐 쓰인다는 건 매번 고민스러운 일이 아닐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써야할 지, 이걸 글로 써도 되는 것인지, 나를 아는 지인들이 모두 이 글을 볼 텐데 나는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 지, 무엇보다 이게 책으로 나올 만한 것인지. 더욱이 전업 작가에 프리랜서라면 내가 쓴 글로 얼마나 벌어서 먹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늘 따르기 마련이지 않을까.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아무것도 안 해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등의 에세이집을 통해 익히 알려진 저자 김신회는 신간 『심심과 열심』을 통해 글 쓰는 삶이란 무엇인지, 어째서 그 긴 시간동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인지를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글을 쓸 때, 글을 쓰지 않을 때, 글이 상처가 되고 또 응원이 될 때, 일상이 글이 되고 글이 일상이 되는 그 모든 순간에 대한 진솔한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글을 쓰는 사람이 지닌 글에 대한 진심을 들여다본다. 또 그러함으로써 느끼게 된다. 우리는 꼭 무언가를 쓸 때 진짜의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글쓰기란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일

 

 

   『심심과 열심』에서 김신회는 심심한 일상을 열심히 쓰는 것, 그게 바로 에세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첫 장 ‘나는 이렇게 쓴다’에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을 쓰게 된 순간에서 시작해 글쓰기를 일상으로 만드는 방법, 좋은 글을 쓰는 여러 방법들을 써내려간다. 그 중 글을 쓰고 싶지만 망설이는 이들을 위한 몇 가지 조언들은 새겨둘 만하다. 이를 테면 시작부터 머뭇거리며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에게 에세이를 쓸 때는 첫 문장보다 마지막 문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에세이는 일상의 깨달음에 대해 쓰는 글인 만큼 첫 문장이 떡 벌어질수록 뒷이야기가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고, 첫 문장에 들인 힘을 끝까지 유지하면 지나치게 비장한 다짐과 교훈으로 점철된 글이 완성되기도 하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첫 문장을 쓰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나 역시 글을 쓸 때 첫 문장에 유독 과할 정도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첫 문장이 잘 풀리면 글이 수월하게 진행되는 편인데, 첫 문장에서부터 막혀버리면 내내 더듬거리며 써내려가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각 문단의 첫 문장이 명확해야 글의 방향성도 뚜렷해진다고 믿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나서부터는 빈 페이지 위에 깜빡이는 커서를 내내 지켜만 보고 머리 아파하기 보다는 고치면 된다는 마음으로, 이번만큼은 마지막 문장에 더 힘을 실어보자는 마음으로 여유를 가져볼까 한다. 일단 쓴다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초고를 다 쓰고 나면 논다. 2주 정도 원고는 쳐다보지도 않고 휴식을 취한다. 친구들과 놀고, 술도 마시고, 여행을 가거나 가족과 시간을 갖는다.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읽거나 영화를 왕창 보기도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글쓰기라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나를 일에서 분리시키는 것이다. 최대한 글쓰기와 상관없는 일을 하면서 ‘그 글을 쓴 나’가 아니라 ‘그 글을 읽을 나’를 만든다. / 24p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끝 문장 쓰는 법은 다음과 같다.

1. 뭔가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

2. 교훈이 없어도 된다.

3. 이야기의 결론을 꼭 내지 않아도 된다.

4. 다짐과 희망 사항에 대해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된다. 안 물어 봤다! / 31p

 

 

좋은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 나를 알고, 내 감정을 파악하며 쓰는 글은 모두를 지키는 글이 될 수도 있다. 마음이 편안하고 풍요로울 때, 좋은 글이 나온다고 믿는다. 우울하고 괴로울 때 멋진 글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 우울하고 괴로울 때는 그저 그냥 우울하고 괴로운 글이 나오더라. / 73p

 

 

 

 

 

 

   2장 ‘근로자입니다, 또 고용주이고요’에서는 작가로서의 삶에서 겪는 여러 가지 고충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대목들이 눈에 띤다. 글을 쓰면서 계산기를 두드리게 되는 자신에 대한 실망, 이 책은 안 팔리겠지 하며 펑펑 울었던 기억, 원고 청탁과 강연을 요청하면서도 강연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미루는 업계의 행태에 대한 지적, 요샌 개나 소나 책을 쓴다는 사람들의 모욕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말한다. 더 많이 팔리는 책을 쓰고 인기 작가가 되기 보다 그저 이 일을 앞으로 10년만 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또 10년이 지난 후에 한 번의 10년이 주어진다면 바랄 게 없겠다고. 적은 돈을 주고 많은 일을 시키는 것을 예술이라 부르는 사람을 멀리하고, 노동에 대한 적절한 임금을 받을 권리와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돈 이야기를 포기하지 말자고. 나를 포함해 더 많은 개나 소가 글을 써서 더욱 많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이다.

 

 

 

결국 망한 책이 새로운 책을 쓰게 한다. 책이 잘되었다면 결코 떠올리지 못했을 아이디어가 그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내가 쓴 대부분의 책이 기대한 만큼의 성적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 그렇다고 해서 글을 그만 쓸 수는 없었다는 점. 나는 어제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답 없는 생각을 하고, 달성되지 않을 계획을 세우며 방구석에서 혼잣말을 끄적이는 사람이라는 점. 그런 사람이 경험하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 평범한 사람이라서 낼 수 있는 목소리가 분명 있다는 발견. / 103p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파악하고, 그런 나와 잘 지내는 일이다. 내가 어떤 것에 강한지를 알고, 어떤 것에 취약한지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삶에 대한 면역력을 기를 수 있다. ‘이럴 땐 이렇게!’ 하고 나를 다루는 방법을 알면 수시로 넘어지고 무너지는 자신을 일으킬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 결국은 인생 전체를 잘 살 수 있다고 믿는다. / 158p

 

 

시인 박준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 2017)에 이렇게 썼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읽을 때마다 마음이 누그러지는 이 문장을 참 좋아한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 역시 편지를 쓰는 일이다. 우리가 쓰는 글은 누군가를 향한 편지이며, 마음을 보여 주는 도구다. / 206p

 

 

 

 

 

 

   끝으로 3장과 4장에서는 사소한 일상이, 사람이 어떻게 가장 빛나는 글감이 되어주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내 일상을 되돌아보고 좋으면 좋은 대로, 맘에 안 들면 맘에 안 드는 대로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할 것을 다짐한다. 내 안에서 퐁퐁 샘솟는 이야기를 그저 꾹 삼키지는 않는 것, 결국 나를 파악하고 그런 나와 잘 지내는 일이야말로 좋은 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자기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작가는 글을 쓰고, 그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다고 말하며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굳게 믿고 또 그만큼 나를 믿으며 꾸준히 쓰려 한다. 비록 나는 진즉에 소설 쓰기를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꽤 오랜만에 그녀처럼 쓰는 자와 읽는 자가 같이 호흡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을 나도 써보고 싶어진다. 그러니 언젠가는 나도 나의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금의 쓰기를 멈추지 말아야지. 글쓰기는 곧, 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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