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THINKING 현대의 붓다, 유지 크리슈나무르티에 대한 모든 것 최준식의 메타 종교로 가는 마지막 춤 3
최준식 지음 / 주류성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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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THINKING

유지 크리슈나무르티(이하 유지)에 대해서는 몇 년전 작가가 이전에 쓴 <길은 없지만 가야 할 길> 책에서 잠깐 본 적이 있지만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평소 흠모했던 지두크리슈나무르티를 너무 신랄하게 비난했기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메타종교 시리즈 세 권을 내면서 한 권을 유지에게 몽땅 할애 할 정도로 40년간 종교을 연구한 작가를 매료 시켰다는 사실이 다시금 유지에게 관심을 돌리게 했다.

작가는 이번에 유지에 관한 책을 또 다시 출판하게 된 이유로 지난 책에서 유지를 충분히 피알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 책은 유지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고 생애에 대한 내용보다 강렬했던 종교체험을 앞부분에 실었다.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말한대로 종교체험, 2부는 삶의 스타일, 3부는 생애, 4부는 사상에 대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종교체험은 첫날부터 대폭발이 일어나는 일곱째 날까지 상세하게 다룬다.

유지의 강렬한 쿤달리니 체험은 아마 독보적이고 타의 추종을 불허 할 만 하다.

한가지 의문점은 종교체험은 반드시 이런 고통을 수반해야 만 하는가라는 것이다.

뽕을 맞은 것 같은 쾌감이 동반되는 그런 종교체험은 왜 없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2부는 평소 유지가 일상에서 보여준 삶을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유지의 삶은 매우 소탈하고 평범한 했다는 점이다.

당시 유지의 명성과 능력이라면 과거의 구루들처럼 큰 집단을 만들어 왕처럼 대접 받고 살았을 터인데 유지는 그 모든 것을 거부 했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에 대해 어떤 책이나 기록도 남기지 말라고 했고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도 주의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다 필요 없고 돈이나 많이 벌고 사는게 좋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다고 한다.

3부는 유지가 태어나서 죽기까지 성장과정이 담겨져 있다.

주목할만한 내용은 유지가 위대한 성자가 되기까지 그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다.

유지의 어린시절 양육은 외조부모에게 맡겨졌다. 외조부모는 신지학회 회원이었기 때문에 유지는 그곳에서 지두 크리슈나무무르티를 만나게 된다.

14세에서 21세까지는 시바난다에게서 요가와 명상등을 배웠고 시바난다를 떠난 후 유명한 마하르쉬를 찾아간다.

하지만 결국 이들과 모두 결별하고 자신의 길을 간다

4부는 유지의 사상이다. 사상은 단순하다. 제목 그대로 생각을 멈추기다. 생각이 인간 고통의 원초적 요인이기에 생각이 없어지면 생각을 포함하여 '나'라는 존재까지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그런 의미가 나가 아니라 순수한 '나'를 의미한다.

그런데 불교든 유지든 일단 '나' 가 없다면 모든 것은 불가능하다. 깨달았다고 해서 자아감이 완전히 없어지는 않는다. 유지가 깨달았을지라도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분명 '나'라는 자기 존재가 있었을테니 말이다.

작가는 이 문제를 켄웰버의 홀라키 개념으로 풀어낸다. 원자를 감싸고 있는 분자처럼 나를 감싸고 있는 상위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분자속에는 원자가 있듯이 내가 깨달아 나를 초월해도 본래의 나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다시 나에게로 돌아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어쨌든 나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은 외부에서 주어진 것인데 그것은 생각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생각이 사라지면 이원론적 체계가 붕괴되어 나와 세상이 통합되고 삶의 고통도 또한 사라진다는 것이 유지의 사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유지가 깨달음은 없다고 하는 이유도 생각을 멈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이 문제를 생각의 영역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인데 바로 쿤달리니 폭발이다.

쿤달리니 폭발은 잠자고 있는 7개의 차크라를 깨워 생각을 멈출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뇌하수체 자리에 있는 아즈나 차크라가 활성화되면 생각이 활동을 멈춘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있다. 쿤달리니 폭발은 자의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지의 경우도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라 어느날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유지는 자기가 하는 이야기는 다 개가 짖는 소리와 같으니 들을 필요도 없고 깨닫고자 노력하는 일도 다 헛짓거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렇게 깨닫는 일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런 과정을 밟고 싶지는 않다. 깨달음이 주는 혜택에 비해 그 댓가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작가는 독자들의 이런 생각을 미리 파악했는지 책 말미에서 독자들에게 당부한다. 어느정도 수련이 깊지 않은 사람은 이 책을 읽지 말라고. 그리고 이미 읽었다면 잊어버리라는 말도 덧 붙인다.

본 서를 읽고 난 후 떠오르는 유지에 대한 이미지는 헐벗은 진실 같다.

솔직하고 투명한 것은 좋지만 너무 속이 드려다 보이면 보는 사람이 좀 불편하지 않을까.

때로는 인간적인 실수와 허물을 가리는 것도 매너인데 이런 것들을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유지가 너무 부정적인 것도 꺼려진다. 그렇지않아도 힘든 세상인데 이왕이면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작가는 바닥을쳐야 위로 올라간다고 부정의 극단은 긍정의 시작이라고 해명은 하고 있지만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이 책의 또 한가지 특성은 서민적인 글 스타일이다. 문장들이 투박하고 싸구려 티가 난다.

교수가 쓴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품위하고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섹스 혹은 성행위를 '박는다'라고 서슴치 않고 표현하고 있는데 유지가 했던 말에 뉘앙스를 살리려는 뜻도 있지만 유지의 삶의 스타일에 맞춰서 의도적으로 털털하게 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무의식적으로 유지와 거리를 두었던 것 같다.

작가가 혀를 내두르며 유지를 치켜 세우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문제를 삼으려는내 태도가 느껴졌다.

아직도 내가 유지에 대한 앙금을 가지고 있거나 그의 깨달음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깨달음을 얻었지만 모든 권위와 명예를 부정하고 평범한 인간으로 자유롭게 살았던 유지의 삶은 경탄할 만 하다.

그리고 다른 얘긴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로댕의 동상 <생각하는 사람> 을 <생각을 멈춘 사람> 으로 바꾸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책을 제공받아 자유로운 환경에서 작성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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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7-23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지 않은 도서같은데 멋지네요.
 
META RELIGION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분석과 해결 최준식의 메타 종교로 가는 마지막 춤 2
최준식 지음 / 주류성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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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대한 관심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한 때 기독교에 깊게 몰입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 특정 종교에 신앙을 두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인간의 궁극적 문제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삶의 제일 앞자리에 있다.

저자의 말대로 이런 궁극적 관심은 한번 갖게 되면 그 질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아무리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마음의 저류에는 이 관심이 도사리고 있다.

본서는 서론과 결말을 빼고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와 2부는 현실의 실체를 다루고 3부와 4부는 궁극적 실체를 다룬다.

1부는 거의 자의식에 대한 문제에 집중한다. 현실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 자의식의 유무는 절대적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서론에서 인간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데 그것은 아직 자의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기는 생후 1~2년을 전후로 두번째 탄생을 하게 되는데 이때 비로소 자의식을 갖게 된다고 한다.

자의식의 생성은 관찰하는 자아와 관찰의 대상이 되는 자아로 이원화되는 자아의 분열이자 타자와 세계에 대한 인식이 가능해지는 계기가 된다.

고통은 이렇게 이원화가 먼저 일어나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의식의 발현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소재로 기독교의 에덴동산 신화를 든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고 눈이 밝아짐을 자의식의 생성이라고 본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전에는 마치 금방 태어난 아기처럼 자기와 세계가 혼합된 일원론적 상태에 있다가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져 비로소 세상에 대한 인식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의식의 내부적인 통일성을 위해 기독교 전통의 핵심 이론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해석을 한다. 물론 캔윌버의 이론을 차용하고 있지만 에덴동산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천국과 같은 것이 아니라 지옥이라는 것이다.

단지 선악과를 먹음으로 무의식적 지옥에서 의식적인 지옥으로 바뀐 것 뿐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같은 지옥이라도 의식적인 지옥은 고통을 느낀다는데 문제가 있다.

의식적인 지옥의 현장에 떨어진 인간은 업그레이된 전자기기처럼 이전 버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이곳에서 주어진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와 세상이 분리됨으로 발생하는 불안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끊임없이 온갖 소유물로 사이의 공백을 메우려하나 인간의 욕심은 구멍난 항아리처럼 채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2부에서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한계상황을 극복하기 벙법으로 의식의 진화를 소개한다.

첫째는 신비주의에서 나눈 3단계로 단계1은 자의식이 없는 전인격적 단계이고, 단계2는 현실의 인격적 단계, 그리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3단계인 초인격적 단계다.

둘째로는 윌버의 7단계인데 제 1단계는 신비주의처럼 자의식이 없는 전인격적단계에 해당되고 2단부터 4단까지는 인격적 단계 그리고 초인격적 단계로 5단부터 7단까지를 이야기한다.

셋째로 우리가 잘 아는 매슬로우의 인간욕구의 5단계를 거론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루는 것은 매슬로우가 죽기 1년전쯤에 보완한 6단계로 자아초월 욕구 단계를 말한다.

인간은 이 단계에 와서야 비로소 진정한 자아해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의식을 벗어나 진화의 마지막단계에 이르는 일은 너무 어렵다는데 있다.

하지만 이 단계에 도달한 사람들이 있는데 붓다나 예수 같은 분들이라고 한다.

이분들이 바로 초월의 단계에 이르렀고 또 절대실재의 세계로 갈 수 있는 방법들을 인류에게 가르쳤다는 것이다.

3부는 절대실재와 그 속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다.

절대실재에 이르는 길은 세계적으로 너무 많이 있지만 작가는 대표격으로 인도철학의 우파니샤드와 중국의 장자를 예를 들고 있다.

우파니샤드에서는 '범아일여', 장자에게서는 '지대무외/지소무내' 표현을 통해을 이원론적 사고로 이해할 수 없는 절대실재를 설명한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절대실재를 이해시키기 위해 다양한 예를 들면서 갖은 노력을 다 하면서 동서양의 모든 위대한 말씀들은 모두 언어상으로 모순을 품고 있다고 아쉬워 한다.

예를 들면 "절대실재는 가장 크면서 가장 작은 존재" 또는 " 없는 곳이 없지만 어디에도 없어야" 등이 그렇다.

이어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종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천국은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이다. 즉 끝이 없으려면 시작도 없어야 한다는 논리다. 때문에 영원의 반대어는 순간이 아니라 시간이라고 한다.

작가는 화엄경을 요약한 법성게의 말을 인용해 영원이란 바로 이 순간이라고 한다.

그리고 시간은 의식이 만들어낸 이원론적 세계의 부산물이기에 마치 흐르는 것처럼 느끼지만 물리학자들이 보는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있다고 한다

시간이 의식의 영향을 벗어나는 경우는 환각제 체험이나 종교체험을 통해 가능한데 이때 절대 실제 체험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광인이나 자폐인들이 비장애인에 비해 훨씬 더 절대실재에 근접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의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고 약물이나 종교적 체험은 일시적이지만 그들은 늘 그런 상태이기 때문이다.

공간 역시 절대 영역은 없다고 한다. 아무리 천국이라도 일정한 장소가 있다면 그것은 상대적인 영역이기에 절대 공간이라고 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절대 공간이 되려면 무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절대실재는 전체이기에 모든 공간을 품고 있어사 공간없음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뭔가를 표현해야 함으로 작가는 보나벤투라의 말을 인용해 절대실재의 공간을 " 중심이 모든 곳에 있으면서외곽선은 아무데도 없는 하나의 구" 라고 표현했다.

도마복음에도 비슷한 글이 있는데 " 신은 모든 것에 내재된 동시에 모든 것을 초월해 있다" 고 했다.

이처럼 절대실재는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대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작가는 3부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절대실재의 정체를 밝힌다.

바로 우리의 절대적 주체의식 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순수의식인데 '진아' 또는 '참나' 라고도 불린다. 불교에서는 우리 안에 불성이 이미 존재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깨달은 존재이지만 단지 우리 의식이 흐려져 있어 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4부는 대망의 궁극적인 경지로 가는 여러 방법들을 소개한다. 유일신교 입장에서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작가는 다른 종교나 철학보다는 힌두교의 3가지 요가 방식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요가란 길이나 방법을 뜻하는 것으로 첫째, 지혜의 길(즈냐냐 요가) 둘째,헌신의 길(박티요가) 셋째 행위의 길(카르마 요가) 나누어 각각 방법들을 기술하고 있다.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면 지혜의 길은 말 그대로 머리 중심으로 인지를 사용하는 지적인 방식으로 스스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고, 헌신의 길은 가슴을 중심으로 기독교의 예배처럼 신적 대상을 향해 마음을 바치는 일이며, 행위의 길은 자선 사업과 같이 몸으로 세상을 위해 뛰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이다.

세가지 길은 배타적으로 선택해야 되는 것은 아니며 세 길을 다갈 수도 있고 한 길만 고수할 수도 있는데 자신에게 맞는 길을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궁극의 경지까지 가는 방법을 소개하고서는 조금 맥빠진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길을 선택해서 열심히 수행한다해도 절대실재를 체험하리라는 보장은 못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반드시 이 길을 가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세 길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

이 책은 작가의 성향이 인도 철학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보니 타종교나 철학보다 그 방면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다.

때문에 모든 종교에 온전히 중립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절대실재로 가는 방법은 있지만 갈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한다고 함으로써

요가의 세 길보다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은혜가 더 낫다는 인상을 줄 수 있고, 붓다와 같이 스스로 깨달아 해탈 할 수 있다는 불교 사상 보다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의 아쉬움을 남길 수 있다.

결국 한바퀴 돌아 제 자리에 온 느낌이다. 하지만 여행은 아주 재미있었다.

편파적인 경향은 있지만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서 세계의 종교들을 아주 재미있게 비교 분석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한다.

또한 기타 다른 서적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종교 이론과 달리 내용 설명이 실감나고 감각적이다.

친근하게 안내하는 듯한 서술방식도 가독성을 높이는데 한 몫 하는 것 같다.

종교 분야에 관심있는 독자들은 한 번 읽어 볼 만 책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책을 공급받아 자율적으로 작성한 것 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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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인류 - 죽음을 뛰어넘은 디지털 클론의 시대
한스 블록.모리츠 리제비크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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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가 디지털 클론을 꿈꾸는 사람들을 찾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연구과정과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디지털 클론이란 한 사람의 모든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통합해서 만든 디지털화된 인격체를 말한다.

몸만 없을 뿐이지 자신과 똑 같은 존재가 도플갱어처럼 컴퓨터 속에 있는 것이다.

머신러닝 분야의 기계는 점점 더 발전해가고 있고 인간은 한계를 벗어나 점점 완전한 존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 삶은 각종 최첨단 과학기술을 통해 점점 더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로 최적화되어 간다.

이러한 기술로 점차 진화하는 컴퓨터 속의 인물은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인물이 된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인간은 영원히 죽지않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사실 디지털 클론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에서 시작되었다.

사랑했던 사람이 죽고 나서도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더 나아가 인터넷은 천국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영혼이 올라갈 천국 없이도 죽은 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불멸의 디지털 영혼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포르투칼의 한 기업가 엔히크는 페이스북 사용자가 사망하여 비활성화된 공간을 살려 죽은자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우리가 죽은 뒤에도 네트워크를 통해 관계는 지속될 것이고 그것은 바로 영원한 삶이 아니겠냐고 묻는다.

작가는 독자들의 반발을 염려하기 때문인지 단정하지는 않지만 두번째 인류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기계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인류는 어쩔 수 없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물을 의인화 한다.

인간이라는 범주를 해체시키면 인형이나 동물들도 인격체의 대상이 된다.

우리의 무의식은 인간의 몸을 입고 있지만 정신장애가 있거나 심하게 몸이 뒤틀린 장애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인간의 대열에서 제외시키는 성향이 있다.

과학이 발전 할수록 인간에 대한 정의가 흔들리고 있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더 나아가 사물에서도 인간과의 동질성을 찾는다.

그런데 외모도 인간이고 말과 행동 그리고 감정까지 표현하는 인공지능이 있다고 한다면 그를 인간처럼 여기지 않을까.

현대과학은 인간이 영혼을 지닌 숭고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 기억을 지닌 복잡한 구성물로 이루어진 기계로 보며 성격또한 기억이고 기억을 통해 자아정체성도 유지한다고 본다.

저자도 본문에서 이렇게 묻는다.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고 병상에 누운 환자와 병에 걸리기 전에 모든 기억을 저장하고 그 기억을 토대로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는 클론 중에서 누가 더 나은 존재인가?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하는 인공지능은 무난하게 인간계에 입성할 것이고 점차 성장해서 기존인류가 사라진 후 두번째 인류로써 지구의 패권을 이어갈 것이라는 것이 작가가 내다보는 미래의 세계다.

따라서 첫째 인류와 둘째 인류가 공존하는 과도기가 있을텐데 그와 같은 일련의 변화들이 바로 앤히크가 설립한 '이크나인' 같은 네트워크라고 한다.

이크나인에서는 인간과 디지털 클론이 서로 관계를 나눌 수 있고 클론과 클론끼리도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책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작가들이 직접 여행을 다니며 현장에서 경험한 내용들을 기록한 과학서라면 2부는 수집된 정보들을 토대로 쓰여진 철학서 같다.

2부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내용은

'의식'이다. 1부에서는 딥러닝을 통해 복사된 디지털 인격체라면 2부에서 의식을 지닌 존재로서의 도약을 꿈꾸는 내용이다.

단순히 어떤 정보만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지닌 인간 자체를 복제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의식이 있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일인데 이에 대한 연구과정으로 인간의 뇌를 분석한다.

어떤 뇌부위가 의식을 관장하는지를 밝히는 것이 목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 부위를 인공지능에 적용함으로서 기계가 의식을 갖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뇌를 배양하는 연구가 진행중인데 인간의 뇌를 구성하는 신경얼기가 실험실환경에서 기르는데 성공한다면 의식이 발생 할 수도 있다고 작가는 내다 본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1부에서와 달리 2부에서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영원란 삶이 진정으로 행복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죽은자를 디지털 클론으로 재생하는 문제 역시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언제나 행복으로 작용할까 하는 의문도 갖는다. 그리고 거대기업들의 개인정보보유, 삭제되지 않는 기억들에 대해서 '잊을 권리' 등을 거론하며 다소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결국 작가는 두번째 인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사실 나는 영적인 세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곳에서 위로도 받는다.

책을 읽으면서 기존의 나의 가치관이 다소 흔들렸지만 마지막까지 고유한 정체성을 지켜냈다.

만일 또 다시 최신 정보들로 무장한 인공지능이 무차별 공격해 온다면 그때도 견뎌 낼 지 의문이 든다.

나는 영원히 살고 싶지 않다. 그리고 기계인간과 섞이고 싶지도 않다. 유한하지만 고요한 이 세계가 좋다.

하지만 혼란스럽다.

나는 과거의 틀에 갇혀 있는가 아니면 소중한 것을 지키고 있는 걸까.

꼭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가 공존하는 방법은 없을까.....

책은 논리적 구조가 아니라 이야기식으로 서술되어 어려운 내용에 비해 비교적 쉽게 읽혀진다.

고전 명작들의 교훈들을 현대 과학과 접목시키는 대목들은 신선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은유나 풍류적인 배경 설명은 딱딱한 내용을 문학작품처럼 부드럽게 만든다.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첨단 지식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책이다

글밥이 다소 많았지만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 행사에 참여하여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것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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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죽음
호세 코르데이로.데이비드 우드 지음, 박영숙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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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죽음은 시대마다 빼놓을 수 없는 큰 주제였다.

변화가 있다면 과거에는 신의 영역으로만 존재했다가 이제는 과학의 대상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죽음이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달라졌다.

바로 노화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 질병이며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입 버릇처럼 말한다. 생명은 살기위해서 태어났지 죽기위해 태어나지 않았다고.

이 책은 지금까지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해 온 과학의 산물이다. 획기적인 발견은 생식세포나 줄기세포 같은 노화하지 않는 세포를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불행이도 육체의 대부분을 이루는 체세포가 죽으면 같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동안 과학이 밝힌 불멸로 간주될 수 있는 동물들은 히드라, 홍해파리,플라나리아 등이 있는데 과학자들의 최대의관심은 이들이 영생하도록 진화해온 메커니즘을 이해해서 인간에게 적용하는데 있다.

책 내용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은 미국의 사업가인 데이비드 고벨이 제기한 <수명 탈출 속도> 이다. 이것은 기대 수명이 수명이 경과하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연장되는 상황을 말한다고 한다.

현재 선진국에서는 1년을 살 때마다 기대수명을 3개월씩 늘릴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렇게 2029년까지가면 수명 탈출 속도에 도달할 것으로 보는데 이는 우리가 무기한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p161>

이러한 발전을 가속화하는데는 인공지능의 역할이 크다고 한다.

예를들어 생물학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 중의 하나가 단백질 접힘인데 이 접히는 과정에서 건강에 관한 많은 정보가 담긴다고 한다.

그런데 이 비밀을 인공지능이 풀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희망적인 소식에도 불구하고 수명연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노화 찬양주의자들과 노화종식주의자들간의 논쟁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경제적 이득에 대한 쌍방의 주장이다.

노화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수명연장으로 인한 노년기의 쇠약 및 질병과 관련된 지출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노화 종식주의자들은 장수인구가 경제에 더 많은 기여를 한다고 본다. 또한 노화치료는 생각보다 저렴하게 들 것이라는 주장을 과학적인 원리를 이용해 펼친다.

또 한가지 인상적인 부분은 '불안 완충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에게 노화를 거스릴 수 있다는 생각은 최근 일이고 우리의 무의식은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기본신념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공포를 해소시키는 차원에서 여러가지 문화적 신념(종교)이나 자존감을 통해 '불안완충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죽음이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마음에 평화를 준다는 것인데 이런 뿌리깊은경향성을 저자는 드 그레이의 말을 인용 '노화찬성 무아지경'이라고 비꼬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영생하면 행복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쇼펜하워는 '인생은 수지맞는 사업이 아니다' 라고 했는데 만일 그가 살아서 이런 소식을 들었다면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계층간의 갈등이다. <인타임> 이라는 영화를 보면 모든 사람이 25세가 되면 노화가 멈추고 1년간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이 때 사람들은 시간을 사고 팔 수 있게 되는데 가난한 사람은 하루를 겨우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노동으로 사거나 누군가에게 빌려야 하지만 부자들은 몇 세대에 걸쳐 영생을 누린다.

앞으로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약이 나온다면 결국 부자와 가난한자의 운명은 더욱 극단적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영화처럼 수명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지구별의 미래는 암울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노화역전주의자들은 문명이 낳은 초기의 결과물은 부유층의 값비싼 전유물이지만 다음 단계에서는 조금 비싸고 궁극적으로는 거의 무료가 된다고 하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상대적 고통에 대한 문제는 알 수가 없다.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것은 바람직하고 인류가 추구해야 할 목표다. 하지만 지구상에는 아직도 죽는게 사는 것보다 더 나은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 죽음이 주는 숭고함이 있다.

재미있게도 작가는 이러한 독자의 생각을 미리 알았는지 사람들이 노화를 인정하려는 경향성을 대륙이동설과 의학의 여러 예를 들며 오래된 내면화된 가치가 얼마나 바뀌기 어려운가를 책의 한 챕터를 할애하며 피력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뒷 부분에서는 철학적이며 윤리적인 관점에서 노화역전에 대해 변호하고 있고, 페르마의 정리와 핵융합의 역사를 거론하면서 과정이 험란하지만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토해 놓는다.

이 책은 지금까지 노화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축척되어 있는 연구물이기도 하지만 사업적인 전망도 함께 포함되었다.

관점에 따라 이러한 학문적 성과를 부와 연결시키는 작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 시대로 들어가면서 관련된 사업들의 시가가 엄청 솟은 것처럼 노화혁명이 불러온 장수 산업들 역시 엄청난 개발 효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저자 역시 연구에만 매달려온 호세 코르데이로와 스마트폰 선구자인 데이비드 우가 공동지필 했다.

책은 학문적 성과와 함께 경제적인 파급효과도 함께 다루어진다. 투자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이 서평은 출판사 행사로 책을 받아 자율적으로 작성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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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 입문 - 데리다, 들뢰즈, 푸코에서 메이야수, 하먼, 라뤼엘까지 인생을 바꾸는 철학 Philos 시리즈 19
지바 마사야 지음, 김상운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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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은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미루고 있었다.

근대 이전 철학을 좀 더 공부하고 도전해 보겠다는 작은 소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이 책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입문서인데다 작가가 일본철학의 흐름을 바꾸는 탁월한 학자라는 평가가 한 몫 했다.

책은 머릿 말과 부록을 빼면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 3장은 후기구조주의 대표주자인 데리다,들뢰즈,푸코를 다루고 있고 다음 2장은 후기구조주의를 발생시킨 원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마지막 2장은 현대사상의 생성원리 및 후기구조주의 이후 최근 동향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가 말하는 대표학자 세 사람에 대한 평가를 간략하게 본다면 먼저

데리다는 세계를 떠 받치고 있던 이항대립의 구조를 탈구축했고,

이분법적 구조를 해체시켜 본질적인 것보다는 비본질적인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고 말한다.

나와 너의 대립적 관계에서도 나 중심에서 타자 중심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여기에서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철학'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하지만 무조건 타자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따라 (책 표현대로 하자면 )케바케로(케이스 바이 케이스) 대응해야 한다고 한다.

즉 균형을 강조하고 있다.

들뢰즈의 키워드는 '차이' 이지만 작가는 여기에서도 중용적인 측면에 관심을 모은다.

모든 것은 서로 섞여있고 관련성이 있기 때문에 한쪽만을 강조하다보면 또 다른 구조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문제에 관하여 인간관계를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관여 할 필요가 있어도 너무 관여하지 않는 다는 안배가 요구된다'<p76>

역시 균형의 논리에 따라 타자와의 공존을 모색한다.

푸코편에서도 권력에 관한 푸코의 사상을 균형의 논리로 정리한다.

푸코는 인간을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양분하고 지배자에게 나쁜 역할을 맡긴 지난 역사를 반성하며 피지배자에게도 그런 체제를 요구하는 무의식적 욕망이 있음을 간파한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해 현대 권력자들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는 상태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것은 생명정치를 통해 사람들을 통제 한다고 보았다.

양자 갈등에 관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이상하게 너무 깊이 반성하지 말고 그래도 건강을 챙기려면 챙기고 그 다음에 따로 마시러 가고 싶으면 가면 되잖아"<p107>

역시 작가는 데리다와 들뢰즈가 이야기한 것처럼 푸코 역시 어느 쪽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균형의 상태를 추구했다고 평가한다.

4장에서 작가는 현대 사상을 일으킨 원류를 니체, 프로이트,마르크스에서 찾는다.

이들은 그동안 사고(표상)의 세계에 무게 중심을 두었던 가치체계를 현실(사물)에게로 돌림으로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진단한다.

작가는 이 세사람이 현대 지성에 공헌한 대목을 니체는 디오니소스, 프로이트는 무의식, 마르크스는 하부구조에서 찾는다. 이들은 모두 탈질서적인 것으로부터 창의성을 이끌어 냈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이 작업은 인류가 그동안 억압해 온 내면에 숨겨진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었고 이것이 바로 현대 사상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5장은 또 하나의 원류로써 정신분석을 거론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다른 학자들에 비해 정신분석에 많은 비중을 둔다는 점이다. 주로 라깡 사상을 다루고 있다.

6장은 현대 사상의 생성원리를 다루고 있는데 독자들에게 현대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 뿐 만아니라 철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차원에서 의의가 크다.

7장은 후기 구조주의를 잇는 다음 세대의 철학자들을 소개한다.

21세기에 일어난 사변적 실재론의 대표주자인 메이야수는 수학을 이용하여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하며 세계가 갑작스럽게 변화 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작가는 그가 후기 구조주의자들에 대한 역주행을 통해 더 극단적인 상대주의로 나간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어려운 내용이다.

마지막 부록에서는 철학 서적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한다. 철학 입문자들에게 유용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여 진다.

본서는 친절함이 잘 묻어난다. 문장이 권위적이거나 딱딱하지 않는데다 존칭어 사용으로 인해 문장이 한결 다뜻하다.

그리고 어려운 내용 뒤에는 일상의 예를 통해 이해를 돕는다.

작가의 친절한 글쓰기는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잘 나타난다.

권위적인 작가들이 보통 독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스타일대로 무작정 글을 쓰는 바람에 독자들이 길을 잃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독자와 함께 동행 하듯 글을 쓴다. 목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피는 씀씀이가 보인다.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그렇다.

" 예를 조금 생각해 볼까요"

" 이쯤에서 깊이 파고들고 싶은데요"

" 여기서 앞에서 언급한 예로 돌아가 볼까요"<p48>

다음으로 이 책의 독특한 점은 철학을 자기 생활에 적용하여 독자에게 이해를 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들뢰즈의 '생성변화'의 개념을 작가는 '모든 것은 도중이고 시작이나 진정한 끝은 없다' 라고 해석하며 자신의 글쓰기 작업에 응용한다.

즉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무거운 짐을 덜어 버리고 가볍게 도중에 올라탄다는 기분으로 작업에 임함으로써 긍정적 성과들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근대 이전의 철학적 배경이 없어도 읽을 수 있도록 쓰여 졌다.

다만 너무 핵심적인 내용만을 간추리다보니 많은 내용들을 생략할 수 밖에 없고 특히 후기 구조주의 이후의 철학사조 부분은 이해 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부정신학적 X, 혹은 무한히 반복되는 X 등에 관한 내용은 X에 대한 개념설명이 충분치 않아 의미를 명확히 알기 어렵다.

그러매도 불구하고 후기 구조주의 철학의 대략전인 흐름을 간파하기에는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포스트 모던 또는 후기 구조주의 철학에 관심이 있는 입문 학도들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책을 제공받아 자율적인 조건하에 작성한 것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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