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THINKING 현대의 붓다, 유지 크리슈나무르티에 대한 모든 것 최준식의 메타 종교로 가는 마지막 춤 3
최준식 지음 / 주류성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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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THINKING

유지 크리슈나무르티(이하 유지)에 대해서는 몇 년전 작가가 이전에 쓴 <길은 없지만 가야 할 길> 책에서 잠깐 본 적이 있지만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평소 흠모했던 지두크리슈나무르티를 너무 신랄하게 비난했기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메타종교 시리즈 세 권을 내면서 한 권을 유지에게 몽땅 할애 할 정도로 40년간 종교을 연구한 작가를 매료 시켰다는 사실이 다시금 유지에게 관심을 돌리게 했다.

작가는 이번에 유지에 관한 책을 또 다시 출판하게 된 이유로 지난 책에서 유지를 충분히 피알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 책은 유지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고 생애에 대한 내용보다 강렬했던 종교체험을 앞부분에 실었다.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말한대로 종교체험, 2부는 삶의 스타일, 3부는 생애, 4부는 사상에 대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종교체험은 첫날부터 대폭발이 일어나는 일곱째 날까지 상세하게 다룬다.

유지의 강렬한 쿤달리니 체험은 아마 독보적이고 타의 추종을 불허 할 만 하다.

한가지 의문점은 종교체험은 반드시 이런 고통을 수반해야 만 하는가라는 것이다.

뽕을 맞은 것 같은 쾌감이 동반되는 그런 종교체험은 왜 없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2부는 평소 유지가 일상에서 보여준 삶을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유지의 삶은 매우 소탈하고 평범한 했다는 점이다.

당시 유지의 명성과 능력이라면 과거의 구루들처럼 큰 집단을 만들어 왕처럼 대접 받고 살았을 터인데 유지는 그 모든 것을 거부 했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에 대해 어떤 책이나 기록도 남기지 말라고 했고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도 주의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다 필요 없고 돈이나 많이 벌고 사는게 좋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다고 한다.

3부는 유지가 태어나서 죽기까지 성장과정이 담겨져 있다.

주목할만한 내용은 유지가 위대한 성자가 되기까지 그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다.

유지의 어린시절 양육은 외조부모에게 맡겨졌다. 외조부모는 신지학회 회원이었기 때문에 유지는 그곳에서 지두 크리슈나무무르티를 만나게 된다.

14세에서 21세까지는 시바난다에게서 요가와 명상등을 배웠고 시바난다를 떠난 후 유명한 마하르쉬를 찾아간다.

하지만 결국 이들과 모두 결별하고 자신의 길을 간다

4부는 유지의 사상이다. 사상은 단순하다. 제목 그대로 생각을 멈추기다. 생각이 인간 고통의 원초적 요인이기에 생각이 없어지면 생각을 포함하여 '나'라는 존재까지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그런 의미가 나가 아니라 순수한 '나'를 의미한다.

그런데 불교든 유지든 일단 '나' 가 없다면 모든 것은 불가능하다. 깨달았다고 해서 자아감이 완전히 없어지는 않는다. 유지가 깨달았을지라도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분명 '나'라는 자기 존재가 있었을테니 말이다.

작가는 이 문제를 켄웰버의 홀라키 개념으로 풀어낸다. 원자를 감싸고 있는 분자처럼 나를 감싸고 있는 상위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분자속에는 원자가 있듯이 내가 깨달아 나를 초월해도 본래의 나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다시 나에게로 돌아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어쨌든 나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은 외부에서 주어진 것인데 그것은 생각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생각이 사라지면 이원론적 체계가 붕괴되어 나와 세상이 통합되고 삶의 고통도 또한 사라진다는 것이 유지의 사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유지가 깨달음은 없다고 하는 이유도 생각을 멈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이 문제를 생각의 영역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인데 바로 쿤달리니 폭발이다.

쿤달리니 폭발은 잠자고 있는 7개의 차크라를 깨워 생각을 멈출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뇌하수체 자리에 있는 아즈나 차크라가 활성화되면 생각이 활동을 멈춘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있다. 쿤달리니 폭발은 자의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지의 경우도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라 어느날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유지는 자기가 하는 이야기는 다 개가 짖는 소리와 같으니 들을 필요도 없고 깨닫고자 노력하는 일도 다 헛짓거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렇게 깨닫는 일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런 과정을 밟고 싶지는 않다. 깨달음이 주는 혜택에 비해 그 댓가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작가는 독자들의 이런 생각을 미리 파악했는지 책 말미에서 독자들에게 당부한다. 어느정도 수련이 깊지 않은 사람은 이 책을 읽지 말라고. 그리고 이미 읽었다면 잊어버리라는 말도 덧 붙인다.

본 서를 읽고 난 후 떠오르는 유지에 대한 이미지는 헐벗은 진실 같다.

솔직하고 투명한 것은 좋지만 너무 속이 드려다 보이면 보는 사람이 좀 불편하지 않을까.

때로는 인간적인 실수와 허물을 가리는 것도 매너인데 이런 것들을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유지가 너무 부정적인 것도 꺼려진다. 그렇지않아도 힘든 세상인데 이왕이면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작가는 바닥을쳐야 위로 올라간다고 부정의 극단은 긍정의 시작이라고 해명은 하고 있지만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이 책의 또 한가지 특성은 서민적인 글 스타일이다. 문장들이 투박하고 싸구려 티가 난다.

교수가 쓴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품위하고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섹스 혹은 성행위를 '박는다'라고 서슴치 않고 표현하고 있는데 유지가 했던 말에 뉘앙스를 살리려는 뜻도 있지만 유지의 삶의 스타일에 맞춰서 의도적으로 털털하게 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무의식적으로 유지와 거리를 두었던 것 같다.

작가가 혀를 내두르며 유지를 치켜 세우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문제를 삼으려는내 태도가 느껴졌다.

아직도 내가 유지에 대한 앙금을 가지고 있거나 그의 깨달음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깨달음을 얻었지만 모든 권위와 명예를 부정하고 평범한 인간으로 자유롭게 살았던 유지의 삶은 경탄할 만 하다.

그리고 다른 얘긴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로댕의 동상 <생각하는 사람> 을 <생각을 멈춘 사람> 으로 바꾸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책을 제공받아 자유로운 환경에서 작성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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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7-23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지 않은 도서같은데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