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세계
톰 스웨터리치 지음, 장호연 옮김 / 허블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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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양자역학을 통해 보면 입자는 파동성과 입자성을 동시에 가지므로서 평행우주와 다중우주의 가능성을 설명할 수 있다. 증명되지 않은, 그러나 기정사실화된 이론을 이야기로 보여준다면 바로 이 소설이다.

SF로 절묘하게 구현하여, 타임머신이라는 개념이 낡아버린 순간이었다. 오류 가득한 상상을, 논리적으로 가능한 세계로 톺아보는 맛이 있다.

정해져버린 과거로의 여행은 거의 불가하다. 시공간 마디와 닫힌 시간꼴 곡선이라고 하는 드문 순간에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단다. 미래 또한 오로지 가능한 미래로만 여행할 수 있단다. 이미 결정된 과거는 바뀔 수 없다는 명료함이 맘에 든다.
‘백투더 퓨처‘의 과거 버전이 보여준 엉망이 되어버리는 순간을 면할 수 있다.
전함을 타고 웜홀을 이용해서 몇 개월씩 IFT를 여행하는 동안 내가 떠나온 세상은 정지하지만, 시간 속에 존재한 나는 자꾸 나이를 먹어 지금은 어머니의 딸이라기 보다는 동생뻘로 느껴진다.
시간이 사람마다 다르게 흐른다는 아인슈타인의 이론도 성립된다.


‘여기서 ‘인정되지 않는(Inadmisible)‘이라는 수식이 붙는 건 미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함이 목격 하는 미래 세계란 현재 조건에 기인하는 가능세계이며, 달리 말하면 사실상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세계에 불과하다.`

‘내가 해당 미래에 도착함으로써 존재하게 된 삶, 내가 떠나고 나면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끝나버리는 삶이다. 그녀는 아주 작은 존재 가능성에 기댄, 마치 유령 같은 존재였다.‘


이 가능성에 기대어, 의지하여 떠나고,
‘혼자서만 미래에 존재한다는 두려움에 결코 적응할 수 없었다. 나는 꿈의 장막 안으로 뚫고 들어간 한 조각의 현실이었다‘
‘오로지 관찰자만의 현실이란 얘기였다. 객관적인 현실이 될 수 없다. 오직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만이 현실이다. 굳건한 대지다.‘
로 돌아오는 것이다.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현재에 충실하라. 현재에 성실한 삶이 미래를 이끌어낸다는 인연설과도 닿는다.
다음 올 새로운 세상은 영적 세상이라는데 많은 이야기들이 자꾸 거기에 닿아지는 것 같다. 진리여서? 이 수많은 오류를 거쳤으니 닿으리라?


‘그러나 또 다시, 맞춰졌다고 생각했던 조각들이 흩어졌다. 거대한 설계 따위는,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코트니의 죽음은 지극히 우발적이고 평범한 것에 불과했고,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한 사악한 행위였을 뿐이다. 설계 따위는 없다. 우주는 잔혹한 계획을 짜는 존재가 아니다. 우주는 광대하고, 우리의 욕망에 아무 관심도 없다.‘


저 무한하고 아득한 우주에 가장 적합한 설명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바탕 꿈이니 모두가 공이다. 모든 것을 창조하는 입자가 만들어낸 생명은 그 자체로 완벽하니 탐진치를 버린 그 자리가 깨달음의 자리라는 오래된 가르침이 여기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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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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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뉴암스텔담‘을 보면서 책을 읽으니 주변이 의사와 질병으로 가득하다.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혜택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 지는 팬데믹으로 드러난 상태지만 의료 행위를 제외한 심리적 서비스는 아직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엄마가 돌아가신다는 판정을 받고 응급실에 누워 계신 일주일 동안 엄마를 집에 모셨음 했다.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한 상태에서, 돌아가실 줄 알면서 면회 시간에만 잠깐 뵐 수 있다는 게 무슨 일일까 싶었다. 더 지켜보며 곁에 있어도 되는 당신의 마지막을 난 안타까움으로만 채웠다.

입원 전에 병원에서 의사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는, 혹은 아프다는 것의 실제가 이렇게 여러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 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환자가 원하는 건 의사가 숨기는 과학지식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찾아야 하는 실존적 진정성이다. 통계를 지나치게 파고드는 건
소금물로 갈증을 해결하려는 것과 같다. 죽음을 정
면으로 마주하고 고뇌에 빠지는 일은 생존가능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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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단의 방문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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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감동시키는 음악 세계는 그 노래를 잉태하는 산고가 만만찮은 탓인지 맑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 안엔 마약과 섹스에 취한 프로듀서, 그 망할 세상에서 기회를 얻으려는 십대들의 방향없는 삶, 책임감 없는 어른들에게 버림받았으면서도 그들에게 인정받으려 안간힘을 쓰는 안쓰러운 자녀들이 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은 열린 콘서트장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이런 환경, 깡패같은 시간 속에서도 잘 살아남은 이들에게 박수를. 이렇게 살아도 제 길에 서게 하는 삶에 경이를.


‘ ˝물론이지.˝ 목소리만 들으면 아닌 것 같지만 나는 그에게서 두려움의 냄새를 맡았다. 식초. 두려움은 식초와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 사샤의 작은 방에 앉아 있었던 때를, 마침내 해가 창문 한가운데까지 기울어 그녀가 매달아둔 철사 원형 고리에 담기는 것을 본 순간 불현듯 맛보았던 놀라움과 기쁨을.
지금 그의 조카딸을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오렌지빛으로 물든 그녀의 머리와 얼굴은 타오르는 듯했다.
˝봤죠?˝ 사샤가 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제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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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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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란 나라는 멕카시의 소설속에선 흙먼지로 시야가 가려진 사람마저 황량해지는 땅이고, 영화 코코에서는 죽음이 생과 공존하는 땅이며, 뉴스 속에선 마약과 미국 불법 이민으로 공포스럽고 흉흉하다.
사람 사는 모습 다 같다는 버전에 요란스러움과 별남을 더하면 이들의 삶에 닿아질까? 사랑 또한 넘쳐서.
어머니의 장례식 다음날 암으로 죽어가는 빅 엔젤의 마지막 생일 잔치를 위해 일가친척을 붙드는데, 여느 가정처럼 사연이 부딪쳐 남아야 하는 사람들은 속내가 불편하다.


‘ ˝어머니, 제가 어머니를 위해 흘릴 눈물이 없다면 용서하세요. 저도 이제 막판에 이르렀거든요. 이해하실 거라 믿어요.˝ ‘


‘그는 일가친척 안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항상 말이다. 그 영혼은 식물을 심고 아침을 먹는 행위 속에 존재한다고 데이브는 말했다. 이건 싸잡아 다 거짓말이라고 빅 엔젤은 결론을 내렸다.
˝하느님 제기랄.˝ ‘


‘˝일단 해봐.감사는 기도와 같은 거야. 기도란 하면 할수록 쓸모가 있어.˝
˝망고나 파파야를 좋아하니까 그게 감사하다는 것도 되나?˝
˝다 네가 정하는 거라니까,엔젤. 좋아하는 마음이 진심이야? 없으면 안 된단 생각이 드냐?˝
˝물론이지.˝
˝음, 그럼 그것도 감사지. 그리고 생각해봐. 내 기분이 좋아진다면 좀 멍청한 짓을 해도 되는 거 아니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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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튤립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8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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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총사와 암굴왕이란 이름으로 어린이 세계 명작동화집에 끼어있던 몬테크리스토백작을 좋아 했었다. 기사, 사랑, 의리, 배신 이런 소재들이 어린 마음에 꽤나 낭만적이었나 보다. 왜 그리 좋아 했는지 다시 한 번 읽어 봐야지 싶었는데 아주 희극적인 배우를 연상시키는 표지에 손에 닿았다.

이름만으론 이렇게 낭만적일 수 없다. 꽃으로 최초의 버블 사건을 만들어냈던 바로 그 검은 튤립이라니, 그 당시의 네델란드는 어땠을까 궁금했다. 스리랑카가 원산지인 튤란이란 꽃이 터키에서 유럽으로 이동하며 튤립이란 이름이 붙여진다. 이 꽃은 바이러스에 의해 수많은 변종이 생기면서 이에 반한 네델란드의 여유 자금이 몰려 화혜가들은 너도나도 튤립재배에 나선다. 이에 맞춰 검은 튤립을 재배하는 자에게 10만 플로린이라는 상금을 하를럼 화훼협회가 내걸자 그 열기는 달아오른다. 주식의 성질은 변함이 없다.


뒤마는 튤립에 얽힌 이야기를 하기 전에 역사적 사건을 끌어와 긴장감을 부여한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방법을 이 입담 좋은 작가는 알고 있다. 도덕적이고 옳바른, 매력적인 이들이 당하는 핍박은 가슴이 아리다.
제방감독관이며 전 시장인 코르넬리우스 드 비트와 총리대신 얀 드 비트가 스타트 하우더 (황제를 대신해서 각 주를 통치하는 총독)제를 영구 칙령을 통해 폐지하지만 시민들은
네델란드의 황금시대가 루이14세에 의해 무너지는 위기상황에서, 방종 없는 자유와 넘침 없는 번영을 사랑한 두 형제를 혐오하며 다시 왕정을 불러 들인다. 왕정이 회복되면 네델란드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그들이 환호한 이는 얄궂게도 얀 드 비트의 제자였던 오렌지 공 윌리엄이다. ㅡ네델란드 축구 대표단의 오렌지색 유니폼의 유래가 이 집안이란다ㅡ역사는 공화정까지는 일단 쉬어가야 한다는 듯 이 ‘과묵한 윌리엄‘의 손에 왕정을 쥐어준다.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서술한다.ㅡ 어떤 역사적 순간에 위대한 행위를 수행할 큰 인물이 신의 손이 미치는 곳에 있는 경우란 극히 드물고, 그런 까닭에 신의 섭리에 따른 조합이 우연처럼 이루어지면 역사는 지체없이 그 선택받은 인물의 이름을 기록하여 후세로 하여금 경애하도록 하는 것이다.ㅡ

이런 순간에 희생양을 선택하기가 얼마나 쉬운 지에 대해서는 ㅡ반면에 악마가 사람의 일에 끼어들어 어떤 존재를 파멸시키고 제국을 전복하려 들 때는, 귀에 다대고 한마디만 속삭이면 즉각적으로 일에 착수하는 불쌍한 존재가 언제든지 악마의 손아래 대기하고 있기 마련이다ㅡ 라고 말한다. 언론이 끼어드는 순간.


군중은 잔인해서 이미 그들 손에 목숨이 끊긴 이들을 굳이 사형대 위에 세우며 환호한다. 돌아보면 잔인함에 치를 떨텐데도 무리 속에선 이렇게 당당하다. ㅡ사람들 가운데는 덜 적대적인 의도를 품은 사람들 또한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들의 흥미를 끄는 것은 언제나 군중을 사로잡으며 그들의 본능적인 오만을 만족시켜 주는 광경, 즉 오랫동안 꼿꼿하게 서 있던 사람이 먼지 속에 나뒹구는 광경을 바라보는 것이다.ㅡ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인간의 못됨이다.


이런 잔혹함을 자신의 이득에 이용하는 자가 악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 이들은 권력을 잡고 죽임을 당한 자를 추모하고 그들의 고결함을 얘기한다. 애석하지만 역사를 위해 그들은 그렇게 소모되어야 했다는 듯이. ㅡ 코르넬리우스가 세례반 위에서 당신에게 맡긴 이름과, 얀이 보여준 우정에 값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애쓰시오. 두 사람의 공덕을 길이 간직하도록 하시오. 이성을 잃은 혼란한 시기에 잘못 판결되고 잘못 단죄된 비트 형제는 위대한 시민이었고, 오늘날 홀란트는 그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소ㅡ 그들이 도망갈 모든 성문의 열쇠를 감추었던, 시민들이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지켜보고 역사가 자기 편이라 확신하며 스타트하우더의 자리에 오른 자는 이렇게 사과한다.


자신의 외모처럼 입담좋게 술술 풀어놓은 이야기 속에 음모, 배신, 계략 그리고 사랑까지 줄줄이 엮고 있다. 거기에 강인하고 정의로운 인간상까지.
뒤마의 문체는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단 말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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