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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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른 시절에도, 아임에프 시절에도 이리저리 맡기고 맡아지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거나 자세한 설명이나 따스한 포옹도 없이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떠밀렸던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도 눈치를 보느라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 어른들도 아이라고 관대해지는 것은 아니어서 서로 참 못 할 일이다 싶어지는 일들이었다.

아이들이 세상의 이기심을 터득하기 전에 배려심을 배울 수 있다면 잘 성장할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려니 싶었다.

맑은 수채화 한 폭이란 표현 그대로.


‘아빠가 나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는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엄마는 할 일이 산더미다. 우리들, 버터만들기, 저녁식사, 씻기고 깨워서 성당나 학교에 갈 채비시키기, 송아지 이유식 먹이기, 밭을 갈고 일꾼 부르기, 돈 아껴쓰기, 알람 맞추기. 하지만 이 집은 다르다. 여기에는 여유가, 생각할 시간이 있다. 어쩌면 여윳돈도 있을지 모른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나는 작은 주택에 사는 아주머니를, 그 여자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말했는지를 생각하다가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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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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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글을 다 읽고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 도입부분이 전체 서사의 일부로 느껴지고 그 감정이 전체 글의 특징을 드러낸다고 느낄 수 있어야 좋은 이야기라고 했단다. 맞지.

얇은 책 한 권의 여운이 작가의 바램처럼 길다. 시처럼 소리내어 읽고 작가가 원한 대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다.
마음에 걸리적거리지만 뭐라 딱 끄집어내지 못 하는 깔끄러운 감정을 이렇게 그려줄 수도 있구나 싶다. 소리없이 쌓이는 눈 같다.
크리스마스 연휴로 배달 일이 많아진 석탄 야적장을 가진 펄롱이 일하며 마주하는 이웃들을 대할 때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통해 편치않은 마음을 페스츄리처럼 쌓아 올린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이 늘 삶에서 쌓여 봇물을 이르곤 하지. 자꾸 맘에 걸리는 그것이 그리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1980년대의 아일랜드공화국은 우리의 60년대 같았나 보다. 연탄집 풍경이 눈에 선하다. 나르다 깨어져버린 연탄이 문뒤편에 쌓여 있기 일쑤고 이른 아침에 간혹 연탄 한 장을 새끼줄에 꽂아 분주히 걸음을 옮기는 이를 보며 짠하던 마음이나
그 심부름길에 무게를 못 이겨 박살내버린 아이의 당황스런 표정도 떠오른다.
감자기근만 있었는 줄 알았는데 그후로 오랫동안 가슴 아픈 시절을 살아 지금의 그 나라인가 보다. 정부와 손 잡은 수녀원의 냉혹함이라니. 종교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의 횡포는 전후 맥락도 없이 그저 고해성사로 넘겨져 버리는걸까?

˝그 수녀들이 안 껴 있는 데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필롱이 뒤로 물러서며 미시즈 케호를 마주 보았다.˝그 사람들이 갖는 힘은 딱 우리가 주는 만큼 아닌가요?˝

펄롱은 자신과 엄마를 품어주었던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그것들이 한데 합쳐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다 드러내놓은 의미들의 여운이 참 맑고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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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
루 버니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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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네이먼드 챈들러의 작품 맛을 풍기는 작가를 만났다. 아주 오랜만에 건조한 바람내를 맡은 기분인데 훨씬 깔끔하다. ‘세월이 지났으니 이 정도는 쾐찮지?‘ 라는 듯.

과거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는 사람들.

아르바이트를 하던 동네 영화관에서 재치있고 반항적이고 다른 십대들보다 어른인 척 하는 오말리를 좋아하던 와이엇은 어느 날 영화관에 든 도둑들이 강도로 변하면서 일으킨 사건에서 혼자 살아 남는다. 피웅덩이에서 죽은 줄만 알고 누워있다 경찰들에 의해 발견 되었을 때도 총성에 귀가 먹먹한 상태였던 와이엇은 경찰관의 운이 좋았다는 말을 여전히 기억하지만 멀리 떠나서 성장하였음에도 ‘왜 나만? 왜 나를‘ 이란 물음을 해결하지 못 해 현실과 유리된 기분으로 살고 있는데 사건 하나가 오클라호머시티 바로 그 도시로 그를 불러 들인다. 가는 곳마다 익숙한 장소는 예전의 기억을 불러내고 기억은 하나하나 새로운 사실로 드러난다.

오클라호머시티에 사는 줄리에나는 열두살 때 무척이나 따르던 열일곱의 언니와 박람회장에 갔다가 십오분만에 돌아온다던 언니가 실종되어 버린 사건을 겪은 후 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자신을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느라 현재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 한다.

같은 장소라는 외엔 이들의 접점은 없다. 짧은 토네이도가 갑자기 생겼다 사라져버린 날의 기억을 서로 일깨웠을 뿐이다.

이 소설의 장점은 이랬을까 저랬을까 하는 여지를 주지않고 끝까지 깔끔하게 마무리지어 봉합해준다는 것이다. 때론 열린 결말보다 속이 시끄럽지 않아 좋다.


‘그럼에도 줄리애나는 매일같이 새로운 게시물을 확인했다. 어디서 뭘 찾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계속 주시해야만 했다. 절대로 멈춰서는 안 된다. 그것이 적어도 그 문제에 있어 지금 현재 줄리애나의 위치이다.‘


‘과거에는 힘이 있다. 과거는 조충(다른 조류와 부딪쳐 격랑을 일으키는 조류) 이다. 그게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에 분명 뇌가 있다면, 애초에 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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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 카를로 로벨리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양자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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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 아인슈타인도, 파인만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했던 양자론은 21세기 과학을 이끌고 있다. 슈레딩거의 깨어있는 고양이와 잠자는 고양이, 이중슬릿 실험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내가 이 책을 오디오북으로 듣자마자 구입하게 된 것은 과학보다는 ‘알아차림‘이라는 불교 교리와 너무 닮았다는, 그 말을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 컸다.

재미지다. 양자역학을 이렇게 쉽고 재밌게 말할 수 있다니, 이 책을 쓴 이가 과학자라니 순간 부러움이 가득해진다. 아는 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음은 완벽하지 않은가!

모든 진리는 단순하게도 하나이고, 그 모두는 통한다는 것을 본다. 과학, 종교, 철학이 모두 하나로 통한다는. 진리라니 혹은 진실이라는.
결국 인간은 양자물리학에 이르러 알아야 할 것을 다 안 것인지 모른다.

양자물리학에서 사물은 맥락 속에서만 존재하며 그것은 사소한 것이든 단 한 번의 작용을 받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실재한다고 말하며, 모든 것은 관계의 관점에서 생각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불교 경전에서도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만 생기고 없어진다 한다. 사물은 자립적 존재가 아니며 어떤 것 덕분에, 다른 것의 결과로서, 다른 것과 관련하여, 다른 것의 관계에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비어있다‘ 고 한다.

입자셍과 파동성, 공 사상.

난 당분간 이 즈음에서 헤맬 것 같다. 내가 알게 된 것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 지를 여전히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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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창비세계문학 34
찰스 디킨스 지음, 성은애 옮김 / 창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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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이야기. 개인적으로 혁명을 전한다면 이런 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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