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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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다 읽고 나서야 그 실체가 완연히 드러나는 책이 있다, 내게는. 커트 보네거트의 책도 그런 경우가 되기 십상인데 늘 그렇듯 그 절묘한 문명비판에 뒤늦게 감탄하곤 한다. 살아 21C를 보았다면 더 극적이고 더 아픈 글을 썼으리라.

‘인간은 어땠는가. 자기네 활동을 되도록 많이 기계에게 넘겨주려 했던 1백만년 전의 그 불가사의한 열정은 결국 그 큰 뇌가 전혀 쓸모없음을 인정하는 인간들의 자백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옛적에 숱하게 자멸적 과오를 저지른 국가를 생각해보건대, 그들 나라는 상층에 에르난도 크루즈 같은 사람은 없이 아돌프 폰 클라이스트 같은 사람만 두고 버텨나가려 했다. 그런 나라에서 살아남은 주민들이 자기들이 초래한 폐허에서 기어나왔을 때는 이미 때가 늦기 일쑤였다. 그들은 스스로 불러들인 그 모든 고통을 겪고 있는 동안 최상층에는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체 무엇 때문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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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중석 스릴러 클럽 3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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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비젼 앞에서 땅콩쨈을 떠먹는 영화를 보며 목이 칼칼해지 듯 해서 빵에라도 발라 먹지 싶었는데, 책 속에도 그런 문장이 보였다. 이럴 때 먹는 것은 문화란 생각이 완연해진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진실은 확실히 향기부터 다르다.‘

‘멀리서는 그들을 미워하기 쉽다......(중략) 게이나 흑인이나 유대인이나 아랍인들을 증오하기는 쉬웠다. 하지만 개인을 증오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뉴어크가 바로 그랬다. 군중으로는 증오스러워도 이웃과 상인과 시민들에게는 항상 곁에서 챙겨주고 응원해주고 싶은 매력이 있었다.‘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넘겼다. 이렇게 더운 날,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맥주 첫모금은 막 뜯은 땅콩버터에 처음으로 손가락을 찔러넣는 듯한 짜릿함을 선사한다. 나는 신의 꿀이라 부르는 맥주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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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라, 사랑할 시간이 없다 - 외롭고 서툰 이들을 위한 치유성장 에세이
신현림 지음 / 예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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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리곤 한다. 이 정성이 버거워져서. 사람으로 사는 일이 이래서 힘들다.


‘사랑은 식탁이나 소파 같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소한 자리에서 시작된다. 사랑은 거창한 곳에서 피어나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의 섬세한 배려다. 우리는 깊이 사랑 받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 사랑받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상대가 뭘 원하는 지 세심해져야 한다. 언제 가만히 있고 행할 지 살피고, 화날 일도 지그시 참고, 미소 짓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랑받는 법을 꾸준히 연습하고 훈련하는 수 밖에 없다.‘

‘인생은 복잡하나, 진실은 아주 단순하다. 제일 먼저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그가 힘들어 하면 곁에 있어 주고, 일부러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시간을 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보다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은 인생을 바꿔주는 최고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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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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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츰차츰 거장 뒤마의 뛰어난 마력에 이끌린 나머지 나는 손님의 존재는 까맣게 잊은 채 끊임없이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했다......나의 문장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명확하고 구체적이고 밀도도 더 높아져갔다. 나는 되도록 첫 문장의 간결한 어조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설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소설의 구조, 복수의 주제를 얽어놓은 짜임새, 확고하고 교묘하면서도 대담한 솜씨로 결론을 끌어내는 복선에 이르기까지 소설가의 기교를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어 내심 몹시 놀랐다. 그것은 유쾌한 놀라움이었다. 그것은 멋진 등걸, 무성한 나뭇가지, 굵직한 뿌리를 드러낸 채 땅에 누운 뿌리 뽑힌 거목을 보는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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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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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왜 일어나는 지 이해하는 일이란 게 가능한 일 일리가 없다. 4년간의 무사함 끝에,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는 순간에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쓸데없이 삶이 망가진 에쿠아르가 선택한 삶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잘 살아낸 거라고 설득한다.
전쟁의 상흔과 사람들의 탐욕을 유쾌하게. 그래서 더 슬프게 풀어냈다.

‘전쟁 내내 모든 이가 그랬듯 에두아르도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뿐이었겠지. 이제 전쟁이 끝나고 이렇게 살아 있는데, 이제는 사라져 버릴 생각만 하고 있구나. 이제 살아남은 이들마저 죽어버리는 것 말고는 다른 희망이 없으니, 세상에 이게 무슨 낭비냐고.....!‘

‘라부르댕은 멍청함 덕분에 출세한 인물이었다. 그의 멍청함은 예외적인 끈질김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 끈질김은 정치의 영역에선 이론의 여지없이 미덕이었지만, 그의 끈질김은 의견을 바꿀 능력이 없음과 상상력의 전무함의 결과일 뿐이었다. 이 어리석음은 편리한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한마디로 보잘 것 없고, 거의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라부르댕은 어느 자리에나 박아 놓을 수 있는 인간, 무슨 일을 시켜도 마소처럼 충성을 다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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