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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 - 문명의 대전환, 대한민국 대표 석학 6인이 신인류의 미래를 말한다 ㅣ 코로나 사피엔스
최재천 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6월
평점 :
그들은?
“플로리다만 하루 만 오천 명이다가 이제 잠잠해져서 이삼천 명 됐어. 다행이지 뭐.”
오랜 친구가 미국에 살고 있다. 해마다 내 생일이 되면 SNS 메시지와 선물 쿠폰을 보낸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멀리 떨어진 터라 보지는 못하고 일 년에 몇 번 메시지를 주고받으면 으레 집안 어른들의 안부나 아이들의 안부, 친구들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코로나 때문이다.
플로리다만 하루 만 오천 명 확진자가 나왔는데, 잠잠해져서 이삼천 명이라고 했다.
“여기는 몇 달 만에 100명 넘었다고 난리다. 얼른 귀국해라.!”
내 생일이 9월 말, 광복절 집회와 추석 이후 사그라들던 확진자가 100명 대로 진입하던 9월 말이었다. 2차 대유행에 대한 경고가 연일 뉴스에 보도되었고, 다시금 국민들의 협조를 구한다는 당부도 이어지던 때였다. 친구와의 메시지 대화는 한동안 이어졌다.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상황을 들어보니 미국 내 확진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정부나 언론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하루에 수만 명씩 확진자가 나와도 거리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는 것이었다.
“그렇죠. 우리가 미국을 총체적으로 따라왔는데요. 문제는 미국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는 데 있어요.” (p.137, 김누리 교수)
미국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다. 라는 사실은 이제 명확해 졌다. 코로나 초기, 동아시아 일부 국가의 전염병 정도로 보도되고 인식되었다. 북미와 유럽에 코로나가 닿기 전, 아시아인들에 대한 폭력적인 인종차별이 보도되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고강도 제한 조처에 항의하는 과격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를 어제 접했다. 야간 통행금지, 식당·주점 영업 시간 단축 등 당국의 제한 조처에 반대한다는 이유다. 미국은 여전히 하루에 수만 명이 확진되고 있는데, 얼마 전 끝난 메이저리그 결승전인 월드시리즈에서는 관중이 입장하여 경기를 관람했다. 중계를 보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육성 응원을 하는 관중이 많았다. 더군다나, 우승을 차지한 팀의 선수 중 하나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음에도 우승 세리머니를 펼친 것이 뉴스가 되었다. 당연히 마스크 따위는 착용하지 않은 채로. 프랑스는 코로나 환자로 인해 더 이상 중환자 병동을 운영할 수 없다고 한다. 이른바 선진국들이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특히, 미국은 완전한 시장 경제주의에 따른 의료체계로 인해 돈 없는 확진자들은 방치된 실정이다. 아무런 조치도,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우리의 본보기였다.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 전체가 미국 따라가기에 집중했다. 미국과 더불어 이른바 선진국으로 일컬어지던 서유럽의 국가들의 그것보다 더 맹목적으로 미국만을 숭상했다. 한국전쟁 이후 60여 년 동안의 ‘미국 신화’가 깨지고 있다.
“어? 우리는 하고 있는데, 쟤들은 왜 못하지?”
우리는?
“이렇게 불안할 때는 제대로 사실을 공개하는 게 가장 좋은 겁니다. 한국 정부나 한국시스템이 잘한 게 그거고요. 사실을 알게 되니까 ‘아, 감염 위험은 높겠구나. 그런데 치명률은 이 정도겠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에너지와 사회, 혹은 집단 에너지를 좋은 곳에 쓰는 거죠.” (p.170, 김경일 교수)
얼마 전, 미국에 유학을 가 있다가 귀국하게 된 유학생의 유튜브 채널을 본 적이 있다. 귀국 직후 검사를 받고 격리해제가 되기까지의 일상을 담은 내용이었다. 입국 직후부터 본가인 경남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결론은 “우리나라 잘한다!”였다. 신속한 체계와 빈틈없는 관리를 경험한 유학생은 K 방역의 힘을 실제로 경험해보니 왜 해외에서 K 방역을 그토록 극찬하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실제로 경험하지도 않았지만, 유학생의 채널을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해외의 일부와 한국의 보수 언론·정당·극우단체에서는 K 방역의 신속한 체계가 개인의 인권을 무시한 감시로 둔갑하거나 빈틈없는 관리가 정부의 무시무시한 통제라고 왜곡되기는 하지만 동의하는 사람은 오직, 자신들뿐이다.
김경일 교수의 지적대로 감추지 않고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쉬워지니까 오히려 불안이 줄어들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을 삼가며 사회적 거리 두기만 잘 유지해 달라는 정부와 방역 당국의 호소에 응답하니, 대유행을 피할 수 있었다. 올해 내내 정부와 방역 당국, 국민 간에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유지되는 경험은 대단한 것이었다. 정확하게 공개하고 공개된 정보를 신뢰하며 불편을 조금씩 나눠 감내하다 보니 미국이나 유럽과는 다른 결과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들은 우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늘 따라가려 하고 우러러만 보던 그들이 말이다.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시장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디지털 스토어를 차리는 법을 잘 몰라서 준비를 못 한다면, 다시 또 코로나19 같은 위기가 왔을 때 몇 달씩 매출이 하나도 없는 시간을 감수해야 합니다.” (p.79, 최재붕 교수)
“소상공인을 보호한다고 자꾸 규제를 만들고, 기존 방식의 지원 사업에 너무 돈을 쓰지 말고요. 이들이 ‘디지털 스토어’를 차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부 차원의 사업을 시작하자는 겁니다. 어렵겠지만 서로 도와서 가야 합니다.” (p.80, 최재붕 교수)
직장 동료 지인 중 간판업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호황도 요즘과 같은 호황이 없단다. 폐업하거나 업종 변경을 하는 가게가 많아 코로나 이전보다 매출이 2배 이상 올랐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씁쓸했다. 내 친구 중 하나도 운영하던 반찬가게를 닫았다. 자영업 비중이 OECD 최상위권인 우리 현실에 최재붕 교수의 지적은 정확하다. 급한 불을 끄는 지원금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팬더믹이나 전세계적인 어려움이 왔을 때도 버틸 수 있는 조치. ‘디지털 스토어’를 차리고 그것에 기반해 비대면으로 가게를 운영한 자영업자들은 이번 코로나 위기에도 타격이 작았다고 한다. 자영업자 중 상당수가 퇴직 이후 모아둔 목돈으로 자영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으므로 더욱 ‘디지털 스토어’구축과 같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함께 해왔던 것처럼 정부와 방역 당국, 국민들이 박자를 맞춘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는?
“산업의 지구화, 생활의 도시화, 가치의 금융화, 환경의 시장화, 모든 것이 무너졌다.” (p.103, 홍기빈 전환사회연구소 공동대표)
사회와 세계를 지탱해 오던 모든 기반과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데 공감한다. 우리는 과도하게 연결되고 한곳으로 몰렸으며, 자본을 잠식하는 금융에만 기댔고 오로지 돈의 논리로 자연과 환경을 평가했다. 무한욕망을 연료로 한 인간의 폭주 기관차를 급정거시켰다. 최소한 탈선은 막아야 한다. 계속 멈춰 있을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연료를 조금 덜어내거나 윗부분 연료만 살짝 교체해 눈속임하고 출발할 수는 없다. 대충 넘어가려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아직, 인류와 문명은 제대로 원인조차 발견하지 못했고 백신은 기약조차 없기 때문이다.
“홍기빈 소장은 이토록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가 미래를 대하는 방식은 ‘결단’이라 말한다. 어떤 가치를 중시할 것인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가.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던 대안적 질서와 체제를 제대로 구현할 기회인지도 모른다.” (p.103, 홍기빈 전환사회연구소 공동대표)
분명한 것은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시스템이 무너졌는데, 그 시스템을 유지하던 매뉴얼을 그대로 쓴다면 호환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책에서 각 분야 전문가가 홍기빈 대표가 말하는 대안적 질서와 체제를 각자 제시한다.
생태적 전환
“진짜 자연을 건드리지 않는 게 더 좋다는 계산을 이제 드디어 사람들이 할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이 생긴 겁니다. 몇 년마다 한 번씩 이런 대재앙에 휘둘릴 수는 없어요. 생태적 전환만이 살 길이에요.” (p.41, 최재천 교수)
생태적 전환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와 에너지 위기 모두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놔두지 않은 인간의 욕심이 원인이다. 야생동물과 인간의 거리는 멀어야 한다. 반려동물만큼 가까이 있다면 이미 야생동물이 아니다.
“최재천 교수는 생태백신, 행동백신이 궁극적인 답이라 말한다. 지금부터라도 자연과 절제된 접촉을 하고, 생태를 경제 활동의 중심에 두는 생태중심적 기업이 대거 등장해야 한다는 것” (p.19, 최재천 교수)
행동백신은 이제 한국 국민에게는 익숙하다. 굳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행동한다. 생태백신은 못 들어본 단어라 그렇지 상식이다. 최대한 생태는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는 것. 일부러 생태 안으로 들어가 교감하려 한다거나 인간의 흔적을 남기려는 수작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도 생태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자연과 생태를 굳이 보호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 이명박 정권 시절 멀쩡한 강을 파헤쳐 놓고 생태의 순리에 역행하는 보를 만든 결과 녹조라떼가 창궐하고 강과 습지, 그 주변의 생태가 완전히 망가졌던 것을 우리는 분명히 봤다. 보의 수문만 열어도 주변의 생태가 복원되는 것도 분명히 봤다. 인류는 더 이상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복지를 위한 성장
“목표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 그리고 복지다, 그걸 위해서 성장하는 것일 뿐이다. 이거로군요. 그런 식의 패러다임 전환, 우리 국민들의 인식 전환이 가능할까요?”(p.64, 장하준 교수)
늘 성장은 복지에 우선했다. 성장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복지를 하느냐? 낙수효과라고 모르냐? 대기업들이 잘 돼야 수출이 잘 되고, 수출이 잘 돼야 경기가 살아나며, 경기가 살아나야 없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일단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우선이다. 라는 논리는 수십 년 동안 이어졌다. 복지 복지 하면 좌파 빨갱이 소리를 들었다. 무한히 성장해야 미국 같은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성장을 하고 선진국이 되어야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완전히 책임질 수 있다고 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국민의 안전과 건강, 복지를 위해서 성장하는 것이다. 무한한 발전을 이룬 인류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을 전 인류가 똑똑히 봤다. 손 쓸 겨를조차 없이 무참히 무너졌다.
“가능하게 해야죠. 이번에 안 하면 언제 하겠습니까, 이번 같은 일을 겪고도 바꾸지 않는다면 그건 안 되겠죠.” (p.64, 장하준 교수)
가능할까? 라는 의문은 배부른 소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팬더믹이 도무지 언제쯤 종식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안 하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요구되는 이유다.
전 사회에 걸친 변화는 단기간에 되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코로나 19와 같은 바이러스는 이제 인류의 곁에서 함께 미래를 이어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서둘러봐야 좋을 것이 없다. 잘 대처하고 미리 예방하며 새롭게 펼쳐질 ‘뉴노멀’시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으니 내 주위, 작은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미루지 않고 하려 한다. 나와 아내, 딸아이가 함께 시작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해 본다.
딸아이를 앞에 두고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늘어놓는데, 말을 톡 끊는다.
“아빠, 유치원 선생님이 그러는데, 휴지를 아껴 써야 지구가 안 아프대. 그러니까 아빠, 휴지를 뽑으면 한 장 다 쓰지 말고 반 장만 쓰고 나머지는 다음에 써. 알았지?”
네.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워오는 것부터 하나하나 지키기로 했다. 이것이 나와 우리 가정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