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피엔스 - 문명의 대전환, 대한민국 대표 석학 6인이 신인류의 미래를 말한다 코로나 사피엔스
최재천 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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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플로리다만 하루 만 오천 명이다가 이제 잠잠해져서 이삼천 명 됐어. 다행이지 뭐.”

 

오랜 친구가 미국에 살고 있다. 해마다 내 생일이 되면 SNS 메시지와 선물 쿠폰을 보낸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멀리 떨어진 터라 보지는 못하고 일 년에 몇 번 메시지를 주고받으면 으레 집안 어른들의 안부나 아이들의 안부, 친구들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코로나 때문이다.

플로리다만 하루 만 오천 명 확진자가 나왔는데, 잠잠해져서 이삼천 명이라고 했다.

여기는 몇 달 만에 100명 넘었다고 난리다. 얼른 귀국해라.!”

내 생일이 9월 말, 광복절 집회와 추석 이후 사그라들던 확진자가 100명 대로 진입하던 9월 말이었다. 2차 대유행에 대한 경고가 연일 뉴스에 보도되었고, 다시금 국민들의 협조를 구한다는 당부도 이어지던 때였다. 친구와의 메시지 대화는 한동안 이어졌다.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상황을 들어보니 미국 내 확진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정부나 언론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하루에 수만 명씩 확진자가 나와도 거리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는 것이었다.

 

그렇죠. 우리가 미국을 총체적으로 따라왔는데요. 문제는 미국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는 데 있어요.” (p.137, 김누리 교수)

 

미국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다. 라는 사실은 이제 명확해 졌다. 코로나 초기, 동아시아 일부 국가의 전염병 정도로 보도되고 인식되었다. 북미와 유럽에 코로나가 닿기 전, 아시아인들에 대한 폭력적인 인종차별이 보도되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고강도 제한 조처에 항의하는 과격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를 어제 접했다. 야간 통행금지, 식당·주점 영업 시간 단축 등 당국의 제한 조처에 반대한다는 이유다. 미국은 여전히 하루에 수만 명이 확진되고 있는데, 얼마 전 끝난 메이저리그 결승전인 월드시리즈에서는 관중이 입장하여 경기를 관람했다. 중계를 보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육성 응원을 하는 관중이 많았다. 더군다나, 우승을 차지한 팀의 선수 중 하나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음에도 우승 세리머니를 펼친 것이 뉴스가 되었다. 당연히 마스크 따위는 착용하지 않은 채로. 프랑스는 코로나 환자로 인해 더 이상 중환자 병동을 운영할 수 없다고 한다. 이른바 선진국들이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특히, 미국은 완전한 시장 경제주의에 따른 의료체계로 인해 돈 없는 확진자들은 방치된 실정이다. 아무런 조치도,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우리의 본보기였다.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 전체가 미국 따라가기에 집중했다. 미국과 더불어 이른바 선진국으로 일컬어지던 서유럽의 국가들의 그것보다 더 맹목적으로 미국만을 숭상했다. 한국전쟁 이후 60여 년 동안의 미국 신화가 깨지고 있다.

? 우리는 하고 있는데, 쟤들은 왜 못하지?”

 

 

우리는?

 

이렇게 불안할 때는 제대로 사실을 공개하는 게 가장 좋은 겁니다. 한국 정부나 한국시스템이 잘한 게 그거고요. 사실을 알게 되니까 , 감염 위험은 높겠구나. 그런데 치명률은 이 정도겠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에너지와 사회, 혹은 집단 에너지를 좋은 곳에 쓰는 거죠.” (p.170, 김경일 교수)

얼마 전, 미국에 유학을 가 있다가 귀국하게 된 유학생의 유튜브 채널을 본 적이 있다. 귀국 직후 검사를 받고 격리해제가 되기까지의 일상을 담은 내용이었다. 입국 직후부터 본가인 경남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결론은 우리나라 잘한다!”였다. 신속한 체계와 빈틈없는 관리를 경험한 유학생은 K 방역의 힘을 실제로 경험해보니 왜 해외에서 K 방역을 그토록 극찬하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실제로 경험하지도 않았지만, 유학생의 채널을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해외의 일부와 한국의 보수 언론·정당·극우단체에서는 K 방역의 신속한 체계가 개인의 인권을 무시한 감시로 둔갑하거나 빈틈없는 관리가 정부의 무시무시한 통제라고 왜곡되기는 하지만 동의하는 사람은 오직, 자신들뿐이다.

김경일 교수의 지적대로 감추지 않고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쉬워지니까 오히려 불안이 줄어들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을 삼가며 사회적 거리 두기만 잘 유지해 달라는 정부와 방역 당국의 호소에 응답하니, 대유행을 피할 수 있었다. 올해 내내 정부와 방역 당국, 국민 간에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유지되는 경험은 대단한 것이었다. 정확하게 공개하고 공개된 정보를 신뢰하며 불편을 조금씩 나눠 감내하다 보니 미국이나 유럽과는 다른 결과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들은 우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늘 따라가려 하고 우러러만 보던 그들이 말이다.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시장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디지털 스토어를 차리는 법을 잘 몰라서 준비를 못 한다면, 다시 또 코로나19 같은 위기가 왔을 때 몇 달씩 매출이 하나도 없는 시간을 감수해야 합니다.” (p.79, 최재붕 교수)

소상공인을 보호한다고 자꾸 규제를 만들고, 기존 방식의 지원 사업에 너무 돈을 쓰지 말고요. 이들이 디지털 스토어를 차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부 차원의 사업을 시작하자는 겁니다. 어렵겠지만 서로 도와서 가야 합니다.” (p.80, 최재붕 교수)

 

직장 동료 지인 중 간판업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호황도 요즘과 같은 호황이 없단다. 폐업하거나 업종 변경을 하는 가게가 많아 코로나 이전보다 매출이 2배 이상 올랐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씁쓸했다. 내 친구 중 하나도 운영하던 반찬가게를 닫았다. 자영업 비중이 OECD 최상위권인 우리 현실에 최재붕 교수의 지적은 정확하다. 급한 불을 끄는 지원금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팬더믹이나 전세계적인 어려움이 왔을 때도 버틸 수 있는 조치. ‘디지털 스토어를 차리고 그것에 기반해 비대면으로 가게를 운영한 자영업자들은 이번 코로나 위기에도 타격이 작았다고 한다. 자영업자 중 상당수가 퇴직 이후 모아둔 목돈으로 자영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으므로 더욱 디지털 스토어구축과 같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함께 해왔던 것처럼 정부와 방역 당국, 국민들이 박자를 맞춘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는?

 

산업의 지구화, 생활의 도시화, 가치의 금융화, 환경의 시장화, 모든 것이 무너졌다.” (p.103, 홍기빈 전환사회연구소 공동대표)

 

사회와 세계를 지탱해 오던 모든 기반과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데 공감한다. 우리는 과도하게 연결되고 한곳으로 몰렸으며, 자본을 잠식하는 금융에만 기댔고 오로지 돈의 논리로 자연과 환경을 평가했다. 무한욕망을 연료로 한 인간의 폭주 기관차를 급정거시켰다. 최소한 탈선은 막아야 한다. 계속 멈춰 있을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연료를 조금 덜어내거나 윗부분 연료만 살짝 교체해 눈속임하고 출발할 수는 없다. 대충 넘어가려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아직, 인류와 문명은 제대로 원인조차 발견하지 못했고 백신은 기약조차 없기 때문이다.

 

홍기빈 소장은 이토록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가 미래를 대하는 방식은 결단이라 말한다. 어떤 가치를 중시할 것인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가.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던 대안적 질서와 체제를 제대로 구현할 기회인지도 모른다.” (p.103, 홍기빈 전환사회연구소 공동대표)

 

분명한 것은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시스템이 무너졌는데, 그 시스템을 유지하던 매뉴얼을 그대로 쓴다면 호환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책에서 각 분야 전문가가 홍기빈 대표가 말하는 대안적 질서와 체제를 각자 제시한다.

 

생태적 전환

진짜 자연을 건드리지 않는 게 더 좋다는 계산을 이제 드디어 사람들이 할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이 생긴 겁니다. 몇 년마다 한 번씩 이런 대재앙에 휘둘릴 수는 없어요. 생태적 전환만이 살 길이에요.” (p.41, 최재천 교수)

 

생태적 전환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와 에너지 위기 모두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놔두지 않은 인간의 욕심이 원인이다. 야생동물과 인간의 거리는 멀어야 한다. 반려동물만큼 가까이 있다면 이미 야생동물이 아니다.

 

최재천 교수는 생태백신, 행동백신이 궁극적인 답이라 말한다. 지금부터라도 자연과 절제된 접촉을 하고, 생태를 경제 활동의 중심에 두는 생태중심적 기업이 대거 등장해야 한다는 것” (p.19, 최재천 교수)

행동백신은 이제 한국 국민에게는 익숙하다. 굳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행동한다. 생태백신은 못 들어본 단어라 그렇지 상식이다. 최대한 생태는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는 것. 일부러 생태 안으로 들어가 교감하려 한다거나 인간의 흔적을 남기려는 수작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도 생태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자연과 생태를 굳이 보호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 이명박 정권 시절 멀쩡한 강을 파헤쳐 놓고 생태의 순리에 역행하는 보를 만든 결과 녹조라떼가 창궐하고 강과 습지, 그 주변의 생태가 완전히 망가졌던 것을 우리는 분명히 봤다. 보의 수문만 열어도 주변의 생태가 복원되는 것도 분명히 봤다. 인류는 더 이상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복지를 위한 성장

목표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 그리고 복지다, 그걸 위해서 성장하는 것일 뿐이다. 이거로군요. 그런 식의 패러다임 전환, 우리 국민들의 인식 전환이 가능할까요?”(p.64, 장하준 교수)

 

늘 성장은 복지에 우선했다. 성장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복지를 하느냐? 낙수효과라고 모르냐? 대기업들이 잘 돼야 수출이 잘 되고, 수출이 잘 돼야 경기가 살아나며, 경기가 살아나야 없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일단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우선이다. 라는 논리는 수십 년 동안 이어졌다. 복지 복지 하면 좌파 빨갱이 소리를 들었다. 무한히 성장해야 미국 같은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성장을 하고 선진국이 되어야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완전히 책임질 수 있다고 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국민의 안전과 건강, 복지를 위해서 성장하는 것이다. 무한한 발전을 이룬 인류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을 전 인류가 똑똑히 봤다. 손 쓸 겨를조차 없이 무참히 무너졌다.

 

가능하게 해야죠. 이번에 안 하면 언제 하겠습니까, 이번 같은 일을 겪고도 바꾸지 않는다면 그건 안 되겠죠.” (p.64, 장하준 교수)

 

가능할까? 라는 의문은 배부른 소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팬더믹이 도무지 언제쯤 종식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안 하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요구되는 이유다.

전 사회에 걸친 변화는 단기간에 되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코로나 19와 같은 바이러스는 이제 인류의 곁에서 함께 미래를 이어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서둘러봐야 좋을 것이 없다. 잘 대처하고 미리 예방하며 새롭게 펼쳐질 뉴노멀시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으니 내 주위, 작은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미루지 않고 하려 한다. 나와 아내, 딸아이가 함께 시작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해 본다.

딸아이를 앞에 두고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늘어놓는데, 말을 톡 끊는다.

아빠, 유치원 선생님이 그러는데, 휴지를 아껴 써야 지구가 안 아프대. 그러니까 아빠, 휴지를 뽑으면 한 장 다 쓰지 말고 반 장만 쓰고 나머지는 다음에 써. 알았지?”

.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워오는 것부터 하나하나 지키기로 했다. 이것이 나와 우리 가정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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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 - 코로나19 대구 시민의 기록
신중현 엮음 / 학이사(이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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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에는 갈 수 있을까?

이제 딸아이 유치원 등원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5세 때부터 다닌 유치원의 졸업식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딸아이가 3년 동안 다닌 유치원의 마지막 날, 마음껏 축하하고 칭찬하며 축제 같은 하루를 보내야 하는데. 아마, 부모님 없이 하는 졸업식이 될 것 같다.

몇 달 만에 유치원 등원 하던 날, 아이가 새로운 친구들 만날 생각에 잠을 못 잤다는 얘기를 들으며 마음 아팠다. 원체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엄마 아빠에게 쏟아내는 아이라 코로나 이후 바뀐 유치원의 모습도 사진을 보는 것처럼 알 수 있었다. 한 반 친구들과도 함께 어울리고 뒹굴며 놀지 못하고 점심 식사 시간에도 마주 보지 못한 채 벽 쪽으로 앉아 밥만 먹는다는 이야기 등. 들을수록 미안하고 마음 아팠다. ‘곧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10개월이 지나버렸다. 매년 하던 학부모 초청 행사나 수업 참관 등 외부인이 출입해야 하는 행사들도 멈췄다.

 

하릴없는 시간을 흘러갔다. 멀리 사는 지인은 고립된 우리를 걱정하며 식료품을 보내주었고, 수시로 전화로 위로의 말을 해 주었다.” (p.122)

 

나도 전화와 메시지를 많이 받았었다. 제주도에 사는 친구와 강릉에 사는 동생은 아내와 아이라도 보내라고 했다. 식료품과 마스크를 보내주었다. 그 당시만 해도 친구와 동생에게 코로나는 먼 이야기였다.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은 물론 전 세계적인 팬더믹이 될 거라고는, 그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일상을 살게 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확진자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때 시민들은 거꾸로 차분하게 돌아섰던 것이다.” (p.5)

 

대구 코로나, 대구봉쇄 등 연일 자극적인 기사가 쏟아졌다. 당장이라도 사재기가 넘치고 엄청난 혼란이 있는 것처럼 야단법석이었다. 나를 포함한 대구 시민들도 겁이 났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뉴스를 확인하고 재난문자를 확인했다. 하지만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언론의 호들갑은 사람들의 불안만 가중했을 뿐이다. 대구 시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그저 버텨주었다. 맞다. 버틴 것이다. 묵묵하고 당차게. 각지에서 찾아준 도움의 손길은 버틸 힘이 되었다.

 

“317. 월급날. 아이 장가보낼 밑천을 꺼내어 썼다. 다음 달은? 격리 28일째다.” (p.68)

 

 

아이 장가보낼 밑천까지 꺼내어 써야 했다. 책에 실린 대구 시민들의 이야기에 눈시울이 불거진다. 비록 내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더한 사연도 많다. 지인에게 닥친 일이기에 책에 소개된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내 친구가, 내가 아는 형님이 겪은 일이다.

 

연이어 들려오는 개학 연기 소식과 대부분 문을 닫은 가게를 볼 때마다 내가 학원을 닫은 것보다 더 마음이 아팠다. 저분들 중에는 분명히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40)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위로가 아니다. 모두가 힘든 시기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나와 동네, 지역사회와 국가를 넘어선 전 세계적인 팬더믹을 살아가는 개인이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권리는 상대의 배려로 채워지고, 상대의 권리는 나의 배려로 채워진다. 이 미묘한 균형이 맞아떨어져야 누구의 권리 주머니도 비지 않고, 피해 보지 않는다.” (p.96) 팬더믹으로 분명하게 알게 된 사실은 어느 누구도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인종과 국경, 자본과 이념을 구분해 넘나들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생각하는 만큼 도 생각해야 한다. 당장 내가 힘들다고 모두를 위한 조치와 대책에 따르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현재 유럽의 2차 대유행이 바로 그렇다. 대구 시민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그렇지 않았다. 추석을 포함한 연휴와 방역 당국과 정부의 자제를 무시한 보수단체의 야외집회 이후, 우리도 2차 대유행의 전조를 경험했다. 정부와 방역 당국은 선제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코로나 제한조치를 예고했다. 우리는 이탈리아와 유럽의 국가들과는 달랐다. 사람들은 또다시 차분하고 묵묵하게 동참했다. 다시 가게 문을 닫고, 거리 두기를 실천했다. ‘만 생각하지 않는 시민들과 국민들의 힘이다.

 

응원 메시지 글을 써서 붙였더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면서 사진을 보내왔다. 병원에 응원 메시지 홀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p.20)

 

정부와 방역 당국의 발 빠른 대처와 일관된 공조는 K 방역의 신화를 낳았다. 그리고 일선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눈물겹다. 대구에서 코로나가 확산되던 초기, 각 지역 의료진과 소방인력이 대구로 투입되었다. 국군간호사관학교의 졸업생들은 임관하여 자신의 임지로 가기 전 대구로 투입되기도 했다.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헌신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그들의 헌신을 절대 잊지 않았다.

6월 중순쯤, 딸아이 진료 차 칠곡 경북대병원에 갔었다. TV에서만 보던 노란색 응원 메시지가 벽면에 가득했다. 하나하나 읽어보는 것만으로 감동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황당함과 지난함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었다. 비록, 현재로 매일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유럽이나 타 대륙의 국가들처럼 수천, 수만 명의 확진자는 발생하고 있지 않다. 정부와 방역 당국, 의료진과 시민들 간에 보이지 않는 배려가 끈끈하게 살아있다는 증거다.

 

고마웠다.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마웠다. 그래서 지역의 출판사가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지금, 이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 훗날 모두에게 타산지석으로 삼게 하자고,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 보자고, 이 일만은 지역출판사가 할 수 있고 지역출판사가 해야 할 소명이라 여겼다.” (p.6)

 

부끄럽지만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학이사가 지역출판사인 것을 알지 못했다. 이번 공모전에 참가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대상 도서를 찾다가 이 책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를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하다. 이런 책을 만든 출판사에도 감사하다. ‘지역출판사가 해야 할 소명이라는 문장이 가슴에 박힌다. 출판시장은 늘 어렵다. 지역출판사의 사정은 더 할 것이다. 이번 코로나로 인해 적잖은 손해를 봤을 것이다. 그래도 지역출판사의소명으로 알고 지역의 목소리를 담아 기록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스케치로 지나가는 TV 뉴스의 몇 장면만으로는 이면의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이 책을 통해 듣게 되었다. 무엇보다 같은 지역을 사는 사람들, 내 이웃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에 또 한 번 감사하다.

 

마침내 코로나가 극복되는 날, 그 기쁨의 목소리를 담은 책 또한 학이사에서 만들어 주시길 고대한다. 약속한다. 그 책은 10권 이상 구매해 이웃, 지인들에게 나눠줄 것이다. 함께 기쁨을 나눌 것이다.

그때까지 기억하고 감사하며 응원하려 한다.

나와 학이사, 대구에 사는 시민들 모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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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 도전하는 삶이 꿈을 이룬다
이상식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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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여기 동물들은 너무 힘이 없어

 

7살 딸아이의 푸념에 할 만한 대답이 없었다.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공원 곳곳은 깨끗하게 정비되고 동물원도 새 단장을 했지만 동물들은 생기가 없었다.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대구 달성공원 안에는 동물원이 있다. 사자, 호랑이, 코끼리도 있다. 대구 시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방문했던 곳이다. 어린 시절 소풍으로 , 청년시절 데이트 장소로, 결혼 후 아이와 나들이로 달성공원을 찾는다. 달성(達城)에는 경상감영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대구신사도 있었다. 수백 년의 역사를 담은 곳이다. 여러 번 방문했음에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19158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대한광복회라는 항일 비밀단체가 결성되었습니다.” (p.116)

 

이런,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고 자부하던 내가 제대로 몰랐던 사실이다. 학교에서 대한광복회, 박상진 의사에 대해서 공부하고 여러 책에서 접했지만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결성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부끄러웠다. 지금은 나이가 많아 움직임이 거의 없는 동물들을 보러 가는 달성공원에서 대한광복회가 결성되었다. 단지, 동물원이나 옛날 성 정도로 인식될 수 없는 곳이었다.

 

우리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이 한 몸을 바침은 물론 우리의 일생에서 이루지 못하면 자자손손 이어 내려가며 불공대천의 원수 일본을 완전히 물리치고 광복하기까지 절대 변치 않고 오직 한마음으로 싸울 것을 천지신명에게 경고한다.” (p.118)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내던진 독립 운동가들의 외침이 귀에 쟁쟁하다. 창피하지만 다시는 잊어버리지 않으려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어떤 역사가 있었고, 어떤 인물들이 있었는지 말이다. 그래서 7살 딸아이가 대구에 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도록 가르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이 책 가지 않은 길을 읽지 않았다면, 달성공원에 대한 편견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아는 게 중요하다. 책의 저자 이상식씨(이하 이상식)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 보수의 아성인 대구에서 살면서 정치얘기는 되도록 하지 않게 된 지 오래다. 말이 나오면 다툼으로 이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대구는 해방 이후부터 박정희가 처음 당선된 19631015일 제5대 대통령선거 이전까지 거의 모든 선거에서 야당이 압승한 야당의 도시였습니다.” (p.128)

 

대구는 한때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리던 곳이다. 보수여당에 맞선 민주의식이 가득한 도시였고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민주운동이 일어난 도시였다. 역사적 사실만 놓고 보면 지금의 정치성향은 이해할 수 없다. 군사독재정권 이후 지금까지 한쪽으로 치우친 정치성향은 계속되고 있다.

 

사람은 좋은 데, 왜 그 당이고?’

저자인 이상식은 선거 운동을 다니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나도 많이 들었던 말이다. 물론, ‘사람은 좋은 데라는 서두는 없었지만.

상식적인 시민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수십 년 동안 한쪽만 지지할 수 있을까 싶지만 여기는 여러 복잡한 요소가 있다. ‘한국의 모스크바라 불렸지만, 현대사를 통해 민간인 학살과 인혁당 사건 등 좌파, 사회주의, 빨갱이로 낙인찍히면 죽게 되는 기억이 은연중에 시민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일 테다.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던 거창과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한쪽만 지지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이상식은 엘리트다. 금수저도 태어나지 못했지만 노력으로 경찰 엘리트가 되었다. 승승장구만 거듭하다 한 번에 미끄러졌다. 그의 고백이다.

 

승승장구하던 엘리트 경찰간부에서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내평겨 치듯 공직에서 쫓겨난 개인사 속에서 곧이어 국정농단, 촛불혁명,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역사적 흐름들이 저에게는 크나큰 정신적 각성의 계기로 작용하였습니다.” (p.160)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조직의 수장이었기 때문에 쫓겨났다. 그리고 지난 10년간의 역사적 흐름 속에 정치적 각오를 다지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나는 대구에서 보수 정당이 아닌 다른 정당의 깃발을 들고 선거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아낌없는 찬사와 지지를 보낸다. 너무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다. 이상식은 요즘 말로, 최고의 스펙이다. 경찰대 수석, 최연소 승진 등. 선거 운동 재킷만 다른 색으로 바꿔 입으면 지금 국회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단연코 그렇다. 대구에서는 인물의 됨됨이나 정책의 합리성 보다 색깔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상식은 가지 않은 길을 가고자 한다. 뻔히 보이는 가시밭길을 선택한 것이다.

 

“‘태도보수’, 그 사람이 지향하는 가치나 이념은 진보일지라도 그 사람의 태도와 자세, 품성이 예의바르고 반듯해야 지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p.167)

 

정확하게 대구 시민들 기저의 의식을 파악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나고 정의로운 정치를 하려해도 그것을 담는 그릇이 모 나고 날카로우면 시민들에게 닿지 못한다. 가볍게 평가하고 가르치려는 태도 또한 쥐약이다. 몸을 낮춰 경청해야 한다. ‘내 말을 잘 들어주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네 말도 들어보자.’하게 된다. 나도 경험해본 터라 분명하다.

저는 반듯하고 멋진 정치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에 뜻을 둔 후 네거티브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p.168)

 

결심이 오롯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책에 실린 사진만 보면 충분히 반듯하신 것 같다. ‘멋진 정치인은 정말 어려운 표현이다. 이제껏 살며 나는 딱 한 명 봤다. ‘멋진 정치인’. 그런데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멋지게 정치를 하면 주변의 공격이 많다. 시기·질투·무시 등. 결국, 돌아가셨다. 내게는 멋진 정치인이었는데, 정치 인생 내내 고생만 했다. 그의 지지자들을 제외하면 그의 편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이상식의 다짐과 결심이 불안하고 걱정된다.

멋진 정치인이 되면 고생길이 열릴 텐데…….’

 

그래도 나는 응원할 수밖에 없다. 대구의 척박한 정치현실에서 다른 색깔 재킷을 입고 선거운동을 하는 이상식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스스로 한 정치적 각성으로 어려운 길을 택하고 실패를 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재킷을 다른 색깔로 갈아입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를 지지한다. 비록 선거구가 달라 직접적인 지지를 표하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선거철이 되면 먼발치에서나마 바라보며 응원을 보내려 한다.

대구에 살지만 대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정말 많다. 나도 모르는 만큼 남들도 모를 것이다. 조금씩 이상식을 대구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

대구에서도 반듯하고 멋진다른 색깔 정치인이 나오기를 고대하며, 그의 가지 않은 길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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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저작집 8 -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리영희 저작집 8
리영희 지음 / 한길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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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론?

 

김 서방, 추미애 어떻게 생각해?

깜짝 놀랐다. 정치 얘기는 거의 나누지 않았던 터다. 조심스레 내 생각을 말씀드렸다.

에이, 아니야~! 추미애가 말이지.”

라고 하시며 10분 동안 추미애 장관을 둘러싼 음모론을 펼치셨다. 도무지 장모님께는 들어보지 못했던 단어와 문장이 쏟아졌다. 머리가 아득해졌다. 조심스레 여쭈었다.

어머님, 어디서 들으신 거예요?”

잠시 주춤하셨다.

, 이곳저곳. 인터넷이나 유튜브나, 요즘 죄다 추미애 얘기잖아.”

그랬다. 요즘 누가 TV 뉴스 보느냐고, 다들 유튜브 본다고 하셨다. 김 서방도 유튜브 좀 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유튜브가 언론이 되었다. 유튜브를 언론으로 만든 일등 공신은 레거시 미디어다. 언론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과 객관적 보도가 사라진 지 오래다. 사람들은 더 레거시 미디어, 공중파TV와 신문을 신뢰하지 않는다. 아직도 시청률이 나오고 신문 구독자가 있는 건 오래된 습관을 쉽게 버릴 수 없는 정도의 의미에 불과하다.

 

신문과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 매체들이 문민정부의 과거청산 작업과 사정 활동에 뛰어들어, 마치 때를 만난 뭣들처럼 야단들이다. 이 나라의 민주화는 언론이 도맡아서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p.427), <언론노보> 끝내 변할 줄 모르는 언론인들의 기회주의 중, 1993

 

() 리영희(이하 선생님) 선생님의 27년 전 일갈이다. 언론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껍데기만 바꿀 뿐이다.

    

 

2. 반성 없는 언론

 

박정희와 전두환을 세종대왕급으로 신격화한 언론인들 주에서 자기반성의 글을 썼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고, 부끄러워서 사표를 내고 신문사를 떠났다는 말을 더더구나 들어본 일이 없다.” (p.429) <언론노보> 끝내 변할 줄 모르는 언론인들의 기회주의 중, 1993.6

 

박정희와 전두환을 세종대왕급으로 신격화환 언론인들과 언론사들은 현재도 그대로다. 세월호와 박근혜 탄핵 국면, 조국과 추미애를 둘러싼 보도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단 지르고 본다. 아니면 말고 식이다. 대대적으로 보도했다가 개미 눈곱만큼 작게 정정 보도를 싣는다.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한 전 서프라이즈 대표 신상철 씨가 며칠 전 항소심에서 10년 만에 무죄를 받았다. 10년이 지나서야 말이다. 그에 대한 보도는 미미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기억조차 못 한다. 대중의 기억 속에는 대대적인 보도와 헤드라인만 가득할 뿐이다. 진실에 가까워야 할 미디어가 제구실을 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알고리즘을 타고 유튜브를 기웃거린다.

    

 

3. 진실을 추구한 언론인

 

선생님의 책반세기의 신화를 읽고 나의 세계관은 완전히 바뀌었다. 22살이었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교육을 받아온 것이 억울했다. 억울함은 잠시였다. 더 늦지 않게 반세기의 신화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때부터 나 혼자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셨다. 선생님의 책에 탐닉했다. 지금처럼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가공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선생님은 오로지 진실 추구에 대한 신념하나로 발로 뛰며 정보를 얻고 취합해 분석했다.

 

군사정권을 유지하는 방패로 써먹어 온 북한의 군사적 우위는 사실 그렇지 않음이 1998년 나의 논문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에 의해 밝혀졌다.(중략) 이 논문 때문에 국방부에서는 논문이 발표된 지 3개월 만에 처음으로 국방백서라는 것을 펴내게 되었다.” (p.87), <한반도의 비핵화·군축 그리고 통일> , 1993.9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는 국방부나 당시 안기부 같은 곳에서 해야 한다. 하지만 군사정권을 유지하는 방패로 쓰기 위해 진실을 가렸다. 가려진 진실은 미디어에 의해 왜곡되어 전파된다. 아직도 그대로다.

 

한국의 신문들이 베트남 파병 이후 반공 성전또는 자유진영과 공산주의의 투쟁으로 전쟁을 묘사하면서 전쟁열을 부추기고 있을 때 유독 리영희 외신부장만이 지속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에서 기사를 썼습니다.”신홍범 도서출판 두레 대표, <리영희 선생 10주기 세미나>

 

당시 리영희 외신부장은 결국 조선일보에서 쫓겨났다. 진실을 추구한 기자를 지켜주지 않았다. 군사정권과 청산되지 않은 친일세력에 기반한 기득권 세력은 현재도 유효하다. 입법·사법·행정·학계·언론계에 가득하다. 이제는 더 이상 군사독재 정권이 탄생하지 못하고 적법한 탄핵절차로 대통령을 끌어내린 한국 사회와 국민이지만 마주한 현실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공식 석상에 등장한 김정은 위원장의 손목시계가 기삿거리가 되고 외국의 언론들이 극찬하는 한국의 코로나 대응과 경제 상황은 한국의 기득권과 레거시 미디어들만 외면하고 있다. 그들에게 진실 추구는 중요한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자리와 입지, 누려온 위세가 흔들리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다. 지난 총선으로 압도적인 힘을 몰아줬음에도 공수처를 비롯한 개혁 입법이 지지부진한 이유다.

 

다음은 냉전식 극우·반공을 아직도 무슨 덕목처럼 내세우면서 일부 언론계를 주무르는 개인과 세력이다. 그들은 미국 시민보다 오히려 미국에 충성적이다.” (p.102) <전쟁을 부추기는 자들이 있다> , 1994.4

 

1994년 선생님의 일갈이 2020년에도 유효하다는 것이 서글프다. ‘그들의 충성 대상이 미국에서 다른 곳으로 바뀔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간자 역할을 자처하며 한반도 종전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동분서주할 때, ‘그들은 비웃었다. 조롱하고 비난하며 기사를 쏟아냈다. 그리고 하노이에서 북미 간 회담이 최종 결렬되었을 때,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축제를 벌였다. 앞서도 언급한바, ‘그들에게 진실 추구한반도 평화같은 것은 안중에 없는 것이다.

 

투쟁으로 독립한 나라는 해방이 되자마자 첫 사업으로 독립기념관을 짓습니다. 해방 40년이 지나서야. 그리고 늦었다 하더라도 이왕 지을 바에 그 절반은 민족반역의 관으로 할애하여 후손들의 본보기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후손들이 과거를 보고. 그런데 어디 그것을 지을 수 있었습니까? 친일파들이 독립기념관을 짓겠다고 나선 판인데.” (p.336),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의 교훈> , 1992.6

 

근본적인 이유다. 그들이 리영희 선생님처럼 진실 추구를 향한 신념으로 살지 않는 이유다. 다른 것으로 현재를 분석할 수 있나? 찾을 수 없다. 오로지 그들이 가진 기득권과 과거로부터 쌓아온 재산과 위세를 잃기 싫은 것이다. 제대로 된 사회와 국가를 만들기 위해 과거를 청산하자고 하면 아직도 빨갱이타령이다. 견제할 수 없는 권력을 개혁하려고 하면 손에 쥔 칼자루에서 칼을 뽑고 마구 휘두른다. 한참 칼춤을 추면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자신들의 위세를 보여주면 그만이다.

더 이상 레거시 미디어를 신뢰하지 않는 대중은 자신들만의 당파성을 갖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 유튜브는 그 욕망에 최적화된 도구다. 수십만 명이 구독하는 채널은 힘을 갖게 되었다. 당연히 돈이 따라서 온다. 더 자극적인 썸네일로 욕망의 알고리즘을 휘어잡는다. 돈은 계속 쌓이고 대중은 탐닉하며 경도된다..

    

 

4. 미래 없는 언론

 

당신네들, 하늘을 나는 저 새를 보시오. 저 새가 오른쪽 날개로만 날고 있소? 왼쪽 날개가 있고, 그것이 오른쪽 날개만큼 크기 때문에 저렇게 멋있게 날 수 있는 것이오.” (p.24)

 

좌우의 날개가 있어야 균형이다. 균형을 유지해야 앞을 똑바로 볼 수 있다. 당연한 사실이다. 좌나 우로 치우쳐 있다면 한쪽만 더 잘 보일 뿐이다. 레거시 미디어든, 유튜브를 비롯한 뉴미디어든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직장 동료 중 보수 유튜브를 애청하는 사람이 있다. 한 번씩 대화를 나눌 때면 답답하다. 논리와 사실로 설득을 해보려는 시도조차 망설여질 만큼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 사람은 30대 중반이다. 장모님 같은 노년층이 아니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세대가 10대와 60대 이상이 많다고 했다. 젊은 층이 균형 잡힌 언론을 소비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각자 도생해야 하는 사회지만 그 각자도생이 균형을 잃게 되면 지난한 갈등과 혐오를 낳는다.

이럴 때, 레거시 미디어가 중심을 잡고 객관적 사실과 진리를 기반해 보도한다면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변변치 않은 나의 독서편력을 되돌아보면 간절한 소원이 앞선다. 나의 후세대나 후학들은 제법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볼 수 있고, 어떤 책도 국가권력에 의해 약탈당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살게 되기를 비는 간절한 마음 말이다.” (p.512), <변혁의 시대정신을 따른 37> , 1992.9

 

아직도 선생님의 책과 진실 추구에 대한 신념은 유효하다. 아니, 유효해야만 한다. 더 이상 자신의 책이 읽히지 않는 시대가 오기를 염원하신 선생님의 바람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송구한 마음으로 다시 선생님의 책을 읽는다. 미디어와 출판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며 종이책 멸망이 예언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다행히 종이책은 멸망하지 않았다. 다시 선생님의 책이 읽혀야 한다. 나의 세계관을 완전히 뒤엎은 반세기의 신화도 더 많이 읽혀야 한다. 선생님의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다. 더 많이 읽어 진실에 가까이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손가락 터치 몇 번의 노력보다 수십, 수백 배의 노력이 따르겠지만 읽어야 한다. 더불어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어린아이들에게도 선생님의 책을 소개해야 한다. 브레이크 없는 알고리즘 기관차에 제동을 시도해야 한다.

 

적어도 후대가한쪽 날개가 완전히 꺾인 채로 사회와 타인을 혐오하고 해석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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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새로운 세상이 온다
시릴 디옹 지음, 권지현 옮김 / 한울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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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초 태풍 마이삭이 북상했다. 초강력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한다는 뉴스가 하루 종일 나왔다. 시청자들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수많은 정보가 지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고리 원전 4기 정지라는 뉴스가 지나갔다. . 뭐지? 했는데 이후 아무런 후속 보도가 없었다. 속으로 원전이 정지됐는데, 왜 후속 뉴스가 없는 거야?’ 싶었다. 오늘 다시 기사를 찾아보았다. “‘마이삭때 원전 4기 집단정지, 태풍 탓하더니 설비 부실 정황” 925일 자 신문의 헤드라인이다. 현장조사에 참여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밝혀낸 사실은 태풍 영향 이전에 설비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한수원은 설비 부실에 대한 언급 없이 원전 앞바다의 염분을 전력시설까지 날려 보낸 강풍에 사고 원인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원전 사고는 재앙일 텐데, 너무도 태연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한수원 반응이다.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펴낸 마지막 비상구에는 돈으로 친 원전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원전 마피아들의 모습이 자세히 나와 있다. 단 한 번의 실수와 사고로 돌이킬 수 없는 전 인류적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원전이 정치·경제·학계로 똘똘 뭉쳐진 원전 마피아들에 의해 어떻게 포장되고 왜곡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번 고리 원전 4기 운영중단에 대한 지금까지의 태도도 이런 원전 마피아들에 의해 형성된 친 원전 이데올로기에 기반한다.

 

우리는 상위법을 따라야 합니다. 상위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 다양성, 생명의 법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달린 지구를 돌보지 않으면 지구와 함께 인류도 멸망하리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법이지요.” (p.362) 반다나 시바, 철학자

 

이 책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책이다. 기후변화와 팬더믹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직도 코로나 팬더믹은 유효하고 전 인류가 나서고 있지만, 백신조차 만들어내고 있지 못하다. 시베리아 동토가 녹고 있으며 아마존과 북미 대륙이 가뭄으로 불타고 있다. 한국의 초가을에 상륙한 태풍들도 이전과는 다른 형태였다. 한반도로 접근할수록 세력이 약해졌던 이전의 태풍들과는 달랐다. 오랜 장마로 해수면 온도가 내려가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오랜 장마 또한 기후변화의 결과다.

원전과 기후위기 같은 문제는 당장 급하지 않아 보인다. “사람들은 지진이나 전쟁같이 눈에 보이는 현상에는 크게 반응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석유 고갈이나 지구온난화는 믿지 않습니다. 이산화탄소 분자가 대기의 색을 바꾼다면 아마 우리의 반응도 달라지겠지요.” (p.122)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회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목소리에는 어김없이 정치적 색깔을 입혀 공격하기 일쑤다. 특히, 지역 화폐가 더 그랬다. 현 경기도 이재명 지사의 오랜 공약 중 하나가 지역 화폐 시행인데, 이 지사는 이것으로 지금까지 좌파 빨갱이의 선심성 공약이라는 색깔론 공격을 받고 있다. 표를 얻기 위해 세금을 낭비하는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팬더믹 이후 적어도 한국의 국민들은 지역 화폐의 효과와 위력을 체감했다.

 

그리스가 비어를 도입한다면 경제를 살릴 수 있습니다. 대안 통화는 스위스나 미국, 혹은 영국에서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죠. 주식시장에서는 특히 통용이 안 되고요. 유럽연합이 수십억 유로를 그리스에 지원하면 뭐합니까? 48시간 만에 그 돈이 모두 유럽과 미국의 큰 주식시장을 통해 투기꾼들의 손에 들어가 그리스를 떠날 텐데요.” (p.248)

 

그리스의 비어 화폐나 책에서 소개된 영국 브리스톨 파운드는 대안 화폐다. 해당 국가와 해당 국가의 특정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것이다. 지난번 재난지원금이 그랬다. 국민이 모두 받아 자신이 사는 지역에 돈을 썼다. 돈을 쓰는 사람과 그 돈을 받아 물건을 판 사람 양쪽 다 만족했다. 실제 온라인 지역카페(입주자 모임, ○○)같은 곳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정치의 문제가 기반해야 하지만 정치의 문제로만 국한할 수 없는 이유다.

 

문제라는 건 알지. 하지만 우리가 뭘 어쩌겠어?” (p.16)

 

코로나 팬더믹은 인류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뉴 노멀을 맞이한 것이다. 7살 딸아이는 마스크를 벗는 상황을 더 어색해한다. “지구의 역사를 24시간으로 줄여보면 인간이 지구에 존재한 시간은 겨우 2분밖에 안 됩니다.” (p.193) 겨우 2분 만에 인류는 지구를 망쳐 놓았다.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기후학자의 말이 생생하다. “인류가 가진 마지막 기회라는 말이었다. 책에서 소개한 2009년 코펜하겐 기후 정상 회의는 각국의 정상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방증했다. 알아서 하라는 거다. 말인지 된장인지.

 

우리는 10개국을 누비며 새로운 세계의 초석을 다지고 있는 50여 명의 과학자와 시민운동가, 기업가, 정치인을 만났다. 이 책과 다큐멘터리 <내일>은 그 증거이다.” (p.24)

 

책에 소개된 증거와 대안은 새로웠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더불어 한국이 얼마나 대안적 측면에서 뒤처져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적어도 내 딸아이가 살아갈 미래가 지금보다 더 끔찍하게 놔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역 경제의 구축,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자급자족을 위한 환경 조성, 식량 체계의 변환 등 단기간에 개인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사실 이 책을 읽고 고민이 더 많아졌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이다.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기아, 가난, 지속가능한 발전, 평화, 건강, 교육, 경제, 천연자원 같은 문제가 아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우리한테 얼마나 있느냐이다.” (p.411)

 

집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나와 우리 사회에 있을까? 생각의 출발부터 회의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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