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 우리 시대의 주변 횡단 총서 5
다나미 아오에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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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한 동안 미디어를 뜨겁게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책도 쏟아졌고 예전에 출간된 책이 재출간 되기도 했다.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이 책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는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진짜 이스라엘에 살았던 사람이 이스라엘에는 진짜 누가 사는지 취재하고 인터뷰한 르포르타주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한창이던 어느 날 밤, 이스라엘 시민들이 마치 불꽃놀이 구경하는 것처럼 가자지구에 떨어지는 이스라엘군의 폭탄과 미사일을 구경하고 있었다. 떨어진 폭탄과 미사일로 인해 섬광이 발생하고 엄청난 굉음과 무언가 무너지고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박수를 치고 좋아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세계에 전해졌다. SNS를 통해 전해지면서 온갖 비난과 비판을 받았다. 사실 나는 나도 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만약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지금 저렇게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는 그 폭탄과 미사일로 인해 죽어갈 무수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한 진심어린 반성과 자제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당신들 지금 제정신이요?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내 가족이 죽었다면 이럴 수 있느냐고!” 라고 그들을 향해 비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상대국이 공식적으로 정한 역사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원래 주민의 문화를 빼앗아온 자국의 역사에는 눈을 감는 일이다. 일본과 이스라엘 사이에 그러한 공범관계가 생기고 말았다는 것이 두렵다.” (p.277)

“2008년, 2012년, 그리고 2014년. 지난 6년 동안 세 번의 전쟁, 가자의 아이들은 폭격과 죽음에 둘러싸인 세계밖에 알지 못한다.” (p.13)

 

책의 저자는 일본인이다. 그녀는 이스라엘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일본과 일본사람들을 생각한다. 가자지구에 떨어지는 폭탄과 미사일을 향해 환호하고 박수를 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쟁은 너무나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이렇게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 한 적이 없었다. 그간의 독서와 쌓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이스라엘은 당연히 나쁜 놈들 이라고 생각만 했다. 이스라엘이 건국 이후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의 문화와 땅과 생명을 빼앗아 온 역사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벌인 제국주의 역사를 병치시킨다. 나아가서 공범관계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극우단체와 세력들이 자국의 제국주의 역사와 식민지 침탈의 역사를 부정하고 역사 교과서를 여러 번 개정하려고 할 때마다 한국과 중국 사람들은 분노했다. 명백하게 드러난 역사마저 부정하고 왜곡하려 하는 일본의 오만함에 분노했다. 그런데, 자국의 제국주의 역사를 직접 겪지 않고 원자폭탄이 본토에 떨어진 것을 기껏해야 할아버지에게 몇 번 들은 것에 불과한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역사 교과서의 일부분쯤 개정하는 것에 대해 외국(한국과 중국) 사람들이 난리를 치면서 득달같이 달려드는 일이 황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자라면서, 학교에 다니면서 전쟁을 겪고, 할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에게 직접 아랍국가들의 공습과 탱크에 대해 들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은 우리와는 좀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하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단지 미디어와 몇 권의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계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 엄마는 기독교도, 아빠는 유대인이죠. 저는 유대 커뮤니티 안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유대인이에요.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저는 유대인이 아니에요.” (p.232)

“어쨌든 유대인은 다들 이스라엘로 가야 한다고 온가족이 그렇게 생각했어요. 가족이 모두 시온주의자였으니까요.” (p.234)

 

지금의 이스라엘에 대한 인상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지만큼이나 단순하다. 중동에서 유일한 유대국가, 강한 군사력, 강한 예비군, 국가에 대한 철저한 충성과 사랑, 키부츠 정도? 저자가 예전에 알게 된 러시아 출신 유학생의 가족은 러시아에서 이주해 온 이스라엘인이다. 유럽의 전역과 북아프리카 러시아에서 유대인들이 몰려든 것을 몰랐다. 시온주의자들에게 이스라엘로의 이주는 필수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유럽의 어떤 도시에서, 러시아의 농촌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해도 이스라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입식자들이 찾아와 빼앗은 것은 단순히 팔레스타인의 땅과 문화만이 아니었다. 선량한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주한 이스라엘인들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원래부터 자신들의 땅이니까. 야훼께서 허락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비로소 도착했으니까. 원래 그곳에서, 그 땅에서 발붙이고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역사는 한방에 싹~ 지워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고 그들의 당위가 되었다.

 

 

“이집트의 유대인은, 스스로 유대인이라는 민족의식보다 사회의 상류에 속하는 유럽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p.48)

 

책의 저자는 좀 더 내밀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알고 싶었다. 취재하고 인터뷰하고 만난 후 알게 된다. 앞서 말한 이스라엘에 대해 알고 있거나 느끼고 있는 단순한 생각들이 사실과는 많이 다른 것이라는 점에 놀랐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지 않고 국가에 대한 사랑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세대에 따라 다른 경향을 보인다. 젊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은 그냥 내가 태어난 나라 정도?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가졌던 선민의식과 어렵게 되찾은 나라와 땅에 대한 애착은 세대를 지날수록 희미해 졌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단카이 세대와 68세대를 부모로 둔 젊은 일본 사람들은 그들의 선조가 가졌던 전쟁에 대한 기억, 경제부흥에 대한 기억만큼을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새롭기까지 했다. 그간 다른 책에서는 알 수 없었던 내용이다. 이스라엘은 당연히 단일 민족이고 모두가 백인 내지는 아랍인과는 다른 민족구성을 가졌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이스라엘에도 아랍인들이 살고 있다. 이들과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아랍인, 다른 중동의 아랍인들 사이의 갈등도 알게 되었다. 아랍인이지만 이스라엘에 살고 있고 이스라엘의 젊은이들과 함께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랍인 젊은이들이 갖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생각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또 많이 달랐다.

 

 

“입식자들은 자신들의 토지라고 주장하는 그 토지의 지속 가능한 발전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입식지 자체도 팔레스타인의 토지를 빼앗아, 파괴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올리브 밭이나 과수원 위에 세워진 것이다.” (p.255)

 

분명히 이스라엘 입식자들에 의해서 땅과 문화, 역사를 빼앗기고 무분별한 개간과 개발을 통해 심각한 환경오명의 문제도 대두되었지만 어쨌든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아랍인이지만 이스라엘 안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은 평화를 원한다. 마치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같은 아랍인들에게 비난을 받고 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아랍인만의 권리는 주장하는 게 아니라오. 아랍인이 행복하면 유대인도 행복하게 될 테니 말이오. 아랍인의 재앙은 유대인에게도 재앙이오. 이익은 공통되는 것일 게요.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 아니겠소?” (p.286)

 

이익은 공통된다는 어느 이스라엘 거주 아랍인 할아버지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체에 맞지 않게 지금껏 살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주변 아랍 국가들은 함께 행복하게 될 것을 꿈꿔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이스라엘과 중동을 둘러싼 각종 이권과 이해관계, 국제정세가 복잡하고 첨예하기 때문에 어쩌면 영원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이 분쟁에 놓이기를 원하는 세력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심각한 분쟁을 통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이득을 보는 세력이 있다면 말이다. 그런 이득과 이익이 실제로 분쟁의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면 좋으련만.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뿐일까?

 

 

“원래부터 이 마을에 살던 아랍인은 이 마을에 두고 온 재산까지 몽땅 빼앗기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부재자’ 상태로 있는 것이다.” (p.303)

 

어쨌든 가장 큰 피해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같은 이스라엘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다. 분명히 같은 땅을 밟고 살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부재자’인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가 거듭될수록 팔레스타인 거주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지금은 한쪽 구석에 몰린 상태다. 이미 그로기 상태에 빠진 상대에게 줄곧 카운터블로를 날리는 꼴이다. 지금은 이스라엘의 폭격과 공격이 멈춘 상태지만 언제 또 반복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젊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가 가졌던 만큼의 강성한 시온주의자들은 아닐지 몰라도 어려서부터 겪은 전쟁의 기억과 배운 배타적 역사의 기억은 태도의 변화를 더욱 더디게 할지도 모른다. 당연시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이 더욱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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