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 영토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 대립에서_대화로
와다 하루키 지음, 임경택 옮김 / 사계절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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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정말 우리 땅일까? ‘독도는 우리 땅’은 이미 명제다. 한국인들에게는 고유 문장이 되었다. 당연히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국가와 정권 차원에서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만 민간 차원에서는 뉴욕타임스에 광고를 하기도 했다. 무한도전에서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진리를 빼앗기기 전에 기억하고 지켜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제대로 해결되지도, 뭔가 대안이 마련되지도 않은 채 한국인들은 당연히 독도는 우리 땅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때가 되면 독도를 찾아가 독도 경비대원들을 위로하거나 대형 태극기를 펼쳐 놓고 배경음악으로 애국가나 홀로아리랑이 울려 퍼진다. TV를 통해 동해바다 멀리에서부터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애국가나 홀로아리랑을 들으면서 잠잠코 있던 애국심을 조금 꺼내 보기도 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한 번씩 일본에서는 독도에 대한 한국의 강제점유를 규탄하기도 한다. 이명박이 갑자기 독도를 방문해 사진을 찍고 그것이 9시 뉴스는 물론 다음날 조간신문의 1면을 장식한 후 일본에서는 난리가 났다. 강하게 규탄하고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렇게 독도는 한국에게도, 일본에게도 첨예한 갈등의 한가운데에 있는 존재다.

와다 하루키는 일본 내 진보적 역사학자 중 한명이다. 그의 이전 작 「한국전쟁」과 「역사로서의 사회주의」(지금은 두 권다 절판된 상태다)를 읽으면서 굉장히 놀랐다. 구 소련사 전문가이면서 동북아시아 전문가이기도 한 그의 시각은 그 전에 읽었던 어떤 한국 역사학자의 의견보다 구체적이고 객관적이며 진보적이었다. 특히 일본의 군국주의의 잔재와 그 부활을 염려하는 그의 학자적 태도는 그저 동북아시아의 축적된 긴장 상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만 하는 정치인들과 각국의 정권의 욕심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 책 「동북아시아 영토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도 이러한 저자의 태도의 연장선에 있는 연구의 결과물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영토문제가 일본과의 독도문제에 국한되어 있지만 일본인들에게 영토문제는 한국과의 독도문제, 중국과의 센카쿠 열도문제, 러시아와의 쿠릴열도문제, 세 가지 영토문제를 떠안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주로 러시아와의 쿠릴 열도 문제에 치중하고 있다. 아마 한국과 중국보다 러시아의 근·현대사에 정통한 저자의 학문적 특성 때문인 것 같다.

 

 

“‘고유영토’란 ‘아직껏 한 번도 외국의 영토가 된 적이 없는’ 영토라는 일본 외무성의 용어법에 빗대어, 한반도는 당신들의 ‘고유영토’가 아니라는 말을 듣는다면 이웃 나라 한국 국민은 안색을 바꿔 화를 낼 것이다. 외무성의 이 용어는 이웃 나라에조차 적용할 수 없다.” (p.41)

 

‘고유영토’라는 단어는 익숙한 듯 낯설다. 단어 그대로 해석해 받아들이면 쉬운데, 이 단어가 영토문제의 당사자인 두 국가 사이에 놓이면 저자의 포현대로 “교섭의 용어가 아니라 싸움의 용어”가 되고 만다. ‘고유영토’라고 말하면 ‘불법 점거’, ‘불법 점령’이 당연하게 뒤따라 올 수밖에 없다. 이어지는 저자의 표현대로 이 ‘고유영토’라는 단어를 “듣는 측은 ‘침략자는 물러나라.’”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고유영토’라는 개념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독도야말로 우리의 ‘고유영토’이고 이것은 역사적 사료로도 증명되었고,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당연한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와다 하루키 교수의 문제제기를 접하면서 이것이 단순히 한국과 일본의 독도를 둘러싼 영토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센카쿠 열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측은 일본이다. 중국 정부가 최근 들어 이곳에 대한 영토문제를 불러일으키면서 일본이 제시하고 있는 논리가 바로 ‘고유영토’이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독도는 무인도다. 독도에 살고 있는 한국인 가정이 1가정이 있지만 일본 측에서는 형식적 서류절차에 불과하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센카쿠(중국명 다오위다오)는 무인도로 이루어진 섬의 집합일 뿐이다. 독도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 센카쿠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문제는 얽히고 설켜 있는 것이다. 센카쿠 열도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에 ‘고유영토’ 논리를 들이미는 일본 정부가 독도 문제에 대해서 ‘고유영토’ 논리를 들이미는 한국 정부를 향해 모순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웃나라 사이에 영토싸움이 몇 십 년 동안 계속되는데, 실효지배하고 있는 측이 상대의 주장을 듣고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것은 당연하다.” (p.217)

 

이런 모순되는 일본 정부 및 일본과 영토 문제를 겪는 중국, 한국, 러시아 정부를 향해 저자는 대안을 제시한다. 일제의 패망 이후 지속되고 있는 영토문제에 대해 실효지배하고 있는 측의 적극적인 입장을 제시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아예 독도가 국제적인 분쟁이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군인이 아닌 경찰을 경비대로 주둔시키고 있고 일본의 거듭된 국제사법재판소로의 제소를 무시하고 있다. 한국과 한국 국민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동북아시아의 평화적 담론을 거듭 제시하는 역사학자의 눈에는 이해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 같다. 더군다나 쿠릴 열도를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과의 갈등은 실효지배하고 있는 러시아 측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로 말미암아 조금씩 해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책에서 저자도 지적하듯이 쿠릴 열도와 독도문제를 등치시킬 수는 없다. 역사적·정치적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

 

 

“일본과 소련의 교섭 역사는 냉전의 드라마였다.” (p.143)

“1986년 시작된 소련에서 러시아로의 대변환의 역사 속에서, 냉전이 끝나고 영토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찾아왔다.” (p.195)

 

쿠릴열도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전향적 태도는 전적으로 정치·경제적 이득을 위한 러시아의 목표에서 기인한 것이다. 소련에서 러시아로의 대변환 속에서 러시아는 일본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했을 것이다. 이런 명백해 보이는 요인을 책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쉬운 대목이었다. 하지만 쿠릴 열도 문제를 둘러싸고 실효지배를 하고 있는 러시아의 전향적인 태도에 비해 일본의 어이없는 대응과 논리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고 분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놀라웠다. 아무리 러시아사 전문가라고 하지만 일본 학자가 일본 정부에 대해 이 정도로 비판적인 논조를 펼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만약 한국의 역사학자 중 한 사람이 독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에 대해 한국정부의 전향적인 태도를 요구한다면 그 사람의 학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에토로후 섬과 구나시리 섬은 남 지시마가 아니며, 지시마 열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외무성이 만들어낸 궤변은, 이케다 수상의 ‘지리상의 대발견’으로 마침내 국가의 진리가 되었다. 지금은 전 국민이 그 거짓말을 받아들이고 있다.” (p.118)

 

사실 쿠릴 열도를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의 갈등은 19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일본과 러시아는 예전 일본 제국주의와 소련 제국주의 시절부터 4번이나 전쟁을 치른 상대이기도 하다. 쿠릴 열도를 둘러싸고 철저하게 양국 국민들이 첨예한 갈등으로 대립하는 것이 일견 당연하게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와다 하루키 교수는 문제의 기원과 역사적 과정 현재의 상황에 까지 자세하게 사료 분석을 통해 접근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먼저 일본 외무성이 지금껏 견지하고 있는 궤변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박한다. 1855년 맺어진 러·일 통상조약과 1875년 맺어진 가라후토·지시마 교환교약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일본 외무성이 오역을 하거나 정본의 기록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조약의 정본은 일반인들은 관심이 없다. 접근할 수 있는 경로도 존재하지 않고 그런 것을 일일이 찾아 볼 여유도 없다. 그래서 일본 정부의 외무성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것이 맞는 것인 줄 알았던 것이다.

 

 

“정본과 비교하여 가장 큰 차이는, 정본에서 ‘쿠릴이라는 섬들의 집단’이라는 표현을 ‘쿠릴 군도’로 바꿔 마치 쿠릴 열도와 동의어처럼 보이게 했다는 점이다. 러시아에게 양도받은 쿠릴 열도의 부분이 일본제국에 속한다는 정본의 정확한 문장을 ‘쿠릴의 모든 섬은 일본제국에 속한다’고 말을 바꾸었다.” (p.131)

 

아주 간단한 사실 관계 확인만 하면 일본 외무성이 수십 년간 견지하던 논리가 궤변이고 왜곡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쿠릴 열도의 부분이 일본제국에 속한다는 정본의 문장을 ‘쿠릴의 모든 섬’으로 오역한 일본 정부의 용감함에 박수를 보내야 하나? 아마 소련이 완전히 무너져 대국의 기운을 상실하면 그때 오역한 사본을 가지고 쿠릴 열도 전체를 차지하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렇게 정본을 간단하게 오역해 이제껏 영토문제의 주요 논리로 사용했던 일본 정부에 대한 저자의 날선 비판은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조심스럽지만 독도문제에 대해서도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한국 학자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시나 일본과의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갈등으로 인해 사료와 자료를 왜곡한 일이 있다면 제대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이후에 혹시 있을지 모를 독도문제에 대한 분쟁에서 창피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막연하게 애국심에 호소하고 일본에 대한 적개심에 기대어 독도문제를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올바른 판단으로 보이지 않는다.

 

 

“국가와 국경도 상대화가 되는 것이 역사의 추세이다. 그 안에 존재하는 국가의 벽을 여러 가지 이치를 깊이 생각하여 넘어서면서 국민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유권은 양보하면서 그 활용에 참가하겠다는 생각은 이 인류사적 요청에 응답하는 것이며, 세계라는 틀에서 살아가는 일본에 적합한 방식이다.” (p.183)

 

와다 하루키 교수는 좀 더 심도 깊은 대안을 제시한다. 국가와 국경이 상대화 되어 가는 역사적 추세에 따라 영토문제에 대해서도 조금 더 유연한 각국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영토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근본적인 이유에는 대부분 자본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 자국의 어민들이 더 큰 수역권을 확보할 수 있고 인근의 지하·해저 자원을 차지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국가 간 갈등을 풀어내는 것이 자본의 논리에만 천착한다면 결코 영토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어느 국가가 나서서 통 큰 양보를 할 수 있나. 저자는 소유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흐리게 해서 공동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문제가 되는 섬의 현재 상태, 즉 현상(現狀)과 섬 주민들의 생활은 되도록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p.259)

 

쿠릴 열도의 북쪽 일부는 러시아 국민들이 살고 있고 남쪽 일부는 일본 국민들이 살고 있다. 2세기 전 분명한 조약으로 쿠릴 열도의 실제적 소유권이 정해졌지만 일본 정부의 궤변으로 갈등이 조장되었고 냉전 이후 다소 갈등이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독도와 센카쿠 열도와는 달리 많은 러시아와 일본의 국민들이 살고 있는 쿠릴 열도 문제는 쉽게 어느 한쪽의 양보나 전향적 태도를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저자는 공동소유를 제시한다. 단, 첨예한 갈등이 되고 있는 2개의 섬에 살고 있는 러시아 국민들의 현재 생활을 유지하면서 일본 국민이 함께 공존하는 방안이다. 이제는 일본 땅이 되었으니 모두 러시아로 내쫓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전향적인 방안이다. 공동 어로수역은 물론 자치도 공동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갈등의 원천이 되었던 2개의 섬은 러시아와 일본의 공동영토가 되는 것이다.

다소 이상적인 대안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런 방안이 채택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기존의 대안과 갈등을 조장하고 키우는 것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쿠릴 열도 문제에 대한 저자의 대안이 독도문제에 등치될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역사적·정치적 상황이 쿠릴 열도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국제사법재판소의 제소를 한국이 거부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도 지배의 부당성을 일방적으로 표출하는 모양새가 되어 오히려 대립이 격화되는 효과밖에 없다.” (p.262)

 

독도문제에 대한 저자의 지적에 대해 반감이 드는 것은 이제까지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명제와 진리가 깨어지는 것은 아닌가 라는 염려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거부는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를 하면 국제분쟁이 되고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국력이 더 강한 일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 독도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기인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국 국민들이 아마 대다수일 것이다. 계속 무시하고 거부하면서 국민의 뜻을 한 데 모으는 것이 더 시급한 일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이 되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고 말이다.

책을 다 읽고 서평을 작성하면서도 잘 모르겠다. 계속 이렇게 갈등의 불씨를 유지하면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저자의 지적대로 싸움의 논리가 아니라 교섭의 논리로 태도를 전향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말이다. ‘독도는 우리 땅’을 자자손손 마르고 닳도록 부르고 기억하고 외치는 것이 맞다면, 정부 차원에서 뭔가 준비를 하던가 연구를 하던가 해야 할 텐데 딱히 그런 것도 없어 보인다.

혹시나 독도 인근 해역에서 일본 해군과 한국 해군 사이의 군사적 행동이 가시화 된다면 그것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된다. 적어도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주장을 진리의 반열에 놓기 위해서 그간 제시했던 한국의 각종 역사적 자료들에 대해 면밀한 분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이 할 수 없으니 역사학자 내지는 정부 당국에서 해야 한다. 혹시나 벌어질 지모를 파국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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