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성공 - 더 가치있게 더 충실하게 더 행복하게 살기
아리아나 허핑턴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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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아직도 젊고 어리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어?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됐나?’싶을 때가 있다. 20대 초·중반 새벽 3시30분에 하는 유럽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빼놓지 않고 시청했었다. 새벽 3시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다가 3시30분부터 5시30분까지(당연히 새벽)경기를 시청한 후 잠이 들거나 잠시 잠들었다가 경기 시작 전 일어나 시청하고 했다. 알람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잠들기 직전까지 나는 잠들지만 깨어 있을 뇌에 명령을 내려놓는다. ‘꼭 3시30분 즈음에 일어나야 해!’ 그러고 나면 반드시 일어났었다. 유럽축구를 좋아하는 내게 챔피언스리그 경기는 생활의 활력소였다. 한숨도 자지 못하거나 1,2시간 쪽잠을 자고 나서 학교에 가거나 직장에 가서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주말에 하는 프리미어리그 경기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11시30분에 시작한 축구 경기를 분명히 보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하프타임이고 잠시 꾸벅하다가 깨 보면 후반전 30분이다. 아~ 정말 예전 같지 않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혹 보신다면 역정을 내시며 나무라실 수도 있지만 요즘 들어 내 몸의 퇴화과정을 인정하고 있다. 2년 전쯤 만성피로를 겪은 적이 있었다. 잠을 자도 피곤하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고, 하루 종일 무기력할 때도 있었고 좀처럼 즐겁거나 흥분되는 일도 없었다. 처음에는 건강상의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다행이 그건 아니었다. 하루, 이틀, 한 달 그렇게 무기력하고 피곤한 나날을 지내다 시간이 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런 증상들이 사라졌다. 이전보다 더 바쁘게 산 것도, 다른 큰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특별한 일이나 활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이 책 「제3의 성공」을 읽으며 그 때를 다시금 돌이켜 보다가 2년 전 그 무더웠던 여름 저녁이 생각났다. 딱 하나 기억나는 것은 달리기였다. 30대 이후 급격하게 불어난 뱃살과 옆구리 살을 빼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너무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여름 티셔츠가 있어서 입으려 했는데, 툭툭 삐져나온 살 때문에 급격히 다운된 후 살을 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이어폰을 귀에 끼고 달렸는데, 한 여름 밤에도 열대야가 지속되는 그 해 여름에는 이어폰이 땀에 절어 고장이 나기도 했다. 여름 내내 달렸다. 아무리 더워도 긴팔 상의를 입고 달렸다. 한참 땀을 흘리고 달리고 나면 개운하고 상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달리는 그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건설적이거나 내 삶을 돌아보거나 앞으로의 희망을 꿈꾸는 그런 생각만 한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경우 쓸데없는 잡념, 뜬구름 잡는 생각, 혹은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단순히 복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2년 후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렇게 더웠던 그 여름날의 달리기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만성피로와 무기력을 날려 준 결정타였음을 알게 되었다.

책에서 저자 아리아나 허핑턴이 제시하는 것도 그것이다. 그녀는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나는 스미스 칼리지 졸업생들에게 기존의 성공 개념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역설했다. 돈과 권력이 기준인 기존의 성공 개념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고” (p.11)

“웰빙과 지혜와 경이로움 이외에, 성공을 판단하는 제3의 기준을 떠받치는 마지막 기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적극적인 마음으로, 감정이입과 측은지심에서 비롯된다.” (p.19)

웰빙과 지혜, 경이로움과 베풂이다. <허핑턴포스트>로 일약 가장 주목받는 언론인이자 경영인이 된 그녀가 바라보는 성공의 기준은 이전의 기준들과는 다른 것이다. 사실 네 가지의 기준이 한국어판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왜 <제3의 기준(혹은 길)>이 아니라 <제3의 성공>으로 번역되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녀는 이 책에서 성공의 지름길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metric’이 어떤 이유에서 ‘성공’으로 번역되어 제목으로 붙여졌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그녀는 <허핑턴포스트>가 성공가도를 달리던 어느 순간, 죽음의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현대인들은 앞만 보고 산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앞만 보고 달려가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한 눈 팔거나 여유 있게 삶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암 환자들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암 진단을 받은 후 비로소 자신의 몸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는 인터뷰가 나온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가능하다면 너무 억울한 일이다. 아리아나 허핑턴은 그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자신은 죽음의 문턱에 가서야 ‘삶은 다른 방식으로도 존재할 수 있어. 다른 길이나 기준이 있어.’라고 깨달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쓴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솔직히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었다. 2년 전 이유 없이 지속되던 만성피로와 무기력함을 이겨낸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소 불안하고 불투명하며 걱정되는 내 삶의 여정에서 어떻게 하면 다시 한 번, 아니 몇 번이고 닥칠지 모르는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지. 그 방법 하나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명상은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뉴에이지 세대의 한 수단이 아니다. 명상은 이제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행위, 다시 말하면 한층 생산적이고 적극적으로, 또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더욱 건강하게 세상에 동참하는 걸 도와주는 행위로 여겨진다.” (p.66)

“명상을 습관적으로 수행하기에 적합한 조용한 장소를 선택하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정하라.” (p.143)

그녀가 제시하는 <웰빙>은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곳에서 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명상이나 충분한 수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내게는 명상이라는 부분이 가장 크게 와 닿았다. 명상의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명상은 조용하고 집중할 수 있는 혼자만의 장소가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내게는 혼자 달리는 1시간에서 1시간30분 정도의 시간이 명상이다. 물론, 차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와 달리는 도중 마주치거나 추월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고 갑자기 만나는 소나기도 있지만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달리는 동안 나는 내 속으로 들어간다. 내 안으로 집중이 된다.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2년 전의 기억을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후련함과 시원함, 상쾌함과 개운함을 말이다. 도, 수양, 이상한 종교단체 등의 명상과 같은 기억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상이라고 하면 별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별 관심도 없다. 명상이 크게 효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도 별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방법적인 측면이 아니다.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자신만의 명상 즉, 집중할 수 있는 형태의 행위나 상태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내게는 달리기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 어떤 이들에게는 충분한 수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형태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접근은 저자가 책에서 제시하는 나머지 3개의 또 다른 기준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제시하고 있는 제3의 기준은 지혜이다.

“우리는 더 예뻐야 하고 더 날씬해야 하며, 더 섹시하게 보이고 더 성공해야 하며,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훌륭한 엄마와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압력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p.195)

우리나라처럼 이것이 큰 사회적 기준이 되고 있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입사시험 면접관들은 지원자의 외모를 보고 5초 안에 판단한다고 한다. 그(그녀)가 아무리 면접 시 명쾌한 답변을 하고 제시하는 기준에 충족된다 하더라도 애초에 지원자의 외모를 보고 판단한 그 짧은 순간의 기준이 바뀌는 확률은 대단히 작다고 한다. 뭐 외모 지상주의라는 말은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도드라진다. 드라마들을 보면 집 안에서도 풀 메이크업에 풀 헤어로 세팅한 여배우들이 잠옷을 입고 잠에 들거나 일어난다. 자고 일어나면 당연히 부스스 해야 하는데, 너무들 예쁘다. 아이돌이라고 나오는 아이들은 남자아이들이나 여자아이들이나 너무들 날씬하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 아이들의 경악할 만한 식단을 알고 나면 ‘불쌍하다~’라고 생각하다가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또 다시 다이어트를 다짐한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와 기준은 끊임없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되어야 하고, 일 잘하는 직장인이 되어야 하고, 훌륭한 아내·남편·부모·친구가 되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압력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이들과의 비교의식에서 오는 열패감을 감당하지 못하면 힘들어진다.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우월감이 아닌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돌아볼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명상이 될 수 있다. 나는 물론 달리는 시간이다.

아리아나 허핑턴이 제시하는 나머지 두 가지 기준은 경이와 베풂이다. 우리의 삶을 좀 더 윤택하게 하고 보람 있게 하며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게끔 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개인적으로는 ‘경이’에 주목한다. 나는 기독교 신앙인이다. 교회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교회의 모습에서 실망하거나 좌절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진 신앙을 내동댕이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또 그럴 때마다 내 신앙을 다시금 일깨우고 다지게 되는 ‘경이’의 순간들이 꼭 있었다. 너무나 개인적인 경험이라 밝힐 수는 없지만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부터 우연히 마주한 상황, 의도치 않게 읽게 된 문장 하나,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다. 나는 유신론자다. 당연히 무신론자도 존중한다. 그들의 무신론도 하나의 믿음이자 신앙이다. 신이 없다고 믿는 것이다. 내게는 신이 없다고 믿는 믿음이 더 크다. 신이 있다고 믿는 믿음과 신앙이 내게는 더 자연스럽다. 종종 마주하는 ‘경이’의 순간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몸이 너무 피곤하고 하루하루 사는 것에 허덕이다 보면 찾을 수 없다. 물리적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도 제3의 기준이나 길 따위에 관심이 없으면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일상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가장 아끼고 좋아 하는 여름 티셔츠를 멋있게 입지 못할 것 같아 시작했던 2년 전의 달리기가 나에게 ‘제3의 기준 혹은 길’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어렵거나 특별한 노력이나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일단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그 문서에서 손을 떼고, 스마트폰에서 손을 떼고, 그 사람들과의 대화를 중단하고 생각부터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여전히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고 손가락들은 키보드위에서 춤추고 있으며, 퇴근시간은 도무지 다가오지 않고 그저 퇴근 후 술자리만 기다리고 있다면 ‘제3’은커녕 그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도 설 자리를 찾아라. 지혜와 마음의 평화와 장점을 발휘 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라.”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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