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상륙 작전 2 인천 상륙 작전 2
윤태호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인천상륙작전 2권의 부제는 잔인한 여름이다.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해방 후 미군정 시기를 거쳐 한국전쟁 전·후가 가장 폭발적이며 혼란한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윤태호가 그려내는 미군정 시기는 한 국가의 존망이 다른 국가의 군사정부에 의해 좌지우지 되던 시절이었다. 말 그대로 참담한 시절이었다.

앞서 1권에서도 자세하게 그려지는 것처럼 자고 일어나면 테러가 자행되고 실제로 당시 한강변에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가 많았다고 한다. 누가 누구의 편인지, 누가 누구의 적인지조차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었던 혼돈의 시대였다.

1권에서는 한상근과 한상배 형제를 중심으로 인물들에 초점이 맞춰져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 2권에서는 당시의 시대상과 무엇보다 일반 백성들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모습이 편안하거나 안정되었을 리는 만무하다.


 


 

황망하게 물러 간 일제는 그들이 운영하던 기업과 가게 등을 제대로 처분하지 못했다.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가장 시급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두고 간 것이 많았다. 점령국이 남기고 간 기업이나 재산 등을 통칭해 ‘적산’이라고 하는데, 작가는 놓치지 않고 언급한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를 주름잡는 웬만한 기업들 중 대다수가 일제의 ‘적산’을 인수해 큰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당시만 해도 조선인이 기업을 운영하거나 하는 일이 드물었으므로 전폭적인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땅짚고 헤엄치기인 것이다. 물론, ‘적산’으로 일어선 기업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굳이 밝히려 하지 않는다. 엄청난 특혜와 지지를 받고 굴지의 기업으로, 재벌로 성장했음에도 여전히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보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태생부터 부당함으로 시작되었는데 뭘 더 기대하겠나. 당시의 ‘적산’은 단지 기업들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책에서도 그려지고 있는 것처럼 소위 돈 꽤나 있는 지주들 및 부자들은 목 좋은 곳에 ‘적산’을 받아 그때부터 이미 부동산 투기를 시작한 자들도 있었다. 미군정 당시 지주나 부자였다면 열의 아홉은 일제에 부역한 자들일 것이다. 그들은 일제가 패망했음에도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후에 반민특위가 설치되기는 하지만 실패하면서 이들을 단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영원히 놓치고 말았다.



 

일본인들은 미군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만약 미군이 상륙한다면 자신들의 목숨은 끝날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보통의 경우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천으로 들어 온 미군정은 오히려 그들과 어울렸다. 일본인들과 그들에게 부역했던 친일파들을 등용하고 그들에게 더 큰 힘을 부여했다. 탈출구 하나 없이 고양이 앞에 마주한 쥐신세라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당장 큰일이 나고 목숨이 날아가야 할 판에 도리어 주인 노릇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인들은 상륙한 미군 장교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취하게 했다. 일본에 부역한 조선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새롭게 편성된 미군정의 조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친일경찰이 대한민국 경찰에 들어가 독립 운동가를 때려잡던 그 모습으로 좌익, 공산당을 때려잡았다. 급기야 일제는 무분별하게 화폐를 발행하기에 이른다. 자신들의 안위가 보장된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빼먹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빼먹은 채 고국으로 편안하게 돌아간 것이다. 무분별한 화폐 발행은 당연하게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영문도 모른 채 곱절로 뛰어버린 물가에 백성들은 더 배고파질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46년 6월, 대홍수가 발생했다.

“대홍수

 해방 이후 가장 큰 재난이었다.” (p.104)

“곳곳에 치우지 못한 시체가 썩고 있었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대홍수가 지나고 대기근이 시작되었다. 식량 부족으로 농민과 서민들의 삶은 파탄에 이르렀다.” (p.118)

 

근·현대사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해방 1년도 지나지 않아 엄청난 홍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제대로 국가의 기반이 갖춰진 것도 아니고 일제와 그 부역자들을 제대로 청산하지도 못한 혼돈의 상황에서 엄청난 재해가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 지금처럼 재해에 대한 대비가 되었을 리도 없었을 테고, 당장 끼니를 때우는 것조차 너무나 힘들고 모진 일상이었던 일반 백성들에게 대홍수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경북 청송에선 200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하지만 일본인이 떠난 본정동은 미군과 자본가와 지주들과 정치인과 그들의 하수인들로 불이 꺼지지 않았다.” (p.119)

 

시골이지만 경북 청송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200명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중심에 있던 이들은 여전히 잘 먹고 잘 살았다. 대홍수가 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그들에게는 딴 나라 일이었다. 반납하거나 몰수되지 않은 재산은 여전히 그들의 것이었고 일제가 두고 떠난 ‘적산’까지 떠안은 이들을 멈출 것은 없었다. 새롭게 진주한 새 주인 미군정은 이들이 선사하는 파티와 돈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에게 조선은 그다지 중요한 전략적 포인트가 아니었다. 일본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었다.

 

좌익과 우익의 갈등과 테러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평안도와 경상도가 상관없이 한 나라 한 민족이라 생각되던 것이 이제는 달라졌다. 40년 가까이 압제하던 일제에게 함께 고통 받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이념이라는 괴물에 의해 서로 죽고 죽이기에 이르렀다. 이념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세상은 조선공산당이 파렴치하게도 지폐 위조를 시도했다고 믿었다. 일제 때 경찰로 복무했던 남한 군정 경찰은 인쇄공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했다. 공산당을 없애지 않으면 자신들도 북한의 친일 복무자처럼 숙청될지 모른다는 절박한 인식은 더욱 그들을 잔인하게 만들었다.” (p.71)

 

이승만이 남한의 단독정부를 세우려는 야욕을 세운 후, 미군정은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우익세력과 거의 대등한 조직력과 힘을 가지고 있던 좌익은 이제 없애버릴 대상이 되었다. 소련군이 진주한 북한에서는 친일 복무자를 처형했다. 그 위험을 피해 남한으로 내려온 자들이 각종 우익청년단과 테러조직에 가담했다. 이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좌익을 때려잡았다. “공산당, 빨갱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그때부터 한반도의 남쪽에는 레드컴플렉스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미 한국전쟁 이전에 말이다.

사람은 계속해서 죽어갔다. 미군정이든, 우익이든, 김구든, 이승만이든 일반 백성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홍수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고 곳곳에 처리하지 못한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했다. 이 책은 그것에 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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