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청춘, 문득 떠남 - 홍대에서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모로코까지 한량 음악가 티어라이너의 무중력 방랑기
티어라이너 글.사진 / 더난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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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여행을 가고 싶다. 멀리, 나를 아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는 그런 곳으로. 2008년이 내겐 그랬다. 그해는 초반부터 어려웠다. 아버지의 암 발병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암에 대해 이제는 온 몸으로 경험하게 되는 고통이었다. 3년째에 접어드는 직장생활은 더 혼란스러웠다. 주5일 근무를 해야 하는데 나는 늘 주7일 근무를 했다. 하는 업무도 만나는 사람도 내가 원하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매달 20일이 되어 통장에 찍히는 월급을 보면서 겨우겨우 버텨나가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나만큼 힘들게 일해서 버는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손에 쥘 수 있어서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7년째 교제해오던 지금의 아내와의 관계도 뭔가 이상했다. 눈에 드러나게 갈등이 있거나 혹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조차 하지 않았지만 우리 둘 다 그 당연한 결혼을 앞에 두고 망설이고 있었다. 살이 쪘다. 어려서부터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 늘 어머니가 걱정하셨는데 매일 앉아서 일을 하다 보니 옆구리에 아랫배에 지방이 끼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고민하고 토해내는 것이 유이(二)한 낙이었는데 그것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드럼도 칠 수가 없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만큼 내게는 유이(二)한 낙이었는데 칠 수 있는 공간도 시간도 없었다. 늘 플레이하던 리듬도 필인(fill in)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드럼이 제대로 공간을 채우지 못하니 합주는 불협화음을 낳았다. 돌이켜보면 총체적인 난국이었던 것 같다. 직장 동료들과의 술자리는 늘 그 수준에서 맴돌았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제껏 으레 해오던 관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막대기를 꽂아 휘이 저으면 불쾌한 찌꺼기들이 부유할 것이 뻔해 깊이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다른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울란바타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초등학교 때 서울에서 포항까지 가는 국내선을 타본 것이 전부였던 내게 장장 4시간에 달하는 비행시간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추락의 공포를 겪을 만한 터뷸런스는 아니지만 기체의 작은 요동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비행기 안에는 몽골인 들보다 한국인들이 더 많았다. 아마 여름 방학을 맞아 학교나 교회에서 단체로 여행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울란바타르 공항에서 빠져 나와 처음 맡는 몽골의 냄새는 묘했다. 생전 처음 맡는 냄새였지만 낯설지 않았다. 그렇다고 편안하지도 않았다. 아무튼 나는 제대로 사직서도 쓰지 않고 제대로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몽골로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해야 살 것만 같았다.

 

 

“나는 포르투의 골목이 너무 좋다. 골목길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빈곤이 턱하니 넋을 놓고 앉아 여기가 유럽의 후진국임을 실감케 한다.” (p.103)

 

이 책「느린 청춘, 문득 떠남」은 뮤지션인 저자가 스페인과 포르투갈, 모로코를 여행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저자인 티어라이너의 이름을 처음 들었는데 그가 작업한 드라마와 영화 음악은 이미 내가 무척 재밌게 봤던 작품들이어서 놀랐다. 그의 여행기는 담담하다. 수천km날아가 여행하기 위해 대단한 준비를 한 것도 아니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여행서적과는 달리 단도직입적이다. 내밀한 자신만의 숨소리가 그대로 녹아 있어 공감이 갔다. 그가 스페인을 여행하고 나서 포르투갈의 포르투의 한 골목에서 받은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나도 그랬다. 몽골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지금의 처제가 2년 동안 KOICA단원으로 몽골에서 일했었던 경험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 당시 처제가 홈스테이를 했던 몽골 가족의 전화번호만 받아 들고 떠난 터였다. 갑작스레 떠나야 했기에 준비는 고사하고 울란바타르 국제공항 앞에서 현지 택시기사들에게 빙 둘러 싸인 후에도 한참을 ‘여기가 어딘가~ 나는 누구인가~?’ 멍해 있었다. 일을 하면서 집에 전화해 아버지의 상태를 매일 물어보면서 몽골이 나를 받아줄지, 내가 몽골을 먼저 알아야 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면 훌쩍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곳에 닿았다. 떠나기 전 몽골 가족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주소를 받았다. 작은 메모지를 펴 보이며 ‘누가 먼저 나를 태우는 행운을 잡을래?’라는 눈으로 나를 둘러싼 택시기사들을 노려봤다. 책이나 TV에서 보던 것처럼 몽골 사람들은 그렇게 생겼다. 여름이라 윗옷을 입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배는 남산 만해 흡사 쌍둥이를 잉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30분을 넘게 시내로 들어가 몽골 가족을 만났다. 그들의 아파트에 들어가니 할아버지께서 나를 맞았다. 전통 옷감을 내 어깨에 두르고 안았다. 축복의 말을 건네주고 코담배를 권했다. 눈짓 손짓으로 대충 따라하며 코담배를 들이 마시는 순간. 아찔해졌다. 10분 넘게 재채기를 하고 눈물을 흘렸다. 티어라이너가 포르투의 골목에 반해 정처 없이 골목을 거닐다 갑작스레 마주친 빈곤의 실재 앞에 나도 덩달아 아찔했다.

여행은 떠나야 알 수 있다.

 

 

“차를 타고 아무런 제지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건, 삼면이 바다고 한 면은 38선으로 막힌 우리에게는 낯선 경험이다.” (p.90)

 

이미 여러 번 나의 다른 리뷰나 포스팅에서 언급한대로 그때 인연을 맺었던 몽골 가족들과는 지금도 가까이 지내고 있다. 할아버지께서 귀한 손님을 맞는 몽골의 전통 방식대로 코담배를 권해 주셨을 때 분명 뭔가 손짓을 하셨던 것 같다. ‘너무 많이 들이마시면 안 돼~’라는 말이었을까? 한참을 코담배로 뒹굴다가 디마 누나가 전해준 수태차를 받아 들었다. 우유보다는 좀 더 점성이 있고 율무차 보다는 좀 더 점성이 덜 한 그런 전통 차였다. 비위가 좋지 않은 내가 마실 수 있을까 싶었는데, 웬걸~! 맛있었다. 한 번에 털어 넣고 한 그릇을 더 청했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내게 가장 낯설고 충격적이었던 몽골의 경험은 사막이다. 사막으로 가는 미니버스는 비포장도로를 고스란히 내 엉덩이로 전해주는 엉터리 서스펜션을 장착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10시간 넘게 달리고 달려 새벽녘에 도착한 사막은 또 다른 몽골이었다. 한 여름이지만 추웠다. 별은 내 가슴 바로 위에 쏟아졌다.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수태차를 마시며 유목민이 게르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1시간 남짓 지났을까? 멀리서부터 밝아왔다. 지평선의 일출. 사막의 일출. 그 장엄하고 놀라운 일출이 티어라이너의 국경을 넘나든 낯선 경험과 비슷할까? 저 멀리 끝도 보이지 않는 하늘과 맞닿은 땅에서부터 조그맣게 빛이 모였다. 조심스레 별과 어둠을 밀어내며 초원과 사막을 감싸왔다.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준비되지 않은 감동이었다. 감동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벅찬 전율이었다. 원래 유목민 출신이던 몽골 가족과 함께 모닥불에 앉아있던 다른 몽골 사람들에게는 내가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봐오던 동해의 일출을 또 한 번 보는 것에 불과했겠지만 내게는 유일한 것이었다(나중에 한국에서 몽골 가족과 함께 울산에서 일출을 봤다. 그들은 내가 사막 일출을 보며 감동을 받았던 것만큼 감동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여행은 낯선 것이다.

 

 

“외국인 특유의 암내도 굉장해서 기네스북에 등록하지 않았다면 대신 신청해주고 싶은 정도였다. 물론 실제로는 곰대하듯 조용히 뒤에 앉아 그를 곰에 풍자한 글이나 썼다. 난 평화주의자니까.” (p.36)

 

3주 동안의 몽골 여행은 아쉬운 것이 더 많았다. 그래도 미련이 남고 걱정이 잔뜩 남아있었는지 돌아올 비행기를 취소하는 용기를 발휘하지 못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갑자기 떠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는 질문이 동일했지만 매번 같은 대답을 하면서도 싫지 않았다. 스스로 대견해 했던 것 같다. 새롭게 직장을 구해야 하고 여전한 삶의 문제와 당면한 어려움은 똑같았지만 그것을 마주한 내 태도가 조금, 아주 조금은 바뀌었던 것 같다. 몽골 가족은 사막의 일출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같은 아시아 사람이지만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행동하는 것까지 모조리 다른 대륙 기질의 그들과 함께 3주를 지낸 것은 여러모로 행운이었다. 두고두고 곱씹고 돌이키고 자랑스레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에게도 내가 퍽 인상적이었던지 아직까지 가까이 지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의 저자처럼 언제 외국인의 암내를 바로 옆에서 깊이 들이마실 수 있나. 이태원에 가도 외국인 강사를 만나도 쉽게 경험할 수 없다. 향수도 없고 변변한 씻을 곳도 없는 곳에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오랜 시간 함께 있어서 그들만의 암내를 맡을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은 재미있다.

 

 

“여행은 결국 사람” (p.199)

 

결국 여행은 사람이다. 여행에 대한 기억이 조금이라도 좋았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여행은 사람이다. 만났던 사람과 현재까지 연을 이어올 수 있는 행운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좋다. 우연히 만난 여행객과의 대화는 잊히지 않는다. 그들의 모습 자체로 여행이니까. 스페인과 포르투갈과 모로코에 내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가고 싶다고 다 갈 수 있다면 그것은 매력적이지 않다. 물론, 나와 이 책의 저자처럼 별다른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계획하고 심신을 단련하면서 맞이하는 여행의 맛은 또 다를 것이다. 나도 그랬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몽골여행은 첫 번째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다르게 가면 또 다른 여행을 만난다.

중요한 것은 떠나는 것이다. 어떤 형태와 어떤 방법으로든. 비행기 티켓을 먼저 예매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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