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기자로 산다는 것
문정우 외 50인 지음 / 시사IN북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시사IN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이숙이 편집국장 때문이다. 예전 직장의 출근 시간이 좀 빨랐던 편이라 출근길 자동차 안에서 평소 좋아하던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 한 꼭지에는 김종배라는 정치평론가가 늘 진행을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굵은 남성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분위기 있고 목소리만으로도 보통 기자는 아닌 것 같은 여성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 그 여성 정치평론가를 소개하는 손석희씨의 멘트가 낯설었다.

“시사IN의 이숙이”

‘엥? 시사IN?? 뭐지?’

속으로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MBC 내에서도 척결 대상이었고 시선집중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객관적 팩트를 가지고 평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때는 객관적 팩트로 평론을 한다는 자체가 반정부적이고 정권에 대한 비판적 인사로 몰렸었기 때문에 속으로 이런 생각도 했다. ‘이 사람 용기가 대단하네~ 어떻게 여길 나와~’ 했다.

 

 

이 책 「다시 기자로 산다는 것」에서는 지금은 시사IN의 편집국장인 이숙이씨가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하게 된 경위도 나와 있다. 주위의 많은 걱정을 무릅쓰고 출연을 결정한 것이라는 것을 책에서 확인하니 몇 해 전 출근 시간에 했었던 내 생각이 다시금 떠올라 흥미로웠다.

 

이후 시사IN을 다시 인지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주진우 기자 때문이다. (재작년 말부터 작년 말까지 시대가 준 결핍을 채워줬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나꼼수에 출연한 주진우 기자를 알게 되면서 그가 속해있는 사사IN을 알게 되었다. 나꼼수에 출연해 주진우 기자가 가장 처음 하는 멘트는

 

“정통 시사 주간지 시사IN의 주진우입니다.”였다.

원래 말이 좀 어눌하고 나꼼수라는 방송 자체가 웃음과 해학 풍자와 비꼼, 비판과 조롱이 얽히고설킨 방송이기에 저 문장 하나 말하는데도 옆에서 물어뜯고 비웃고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하냐”고 난리를 쳤다.

주진우 기자가 나꼼수 다른 멤버들의 비아냥거림과 조롱을 들으며 발음했던 “정통 시사 주간지”가 결코 함부로 말할 수 없고 그냥 한번 웃어넘기는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눈물과 땀과 피가 어린 이름이라는 것을 이 책 「다시 기자로 산다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삼성 기자단 삭제 사건’이 터진 후 1년 동안 뭉쳐 싸워 온 22명의 시사저널 파업기자단은 이날 눈물의 고별식을 마친 뒤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새 매체 창간을 엄숙히 선언했다.” (p,17)

 

원래 시사저널이라는 주간지에서 일하던 기자들이 새롭게 창간한 언론사가 바로 시사IN이다. 대학 시절 ‘말’지와 더불어 언론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많이 보던 주간지가 ‘시사저널’이었다. 그런데 시사저널이 원래 유지하고 있었던 사회비판적 정체성과 언론으로서의 모습을 삼성에 관련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잃어버렸다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다. 일선 기자들이 정말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서 가열차게 쓴 보도가 일방적으로 회사에 의해 삭제되는 사건이 있었다. 말 그대로 언론 유린이요 탄압이었다. 기자들과의 논의나 토론은 고사하고 일방적으로 삼성에 해당하는 기사를 회사 차원에서 삭제한 것이다. 당연히 당시 시사저널 기자들은 항의를 하고 파업을 시작했다. 단식농성에서부터 1인 시위까지 1주일 내내 하나의 기사에 매진해도 모자를 기자들이 거리로 나 앉은 것이었다. 당시 이 사건은 주류 언론에서도 큰 관심을 가질 만큼 큰 사안이었다. 일개 주간지 기자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관인 삼성에 대항해 펜과 손발을 놓고 백병전을 벌인 것이다.

생각하는 그대로 시사저널 측은 기자들을 해고하고 그들의 구미에 맞는, 자본권력에는 입도 뻥긋 하지 않을 기자들로 파업 기자들의 빈자리를 메꾸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희소식은 있었다. 당시의 파업을 두고 언론계는 물론이요 일반 시민들이 그들이 벌인 파업의 정당성과 진실함에 동의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응원하게 된 것이다.

 

 

회사와 반목해 뛰쳐나온 기자들이 합심해 매체를 만들어 성공한 예가 없었다. 세계 언론사를 뒤져봐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p.27)

 

일반 시민들과 뜻있는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는 새로운 매체의 창간이라는 기적과 같은 일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 책에서 시사IN기자들이 여러 번 강조하는 대로 이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일선 기자들이 몸담고 있던 언론사를 나와서 새로운 매체를 만들어 성공한 예는 정말 없었다. 해고당하거나 사직서를 내고 나오면 다른 언론사에 들어가거나 그냥 야인으로 살거나 둘 중 하나일 경우가 많았는데 파업 기자들 모두가 뜻을 모아 새로운 매체를 창간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책에서도 여러 번 기자들이 강조하고 감사함을 표현한 대로 처음에는 몇 만원 단위의 독자들의 후원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조금씩 더 큰 액수의 후원이 많아지고 그들조차 마음에 확신을 할 수 없었던 시사IN창간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사IN은 창간 몇 해 후 업계의 압도적 1위가 되었다. 능력이 있고 제대로 된 언론관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보도하고 취재하고 탐사하는 기자들이 회사의 눈치, 자본권력의 눈치로부터 해방되니 독수리에게 슈퍼차저 엔진을 하나 더 달아준 것이다.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고 싶은 대로 보도하는 그들에게 사람들은 공감했다.

돌이켜보면 주진우 기자가 나꼼수에 출연하기 전부터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 서점 등의 가판대에서는 시사IN이 꼭 있었다. 이름도 생소하고 낯선 시사IN이 꼭 있었다. 일간 신문은 물론이고 주간지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주간지를 발행해 온 몇몇 언론사들은 가뿐히 뛰어넘은 것은 순전히 시사IN기자들의 힘이다. 그들은 책에서 수십 번 독자들과 후원자들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뉴스를 보도하고 취재해서 알려주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시사IN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컴퓨터로 핸드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뉴스를 찾아볼 수 있는 지금 굳이 1년 정기구독을 하고 가판대에서 종이로 된 주간지를 사서 읽는다는 것은 그들의 뉴스가 흥미가 가고 궁금하고 시대가 만들어낸 결핍을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결코 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연히 출근길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숙이 편집국장, 나꼼수로 인해 전국적인 스타가 된 주진우 기자 말고도 시사IN에는 뛰어난 기자들이 많다는 것이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묘미다. 한 명 한 명의 기자들이 보석과 같다. 그들은 언론사가 자본권력에 군림해 주저앉는 꼴을 그대로 지켜본 사람들이다. 그래서 뛰쳐나와 힘겨운 파업을 진행해 본 사람들이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긴 새로운 주간지 창간도 이루어 낸 사람들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시사IN이라는 회사를 만들어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그 어떤 언론사(방송·신문을 통틀어서)보다 자유롭게 기획, 회의, 취재, 편집 과정을 논의하고 토론하는 회사를 만들었다. 그들에게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마음껏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시사IN의 기사를 제대로 한번만 정독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기사를 쓰는데 최선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하고 있는지를.  

 

“모니터와 휴대전화에 글자들이 투옥된 지 오래인 이 시대에도 시사IN 편집국은 여전히 종이와 펜이 지배한다.”(p.146)

 

어느 직장에서나 직책과 연배에 따라서 구분되는 영역이 분명히 있는데 언론사는 더욱 그럴 것이다.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 큰 사고를 칠 수 있는 것이 언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사IN은 그런 기존의 언론사가 가지고 있는 폐쇄적이고 소극적인 틀을 깨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그들의 기사가 살아 있고 생명력이 있나 보다.

 

“장일호 어리버리 정치부 1년차, 오늘도 죽자고 마신다”

 

자신을 어리버리 정치부 1년차 기자라고 소개한 장일호 기자의 부분이 인상 깊다. 이전 시사저널에서 편집국장을 하던 고종석씨와 김훈씨의 글을 수도 없이 보고 배웠다고 하는데, 과연 책에 실린 짧은 글로도 장일호 기자의 필력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짧은 호흡의 글이지만 힘이 있고 강단이 있어 보인다. 나는 모바일과 지면으로 시사IN을 애독하고 있는데 장일호 기자의 기사가 더욱 기대된다.

 

 

마음껏 취재하고 보도하는 시사IN의 특성 상 그들의 취재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조직, 기관은 참 피곤할 것 같다. 대한민국에 무수한 언론사가 있지만 시사IN만큼 그들을 피곤하게 되는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지난 오세훈의 사퇴기자회견에서도 수십 명의 기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내뱉는 오세훈의 말만 타이핑 하고 있을 때 주진우 기자가 홀로 손을 들고 질문했다.

 

“언제 사퇴하십니까?”

 

기자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대한민국에는 말을 잘 듣는 기자들로 넘쳐난다. 말을 잘 듣는 것에 더해서 듣기를 원하는 기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냥 하는 말을 논평도 없이 기자 개인의 논지도 없이 쓰는 것은 앵무새와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시사IN의 미래가 더 걱정된다. 이명박 정권에서도 어이없는 고소를 많이 당했었는데 차기 박근혜 정권에서도 시사IN 기자들이 그냥 타 언론들처럼 알아서 고개 숙일 리는 만무하고 하고 싶은 대로 보도하고 싶은 대로 취재하고 싶은대로 한다면 분명 더 많은 고소를 당한 것이 자명한데……. 걱정이다.

5년은 견딜 수 있었는데 10년은 어떻게 버텨나갈지 걱정이다.

 

독자로써,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시민으로써 진심으로 시사IN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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