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사람들에게 - 공감하라! 행동하라! 세상을 바꿔라!
스테판 에셀 지음, 유영미 옮김 / 뜨인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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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가까운 세월을 산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대단한 일이다. 고작 30년하고 몇 년을 더 산 내게도 삶은 결코 간단하거나 쉬운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100년 가까운 세월을 편하게 누리며 산 것이 아니라 현실 정치와 싸우고 무언가 바꾸기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 100세가 가까워가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 젊은이들을 향해 “분노하라.”라고 말하는 노인은 그것만으로 칭송과 존경을 받아야 한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은 스테판 에셀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2011년 그의 책 「분노하라」가 한국에서도 꽤 많은 이들이 읽은 책이 되었고 ‘올해의 책’에도 선정되었었다.

무엇보다 표류하고 있는 민심을 향해 ‘~하라.’라는 적극적인 권유를 하는 책이나 사람이 없었다. 분명히 지금 현실은 뭔가 잘못된 것 같고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누구하나 어떻게 하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던 때 스테판 에셀의 얇은 책은 타는 듯 한 갈증과 목마름을 조금이나마 가시게 해주는 청량제가 되었다.

‘가만히 앉아 있지만 말고 속에 있는 것을 쏟아내라.’

 

이제는「분노한 사람들에게」다.

불일 듯 일어난 분노를 어디로, 어떻게, 언제 분출해야 하는지를 말해줄 것만 같았다.

 

“지구상의 분노한 친구들에게 이제 우리가 모두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의 길이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p.59)

 

100살에 가까운 노인이 전 세계를 향해 소리친다. 행복해 한다. 아직 희망이 있음을……. 아직 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변화는 서로 연대하는 것을 통해 가능합니다. 특히 상황을 변화시키고 싶고 또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젊은이들이 뭉쳐야만 가능해요. 젊은이들이 정부와 금융 권력의 이야기만 들어서는 안 되고,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의식해야 합니다.” (p.129)

 

사실 한국의 대학생만큼 독립적이지 못한 대학생은 전 세계적으로 드물 것이다. 부모로부터 독립을 커녕 대학은 이제 고등학교의 연장선에 불과하고 MT, 동아리 활동, 소개팅 따위는 배부른 소리가 되었다. 1학년 때부터 도서관과 열람실 구석에 틀어 박혀 스팩을 쌓는 공부를 시작한다. 살인적인 등록금은 대학의 청춘, 로망 따위는 아주 먼 옛날 선배들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부모 잘 만난 학생은 등록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공부하고 여행 다니면서 여전히 그 학생의 부모처럼 대학생활을 즐길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치열하고 고달픈 알바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대학은 취직을 위한 예비학원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것이 현실이다. 내가 대학시절 활동했던 동아리는 당시만 해도 규모가 컸다. 전체 회원이 200명 되었다. 얼마 전 후배들에게 들었더니 작년에는 60명 정도였다고 했다. 대학생들은 학교, 도서관, 알바, 집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고 대학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로 대학 생활 내내 온몸으로 그것에 억눌려 살아간다.

그런 한국의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에게 투표도 안 하는 개념 없는 것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의식 없는 것들. 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이 사회가 젊은이들, 대학생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여전히 하루하루 삶의 문제에 천착된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일군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숙보다는 당장 정권이 바뀌면 내 아파트 시세가 어떻게 되는지가 중요한 선택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 젊은이들, 대학생들이 엄청난 열기로 투표를 했지만 쓰라린 패배의 경험을 돌려주었다.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스테판 에셀의 말은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젊은이들이 뭉쳐서 뭘 할 수 있다는 말인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학 내에서 동아리, 학회 활동조차 점점 축소되고 없어지고 있는 판국에 젊은이들,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 더욱 서글프다.

 

“젊은이들이 점령시위를 하는 건 좋고 필요한 일이에요.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나중에 정당으로 들어가 정부에 더 효과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노하고 참여할 의지와 에너지가 있는 젊은이들을 키워, 국회와 정부와 국제조직과 유엔 등의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내야죠.” (p.55)

“이 땅의 분노한 자들에게 주는 나의 메시지는 분노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책임 있는 자세로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p.159)

 

점령시위? 정당입당? 유엔?

나는 운동권의 위세가 끄트머리에 있던 90년대 말 대학에 입학했다. 잠시지만 실제로 운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아무리 목 놓아 외쳐도 나와 주지 않았다. 십 여 년이 흘렀다. 대학 내 운동권은 예전의 위용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더 이상 참여시키지 못하는 운동은 운동이 아니다. 그냥 친목 모임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당장 대학 내에서 정치적 시위를 갖는다고 하면 몇 명이나 참석할까?

정당에 대한 입당은 더군다나 한국의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다. 정치에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서 무관심한 젊은이들에게 정당 입당을 권유한다고 해도 듣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이것도 더 중요한 것은 구조의 문제인데 분노하라고 해서 분노한 그 열망과 에너지를 담아낼 수 있는 구조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혼자 책 읽고 혼자 열 받아서 소리 지르고 글을 쓰기도 하고 친구 몇과 의기투합하기도 하지만 그 이후 뭘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구조가 없다. 바짝 말라 아궁이 전체를 순식간에 데울 장작이 되었는데 불쏘시개가 없다. 제때에 타지 못하면 금세 비에 젖어버린다.

스테판 에셀은 ‘책임 있는 자세로 참여하라.’고 말한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책임 있는 자세로 참여하라……. 나는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주위의 동생들에게, 대학생들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어디에 참여해야 하는지 나조차도 모르겠는데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분노는 첫 단계다. 필요하긴 하지만 충분하진 않다. 다르게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관점, 새로운 의지가 필요하다!” (p.99)

 

새로운 생각, 새로운 관점, 새로운 의지가 아직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 스스로 이것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을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한참 타고 있는 모닥불에 엄청난 양의 차가운 물을 부으면 불을 금방 꺼진다. 그리고 불길이 잡히면서 연기가 난다. 아직도 연기로 자욱해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에 경황이 없다.

이 땅을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과 대학생들 또한 그럴 것이다.

어떻게든 해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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