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지지 않는 사슬 - 2천7백만 노예들에 침묵하는 세계
케빈 베일스 외 지음, 이병무 옮김 / 다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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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2천7백만 명의 노예가 현존한다.” (p.5)

 

 

너무나도 명확하고 확고한 첫 문장에 눈이 멈췄다. ‘노예가 2천 7백만 명이나??’

나는 먼 과거에 존재했던 노예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넋두리 하거나 힘든 일상을 푸념할 때 쓰는 ‘일의 노예’, ‘생활의 노예’ 이정도 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이 책 「끊어지지 않는 사슬」은 과거 구노예제 하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사람들과 형태는 다르지만 존재론적으로는 동일한 현대판 노예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책의 부제처럼 노예는 엄연히 동시대에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가 침묵하고 있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첫 번째는 가산노예제로 구노예제와 가장 가까운 형태이다. 두 번째는 부채로 인한 인신구속 노예제 또는 담보노동의 형태이다. 세 번째는 계약노예제로 가장 급속히 증가한 노예제 형태이다. 네 번째는 강제노동 형태이다.” (p.61∼62)

 

책에서는 현대판 노예제의 형태를 4가지로 분류한다.

두 번째 부채로 인한 구속 노예제, 담보노동과 세 번째 계약노예제가 오늘날 가장 일반화된 노예제의 형태인데,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브라질, 몇몇 아랍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지금 이 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실제로 네팔에서 NGO관련 일을 했었던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인데, 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인 네팔에서는 자녀를 식모로 파는 일이 굉장히 흔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과거 구노예처럼 한번 대륙을 이동해 팔려오면 대를 이어 노예의 신분을 벗을 수 없었던 것처럼 현대의 노예들도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1863년 6월 1일 링컨은 ‘노예해방선언서’에 서명했다.” (p.31)

“‘노예해방선언’이 발표된 지 약 140년이 지났지만 미국에서 노예제는 계속되고 있다. 노예제는 이미 종식되었다는 생각 역시 그만큼이나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p.47)

 

노예제는 고대부터 이어져 왔다. 19세기 말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노예해방 선언을 하기 전까지 관습에 의해서든, 종교에 의해서든 노예는 존재해 왔고 노예를 매매하고 사용하는 주인들 또한 존재해 왔다.

 

전 세계적으로 공식적인 노예해방 내지는 노예철폐 선언을 한다 하더라도 문자 그대로 모든 노예제가 한 번에 사라질 거라 믿는 순진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문서상에서는 분명히 노예제가 사라졌지만 종종 보는 미드에서는 여전히 아프리카의 어린 아이들을 사 와서 식모로 부리는 부유층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도 공식적으로는 폐지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인도와 네팔에서는 견고한 카스트 제도가 존재하고 책에서도 소개된 것처럼 어린 소녀를 신에 대한 제물로 바쳐 신전에서 일하는 성직자들의 성노리개가 되게 하거나 몸종으로 살게 되는 어이없는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오히려 과거에 공식적으로 노예를 사고팔던 것보다 더 치졸하고 비열한 방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

“1950년 무렵 이래로 엄청난 수의 잠재적 노예들이 시장에 쏟아져 들어왔고 이에 따라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평균 가격은 역사상 유례없이 1백 달러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p.85)

 

현대판 노예가 2천7백만 명이나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평균 가격의 곤두박질이다. 기계적으로 인간에 대한 가격을 매긴다는 것이 찝찝하기는 하지만 절대가격으로 상정해 보면 고대와 중세 그 어떤 과거보다 인간의 가격이 가장 낮은 때라고 한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며 충격을 받았다. 노예를 사고팔던 시기 아프리카에서 한 명의 노예를 사기 위해서는 지금 돈으로 2∼3만 달러가 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 당시는 한 번 노예를 사 오면 대를 이어 부릴 수 있었기 때문인 탓도 있다.

지금은 그럴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인간의 가격이 1백 달러 이하라니. 참담하다.

 

“사람들이 전쟁과 환경파괴, 자연재해로 인해 빈곤해지고 불안정해지고 삶의 터전을 잃을 때, 이들은 착취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렇게 되면 이러한 압박들로 법 규범이 와해될 때 기승을 부리는 폭력이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데 사용된다.” (p.168)

 

또한 지난 세기에 줄곧 일어났던 전쟁과 분쟁, 근래 들어 파죽지세로 밀어닥치는 자연재해와 환경파괴로 인한 자연의 역습들은 빈곤을 부추겼다. 특히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은 이러한 외부요인에 큰 영향을 받는 지역이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없어지고 나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별로 없다.

안정된 사회안전망을 통해 취업을 한다거나 보편적 복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국가에서 사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사실, 사람을 노예로 만들거나 인신매매해 팔아넘기는 일에서 여성이 상당히 많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남성이 여성을 노예로 만든다는 단순한 이미지를 뒤흔든다.” (p.127)

 

1백 달러도 되지 않는 몸값이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들은 팔려나가는 신세조차 원망할 수 없다. ‘돈을 벌게 해주겠다.’, ‘학교에 보내주겠다.’, ‘굶지 않게 해주겠다.’ 라는 꼬임에 넘어가 인신매매 되거나 강제 계약을 맺어 노예 신분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노예로 팔려 온 피해자가 다시금 가해자가 되어 자신과 같은 노예를 만들어 낸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악순환이 칼로 무를 자르듯 단번에 끊어낼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신매매 조직은 광범위하고 초국가 적이다. 그리고 각국의 정권과 공권력은 이미 그들 범죄조직과 끈끈하게 결탁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저자는 국제적 기구인 UN의 적극적인 활동을 제안하고 무엇보다 근본적인 빈곤 탈출을 도울 수 있는 선진국들의 행동을 주문한다.

 

“유럽 국가들은 채무 면제에서 엄청난 진보를 이루어, 이자 지불로 가난한 나라들의 국고를 바닥나게 했던 오래된 채권들을 소멸시켜 버렸다. 부유한 국가들이 1천1백억 달러를 탕감해 주기로 동의한 악성채무빈국HIPC 계획으로 1996년부터 27개국에서 약 3백억 달러의 부채가 소멸되었다.” (p.253)

 

나는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유럽 국가들이 오래된 채권을 소멸해 줬다는 것이다. 감당하지 못할 채무를 소멸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해당 국가는 그에 상응하는 보답으로 자국의 복지에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고 극빈층을 지원하게 되는 것이다. 애초부터 노예가 탄생할 수 있는 싹을 자르는 것이다.

노예를 생산해내는 범죄조직을 소탕하고 억류되어 있는 현대판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환경을 바꾸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역시 유럽이다.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는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다. 공정무역 제도 안에서 농부들은 자신의 농작물에 대해 일정한 가격을 보장받는다.” (p.240)

“마틴 기타 회사, 러그마크 재단” (p.242)

 

그리고 소비자 개인들에게는 될 수 있으면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하라고 제안한다. 공정무역 은 최근 들어 이슈화가 되었었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더 중요한 것은 공정무역 제품에 대한 홍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구입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책에서 소개된 기타 회사 마틴과 남아시아 카펫 직조 공장을 인증하는 러그마크 재단은 생산 전 과정에 참여해 공정한 과정으로 하나의 제품이 생산되도록 참관하고 인증하는 절차를 거친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가능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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