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 찬가 - 정글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조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진보집권플랜」을 보고 조국 교수를 처음 알았다. 그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잘 생기고 키도 큰데다 진보적 성향까지 갖춘 그를 아주 잠시나마 쓸데없이 시기·질투 했다.

 

책은 「보노보 찬가」가 더 재미있었다. 「진보집권플랜」은 인터뷰 형식이기 때문에 인터뷰어의 의도에 따라 전체 내용의 방향이 정해진 듯 했다.

그리고 「진보집권플랜」은 정권의 꼴사나운 짓들을 1년이나 더 지켜본 탓일까. 다소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었다면 이 책 「보노보 찬가」는 좀 더 논리적이고 다듬어진 느낌이었다. 하긴 이런 정권하에 살면서 하루가 다르게 열 받는 일이 늘어 가는데 1년이면 엄청난 ‘물리적 스트레스량’의 증가는 필연적 결과일 것이다.

 

언젠가 봤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보노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거친 침팬지와는 달리 위계질서가 무의미하고 유인원 중 가장 온순하며 친화적인 동물이 보노보이다. 갈등 해결을 위해 침팬지는 대부분 폭력적 행동을 보이지만 보노보는 성행위(또는 유사 성행위)를 통해 갈등을 해결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지금 현재 한국의 현실에서 ‘보노보’가 필요한지 ‘침팬지’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2년 전 출간된 이 책에서는 각박하고 투박한 한국의 현실에서 ‘보노보’와 같은 개인과 집단, 기업과 단체가 많아져야 한다고 역설하는데 2년이 지난 지금 ‘보노보’보다는 ‘침팬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장기전’을 준비하며 ‘가치전쟁’을 벌이고 ‘스몰 볼’을 구사하라.”

“민주화운동과 여러 분야의 민중운동에서 수십 년 헌신했던 ‘역전의 용사’들이 모여 있는 진보진영은 이러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직시해야 한다.” (p.67)

 

“진보에게 필요한 것은 비수 같은 날카로움이나 망치 같은 파괴력만이 아니다.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중시하고, 자신에 대한 비판도 웃어넘기며 상대를 끌어안고, 자기 정파의 이익을 먼저 양보하는 포용력과 넉넉함을 보고 싶다.” (p.78)

 

조국 교수는 이 책에서 무엇보다 ‘보노보’ 적인 가치와 성격을 지녀야 할 대상을 진보진영에 두고 있다. 진보가 그렇게도 듣기 싫어하는 말이 ‘진보는 분열해서 망한다’임에도 늘 진보진영은 분열한다. 다들 너무 잘나고 똑똑하고 전투력이 뛰어나서 부딪히고 파열한다. 고즈넉한 강가의 조약돌이 아니라 협곡에 흩어진 기암괴석 같다. 그래서 서로 껴안지 못한다. 생채기만 날 뿐이니까.

 

나도 ‘역전의 용사’고 너도 ‘역전의 용사’니까 서로 잘난 체 하지 말고 ‘보노보’처럼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힘을 합쳐보자 라고 역설하지만 이 책이 출간되고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보진영은 서로 잘난 체 하고 있다. 눈앞에 거의 다가왔던 먹이도 먼저 뛰어드느라 놓치게 된 꼴이다.

그렇다면 조국 교수의 ‘보노보 찬가’는 실패했다. 적어도 진보진영에 있어서는 말이다.

 

 

촛불의 ‘진화’가 필요하다.

첫째,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복지예산 지키기 운동이 필요하다.

둘째,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허덕이며 촛불을 들 처지도 되지 못했던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이들을 정규직으로 단계적으로 전화시키는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셋째, 의료·보건 분야가 시장논리로 재편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p.63∼64)

 

촛불도 전혀 ‘진화’하지 못했다. 국민 저변에 깔려 있던 정권에 대한 불만과 정치적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한 분노를 제대로 그릇에 담아내지 못했다. ‘억지로 불러서 나온 촛불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억지로 그릇에 담을 수 없었다.’는 논리는 핑계에 불과하다. 파편화된 대중의 심리와 행동양식을 겸허하게 분석하고 겸손하게 모으려는 노력을 진보진영에서는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 않았다’라고 까지는 쓰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간 정치검찰과 공권력을 동원해 끊임없이 겁주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진보진영은 촛불로 표현되는 국민 마음에 어깨 걸어주는 ‘보노보’도 되지 못했고, 하나부터 열까지 엉망진창인 정권을 향해 위협을 가하는 ‘침팬지’도 되지 못했다.

 

100% 실패다.

 

촛불의 민심을 제대로만 그릇에 담아냈다면 이번 총선에서 어렵지 않게 원내로 들어갈 의석수를 장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뭐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야 돌이키면 속상할 뿐이고 아직도 제대로 진보통합을 이뤄내지 못한 현실도 답답할 뿐이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늘 강조하는 것처럼 ‘정치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로 말하는 것’이다. 의석수가 모자라 입법하나 하지 못하는 진보진영은 가치를 둘 수 없다. 도무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자들이 ‘한번만 믿어 달라. 기회를 달라’라고 하면 설득이 되지 않는다.

 

‘정치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로 말하는 것’

이다.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벌써 유인물과 후보별 공약 팜플릿이 넘쳐나야 하는데 너무 조용하다. 보궐선거도 아니고 총선인데 말이다. 아예 관심이 끄라는 것인지 고담시티인 대구에서는 그런거 나눠줘봐야 어차피 될 사람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여튼 너무 조용하다.

그래서 불안하다.

남은 시간이 너무 없으니 ‘보노보’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다. ‘침팬지’중에서도 가장 과격하고 폭력적인 녀석이 필요하다. 그래서 뒤집어엎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잘생기고 멋있고 똑똑하고 진보적이기까지 한 조국 교수가 한 달 안에 「침팬지 찬가」를 출간해주면 좋겠지만 그것도 물리적인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우리 짱돌들이 일단은 ‘보노보’처럼 어깨를 걸고 ‘침팬지’처럼 무시무시하게 투표장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갈고닦은 엄지와 검지로 꾸욱 눌러 찍어야 한다.

얼굴은 웃으며 손은 비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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