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 NERD - 세상의 비웃음을 받던 아웃사이더, 세상을 비웃다!
외르크 치틀라우 지음, 유영미 옮김 / 작은씨앗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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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너드!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그러나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들을 보니 그 말이 어떤 느낌인지 대강은 짐작이 갔다.

탈레스,헤라클레이토스,아리스토텔레스,디오게네스,토마스 아퀴나스,임마누엘 칸트,니체,비트겐슈타인,뉴턴,아인슈타인,퀴리부인,프랭크 자파,조지 오웰,앤디 워홀,줄리안 어샌지,스티브 잡스,빌 게이츠,마크 저커버그.

우선 이들은 역사에 그들의 이름을 깊이 인식시켜 놓은 이들이다. 철학과 과학 그리고 예술계에서.

그 중에서 현대적인 인물들인 어샌지나 잡스,게이츠,저커버그 등은 컴퓨터 업계에서 뜬 인물들이다.


왜 저자는 왜 이들을 너드라고 불렀을까?


너드는 지능이 뛰어나지만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거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을 전형적으로 이르는 말이다.대중적이지 않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비주류 활동을 하는데 과도한 시간을 보내며,이러한 활동은 주류 활동에 배제되는 높은 과학 기술이나 픽션,또는 판타지에 관련한 주제가 일반적이다.또한 많은 너드가 부끄럼이 많고 별나며 매력 없는 모습으로 묘사되며,운동 경기에 참여하거나 응원하는 것조차 어려워하기도 한다. -위키피디아에서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저자는 이들의 어떤 특성들이 너드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특히 철학자들의 경우 실리적이지 않는 문제를 취급하고 외톨이이며 특히 여자들과 잘 지내지 못한 점,긜고 유치한 것,비 이성적인 것,육체적인 것에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에서 너드라고 말한다.


작가는 이러한 너드들이 권력자들과 기득권자들 앞에 굴하지 않았으며 쩨쩨한 일에 끼어들지 않았다고 말한다.분석적이고 냉철한 지성,신체를 원칙적으로 적대시하는 것,돈이나 소유에 대한 무심함 등이 너드를 판가름 짓는 본질적인 기준이라는 것이다.그리고 너드는 디지털 문화에서 슈퍼 모델로 등극했으며 드디어 너드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한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이들이 너드의 특성을 지니고서도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결과물을 얻지 못했다면 어떠했을까? 아니 평범한 이들은 그런 일들을 해내지 못했을까? 


저자가 언급한 이들이 너드적인 특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드라고 해서 모두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평범한 사람들이 일궈낸 많은 결과물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나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다양성을 인정해 주는 자유로운 시대분위기가 이런 이들이 충분히 인정받고 활동할 수 있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 다름을 인정해 주는 사회 분위기이며 특히 아이들을 교육함에 있어서 짜여진 틀 속에 가두려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작가가 언급한 빌 게이츠가 한 말은 그래서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게이츠는 훗날 연설을 할 때마다 자신처럼 중간에 학업을 내팽개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당시에는 그래도 되었다."고 게이츠는 말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더 복잡해진 오늘날에는 그것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은 너드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변했을까?

 

이들을 너드라는 말 속에 가두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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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가우초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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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작가로 삼고 싶은 "로베르토 볼라뇨"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그리고 무엇을 얻어낼까?
우선은 많은 책들에서 우리는 '재미'라고 하는 것을 얻어낼 것이다. 그리고 지식,교양 등을 얻게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물론 맞는 말이고 거의 대부분의 책들이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준다.

그러나 나에게 <참을 수 없는 가우초>는 다른 책들과는 다른 색다르고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이 책을 쓴 저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처음 읽어보는 볼라뇨의 책에서 느낀 색다른 그 문학의 독특함은 처음 먹어보는 음식처럼 강하게 머리 속에 남아 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난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등은 내가 여러 사람들에게 한 번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는 책들이다.
이제 나는 거기에 이 작가의 작품을 끼워 넣어야겠다.
이렇게 말하면서.
"이 작가를 아는 소수의 행운아가 되고 싶지 않아?"


5편의 소설과 2편의 에세이로 남긴 볼라뇨의 문학적 유서라고 볼 수 있는 <참을 수 없는 가우초>는 냉소와 비꼼과 위트가 넘쳐난다.'아,뭐야,이 작가?'하는 키득거림과 그렇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삶에 대한 이야기는 책을 한 번만 읽고 덮어버리는 나를 여러 번 읽어보게 만들었다.

이 책에 나오는 단편 모두가 짧지만 결코 짧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참을 수 없는 가우초'는 은퇴한 변호사가 아르헨티나 경제가 붕괴되고 대통령이 여러번 바뀌는 혼란기에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팜파스의 농장으로 가서 능력도 별로 없어 보이는 가우초들과 함께 생활하며 겪는 이야기다.
그는 이 시기 도시에서 정치적인 행동을 할 것인가 아무 할 일도 없고 있는 것이라고는 토끼 밖에 없는 팜파스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도시가 그에게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농장으로 가기로 한다.
거기에도 답은 없는데.

볼라뇨는 비평계에서는 우호적인 평가를 받지만 상업적으로는 실패를 했던 작가였다.그래서 였을까?
그는 '많은 사람들이 완벽한 소설가로 꼽는 소설가는 가장 많이 읽힌 소설가로 즉 작품을 가장 많이 판 작가다'라고 말한다.그들의 작품이 그저 재미있고 명쾌해서 잘 팔리는 게 아니라 대중이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 속의 '크툴루 신화'에서 보면 유명하고 인기 있는 작가에 대한 볼라뇨의 평이 있다.
대표적인 붐작가인 가르시아 마르케스에 대해서 '수많은 대통령과 대주교를 안다는 것을 기뻐하는 남자'라고 비아냥대고,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사벨 아옌데를 '엉터리 작가'로 혹평을 한다. 그러면서 요즘 작가들은 존경의 에베레스트를 오르려고 하는 자들이라고 독설을 날린다.그리고 그의 자조적인 한마디 '프루스트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철사줄에 걸린 조이스의 작품을 열심히 공부했는데 해답은 베스트셀러에 있더군요'

그는 문학은 생존을 위한 것 이상의 찬란한 뭔가를 얻지 못하면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이 작가의 다른 책도 너무 궁금해졌다. 그래서 <칠레의 밤>을 읽었고 이 작가의 책에 나오는 보르헤스의 '남부'와 '마가복음'도 읽어 보았다. 나를 또 다른 책으로 이끌어 가주는 책,또 다른 작가를 소개해 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더욱 궁금해 지는 또 한 권의 책이 생겼다.
<2666>
21세기의 위대한 고전이라고 하는,그리고 카프카의 <심판>,<성>,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위대한 미완성 소설인 <2666>을 기다리는 독자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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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시선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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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아버지는 없다.

마치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난 자처럼 그는 아버지가 없다.

그런 그가 29년 동안 없던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이것이 이 책의 이야기이다.

29세의 대학원생인 그는 폐결핵 진단을 받고 요양 중에 은퇴한 심리학 교수를 만나 우연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심리학 교수는 아버지가 없다,죽은 것도 아니다는 말에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어떻게 아들에게 아버지가 없을 수 있나? 어떤 경우에도 부정 되지 않는 것이 아버지다. 당신은 관념 속에서 아버지를 죽였다.

 

그렇게 찾아 간 아버지는 아들을 부정한다.

그는 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기호 2번 후보였다.

 

꿈처럼 아버지가 하는 말, 왜 나를 찾아왔느냐?

그것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은퇴한 심리학 교수의 말일 것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찾고 추구하는 존재거든.때로는 자기가 무얼 찾는지,왜 추구하는지도 모른 채 찾고 추구하지.몽유병 환자처럼 말이야. 찾다가 못 찾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추구가 의미 없는 건 아니지"

 

그는 아버지를 찾으러 떠났지만 그가 찾은 또 다른 존재가 보인다.

숲 속에서 옷을 벗고 걸어가는 남자.

청년 같지만 노인 같은,처음에는 두려운 존재였다. 아는 사람이지만 누군지 알 수 없다는 것,누군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아버지를 만나고 난 뒤 그 존재는 소리는 나지 않지만 빛보다 환한 존재가 되었고,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끌어 안는 너그럽고 큰 웃음을 짓는 그를 따라 옷을 벗고 싶어진다.


그는 그를 따라 그 숲으로 가고 싶어진다.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고 무엇에도 쫓기는 일 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 곳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없는' 상태로 존재하고 싶어한다.


인간의 사랑이, 심지어 부모와 자식의 사랑 역시 세상의 질곡속에서 권력 앞에서 다른 이의 시선 속에서 부정 되고 왜곡되고 사라질 때 우리는 이런 것을 초월하여 어떤 절대적인 사랑을 추구하려 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승우 님의 책은 언제나 천천히 읽어보게 된다. 

그가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그저 단순히 쭉쭉 지나가게 하지 않고 붙잡아 두려하기 때문이다.

그의 문장이 붙잡는 시선의 끝에 로맹가리와 한승원 작가에 대한 언급도 있다. 말테는 한승원이 아니라 로맹가리 편이다. 순간 유일하게 키득거리며 웃게 된 단락이었다.내가 생각했던 바로 딱 그 부분이었다.(다행이도 나는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어 보았고, 한승원 작가의 책도 읽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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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1 - 게와 아이들과 황소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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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던 시대, 사랑도 꿈도 먼 곳에

 

황소의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이중섭 그 이름 석자는 모르더라도 그의 그림은 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그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그것도 아주 가까운 시기에 살았던 인물이며 그가 남긴 그림과 이야기가 많은 그런 인물에 대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상상력과 왜곡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가 먼저 된다. 더구나 이중섭은 최근까지도 그의 아들이 위작 사건의 주인공으로 뉴스에 오르던 인물이었으니.

 

시대의 아픔과 약소민족의 슬픈 현실을 형상화한 내장이 쏟아질 듯 한 격렬함과 우직함과 갈망의 소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은 작가 최문희의 글 속에서는 심성이 연약하고 순하기만 한 예술가로 묘사되고 있다.


그림을 배우고자 간 일본에서 일본인 여자 야마모토 마사코를 사랑하게 된 것도 이중섭의 의지가 아니었고 마사코의 적극적인 구애로 이루어진 일이었으며 그를 찾아 한국으로 들어 온 마사코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제말의 혼란기 속에서 떠돌 때도 작가가 보여주는 이중섭은 내면의 갈등은 심하지만 결국 행동은 우유부단하며 그저 상황속에서 떠밀리듯 흘러가는 무력하기만 한 사내였다.


그는 돌보아야 할 가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림 판 돈으로 술대접을 하고 다른 화가가 곤란하다고 하면 돈을 덥썩 주고 마는 사람이었다. 한국이름 이남덕의 마사코는 아이 둘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가고 이중섭은 그림을 팔면 데려 오겠다고 약속에 약속을 하지만 결국 그 약속을 지켜지지 못하고 만다.그리고 이중섭은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홀로 죽는다. 이남덕여사는 서귀포에 이중섭미술관이 지어지던 날 이중섭의 파레트를 들고 방문하게 된다.


그가 남긴 그림처럼 따사로운 가족의 품에서 살지도 못했고 지금 그렇게 비싼 그림의 가격이 무색할 정도로 가난 속에서 살았던 그의 삶이 담겨 있는 이 책은 이중섭의 강렬한 그림 뒤에 있는 예술가의 아픈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 듯 보인다.


이 책에서는 대부분이 사실이지만 (실존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도 있다.

이중섭이 되고 싶었으나 될 수 없었던 그래서 열등감과 질투에 이중섭에게 매일 소주를 사다 주었던 인물. 마치 모짜르트와 살리에리의 경우처럼 신이 내린 천재를 동경하지만 그래서 저주하며 그를 죽도록 미워했던 인물인 허수가 나온다. 그는 아마 천재적인 작가인 이중섭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인 듯 이야기의 진행 곳곳에 등장하여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중섭의 이야기와 그의 일본인 아내 이남덕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풀기 힘든 실타래를 서로 양쪽에서 당기고 있듯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지만 비틀거리며 흔들리던 시대의 광기에 사로잡힌 예술가와 그의 아내가 풀어내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난해한 실타래였었나 보다.


예술인가? 가족인가?

가족을 포기하고 예술을 가질 것이지 예술을 접어버리고 가족을 가질 것이진... 이중섭은 가족을 나중에 두고 예술을 택함으로써 자신이 쌓아 올린 예술의 벽 안에 갇혀 그 짧은 생을 마감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예술은 불멸의 영예를 얻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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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린 로빈슨 지음, 유향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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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호 근처 핑거본 호수 옆 루스와 루실이 살고 있는 마을.

동네 전체가 기반이 취약해서 해마다 홍수가 발생해서 마을이 물에 잠기고 화재도 빈번해서 항상 이산에 대한 위협이 존재하는 마을.

 

책을 읽는 내내 어딘가에 그런 마을이 존재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책의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하고 위태위태한 어른들의 모습이 마을의 풍경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루스는 한살 밑의 동생 루실과 핑거본 호수 옆 할머니댁에 살고 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기차와 함께 호수바닥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뒤 다른 사람들은 떠났지만 여전히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그 집에서 살고 있다.

이들이 이곳에 살게 된 배경은 엄마가 (아버지는 누군지 왜 엄마와 헤어졌는지 알 수 없다.) 이들을 데리고 할머니댁 현관앞에 두고 차를 몰고 호수에 빠져 자살을 한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고 이들은 친척 할머니에게 맡겨졌다가 엄마의 동생인 실비이모와 함께 살게 된다. 

그러나 실비이모는 떠돌이 노숙자의 습관을 지닌 남들이 보기에 살짝 정신이 나간 사람이다.

루스와 루실은 둘만이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간다. 이둘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자신들을 느끼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갖게 된다.


루실이 나와 함께 숲으로 간 이유는 남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정확했다.내게는 세상의 눈이,그 애는 볼록하게 쑤셔 넣고 나는 홀쭉하게 잡아 늘이는 왜곡된 거울처럼 여겨졌다.또 지나치게 무례하게 물고 늘어지는 농담에 대해서는 도망쳐 나오는 게 상책이라고 여겼다.나는 숲 자체가 좋아서 숲으로 간 데 반해,루실은 점점 더 그곳에서 추방 생활을 견뎌 내는 것 같았다.


루실은 집을 떠나게 되고 실비이모와 루스 둘 만이 남는다.이모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죽은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듯 해 보이고 이들은 집을 불태우고 마을을 떠난다. 이들에게 집은 가족과 같은 의미로 가족을 남겨두고 떠날 수 없어서였다.


자매나 친구가 있다는 것은 밤에 환하게 불이 켜진 집안에 앉아 있는 것과 비슷하다.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원할 경우 안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지만,안에 있는 사람은 그들을 볼 필요가 없다.루스는 어둠속에서 불이 켜진 쪽을 바라보면 여기와 거기, 이것과 저것의 모든 차이가 드러나듯 그 차이를 느끼며 집에서 쫓겨나듯 이모와 도망을 친 것처럼 보인다.


세상으로부터 지키려고 했던 가족과 가정과 집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갖는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다는 것에 파괴되어 버린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인정해주고 안아 줄 그런 마음이 우리에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과 마을의 모습, 아이가 성장해 가면서 드러나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우리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이 그 모습이 전부일 수 없을텐데도 우리는 다 아는 것처럼 재단을 하고 말을 옮기며 해명도 하기 힘든 존재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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