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시선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없다.

아버지는 없다.

마치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난 자처럼 그는 아버지가 없다.

그런 그가 29년 동안 없던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이것이 이 책의 이야기이다.

29세의 대학원생인 그는 폐결핵 진단을 받고 요양 중에 은퇴한 심리학 교수를 만나 우연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심리학 교수는 아버지가 없다,죽은 것도 아니다는 말에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어떻게 아들에게 아버지가 없을 수 있나? 어떤 경우에도 부정 되지 않는 것이 아버지다. 당신은 관념 속에서 아버지를 죽였다.

 

그렇게 찾아 간 아버지는 아들을 부정한다.

그는 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기호 2번 후보였다.

 

꿈처럼 아버지가 하는 말, 왜 나를 찾아왔느냐?

그것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은퇴한 심리학 교수의 말일 것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찾고 추구하는 존재거든.때로는 자기가 무얼 찾는지,왜 추구하는지도 모른 채 찾고 추구하지.몽유병 환자처럼 말이야. 찾다가 못 찾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추구가 의미 없는 건 아니지"

 

그는 아버지를 찾으러 떠났지만 그가 찾은 또 다른 존재가 보인다.

숲 속에서 옷을 벗고 걸어가는 남자.

청년 같지만 노인 같은,처음에는 두려운 존재였다. 아는 사람이지만 누군지 알 수 없다는 것,누군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아버지를 만나고 난 뒤 그 존재는 소리는 나지 않지만 빛보다 환한 존재가 되었고,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끌어 안는 너그럽고 큰 웃음을 짓는 그를 따라 옷을 벗고 싶어진다.


그는 그를 따라 그 숲으로 가고 싶어진다.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고 무엇에도 쫓기는 일 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 곳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없는' 상태로 존재하고 싶어한다.


인간의 사랑이, 심지어 부모와 자식의 사랑 역시 세상의 질곡속에서 권력 앞에서 다른 이의 시선 속에서 부정 되고 왜곡되고 사라질 때 우리는 이런 것을 초월하여 어떤 절대적인 사랑을 추구하려 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승우 님의 책은 언제나 천천히 읽어보게 된다. 

그가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그저 단순히 쭉쭉 지나가게 하지 않고 붙잡아 두려하기 때문이다.

그의 문장이 붙잡는 시선의 끝에 로맹가리와 한승원 작가에 대한 언급도 있다. 말테는 한승원이 아니라 로맹가리 편이다. 순간 유일하게 키득거리며 웃게 된 단락이었다.내가 생각했던 바로 딱 그 부분이었다.(다행이도 나는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어 보았고, 한승원 작가의 책도 읽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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