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나 - 소설로 만나는 낯선 여행
성석제 외 지음 / 바람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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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머지 삶의 소원은 세계 여러나라의 도시들에서 한달씩 살아보는 것이다. 그 도시의 한 부분이 되어서 잠을 자고 아침을 맞이하고 거리를 걷고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 호흡해 보는 것. 그것이 이 곳 서울에서의 일상과 같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영혼에 속삭이는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이 책 <도시와 나>는 그런 꿈을 조금이나마 가깝게 느끼게 해 준 소설이었다. 이 소설집 속 주인공들은 상실과 외로움을 안고 다른 나라의 도시에 부유물처럼 흘러들어가서 살고 있다. 도시의 낯설음과 만나는 이들의 낯섬이 별반 다르지 않았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나 또한 조금은 다른 존재로 드러나고 있다. 아마 여행 혹은 모험이라는 것이 그런 낯섬, 이질감 속에서도 여전히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인가 보다.

 

첫 소설 성석제의 사냥꾼의 지도-프로방스의 자전거 여행에서는 따가운 햇살 속에서 프랑스의 드넓은 포도밭을 자전거로 헤매는 이야기다. 나에게는 오히려 프랑스여행을 한다면 포도밭을 꼭 보면서 그 밭에서 난 포도주를 마시보리라는 다짐을 하게 한 다소 엉뚱하게도 여행에세이로 읽힌 부분이기도 하다.


두번 째 소설인 백영옥의 애인의 애인에게 들은 말은 역시 백영옥이라는 말이 나온 단편이었다. 백영옥작가의 작품에서 내가 느낀 조금은 다른 삶과 사랑의 어떤 것을 끄집어 내오는 감성에 또다시 빠져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는 아내가 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 그 여자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서로 다른 시선 속에서 발견하는 사랑은 그 아내에 대한 연민이 된다.


세번째 소설 정미경의 장마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만난 한 남자와 주인공 여자의 이야기다.그녀의 지나온 삶이 한기어린 것이었지만 네온의 명멸처럼 짧지만 환한 어떤 것이 그녀의 마음에 들어왔으리라 믿고 나머지의 삶이 다소 따스해 질 것이라는 위안을 갖게 한다.


네번째 소설인 함정임의 어떤 여름은 아마도 긴 여행을 하는 여행객이라면 이런 환상을 한번쯤 품어보지 않았을까 싶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어떤 느낌이 통하는 만남,그 사람과 한정된 여행,그리고 깨끗한 이별. 


나머지 소설들 윤고은의 콜롬버스의 뼈,서진의 캘리포니아 드리밍,한은형의 붉은 펠트 모자 또한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여러 도시와 소설의 하모니는 색다른 음색으로 뇌리에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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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인의 딸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1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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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9년 4월 24일독일의 숀가우 마을, 레흐 강에서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소년을 뗏목 사공들이 건져냈다. 소년은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소년의 어깨에는 마녀의 상징을 나타내는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숀가우 마을 사람들은 산파인 마르타 스테흘린을 범인이자 마녀로 몰아세운다. 산파 마르타 스테흘린은 범인으로 잡히고 마녀임을 밝히기 위한 고문이 시작될 것이다. 이 고문을 집행해야하는 야콥 퀴슬은 마르타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증명을 하기에는 시간이 그리고 자신의 신분이 너무 미약하다. 퀴슬의 총명하고 고집센 딸 막달레나와 그리고 그녀의 연인이며 의사인 지몬 프론비저는 이 여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뛰어들고 점차 이들조차 목숨의 위협을 느낀다. 그렇지만 이들은 범인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고 모험을 계속해 나간다.

 

"여기 숀가우에 악마가 있어!"

이들이 살고 있는 그 당시의 숀가우는 논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게다가 사형집행인의 딸 막달레나는 점차 마녀라고 의심이 증폭되어가는 상황이다. 마녀사냥과 집단적인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그리고 그것을 이용하여 돈과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 속에서 진실은 더이상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들 나름대로의 '안정'을 위한 마녀 사냥은 소수의 사회적 약자 (여자와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존재하고 있었다. 마녀 사냥은 안정과 균형을 도모하기 위해 취하는 필사적인 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마을의 지도자 격이라 할 수 있는 요한 레흐너는 스테흘린이 무죄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면서도 숀가우 마을의 동요를 잠재우기 위해 마녀 재판을 강행하려 한다. 그런 그가 취하는 극단적인 행동에는 모두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논리가 숨어있다.

 

그럼에도 진실을 찾아 헤메는 세인물의 행동은 영웅적이고 (이들은 신분의 벽을 깨고 남녀차별도 넘어선다)진취적이다. 그래서 오히려 인물들이 평면적이고 다채롭지는 않아 보인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예측되는 행동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아 단조로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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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216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강훈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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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엘리엇, 레이먼드 카버, 움베르트 에코, 나보코프, 헤밍웨이, 보르헤스 이런 쟁쟁한 작가들이 꼽는 작가들의 작가, 문학사의 거장이지만 톨스토이, 프루스트, 카프카처럼 노벨상을 받지 못한 작가, 그렇지만 그의 책을 읽어 본 독자들은 읽는 내내 계속 읽을 것인지를 갈등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 작가, 그래서 내가 아직 접해 보지 못한 제임스 조이스. 

그의 소설의 입문서라고 평가되는 <더블린 사람들>은 소문만큼 지루해서 중간에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하는 소설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캐릭터들, 사건들이 피식하고 웃게 했다.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더블린은 아일랜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과 비슷했다. 갈색의 우중충하고 불안감이 흐르고 삶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고 어긋나 버리고 혼란한 더블린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조이스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반들반들하게 닦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볼 기회를 주기 위해 <더블린 사람들>을 썼노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아일랜드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마도 소설을 읽는 모든 사람들을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 

"애러비"에 등장하는 좋아하는 친구 누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돈을 타서 선물을 사러 가는 허세를 부리는 소년도 "짝패들"의 일도 잘 못하고 오로지 저녁에 술 마시려는 생각에 빠져 있으며 시곗줄을 전당포에 맡기고 술을 마시면서 허세를 부리는 패링턴도 우리 주변에 아니 우리 안에 있는 모습이다.

소설 속 이야기가 등장인물이 나의 이야기로 내 주변의 인물로 끝없이 투영되면서 책을 읽는 독자는 내면을 비추는 거울을 보고 있는 듯 느껴진다. 특히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음주와 폭력과 체면치레와 남성우월주의 속에 살고 있으며 그로 인해 주변 인물들을 괴롭히지만 딱히 탈출구는 보이지 않고 그저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다.

<더블린 사람들>의 등장인물들은 좌절하고 소리 지르고 고뇌하고 자책하지만 변화와 탈출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게 마비 상태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삶의 대장정, 전 생애가 아니라 일상의 한순간을 포착해서 보여주는 삶의 진실은 책을 읽는 독자의 가슴을 파고든다.

이제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삼부작의 시작을 읽었으니 나머지 두 권의 책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율리시스>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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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새가 말하다 1
로버트 매캐먼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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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는 부지런한 젊은 상인이 있었다. 일을 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지.그런데 어느 날 밤……그는 평소 잠자리에 드는 시간보다 늦게까지 깨어 있었어…그러다가 이전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신비한 노랫소리를 들었지.밤의 새였다.다음 날 밤에도 그는 늦게가지 깨어 있었어 …. 그 새의 노랫소리를 들으려고.그리고 그다음 날 밤에도.그는 점점…점점 밤의 새의 노랫소리에 취해서 낮에도 그 생각만 하게 되었어.그러다 그 노래를 듣기 위해 온밤을 지새우게 되었지.해가 떠 있는 동안에도 전혀 일을 할 수가 없었더.곧 그는 한잦의 모든 것에 등을 돌리고 밤의 새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온전히 모든 것을 바치게 되었다

일도,건강도…그리고 마침내 그의 삶에도 슬픈 종말이 찾아왔지."

 

<밤의 새가 말하다>는 1700년을 한 해 앞 둔 아메리카 대륙의 파운트로열이라는 곳에 아이작 우드워드라는 치안판사와 그의 서기인 매튜 코빗이 그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그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었으며 마녀라고 생각되는 레이첼 호워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며 벌어진 사건들과 그 당시 신대륙의 땅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미신에 대한 공포 그리고 그 속에서도 진실을 찾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두꺼운 책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이 낯선 시대와 상황이 가깝게 느껴지는 것의 모두 작가의 놀라운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데려다 놓은 이 작품의 인물들,진리를 찾아가면서 마녀로 지목된 레이첼에게 빠져버린 매튜와 매튜의 정신적 지주이며 아버지와 같은 우드워드 판사,그리고 강제로 옷을 벗길 걸 알았기 때문에 직접 벗는 쪽을 택하는,스스로를 통제하길 원하는 여인이며 빼어난 미모와 포르투갈혈동과 나이 많고 별 매력이 없어 보이는 남편 때문에 마녀로 지목된 레이첼, 파운트로열에 겉으로 드러난 목적과는 다르게 다른 목적을 숨기고 들어와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며 독자의 잠을 빼앗고 있다.


위에 소개한 교훈적이 이야기가 어떤 이에게는 경고의 목소리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밤의 새가 어둠속에서 노래를 부르지만 한낮을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우리에게 "왜"라는 의문이 없다면,이곳은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될까?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마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 당시 이민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주인이 없는 땅이라고 생각하고 이 땅을 소유하겠다는 욕망, 다른 종교와 믿음을 가진 자들에 대한 박해 등을 알고 있어 책 속의 그들이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떨까? 이 책의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처럼 절름거리는 정신과 무너진 이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해가 갈수록 무엇이 자신을 절름거리게 하고 무너뜨렸느지를 잊어버리고.그러면서 희망어린 정신과 거대한 이상을 품은 젊은 영혼들을 어린 바보로 여기며 살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레이첼처럼 내가 나 자신의 주인공이어야 한다.


멋진 캐릭터들,그리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게 만드는 이 책이 나의 밤을 빼앗아가 버렸다.그렇지만 오랜만에 재미있는 책을 만나서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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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여자 - 과학이 외면했던 섹스의 진실
대니얼 버그너 지음, 김학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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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혹은 영화를 보면서 당당하게 자신을 주장하는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어서 더 그럴까?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뒤표지의 정여울 문학평론가의 말이 자꾸 생각났다. 문학작품에서 많이 보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고 남자를 유혹하고 얽매이지 않는, 너무도 당당한 그녀들. 결국 그녀들은 우리가 흔히 묶여있는 관습이나 도덕을 가벼운 외투처럼 훌훌 벗어던질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있기에 여성과 성을 연구하는 과학이 생겨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는 여성과 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만나서 "여성들이 과연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파헤친다.

여성의 성욕이 흔히 말하는 감정적인 유대감이 있을 때, 친밀한 관계일 때, 그리고 안전하다는 기분이 들 때에만 발동한다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내려고 한다. 여성과 성을 연구하는 시버스는 문화와 훈육의 더께를 벗겼을 때 드러나는 여성의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자아, 그 자아의 가장 깊은 곳에 실재하는 성욕의 본질적 기반을 확인하려 했다. 여성의 성욕은 그 본질적인 범위와 내재된 힘까지도 과소평가되고 억제된 하나의 힘이라는 사실, 모두가 성의 홍수 속에 사는 것 같은 이 시대에도 제약 이상의 억압을 받는 힘이라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혀낸다. 여성의 에로스는 남성의 리비도(본능적 성충동)에 비해 일부일처제에 훨씬 더 적합하다는 억측, 그것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흔히 여자는 선천적으로 일부일처제라는 규범에 더 협조적인 지지자이며 생물학적으로도 이 충실함에 더 적합한 성적 자아를 가졌다고 여겨 왔다. 이러한 믿음에 힘을 보태고 있는 학문이 있으니 바로 진화심리학이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에 반기를 들면서 과연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묻고 있다.


남자의 정신은 사타구니가 주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여자는 페니스에 비하면 훨씬 더 은밀한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정보도 불분명하고 놓치기 쉽다. 그렇다면 여자들은 자신의 성욕을 즉각적으로 점화시키는 수많은 기회를 의식적으로 폄하하는 것일까?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차단하는 것일까? 실험에 따르면 의도적인 부정을 한다고 한다. 여자의 몸과 뇌를 연결하는 의식의 영역 사이에 어떤 신경 필터 같은 것이 있는 걸까? 이 필터는 유전자의 산물일까 아니면 사회적 규범의 산물일까? 답은 사회적 규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성적인 사람, 즉 어떤 사람이 성욕을 드러내도 괜찮다는 것은 사회가 부여한 하나의 자유를 의미하며 그러한 자유는 여성보다는 남성의 것이다." 결국 여성은 남성보다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여성이 성적으로 타고난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스피드 데이트에서 조건을 바꿔 '여성분들은 자리를 옮기세요'라고 외친다면 그래서 여성들이 일어서서 성큼성큼 남자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면 어떨까? 실험 결과 남자들이 앉아있는 여자들에게 다가갈 때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결국 사회적 구조는 직관과 결정과 에로스를 바꾸어 놓았다. 규칙을 바꾸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세상은 달라지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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