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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ㅣ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평점 :
우정이란 무엇일까? 같이 자라고 같은 학교에서 공부한 많은 친구들 중에서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몇 안된다. 고대 철학자들이 가장 고귀한 인간의 덕목이라고 했던 우정은 사랑도 권력도 그리고 지금은 돈의 유혹도 이겨낼 수 있는 여전히 고귀한 덕목일까? 우정은 그렇게 인간적인 욕망을 초월하는 힘이 될 수 있을까?
Cicero는 저서 De Amicitia(우정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론을 따른다. Cicero는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부여된 어울림의 본능을 기초로 하여 우정론을 펴 나간다. 그는 남에게 잘 해주려는 호의와 인정을 드러내는 의지, 기호, 생각으로 서로가 마음을 맞추는 관계라고 정의한다. 부와 명예와 권력, 건강까지도 오래가지 못하지만, 진정한 우정만큼은 생과 같이한다. 우정은 덕성이다. 사리사욕과 이기심은 우정과 반대되는 악덕이다. 따라서 우정은 선인 사이에서만 성립되며 진정한 친구는 일종의 “또 하나의 나(alter ego)”이다. 한번 육성되면 영원하다 . -네이버 지식백과사전에서
나폴리 4부작의 첫 번째 책 <나의 눈부신 친구>의 뒤를 이은 제2부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서 레누와 릴라의 우정은 위에서 이야기한 가장 고귀한 덕성인 '우정'과는 조금은 다르게 진행된다. 작가는 이 책에서도 과거의 기억을 호출해낸다. 릴라가 준 노트-자신의 기록-을 읽어보지 말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다 외우다시피 읽는다. 그리고 그 노트를 아르노 강에 버린다.
그렇게 레누가 말해주는 릴라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펼쳐진다. 결혼식 날부터 어그러진 남편과 레누가 짝사랑하는 니노와의 사랑, 그리고 리노의 아이의 임신. 이런 이야기들이 릴라의 말처럼 갑자기 느려지다 빨라지거나 급커브를 돌기도 하고 경로를 벗어나기도 한다. 릴라의 이야기는 레누의 이야기와 섞이면서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기차와 자동차처럼 서로를 곁눈질하며 달린다.
1부의 아이들이 자라 이제는 성인이 되었다. 릴라는 결혼생활을 하고, 레누는 공부를 계속한다. 1부에서 자신을 지우고 떠난 66세의 릴라는 2부에서는 자신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 자신의 결혼사진을 찢고 자르고 붙이며 처음으로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며 사는 것처럼 보이는 릴라가 왜 자신에게 분노를 느낄까?
그런 릴라를 사랑하는 레누는 사랑함에도 왜 질투를 하고 그녀보다 자신이 더 성공한 듯 보일 때 왜 자랑을 하며 그녀에게 상처를 주려고 할까?
이 둘의 우정은 현명한 철학자들이 말하는 그 우정의 모습과는 다르다. 서로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지니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지닌 이 둘은 함께 하면 완전체가 될 것 같은데 또 그렇지도 않다.
그러나 사랑하는 친구는 자신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었다. 릴라와 니노를 통해서 레누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다.
나는 타인의 요구에 복종하는 존재였다. 나는 릴라와 니노를 통해서만 의미를 얻는 드러나지 않는 존재였다.... 그 둘을 사랑했기에 정작 나 자신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열망을 느끼고 붙잡지 못하는 것이다. 릴라와 니노처럼 그 열망을 위해서라면 장님에 귀머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아슬아슬하다. 위험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이들은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평생을 구석에 처박혀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불현듯 왜 내가 아닌 릴라가 니노를 차지하게 됐는지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감정에 몸을 내맡길 줄 모른다. 감정에 이끌려 틀을 깨뜨릴 줄 모른다. 내겐 니노와 단 하루를 즐기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릴라와 같은 강인함이 없었다. 나는 항상 한 발짝 뒤에서 기다리기만 했다.
레누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삶의 변화가 이루어질 시점에 나폴리의 밖으로 경험과 삶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피사에서 대학을 나온 후 소설가로 데뷔하게 된 레누의 이야기로 이 책은 끝난다. 릴라와의 23일 동안의 동거를 접고 사라졌던 니노의 등장은 앞으로의 이야기가 몹시 흥미로워질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이렇게 생겨먹은 이상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어. 사투리를 쓰고 돈은 땡전 한 푼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그러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가질 수 있는 만큼만 가지자. 참아야 할 때는 끝까지 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