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서광원 지음 / 김영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조그만 사업을 하는 우리 집 남편은 '동물의 왕국'이나 '디스커버리'의 다큐멘터리를 자주 본다. 왜 그렇게 그런 재미없는 것을 보냐고 핀잔을 주면 돌아오는 대답은 '흥미진진'하다는 것이다. 완전 몰입 상태로 티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이 쳐다보는 남편을 그다지 이해해 볼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왜 그렇게 열심히 봤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불확실성이라는 것이 대세가 되어버린 세상에 우리에게 던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요즘 유행처럼 인문학의 열풍이 번지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인문학 열풍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답을 찾게 된 이야기를 한다. 인문학이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임에는 틀림없지만 인간도 역시 동물이고 그렇기에 동물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생물학의 탐구과제인 '동물들은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가?'로 눈을 돌린 것이다. 이것 또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기에.


동물들의 세계에서 결국 목적은 "살아남기"가 아닐까? 뛰어난 능력, 힘을 보유하고 있지만(사자나 호랑이처럼) 굶어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 아닌가? 어떻게든 살아 있음을 만들어내야 하는 이 생태계에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자기만의 자리, 나만의 영역이다. 생태학에서는 니치, 경영학에서는 포지셔닝이라고 하는 이 자리 잡기는 어느 생명체에게도 예외가 없다. 생태계에서는 첫째, 자신이 속한 생태계를 치밀하게 파악한 다음, 둘째,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를 정하고, 셋째, 그에 맞게 철저하게 자기변화를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경영학에서는 전체 영역을 파악한 다음 주력 분야를 정하고 필요한 핵심 역량을 개발해야 한다.

 

서벌이라는 동물은 대형 선수들이 경쟁을 벌이는 곳이 아닌 경쟁이 거의 없다시피 한 곳 물가를 터전으로 삼았다. (포지셔닝) 그리고 물가에 사는 설치류를 먹이로 노렸다.(주력 분야) 이를 위해 몸집을 줄이고 대신 다리와 귀를 길게 늘렸다.(핵심 역량 키우기) 그래서 그들은 메추라기도 잡는다. 자칼에 익숙한 메추라기는 하던 대로 뛰지만 서벌에게 먹히고 만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요즘처럼 살아남기가 힘든 시대가 없었던 듯하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살아남기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는지...... 살아남아서 그 동물들의 전략이 유효한 것이다. 결국 동물의 경우에나 인간의 경우에나 결국 살아남기가 중요한 목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개구리의 전략이 눈에 들어온다. 밤새도록 개구리가 우는 것은 동요의 내용처럼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짝짓기를 하기 위한 수컷들의 경쟁이었다. 오랫동안 울기 위해 그래서 짝짓기에 성공하기 위해 개구리는 마치 마라톤을 뛰는 선수처럼 우는 것을 조절한다. 그래서 끝까지 열심히 운 개구리는 짝짓기에 성공한다. 인생은 마라톤을 뛰는 것과 같다. 끝까지, 끈질기게 자신의 속도로 뛰어야 한다.

 

요즘 같은 불확실한 시대에 살아남기가 더욱 힘든 일이 되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에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라는 답이 얼마나 부러운 상황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남기인 것이다. 생태계의 동물들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헤겔은 사랑을 "타자의 정신적인 것이 자기의 충심의 내면성과 밀접히 결합하여, 바로 이 타자에서만 주체의 마음이 자기 자신과 친밀히 융합하여 살고 있는 관계. 이러한 타자 안에서의 자기 내 삶(Dies Leben in sich in einem Anderen)"이라는 감정이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의 합일에는 '부정의 계기'가 수반된다.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주체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기를 포기하고 각자의 고유성의 완고한 면을 희생하며" 서로 '헌신'해야만 한다. 이와 같이 "인격성을 포기하면서도 자립적이라는 변증법적 모순의 감정"이 사랑이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은 그래서 모순적이고 제멋대로인 감성이다.

 

그런 모순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엇갈린 사랑의 이야기가 바로 <슬픈 카페의 노래>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큰 사료가게를 물려받은 미스 어밀리어는 돈을 많지만 외모와 성격은 참 별로인 여성이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에 사팔뜨기에다 남자 이상으로 힘이 세고, 건장하며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색함과 야비함마저 느껴지는 여성이다. 그렇지만 이 여성에게 반한 인물도 있다. 이 마을에 살던 마빈 메이시는 성격이 포악했지만 미스 어밀리어를 사랑하며서 순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미스 어밀리어에게 버림받은 후 포악해졌고 그래서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상태의 이 마을에 들어 온 낯선 이는 어디서 왔는지도 의문스러운 곱추 라이먼이다. 그는 단번에 미스 어밀리어의 마음을 사로잡고 만다. 왜?라는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멀쩡하게 생긴 메이시는 거부하면서 곱추 라이먼을 사랑하다니. 그렇지만 이렇게 알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곱추 라이먼이 등장한 이후 미스 어밀리어의 가게는 마을 사람들이 찾는 카페가 된다.

 

그러나 이 카페가 마을의 중심이 된 것은 이런 따뜻함이나 실내장식들, 그리고 밝은 불빛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 카페를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데는 더 깊은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직까지 언급하지 않았던 모종의 자부심과 관계가 있다. 이 새로운 자부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이란 결국 값어치가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공장 주위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가족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옷, 그리고 어는 정도의 고깃기름을 넉넉히 갖다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인생은 단지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한 하나의 길고 어두운 싸움일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점이다. 세상 돌아가는 방식이 그렇듯 모든 유용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으레 값을 치러야 하고, 오직 돈으로만 살 수 있다. 목화 한 포나 당밀 2파운드 값에 대해서는 따져볼 필요도 없이 잘 알고 있다. 삶은 우리에게 공짜로 주어졌고,값을 치르지 않고 얻어진 것이다. 그러면 삶의 가격은 얼마일까? 주위를 둘러보면, 때때로 삶이란 전혀 가치 없거나 만약 있다고 해도 아주 미미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도 내가 처한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 자신이 결국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자괴감이 밀려오지 않는가.

 

이런 상태의 마을 사람들에게 그저 모여서 수다를 떨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주 보며 위안을 얻는 곳이 된 것이다. 미스 어밀리어의 라이먼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한 이 기적같은 일은 곱추 라이먼이 떠날 때까지 계속된다. 서로가 조금은 부족하고 아픈 이들이 모여서 위로를 받았던 곳은 사랑이 사라지면서 다시 폐허가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랑을 기다리는 미스 어밀리어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 마음속 108마리 코끼리 이야기
아잔 브라흐마 지음, 류시화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서 가장 맵기로 소문난 인도산 고추 칠리를 먹고 있는 남자가 있다. 매워서 울면서도 계속 먹는 그에게 왜 계속 먹느냐고 물었다. 그는 "혹시 단맛이 나는 칠리가 있을지도 모르잖소."라고 답을 했다. 그는 저녁이 되어서도 계속 괴로워하며 칠리를 먹고 있었다. 보다 못한 근처 가게 주인이 물었다."그 많은 칠리를 먹어도 단 맛이 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왜 계속해서 먹고 있는 거요? 고통스럽지도 않소?" 남자는 이제 고통에 익숙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여태까지 힘들게 참고 먹어 왔는데, 이제 와서 포기할 순 없지 않소? 지금 포기한다면 지금껏 바친 내 시간들이 얼마나 아깝고 무의미하겠소? 이제 이것은 희망의 문제가 아니라 내 존재의 문제가 되었소."

 

이 책은 내게 매운 칠리를 계속 먹고 있으며 그것으로 내 존재의 의미로 삼고 있는 나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내가 붙들고 살고 있는 그것은 무엇인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가?" "내려놓을 수는 없는가?" 책을 읽어가는 도중에 내게 묻고 있다. 


태국의 유명한 고승인 아잔 차의 수제자인 아잔 브라흐마의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는 우리에게 마음속 코끼리를 따르지 말고 그 코끼리의 주인이 되라고 말한다. 원하는 것은 끝이 없다. 작은 차는 더욱 크고 좋은 비싼 차가 되고 갖고 싶은 집은 점점 커진다. 그렇지만 원하는 것을 내려놓으면 원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그 자유는 끝이 없다. 


우리에게 주문하지도 않은 소똥이 한 트럭 배달되었다. 그것은 나의 잘못도 아니다. 하지만 누가 자져다 놓았는지 알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치우라고 할 수도 없다. 그 소똥은 냄새가 지독하여 집 전체를 채우고 견딜 수가 없다. 이렇게 소똥처럼 우리는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된다. 왜 하필 나인가? 원망하며 계속 소똥을 집에 두고 가지고 다닐 수도 있다. 그 냄새 때문에 우리는 친구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소똥을 치워 정원에 묻어둘 수도 있다. 지치고 힘든 일이지만 절망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보다는 조금씩 소똥을 퍼나르다 보면 소똥은 줄어든다. 그리고 소똥이 있는 정원 위에 향기로운 꽃이 핀 것을 볼 수 있다. 나만 기쁜 것이 아니라 이웃들도 행복해진다.


우리가 겪는 아픈 일들이 우리가 가진 무한한 욕심이 별것이 아닐 수는 없겠지만 매일매일의 명상으로 점차 작아지고 결국에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자는 아잔 브라흐마의 이야기는 우화와 같은 쉬운 이야기지만 깊은 깨달음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때로는 웃음이 배시시 나는 유머로 때로는 잔잔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깨어 있으라. 무엇에도 얽매이지 말라. 마음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흐르는 대로, 있는 그대로 놓아 두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모로 산다는 것 - 잃어버리는 많은 것들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제니퍼 시니어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한동안 양육에 관한 책을 성서처럼 받들고 열심히 읽어대고 책에 나온 것처럼 아이를 키우고자 열심이던 때가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중학교 사춘기를 겪기 전까지가 그 기간이었다. 온갖 교육서를 사들이고 열심히 읽고 그대로 하던 내가 부닥치게 된 것은 절대로 책처럼 커주지 않는 아이였다. 결국 중학교 1학년이 지나면서 반항하고 말을 듣지 않았다.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책이 다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이가 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달랑 하나 뿐이었는데 내 뜻대로 멋지게 커주지 않음에 실망하고 좌절해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무서운 것이 절대로 포기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과연 아이를 제대로 키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부모는 어떤 존재일까? 그것이 아이를 다 키워가는 지금(이제 그 아이는 고3이 되었다) 다시 드는 의문이다.

 

그런 나의 질문에 정확한 답을 이제야 만났다는 것이 너무 억울할 정도의 책을 이번에 읽었다. 바로 제니퍼 시니어의 <부모로 산다는 것>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읽었던 자녀양육서가 아니다. 이 책은 부모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답을 안겨줄 책이다. 이 책에서는 지금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생겨난 형태라는 역사적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 전에는 아이들도 노동을 하여 돈을 버는 가족의 한 부분이었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이 노동을 하는 것이 불법이 되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보호를 받으며 교육을 받고 보살핌을 받아야 할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해진 부모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 여전히 건설 중인 세상에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부모로서 우리는 때로 우리가 놓여 있는 이런 환경이 과거의 환경과 동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놓여 있는 이런 환경과 상황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부모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모습이 얼마나 새로운지 그리고 얼마나 특이하고 비역사적인지 명심하지 않으면, 부모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여전히 건설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다. p.216

 

​이렇게 가족 내에서 어린이의 역할은 바뀌었고, 산업화를 지나면서 부모의 역할 또한 변화했다. 예전에 부모들이 하던 역할은 사회와 정부와 회사가 대신하게 되었고, 이제 부모는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오로지 정서적인 부분에서. 특히 현대에 들어 불확실한 세상을 살게 됨으로써 부모들은 불안한 시도를 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준비시켜야 할지 확신하지 못한 채 그저 있을 수 있는 모든 미래를 다 준비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팍팍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과도한 과외활동들을 아이들에게 시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극히 사랑이 넘치고 보살핌이 충만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것들을 다 해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이나 한 일일까? 그런 시도들이 오히려 아이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경험으로 그리고 뉴스로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시도를 멈추고 다시 생각해 보는 일은 잘 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이런 시도를 멈추고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할 때다. 부모로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부모가 되어 아이를 잘 키우고자 그 당시 옳다고 믿었던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고, 지금도 역시 그 선상에 있지만 지나온 일, 내가 했던 일은 실수와 오점으로 얼룩져 있다. 하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과정이고 이 과정에서 아이도 부모도 성장하고 있음을, 같이 커가고 있음을 믿는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내게 준 확신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취해야 할 행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그런 교육을 받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그런 사회적 규범과 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그것이 내 생각인양 살아가고 남을 그런 잣대로 재기도 한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았다는 뫼르소의 행동은 도덕심이 결여된 인간이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 여자친구와 웃기는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하고 정욕을 참지 못한 것 또한 인간으로서 이해되지 못하는 행동을 한 것이다. 재판은 뫼르소의 살인 뿐 아니라 이런 도덕적 판단까지도 함께 이루어지는 재판이었다.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율법을 무시했다는 죄가 덧씌워져 있음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다. 현재 우리의 재판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런 뫼르소에게 또 한가지 하느님의 심판이 요구된다. 인간의 심판으로 죄가 씻기는 것은 아니고  하느님의 심판만이 전부이니 회계하고 죄를 용서받으라는 것이다. 뫼르소는 묻는다. 나의 죄가 무엇인가? 인간의 심판으로 죄의 대가를 치르니 더 이상 요구하지 마라. 그런 외침에 마음의 눈이 멀어있다고 단정한다.

 

 재판과정에서 뫼르소는 그저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죄수들은 자신의 죄를 숨기고 선처를 호소하고 그러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방법을 사용하지만 뫼르소는 그저 담담하게 죄를 인정한다. 그 또한 오히려 뫼르소의 죄를 더 강하게 입증하는 이유가 되고 만다. 정직함이 오히려 죄가 되는 상황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낯익은 세계에서 우리는 돌연 ​낯섬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이상과의 괴리, 낯섬, 이것을 느끼는 자는 부조리의 인간이다. 까뮈가 말하는 부조리의 인간은 그가 단지 자신이 제대로 이해한 것만을 실천하고 싶을 뿐이다. 위장하지 않고.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오만이고 죄라고 단언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죄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바는 오로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을 가지고 살아가고, 지금 실재하는 것에 만족하며, 확실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은 그 무엇도 개입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 뫼르소는 강하게 반항하는 것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 거짓으로 위장하고 포장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죄를 짓고 있으며 모든 인간은 죽음을 앞둔 사형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에 다시 읽은 이방인에서 나는 오히려 담담히 나 자신의 가식을 지우고 내면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되었다. 여기에서 태양은 어두운 구석이 하나도 없는 솔직 담백하고 정직한 뫼르소를 이야기하는 매개체였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