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부터 정리하라 -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사소한 일들
윌리엄 H. 맥레이븐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시험공부를 하기 전 일단 책상을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한 적이 있다. '자, 이제부터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집중해서.'하고 결심을 하고 책상에 앉으면 책상 주변이 너무 지저분한 것이 눈에 보인다. 그래서 일단 주위를 정리하고 시작하자고 책상을 정리하다 보면 왠지 뿌듯함이 생긴다. 그리고 공부는 조금만 하고 만다. 책상을 정리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탓이다.
이제 딱히 공부할 일도 없는 생활인이다 보니 책상을 정리하면서 무언가를 시작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매일 잠을 자고 나온 자리를 정리하고 시작한다. 흐트러진 침대를 정리하다 보면 어젯밤에 읽다가 던져둔 책도, 대충 벗어던져놓은 옷들도 가지런히 정리하게 된다.
 마치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s Theory)’처럼 작은 실수, 혹은 문제가 커다란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처럼 오히려 사소하고 작은 일을 매일 잘 하는 것이 다른 문제들이 생기는 것도 막게 되고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그렇게 '하나를 보면 열을 알게 된다'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쓴 저자, 윌리엄 맥레이븐은 미 해군 네이비실에 근무하고, 특수전 사령부 사령관 등을 역임한 미 해군의 중요한 인물로 보인다. 그는 그가 근무한 네이비실의 기초 군사 훈련과정에서 배운 열 가지의 중요한 인생의 교훈을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특히 침대를 정리하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작은 일을 매일 실천하는 일이 인생을 바꾸는,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강조한다. 물론 작가가 전하는 말은 '가능성'일 뿐이다. 그가 말하는 열 가지는 1. 하나의 임무를 완수하며 하루를 시작하라. 2. 혼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3. 오직 심장의 크기만이 중요하다. 4. 삶 자체가 공평하지 않다. 5. 실패는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6. 담대하게 도전하라. 7. 약자를 괴롭히는 자들에게 맞서라. 8. 어둠을 뚫고 나아가라. 9.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라. 10.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였다.
이 말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디에선가 그리고 누구에게선가 듣던 그런 뻔해 보이는 말들이다. 그래서 어쩌면 다시 듣는다는 것이 별 감동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다. 어쩌면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뻔한 것, 당연한 것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그 사소한 것들을 실천하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그런 말들에 자극을 받게 되고 한 해의 시작 즈음에 다시 한번 다짐을 하고 있다.
"침대부터 정리하자."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디치 가문 이야기 - 르네상스의 주역 현대지성 클래식 14
G.F. 영 지음, 이길상 옮김 / 현대지성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르네상스가 시작된 곳이라고 불리는 것에 어느 누구도 감히 토를 달기 힘든 피렌체에는 아름다운 두오모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규모가 큰 돔으로 특히 유명한데 이 성당을 설계한 이는 브루넬레스키라는 건축가다. 이 아름다운 피렌체에는 지오토,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그리고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들이 있다.  예술가와 예술작품들은 권력자들, 도시의 귀족이나 교황 등 권력과 부를 가진 소수의 집단의 향유물이던 시대가 르네상스를 거치며 예술가들은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그것은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이 시대의 정신이 남긴 위대한 변화일 것이다. "인간성의 해방과 인간의 재발견, 그리고 합리적인 사유()와 생활태도의 길을 열어 준 근대문화의 선구"였던 르네상스를 싹트게 하고 발전시킨 피렌체에는 단지 위대한 예술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피렌체의 유적들, 예술작품들 뒤에는 '메디치'라는 이름이 늘 따라다닌다. 토스카나 지방의 부호였던 메디치 가문은 윈저가, 케네디가, 록펠러 가를 합친 것 같은 부와 패션과 권력을 한꺼번에 쥔 가문이었다.
<메디치 가문 이야기>는 760여 페이지의 촘촘한 내용에 메디치 가문, 그들이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경로로 권력의 정상에 오르게 되었으며 어떻게 몰락하여 막을 내렸는지, 그 전체를 서술하고 있다. 작가는 처음부터 '호의'라는 비뚤어진 잣대를 들이대지도 않을 것이며 '사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고, 설명하기보다 진술하여 독자들이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하며 이 글을 썼다고 말한다. 물론 그것에 대한 판단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달려 있다.

메디치 가문은 군사 정복에 힘입지 않고 은행가와 상인의 신분으로 일어나  350년 동안 가문을 이어나갔다. 메디치 가는 가문의 이야기가 곧 유럽의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국부였던 코시모, 위대한 자 로렌초, 교화 레오 10세, 교황 클레멘스 7세, 프랑스의 왕비 카테리나 데 메디치 등 유럽 역사에 기록된 굴직굴직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학문 부흥과 예술을 장려한 데 대해 찬양을 받기도 하지만, 이중적인 태도, 시민의 자유 박탈, 시민위에 군림하는 독재자, 심지어 살인죄 등 온갖 악행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 책에서 작가는 이들이 받은 이러한 평가가, 특히 비판이 과연 사실인가를 밝혀낸다. 그 대부분은 사실이 아님을 작가는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들어 밝히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사업가로서의 능력과 깊은 사려, 공익을 위해 재산을 내놓는데 인색하지 않은, 평민을 편을 들었던 위대한 가문이었음을 역설한다. 그들이 피렌체에서 명목상의 왕 이상의 존재로 독특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메디치가의 이러한 특징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용서할 줄 아는 사람만이 정복할 줄 안다."
특히 적을 용서하는 관용을 베풀었던 메디치가의 사람들은 인격의 힘으로 독재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위대한 자 로렌초의 시대는 가문의 역량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인데, 그는 정치가로서의 식견, 판단, 정치적 혜안을 가지고 있었고, 기민한 결정을 내리고, 사람들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게다가 고전 저자들에 대한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어 발전에 크게 기여한 시인 겸 저자였다.

장자 계열의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권력자였던 카테리나 데 메디치는 프랑스인들에게 '일개 부르주아 출신 여성'으로 프랑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인물로 프랑스 민족의 명예에 중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져 '이탈리아 여자'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 말은 민족적 편견과 종교적 반감, 이야깃거리에 대한 욕구가 결합되어 나온 소문이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오히려 그녀는 분별력과 자제력을 갖춘 지도자였으며 남편이었던 앙리 2세의 사후 30년 동안 프랑스의 강력한 섭정 여왕으로 프랑스를 통치했던 인물이었다. 종교개혁의 여파가 가장 심하던 시기,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싸움 속에서 서로 관용을 베풀도록 노력했던 카테리나 데 메디치는 메디치가의 특징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었던 시대를 앞서갔던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한다.

한 가문에 대한 정치사를 위주로 쓰인 <메디치 가문 이야기>는 그 분량만큼이나 읽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작은 사건들까지 놓치지 않고 서술해놓다 보니 자꾸 산만해져서 이야기의 흐름을 자꾸 놓쳤다. 좀 더 간결하게 서술했더라면, 조금 더 재미있게 서술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 독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소설 속 화자가 작가일 때 글쓰기가 제일 쉬울까? 혹은 어려울까?
화자가 작가일 경우 소설 속 이야기가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게 되며, 그래서 독자는 더욱 소설 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무렴 작가인데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지 않겠어 하며. 특히 주인공인 작가가 소설의 내용을 고민하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 경우 우리는 분명 작가의 경험담이라고 생각하며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조엘 디케르의 <볼티모어의 서>는 바로 그런 소설이다. 작가인 마커스 골드먼은 성공한 작가다. 그런 그가 무엇을 쓸 것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 자신의 과거를 불러내는 여인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이 떠오른다.

마커스의 큰아버지 사울 골드먼은 볼티모어에 사는 부유한 사업가다. 그리고 아버지 네이튼 골드먼은 몬트클레어에 사는 그저 그런 사람이다. 어린 마커스의 눈에 너무나 부러웠던 큰아버지 볼티모어 골드먼들. 그들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하나둘 풀어지면서 우리는 과거의 그 인식들이 왜곡되고 변질되었음을 알게 된다. 특히 지금은 성공한 작가의 눈에, 과거의 영광은 모두 사라져버린 볼티모어 골드먼들은 그 당시와는 전혀 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그 사라져 버린 볼티모어 골드먼에 바치는 서사가 바로 <볼티모어의 서>다.

이 소설을 쓰면서 과거의 일에 아프고 슬펐던 이들이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글을 쓸 수 있어서
전부 지울 수 있었고
전부 잊을 수 있었고
전부 용서할 수 있었고
전부 치유할 수 있었다.

골드먼가에 있었던 그 일, 우디와 힐렐이 그렇게 된 후 뿔뿔이 흩어져 괴로워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는 것은 마커스가 볼티모어 골드먼에 대한 글을 쓰게 되면서이다.

그 일이라고 하지 마라. 아니타도 그렇게 되었고, 따지고 보면 그 일은 정말 많았잖니? 앞으로도 그 일들이 계속 있을 테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만 해. 불행은 피할 새도 없이 밀어닥치지. 사실 그 일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정작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일들을 이겨내야 한다는 거야. 골드먼 일가가 추수감사절에 모이지 못한 건 그 일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야. 이겨내기는커녕 점점 더 깊은 좌절감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면 안 돼. 마커스, 우리에게는 가족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어. 이제부터 추수감사절에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려 쇠길 바란다. 그러겠다고 약속해다오.
마커스, 넌 지금 골드먼 이야기, 즉 볼티모어 골드먼과 몬트글레어 골드먼 이야기에 붙잡혀 있지? 이제 그 이야기의 결말에는 단 한 사람의 골드먼만이 남게 되겠지. 그게 바로 너야. 너는 거듭 태어난 거야. 우리는 모두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지. 난 사랑하고, 사랑받고 용서하는 게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단다. 그 나머지는 흘러버린 시간의 합에 불과해. 넌 계속 글을 써야 해. 네 글을 통해 골드먼들의 삶이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커스, 골드먼들의 삶이 치유해주겠다고 약속해다오. 볼티모어 골드먼들은 네 글을 통해 삶의 의미를 회복하게 될 거야.
글이 삶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우리가 부조리한 삶에 맞서는 복수전을 펼칠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준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 성벽처럼 강한 정신,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기억의 힘을 증명할 수 있다

<볼티모어의 서>는 겉으로는 멋있어 보이는 집들의 내부는 갈등과 모순이 존재하는 집 일수도 있고, 비록 허름한 집일지라도 그 안은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 단 한 번이라면 우리는 그 단 한순간에 매여 평생을 부자유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일들은 언제나 내 주위에 일어날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 그 일들을 겪어내며 조금씩 성장하면서. 그 인내와 성장에서 글쓰기는 작가의 말처럼 잊고 용서하고 치유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깊은 숲의 한가운데를 걸으면서 숲에 대하여 나무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란 힘들다.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의 한가운데서 이 작품을 이야기하기가 갑자기 힘들게 느껴진다. 1부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66세의 나이에 갑자기 사라진 친구 릴라의 이야기로 시작한 나폴리 4부작은 3부에서 화자인 레누의 결혼, 피렌체에서의 삶, 그리고 출산과 육아를 겪는 20대와 30대 초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제 마지막 4부만 남았다. 겨우 1권이 남았는데 아직 이야기는 겨우 반 정도만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그들의 관계를 만들고 다져가게 했던 수많은 에피소드로 넘쳐난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어 만든 첫 소설의 대성공, 그리고 첫사랑 리노와의 만남, 멋진 집안과의 결혼, 그리고 나폴리를 떠나 피렌체에서 살게 된 레누의 이야기가 3권의 대부분이다. 릴라는 나폴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햄공장에 다니며 엔초와 함께 아들을 키우며 산다. 그리고 엔초와 밤마다 컴퓨터를 공부한다.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에서는 청춘의 시기에 접어든 이들이 사는 이탈리아 사회의 대변혁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대학마다 벌어지는 학생시위, 공장에서 벌어지는 노동자의 시위, 공산주의자와 파시스트, 그리고 여성의 지위까지 진지하게 논의된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주인공들의 생각과 행동은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강의가 없는 빈 강의실에서 담배연기 자욱한 커피숍에서 술집에서 세상의 모든 모순과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 전사처럼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하던 우리들이 겹쳐졌다. 그 당시의 진지하고 심각했던 고민들은 그러나 졸업한 뒤 나름의 사회생활 속에 한때의 추억이 돼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책으로만 배운'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레누의 갈등과 고민, 그리고 현장에 있는 릴라의 이야기가 마치 내가 겪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교육을 많이 받았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 무지했다. 나 자신을 통제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다른 이들의 사상과 사건을 머릿속에 꾸역꾸역 집어넣느라 열정 없는 인생을 사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게다가 결혼과 안정적인 삶이 너무 빨리 시작될 예정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그곳에서 이미 몰락해버린 기존의 질서 체계 속에 너무 깊이 자리 잡게 된 것이었다.

어쨌거나 레누는 그렇게 기존의 질서 체계 속에 스스로 자리 잡아 버렸고, 반면 릴라는 스스로 자유로운 존재였다. 햄공장의 일로 릴라가 힘들 때 레누는 릴라를 데리고 피렌체로 떠나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릴나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너는 강하잖아. 나는 그렇지 않아. 너는 고향에서 멀어질수록 네 자아를 되찾고 행복해하지. 하지만 나는 큰길 입구에 있는 터널만 지나도 두려워. 예전에 함께 바다를 향해 가는데 비가 왔었던 때를 기억해? 우리 중에 누가 계속 가려고 했고 누가 돌아가려고 했는지 기억해?"

나는 알 수 없었다. 왜 릴라는 머무르려고 하는지.
소설은 '인간이라는 기이한 피조물에게 존재하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한다. 분신 같은 존재인 두 친구, 릴라와 레누는 그렇게 머무른 자와 떠나간 자로 나뉜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기대는 더 강해진 것처럼 보인다.

 난 네가 항상 최고였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이보다 훨씬 뛰어난 글을 쓸 수 있다고 확신해. 네가 더 잘하기를 원해. 그게 내 가장 큰 소망이야. 네가 뛰어나지 못하면 내 존재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레누의 홀로서기는 시작됐다. 릴라에게서 흘러오던 일종의 영감이 그 영향이 끊긴 레누는 혼자 고민하게 된다. 이제야 스스로를 돌아보는 레누는 릴라를 통해 자신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릴라와 분리된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고 이제야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글을 쓰게 된다.

내 사고방식과 언어는 지금까지 내가 받은 교육에 의해 형성되었다. 남보다 뛰어나게 되려고 나는 나 자신과 어떤 비밀스러운 협상을 맺었던가. 배우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이제 와서 배운 것 가운데 무엇을 잊으려 애써야 하나. 게다가 나는 릴라와 닮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가지고 살아왔다.
나는 자꾸만 내 자신을 릴라와 일치시키려 했다. 릴라에게서 분리되려고 할 때마다 불구가 되는 것 같았다. 릴라가 없으면 생각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릴라 없이는 내 생각에 확신이 생기지 않았고 어떠한 그림도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릴라와 분리된 내 모습을 받아들여야 했다. 해답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무엇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린 시절부터 나를 사로잡았지만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무엇인가 되기를 원했다. 그 무엇인가가 뭔지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물론 그동안 무엇인가가 되기는 했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뚜렷한 대상도, 진정한 열정도, 확실한 야망도 없이 말이다. 릴라는 중요한 사람이 되는데  나만 뒤처질까 봐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뭐라도 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무엇인가 되기를 바랐지만 릴라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제 나는 다시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 이번에는 오직 나를 위해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릴라에게서 벗어나 성숙한 인격체로서 말이다.

나폴리에 머무른 릴라는 그리고 나폴리를 떠나간 레누는 이제 각자 서로의 길을 걷게 될까? 그 분신 같던 유대감은 어떻게 될까? 궁금해진다. 이제야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은 둘은 어떤 삶을 맞이하게 될까? 4부가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페인 예술로 걷다 - 가우디와 돈키호테를 만나는 인문 여행
강필 지음 / 지식서재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을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여행사가 짜준 일정에 맞춰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패키지여행, 스스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구매해서 가는 배낭여행, 골프를 하기 위한 골프여행, 유람선을 타고 가는 크루즈 여행, 요즘에는 한 달씩 살아보기도 하는 체류형 여행, 맛 집을 찾아가는 먹방여행 등 각자 원하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여행이 가능하다.

작년 스페인 여행에서 데려온 가우디의 도마뱀
스페인을 여행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스페인의 밤 문화를 즐길 수 있는(스페인의 밤은 정말 뜨겁다. 바르셀로나에서 묵었던 하룻밤을 밤을 꼬박 새워 노는 옆집 인간들 때문에 잠을 설쳤다. 정말 날이 새도록 신나게 놀고 아침을 먹고 숙소를 떠날 때 그들도 헤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비자로 유명한- 여행도 가능하고, 바르셀로나 FC와 레알마드리드의 축구를 볼 수 있는 축구 여행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는 그림과 건축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강필 씨도 미술을 전공한 분답게 '우디와 돈키호테를 만나는 인문여행'이란 콘셉트로 스페인을 여행한 기록을 남겼다.
독자는 작가의 안내를 따라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과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그리고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을 둘러볼 것이며, 톨레도로 이동해서 엘그레코와 돈키호테를 엿볼 것이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로
<스페인 예술로 걷다>의 뒤표지
떠나 가우디의 여러 건물들과 달리 극장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을 보게 될 것이다.
작가가 말한 대로 바르셀로나 하면 '가우디', 톨레도는 '돈키호테' 마드리드는 '고야' , 피게레스는 '달리'로 유명하다.
이 책에 나오는 도시들 간의 이동거리와 이동 방법을 알려주는 지도

<스페인 예술로 걷다>의 목차

<스페인 예술로 걷다>의 목차
소피아 미술관에 있는 피카소의 게르니카
스페인의 미술관들은 프랑스의 미술관과 다르게 사진을 전혀 찍을 수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을 그저 눈으로 마음으로 감상하고 나와 추억할 수 있는 작은 조각도 남길 수 없어 아쉽지만, 그래서 또 한번 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 있던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혼자 단독으로 전시실 하나를 쓰고 있었으며 그 방을 지키는 두 명의 지킴이가 그림의 양 끝에 서서 관람객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그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전시실 안에는 게르니카가 스페인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알 수 있는 편지와 각종 서류들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그림을 앞에 두고 바닥에 앉아 한참을 보고 또 보았다. 그림의 가장 왼쪽 죽은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나도 가슴이 먹먹해지며 울고 있었다. 흑백의 강렬한 그림으로 전쟁을 반대해야 하는 너무도 당연한 이유를 항변하고 있었다.
구엘공원과 그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도마뱀
바르셀로나의 기억은 너무나 아쉬웠다. 가우디의 그 유명한 작품들(사르라다 파밀리아 성당, 카사 밀라, 카사바트요, 구엘공원 등)을 모두 겉에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표를 샀어야 했는데, 게으른 여행자는 그만 표를 구할 수 없어서 탑돌이 하듯이 주변만 뱅뱅 돌다 왔다. 다시 바르셀로나를 가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남겨두었다.
이 책은 나에게는 스페인 여행을 다시 환기시키는 시간이 되었고, 다시 스페인을 여행할 때는 무엇을 봐야 할 것인지 알려주는 좋은 정보를 품은 책이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많은 정보를 수집하겠지만, 특히 이런 문화적인 정보를 접하고 간다면 더욱 감동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