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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인문학 1 - 현실과 가상이 중첩하는 파타피직스의 세계 ㅣ 이미지 인문학 1
진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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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미지 인문학? 다소 낯설고 어색한 제목이다. 인문학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철학이나 역사인데 그것과 이미지가 도대체 어떻게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일까?
이미지란? 감각에 의하여 획득한 현상이 마음속에서 재생된 것이다.(사전적 의미) 그렇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영화, TV, 비디오, 광고, 사진 등의 시각 기호로 렌즈라는 매체를 통해 형성된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문학이란 무엇인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싶다. 인문학은 기원전 5세기에는 도시 젊은이들을 도시국가의 건전한 시민으로 키워내기 위한 교육이었다. 그 후 르네상스에는 인간 정신을 고귀하고 완전하게 하는 학문을 지칭하게 되었다. 19세기를 거치면서 자연과학과 분리되며 이제는 인간다움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인문학은 역사, 철학, 종교학, 음악, 연극과 무용 등의 공연예술, 회화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이미 인문학이란 말에는 이미지가 들어있었다. 우리가 인문학의 범위를 단지 글, 책으로 되어있는 어떤 것으로 그 의미를 축소시킨 상태로 알고 있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인문학은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고, 그 시대를 사는 인간을 해석하려는 이해하려는 시도임에 분명해 보인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저자의 말대로 '이미지'가 많은 부분을 지배하는 사회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면서 '이미지'가 강조되거나 언어가 되는 빈도는 더욱 많아지고 있다. 디지털 매체가 만들어내는 가상의 세계(가상의 현실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와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일은 더욱 심해진다. 그런 파타피직스한 시대에 대중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유를 하게 되며 다른 감정을 갖는다. 디지털 인터페이스는 가상과 현실을 봉합선 없이 중첩시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런 인터페이스에 익숙한 대중은 가짜마저 진짜처럼 대하는 파타피지컬한 태도를 자연스레 갖게 된다. (허경영 현상) 디지털 대중은 가상과 현실, 관념과 실재의 구별을 괄호 안에 집어넣어 버리는 현상학적 '판단중지', 즉 존재론적 중립의 태도를 취하려 한다. 이것이 디지털 대중의 새로운 세계 감정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판단중지', 존재론적 중립이 과연 옳은 것일까? 허상의 세계와 현실을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거짓의 세계에 열광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을 이용하는 세력에 우리가 조종당하는 것을 아닐까? 그것이 과연 인간일까?
하지만 영화, 사진, 그림에 대한 새로운 변화, 작품들을 보여주면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흥미롭게 설명해주고 있어 모르고 지나쳤던 것에 대한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