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닥터 슬립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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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하는 데 자신만의 독특한 버릇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경우 '너무 유명한 책, 베스트셀러는 피한다'였다. 굳이 이유를 따지면 재미는 있지만 작품성, 혹은 문학성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거나 그저 시간 때우기 정도의 작품이었다는 평을 남기기에 딱이었던 기억만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의 레이더에서 벗어난 작가가 바로 '스티븐 킹'이었다.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기에 나와 거리가 멀게 된 안타까운 인연을 가진 작가의 작품을 드디어 만났다.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정유정 작가가 당신의 신이라고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참 스티븐 킹의 작품은 이전에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은 적은 있지만 소설은 아니기에 제쳐두었다.


원작이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가로 기네스북에도 오른 스티븐 킹의 작품을 읽으면서 문학성과 대중성 사이의 그 무엇을 발견하고자 했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해? 일단 엄청 재미있고만. 그다음엔 어떻게 될까?'만 남았다. 스티븐 킹의 세 번째 장편소설 <샤이닝>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 의해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거기에 대한 스티븐 킹은 '자신의 작품 속 따뜻함이 사라져'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저자 후기에 보면 어느 사인회에서 독자가 던진 말 '저기, <샤이닝>의 그 아이는 어떻게 됐나요?'처럼 작가 자신도 그 작품을 두고 똑같이 자문하곤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 한 가지 더 '문제가 많았던 대니의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 협회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샤이닝>을 쓴 후에도 대디 토런스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천성은 선한데 잭 토런스의 자기 파괴적인 전철을 밟게 된 웬디의 안부도 궁금했다고 한다. 사랑과 책임감에 가족에게 묶여 버린 이들의 이야기가 <닥터 슬립>으로 나온 것이다.


보일러가 터지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희생하는(혹은 희생시키는) 것으로 모든 악몽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한 아들 대니는 그렇지만 그 뒤에도 계속되는 유령의 출현으로 괴롭다. 딕의 도움으로 악몽을 물리치지만 아버지처럼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술에 취해 어린아이와 둘이 사는 미혼모의 집에서 70달러를 훔친 죄의식에 시달린다. 대니는 그렇게 미국 전역을 떠돌며 과거와 자신의 능력으로부터 도망을 치고자 한다. 그러다 정착하게 된 곳에서 병원의 호스피스로 죽어가는 이를 돌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샤이닝의 능력으로 죽음을 앞둔 이들의 편안한 임종을 유도하는 일을 하는 '닥터 슬립'으로 살아가며 알코올 중독자 협회에서 치료를 한다. 그러던 그에게 더 거대한 샤이닝의 능력을 지닌 아브라가 나타나고 이들 샤이닝 능력이 있는 아이들의 스팀을 먹고 생을 연장해서 살고 있는 괴집단 트루낫이 아브라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샤이닝이라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작품은 눈에 보이는 듯한 인물과 배경 그리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손에서 책을 놓기 힘든 서사로 인해 읽을거리뿐만 아니라 읽는 내내 독자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으로 인해 볼거리까지 제공하는 작품이었다. 가족으로부터 받은 유전, 영향으로 괴로워하기도 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는 트루낫이라는 괴집단에 쫓기는 공포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올가미라는 공포를 같이 느낀다. 그 공포를 극복하는 것은 매일매일의 꾸준한 실천뿐이었다. 작가의 알코올 중독의 극복 과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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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 정호승의 새벽편지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해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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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너의 삶이다
네가 사랑하는 것을 하라, 자주 하라
어떤 것이 마음이 들지 않으면 바꾸라
너의 직업이 싫으면 그만두라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면 텔레비전을 끄라
너의 인생의 사랑을 찾고 있다면 중단하라
사랑하는 일을 하기 시작하면
사랑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분석하기를 멈추라, 삶은 단순하다
모든 감정은 아름답다
음식을 먹을 때는 마지막 한 입까지 감사하라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에게 열정에 대해 묻고
너의 꿈과 영감을 그들과 나누라
자주 여행하라
길을 잃는 것이 너 자신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기회는 단 한 번만 온다, 붙잡으라
삶은 네가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네가 만들어 낸 것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 밖으로 나가 만들기 시작하라
인생은 짧다
너의 꿈을 살고 너의 열정을 나누라

홀스티 선언문(류시화 옮김)

인생에서 보석이 되는 말들을 만난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라 등등. 그렇지만 내 생활 속에서 이 말이 실천으로 변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지, 살아있는 존재를 사랑하며 사는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고 살아간다. 말은 그저 선언으로만 존재한다.

우리는 또한 톨스토이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우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란 말도 무수히 반복하며 듣거나 말한다. 하지만 가끔 그렇게 살 뿐이다. 

정호승 님의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는  이런 우리들에게 하루하루 아니 한순간 한순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말해준다. 그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 말이 삶 속에서 어떻게 녹아들어 꽃을 피우고 변화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그가 강조하며 말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나 자신이 먼저 평범한 일상적 삶 속에서도 성자적 삶의 태도를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그것은 거대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지 않고 일상의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 올리는 기도부터.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기보다 자신의 물질을 위해 기도할 때가 많다. 버려야 할 것과 비워야 할 것을 위해 기도하기 보다 자신이 원하는 욕구의 획득과 완성을 위해 기도할 때가 많다. 우리가 가닿아야 할 침묵과 고요와 잃지 않아야 할 미소와 포옹을 위해 기도하기보다는 이 시대의 무질서와 폭력과 분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기도할 때가 많다. 결국 우리의 기도는 우리 자신을 위한 소유와 탐욕의 기도일 뿐이다.

우리는 아침의 기도부터 그리고 매일 먹는 음식에서부터 홀스티의 선언문의 말처럼 마지막 한 입까지 감사하며 길을 잃는 것이 나를 찾는 길임을 새기며 목적을 위해 달리는 마라토너가 아니라 여행자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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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1 - 오늘을 위한 성찰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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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도덕성은 위험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
역사는 대단히 국가적으로 조직된 학문인 동시에 끊임없이 국가라는 장벽을 부수며 나아가는 학문이다. 그래서 국가 간의 장벽을 넘나드는, 시간의 벽 또한 뛰어넘는 역사적 주제와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현재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가야할 길을 보여준다.
이덕일 님의 책 제목인 <고금통의 古​今通義>는 예나 지금이나 관통하는 의는 같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義라는 것은 무얼까? 의는 원칙을 말한다. 그것의 반대는 이(利)다. 이는 편법을 말한다.
이익에 눈이 멀면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 보면 앞의 수레가 엎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아니 심지어 눈앞에서 엎어지는 것을 보고도 다시 그길로 가는 사람이 비일비재하다.
자신이 타는 수레가 아니니 괜찮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을 좇는 진짜 이유는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왜 그 길을 가게 되는지, 그리고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 현실에 갇혀 자기 앞 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지금 우리들은 조금은 숨을 돌려 옛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고,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조언도 많았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몇 가지를 꼽아본다면 첫째, 반도사관을 버리고 대륙 사관을 회복하자는 주장이다. 우리는 청동기 시대에 '사유 재산 제도와 계급이 나타나게 됐다'라는 전제를 깔고 청동기 시대에야 고조선이 수립될 수 있다'라고 하는 학자들에게 역사를 배웠다. 이집트 고왕국이나 중남미의 잉카·마야·아즈텍 문명 등은 신석기 시대에 건국됐지만 이들이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는 없다. 유독 우리나라만 청동기 시대에 국가가 수립된다고 가르쳐왔는데 그 이면에는 위만 조선만이 역사적 사실이고 단군 조선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일제 식민 사학의 논리가 있다.
​용삼 참사 4주년이 지났다. 조선시대에도 철거는 있었다. 하지만 대책도 함께 있었다. 이것이 이 책에서 두 번째 주목해야 할 이야기다. 세조와 연산군 시대에 인가(人家)를 철거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당시에는 철거 대상인 인가에 식량을 주고, 3년 동안 세금을 면제해주었으며 한성부에 그들이 원하는 빈 땅을 대토(代土)로 주게 했다. 세조는 건축 자재까지 지급하려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조선시대에도 철거는 합리적인 보상 대책 후에야 이루어졌다. 이에 비해 얼마 전 용산 참사는 어떤가? 세입자가 지불한 권리금도 인정하지 않는 시행사는 웃는 반면, 우는 세입자와 공권력이 충돌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세번째 주목해야 할 이야기는 뇌물죄를 지은 관리에 대한 처벌이다. 벼슬아치의 범죄 중 가장 중하게 처벌하는 것이 장죄(뇌물죄)였다. '무릇 감독으로 나가 지켜야 할 자가 자신이 창고의 돈이나 곡식을 도둑질하면 수범과 종범을 가리지 않고 장죄(뇌물죄)로써 논죄한다.'라고 규정했다. 장죄는 이마에 자자하고, 뇌물을 받아 처벌된 관리들의 이름과 죄상을 장안에 적었다. 여기에 한 번 이름이 오르면 본인은 물론 자식들도 벼슬길에 나갈 수 없었으니 패가망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뇌물을 주고도 또 받고도 버젓이 다시 나타나 공직을 맡고 있는 이들이 있다.
네번째 주목하고 싶은 이야기는 일제시대에 훼손되고 왜곡되어 안타까운 이야기들이다. 어떤 말이라도 다 쓸 수 있었던 한글이 달라지게 된 것은 일제시대였다. '비록 바람 소리나 학의 울음소리, 닭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 모두 쓸 수 있다고 했던 훈민정음의 서문에 있었던 창제 원칙이 1912년 조선총독부 아래 크게 훼손된 후 계속 후퇴하고 있다.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ㄹ'이 첫소리가 되지 못하게 하고 일부 모음 앞에서 'ㄴ'이 첫소리가 되지 못하게 하는 두음 법칙 따위를 채택하면서 또 훼손됐다.
일제시대에 훼손되고 왜곡된 것이 비단 한 두가지이겠나 마는 현재 우리나라의 문제 중의 하나인 '전관예우'라는 말 또한 일 왕실의 용어다. 다이쇼15년 (1926)년 '대신의 예우와 전관예우 하사'라는 조항이 있어 전직 고관들에게 하사하는 특전이다. 법조계,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국민의 인신과 재산을 다루는 중요한 부서를 중심으로 전관예우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무엇인가? 일반 국민의 인신과 재산을 희생해 자신들의 직업적 이익을 취한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더운 여름이다. 예나 지금이나 통하는 피서법은 역시 독서가 최고인 듯하다. 허균은 '독서로 피서하는 것이 정말 하나의 좋은 방법인데, 이 술까지 있으니 어떻겠는가'라고 말했다. 정조는 '더위를 물리치는 데는 독서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독서하면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에 주재가 생겨서 외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사가독서라고 독서만 하라고 휴가를 준 제도가 있었으니 지금 우리가 조용히 새겨봐야 할 것이다. 이 더운 여름 <고금통의>를 읽으며 더위를 피하고 이익만 좇던 마음을 피하면 좋지 않을까?
여름 피서지에 함께 할 책으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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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철학 - 모든 위대한 가르침의 핵심
올더스 헉슬리 지음, 조옥경 옮김, 오강남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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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을 믿지도 않고, 특정한 종교만 옳다고 생각하고 있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모든 종교에 대해서 긍정적이다가 또 어떤 때는 모든 종교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종교와 철학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아마도 삶이 생각만큼 만만하지도 않고, 언제나 내 뜻대로, 계획대로 흘러가주지 않는 의외성으로 가득해서일 것이다. 과연 이런 혼란함 속에서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는 통찰력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많이 보고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하나의 답으로 나는 책을 읽는다.

올더스 헉슬리의 <영원의 철학>은 이런 나의 생각과 많은 부분 닿아있었다. 특정 종교에 매여있지 않다는 것,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어떤 근원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을 영원의 철학이라고 부른다.

 

영원의 철학이란?

라이프니츠가 최초로 사용한 용어. 사물, 생명, 마음의 세계에 본질적인 '신성한 실재'가 있음을 인정하는 형이상학이자, 인간의 영혼에서 '신성한 실재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심리학이며, '모든 존재의 내재적이면서 초월적인 바탕에 대한 앎'을 인간의 최종 목표로 두는 윤리학으로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져온 보편적인 개념이다.

 

​영원의 철학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영원의 철학은 세 가지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실천과 도덕성이라는 밑바닥에서 시작하거나, 형이상학적 진리를 고려하며 꼭대기에서 시작하거나, 마음과 물질, 행동과 생각이 인간의 심리학에서 만나는 장소에 초점을 두는 중간에서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다.  낮은 문은 고타마 붓다처럼 철저하게 현실적인 스승들이 선호하는 방법으로, 이들은 사변을 이용하지 않고 인간의 가슴에서 탐욕, 분노, 미혹과 같은 끔찍한 불을 끄는 데 주로 관심이 있다. 높은 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생각하고 분석하는 것이 천직인 타고난 철학자와 신학자들이다. 중간 문은 이른바 '영적 종교'의 옹호자들에게 입구를 제공한다. 인도의 헌신적인 명상가들, 이슬람의 수피들, 중세 후기의 가톨릭 신비주의자들, 그리고 덩크, 프랑크, 카스텔 루오, 에버라드, 손 스미스 및 초기 퀘이커 교도들과 윌리엄 로 같은 이들이다. 헉슬리의 영원의 철학은 바로 이 중간 문을 보여주고 있다.

 

헉슬리가 강조하는 영원의 철학으로 가는 길은 바로 자신의 의지와 노력을 통해서 도달하는 것이다.

'달의 형상은 자신의 눈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다른 이의 눈을 통해서 어떻게 달을 알 수 있단 말인가?

                                                                                    - 상카라

특히 영원의 철학을 얻는 데 방해되는 가장 큰 요소는 에고라는 것을 강조한다.

근본 바탕에 대한 직접적인 앎은 합일을 통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으며, 합일은 오직 '그것'으로부터 '그대'를 분리하고 있는 장벽인 이기적인 에고를 소멸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헉슬리는 그리스드교가 영원의 철학으로의 성격이 희미해진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가 인간의 형상으로 구현된 신성의 화신이라는 교리는 신의 화신이 오직 한 분뿐이라고 단정 짓는 점에 있다. 그렇게 믿기 때문에 힌두교나 불교의 역사에 비해 더 많고 더 피비린내 나는 성전, 종파를 초월한 전재. 박해 및 개종을 강요하는 침략주의로 더럽혀졌다. 그리스드교는 영원의 철학이 아닌 하나의 종교로 남아 시간 속에 존재하는 사건과 사물들에 어떤 때는 더 많이 어떤 때는 더 적게 맹목적으로 몰두함으로써 순수한 영원의 철학에서 멀어졌다.

문학가로만 알고 있던 헉슬리의 이 놀라운(사실은 내게는 너무 어려운) 책은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가 종교를 걱정해야 하는 이때에 통합, 융합 혹은 통섭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할 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이의 답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 답을 구하는 일, 내면의 빛을 찾는 일은 종교를 떠나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책 속 밑줄 긋기

최고의 사랑은 사심이 없고, 보상을 바라지 않으며 그 선함에 대해 어떤 악을 되돌려 받아도 줄어들지 않는다. 신이 주신 선물 때문이 아니라 신 자신을 위해 신을 사랑해야 한다. 또한 최고의 사랑은 의지의 행위로 시작해서 순수하게 영적인 자각, 그 대상의 본질과 결합하는 사랑- 앎으로 완성된다. 최고의 사랑의 필요조건은 겸손이다. 전적인 자기부정에서 겸손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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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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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역사는 현재로 통한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를 회고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고 싶어서 책을 썼다고 하는 유시민의 <나의 한국 현대사>는 그런 의미에서 나온 작품이다.

작가는 아마 지난 대선 이후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나 보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도 하기 싫은 기억이라 서랍 속에 박아두었지만. 그는 2012년 대선의 실체를 역사전쟁으로 보았다. 고령 유권자들이 투표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 했다고 추측하며 과거 대한민국의 발전을 추동했던 두 세력 간의 과거와 과거의 싸움인 동시에 서로 다른 미래를 품은 싸움이라고 해석했다.

이 역사전쟁의 주체는 5.16과 산업화를 대표하는 세력 즉 근대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다. 산업화 세력은 보수 세력, 애국 세력을 자처하지만 반대 진영에서는 유신 잔당, 5공 잔재 세력, 특권 세력, 냉전 세력 또는 수구꼴통이라고 부른다. 이 용어 가운데 그는 '산업화 세력'으로 지칭하기로 한다. 다른 하나는 4.19와 5.18과 민주화 시대를 대표하는 세력이다. 민주화 세력, 양심 세력, 진보 세력을 자처하지만 반대 진영에서는 빨갱이, 좌경용공, 종북좌파라고 부르는 세력이다.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대한민국이 사회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변화 속도가 너무나 빨랐던 탓에 생긴 현상이다. 모든 것이 다 좋게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좋은 쪽으로 바뀐 것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이러한 변화를 만든 힘을 유시민은 '욕망'이라고 진단한다. 특히 그의 4.19와 5.16에 대한 다음과 같은 평가는 재미있다.
'나는 그 둘이 부모는 같지만 외모와 성격과 취향이 완전히 다른 이란성 쌍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이승만 대통령 시대의 분단국가 대한민국, 아버지는 대중의 욕망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토크빌의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가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국민의 수준에는 훌륭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자유롭고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능력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이 정치만으로 현대사를 보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정치와 경제는 따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경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정치를 제대로 해석할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의 업적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점과 재벌의 문제는 눈길을 끈다.

그런 그의 글이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은 개인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부분에 있었다. 1980년 5월 서울역 광장에서 한가운데 선 그는 혼란의 한가운데 있다.

이 광장에 무장한 군인들이 들어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난 아마 죽을 거야. 스물한 번째 생일이 두 달 남았는데, 벌써 죽어야 하나?

그렇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는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 역시 국가운영의 많은 분야에서 민주화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정책과 형태를 보이는데, 그 기반은 불합리한 제도나 경찰과 군대의 폭력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거대 보수언론과 재벌, 공안세력이 반복 주입하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휘둘리는 시민들의 의식이 그 기반이다.

누가 어떻게 그 일을 해낼 것인가? 위대한 지도자를 기대할 수는 없다. 고령화와 에너지 위기, 양극화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변화를 이루려면 민주주의 제도와 절차를 통해 국민의 공감을 이루어야 하는데, 이것은 산업화나 민주화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한 과제다. 각자의 욕망과 신념과 이기심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연민, 교감, 공감을 바탕으로 상호 이해와 협력을 이루어야만 이 과제를 해낼 수 있다.

그의 이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2007년에 말기 암으로 6개월 시한부 삶을 살면서도 ‘마지막 강연’이라는 동영상을 통해 전 세계인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던진 미국의 랜디 포시 교수는 인생의 벽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벽이 있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벽은 우리가 무언가를 얼마나 진정으로 원하는지 가르쳐준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 앞에 멈춰 서라는 뜻으로 벽이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인생의 벽을 절망의 벽으로만 생각하면 그 벽 속에 있는 희망의 문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벽을 벽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 벽을 허물고 문을 만들어야 한다. 이념의 벽, 세대의 벽, 계층의 벽.... 이런 벽을 허물고 문을 만들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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