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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역사는 현재로 통한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를 회고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고 싶어서 책을 썼다고 하는 유시민의 <나의 한국 현대사>는 그런 의미에서 나온 작품이다.
작가는 아마 지난 대선 이후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나 보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도 하기 싫은 기억이라 서랍 속에 박아두었지만. 그는 2012년 대선의 실체를 역사전쟁으로 보았다. 고령 유권자들이 투표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 했다고 추측하며 과거 대한민국의 발전을 추동했던 두 세력 간의 과거와 과거의 싸움인 동시에 서로 다른 미래를 품은 싸움이라고 해석했다.
이 역사전쟁의 주체는 5.16과 산업화를 대표하는 세력 즉 근대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다. 산업화 세력은 보수 세력, 애국 세력을 자처하지만 반대 진영에서는 유신 잔당, 5공 잔재 세력, 특권 세력, 냉전 세력 또는 수구꼴통이라고 부른다. 이 용어 가운데 그는 '산업화 세력'으로 지칭하기로 한다. 다른 하나는 4.19와 5.18과 민주화 시대를 대표하는 세력이다. 민주화 세력, 양심 세력, 진보 세력을 자처하지만 반대 진영에서는 빨갱이, 좌경용공, 종북좌파라고 부르는 세력이다.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대한민국이 사회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변화 속도가 너무나 빨랐던 탓에 생긴 현상이다. 모든 것이 다 좋게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좋은 쪽으로 바뀐 것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이러한 변화를 만든 힘을 유시민은 '욕망'이라고 진단한다. 특히 그의 4.19와 5.16에 대한 다음과 같은 평가는 재미있다.
'나는 그 둘이 부모는 같지만 외모와 성격과 취향이 완전히 다른 이란성 쌍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이승만 대통령 시대의 분단국가 대한민국, 아버지는 대중의 욕망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토크빌의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가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국민의 수준에는 훌륭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자유롭고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능력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이 정치만으로 현대사를 보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정치와 경제는 따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경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정치를 제대로 해석할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의 업적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점과 재벌의 문제는 눈길을 끈다.
그런 그의 글이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은 개인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부분에 있었다. 1980년 5월 서울역 광장에서 한가운데 선 그는 혼란의 한가운데 있다.
이 광장에 무장한 군인들이 들어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난 아마 죽을 거야. 스물한 번째 생일이 두 달 남았는데, 벌써 죽어야 하나?
그렇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는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 역시 국가운영의 많은 분야에서 민주화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정책과 형태를 보이는데, 그 기반은 불합리한 제도나 경찰과 군대의 폭력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거대 보수언론과 재벌, 공안세력이 반복 주입하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휘둘리는 시민들의 의식이 그 기반이다.
누가 어떻게 그 일을 해낼 것인가? 위대한 지도자를 기대할 수는 없다. 고령화와 에너지 위기, 양극화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변화를 이루려면 민주주의 제도와 절차를 통해 국민의 공감을 이루어야 하는데, 이것은 산업화나 민주화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한 과제다. 각자의 욕망과 신념과 이기심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연민, 교감, 공감을 바탕으로 상호 이해와 협력을 이루어야만 이 과제를 해낼 수 있다.
그의 이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2007년에 말기 암으로 6개월 시한부 삶을 살면서도 ‘마지막 강연’이라는 동영상을 통해 전 세계인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던진 미국의 랜디 포시 교수는 인생의 벽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벽이 있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벽은 우리가 무언가를 얼마나 진정으로 원하는지 가르쳐준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 앞에 멈춰 서라는 뜻으로 벽이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인생의 벽을 절망의 벽으로만 생각하면 그 벽 속에 있는 희망의 문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벽을 벽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 벽을 허물고 문을 만들어야 한다. 이념의 벽, 세대의 벽, 계층의 벽.... 이런 벽을 허물고 문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