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고금통의 1 - 오늘을 위한 성찰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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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도덕성은 위험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
역사는 대단히 국가적으로 조직된 학문인 동시에 끊임없이 국가라는 장벽을 부수며 나아가는 학문이다. 그래서 국가 간의 장벽을 넘나드는, 시간의 벽 또한 뛰어넘는 역사적 주제와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현재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가야할 길을 보여준다.
이덕일 님의 책 제목인 <고금통의 古​今通義>는 예나 지금이나 관통하는 의는 같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義라는 것은 무얼까? 의는 원칙을 말한다. 그것의 반대는 이(利)다. 이는 편법을 말한다.
이익에 눈이 멀면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 보면 앞의 수레가 엎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아니 심지어 눈앞에서 엎어지는 것을 보고도 다시 그길로 가는 사람이 비일비재하다.
자신이 타는 수레가 아니니 괜찮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을 좇는 진짜 이유는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왜 그 길을 가게 되는지, 그리고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 현실에 갇혀 자기 앞 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지금 우리들은 조금은 숨을 돌려 옛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고,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조언도 많았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몇 가지를 꼽아본다면 첫째, 반도사관을 버리고 대륙 사관을 회복하자는 주장이다. 우리는 청동기 시대에 '사유 재산 제도와 계급이 나타나게 됐다'라는 전제를 깔고 청동기 시대에야 고조선이 수립될 수 있다'라고 하는 학자들에게 역사를 배웠다. 이집트 고왕국이나 중남미의 잉카·마야·아즈텍 문명 등은 신석기 시대에 건국됐지만 이들이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는 없다. 유독 우리나라만 청동기 시대에 국가가 수립된다고 가르쳐왔는데 그 이면에는 위만 조선만이 역사적 사실이고 단군 조선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일제 식민 사학의 논리가 있다.
​용삼 참사 4주년이 지났다. 조선시대에도 철거는 있었다. 하지만 대책도 함께 있었다. 이것이 이 책에서 두 번째 주목해야 할 이야기다. 세조와 연산군 시대에 인가(人家)를 철거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당시에는 철거 대상인 인가에 식량을 주고, 3년 동안 세금을 면제해주었으며 한성부에 그들이 원하는 빈 땅을 대토(代土)로 주게 했다. 세조는 건축 자재까지 지급하려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조선시대에도 철거는 합리적인 보상 대책 후에야 이루어졌다. 이에 비해 얼마 전 용산 참사는 어떤가? 세입자가 지불한 권리금도 인정하지 않는 시행사는 웃는 반면, 우는 세입자와 공권력이 충돌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세번째 주목해야 할 이야기는 뇌물죄를 지은 관리에 대한 처벌이다. 벼슬아치의 범죄 중 가장 중하게 처벌하는 것이 장죄(뇌물죄)였다. '무릇 감독으로 나가 지켜야 할 자가 자신이 창고의 돈이나 곡식을 도둑질하면 수범과 종범을 가리지 않고 장죄(뇌물죄)로써 논죄한다.'라고 규정했다. 장죄는 이마에 자자하고, 뇌물을 받아 처벌된 관리들의 이름과 죄상을 장안에 적었다. 여기에 한 번 이름이 오르면 본인은 물론 자식들도 벼슬길에 나갈 수 없었으니 패가망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뇌물을 주고도 또 받고도 버젓이 다시 나타나 공직을 맡고 있는 이들이 있다.
네번째 주목하고 싶은 이야기는 일제시대에 훼손되고 왜곡되어 안타까운 이야기들이다. 어떤 말이라도 다 쓸 수 있었던 한글이 달라지게 된 것은 일제시대였다. '비록 바람 소리나 학의 울음소리, 닭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 모두 쓸 수 있다고 했던 훈민정음의 서문에 있었던 창제 원칙이 1912년 조선총독부 아래 크게 훼손된 후 계속 후퇴하고 있다.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ㄹ'이 첫소리가 되지 못하게 하고 일부 모음 앞에서 'ㄴ'이 첫소리가 되지 못하게 하는 두음 법칙 따위를 채택하면서 또 훼손됐다.
일제시대에 훼손되고 왜곡된 것이 비단 한 두가지이겠나 마는 현재 우리나라의 문제 중의 하나인 '전관예우'라는 말 또한 일 왕실의 용어다. 다이쇼15년 (1926)년 '대신의 예우와 전관예우 하사'라는 조항이 있어 전직 고관들에게 하사하는 특전이다. 법조계,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국민의 인신과 재산을 다루는 중요한 부서를 중심으로 전관예우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무엇인가? 일반 국민의 인신과 재산을 희생해 자신들의 직업적 이익을 취한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더운 여름이다. 예나 지금이나 통하는 피서법은 역시 독서가 최고인 듯하다. 허균은 '독서로 피서하는 것이 정말 하나의 좋은 방법인데, 이 술까지 있으니 어떻겠는가'라고 말했다. 정조는 '더위를 물리치는 데는 독서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독서하면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에 주재가 생겨서 외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사가독서라고 독서만 하라고 휴가를 준 제도가 있었으니 지금 우리가 조용히 새겨봐야 할 것이다. 이 더운 여름 <고금통의>를 읽으며 더위를 피하고 이익만 좇던 마음을 피하면 좋지 않을까?
여름 피서지에 함께 할 책으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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